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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662화 (662/726)

#662화

천마와의 만남을 마치고 메시지까지 전한 처용이 다시 암영단의 거점으로 돌아오자.

“후, 벌써 처리하고 온 건가?”

레나, 아니 엘리스가 깊고 짧은 한숨을 내쉬며 처용에게 말했다.

마치, 조금 전까지 아주 급한 일을 하고 온 듯한 모습.

처용이 의문 어린 눈빛으로 엘리스를 응시하자.

“메피스토 녀석이 잿빛 군도 밖으로 나오도록 만들고 왔지.”

엘리스는 처용이 천마를 만나는 동안,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를 이야기했다.

천림맹의 거점 중 한 곳에 열린 블랙 게이트.

그곳에는 잿빛 군도를 수호하는 악마족, 스틸 데몬 중 몇몇이 블랙 게이트 밖에 나와 있었다.

즉, 게이트는 이미 폭주했고 무림 세계와 잿빛 군도가 연결된 상태였다.

다만, 메피스토는 잿빛 군도 안에 있는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모습을 본 엘리스는.

“내가 블랙 게이트를 폐쇄하려고 하니까. 메피스토가 바로 튀어나오더라. 크크.”

곧장 블랙 게이트가 열린 천림맹의 거점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네크로노미콘을 펼쳐 잿빛 군도와 연결된 블랙 게이트를 닫아 버리려 시도했다.

그 순간.

-제 발로 내 앞에 나타나다니!

블랙 게이트 속에서 곧장 메피스토가 나타났다.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태초의 그릇의 숙주, 예언자를 잡기 위해.

블랙 게이트를 폐쇄하려는 엘리스를 저지하기 위해, 직접 게이트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진심으로 상대하는 척, 적당히 싸우다가 발을 뺐지.”

엘리스는 그런 메피스토와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척하며 물러났다.

겉으로는.

-제길…….

블랙 게이트를 폐쇄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어쩔 수 없이 도망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메피스토가 작정하고 블랙 게이트 주변을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고 있더라.”

메피스토는 곧장 블랙 게이트 주변에 자신의 마기를 퍼트려, 판데모니움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블랙 게이트가 폭주한다고 해도, 그 안에서 나온 악마들은 일정 영역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대악마 소환 마법진을 통해 소환된 악마가, 일정 영역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다만, 예외가 있었다.

블랙 게이트가 발생한 장소 근처를 마기로 오염시켜 판데모니움과 유사한 환경을 형성한다면?

블랙 게이트를 빠져나온 악마가 점점 더 넓은 범위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범위가 일정 영역에 도달하면, 영역의 제한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도 가능했다.

지금 무림에서는 무려 삼천마인 메피스토가 직접 나서서 그 주변을 ‘검은 대지’로 만드는 상황.

이 무림 세계에 있어 위험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지만.

“당분간, 메피스토는 무림에 강림해 있을 거야.”

엘리스는 그런 상황을 일부러 유도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주 좋아.”

처용 역시, 그런 엘리스의 ‘준비’가 마음에 든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바로 태룡전으로 가지, 잿빛 군도에 잠입하려면, 니알라 님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우우웅.

곧장 게이트를 열며 레나와 함께 태룡전으로 들어섰다.

처용과 레나가 태룡전으로 돌아오자.

“왔어? 계승자.”

어느새 태룡전으로 돌아왔는지, 유리아를 안고 있는 보살이 미소를 지으며 처용을 반겼다.

그런 그녀의 위에는 거대한 금빛의 용.

조금 전까지 보살을 살펴보고 있었던 듯 보이는 황룡의 모습이 보였다.

“보살님, 다음부터는 꼭, 제게 미리 말씀해 주시고 행동하시는 겁니다?”

처용이 보살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진심 어린 목소리로 당부하듯 말했다.

보살이 보였던 돌발행동.

갑자기 천교의 성지 한가운데에 보살이 나타났을 때, 처용은 진심으로 당황했었다.

같은 일이 발생하는 것만큼은, 다시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고 또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몰랐기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보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처용이 달려가겠지만.

“다시는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모든 일이 평화롭게 풀리리란 법은 없었다.

처용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을 잇자.

[계승자의 의견에 동의하오. 나 또한 참으로 당황스러웠으니…….]

황룡 역시 처용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보살을 향해 당부하며 말했다.

“미안해, 다음부터는 꼭 말할게.”

보살이 처용과 황룡을 향해 미안하다고 말하며, 약속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가 아닌, 미리 말하고 행동하겠다는 말.

그런 보살의 말에 처용이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혹시, 보살님께 뭔가 문제는 없습니까? ‘기억’이라던가…….”

황룡을 바라보며 물었다.

조금 전까지 황룡이 보살을 진찰한 듯 보였으니, 그 결과를 물어본 것이었다.

재생되기 이전의 보살은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여신으로서의 우아함과 신성함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반면에, 어린아이가 된 지금은, 말투와 행동이 아이에 가까워졌다.

그런 그녀에게 무언가 문제는 없는지, 다른 문제가 일어날 경우는 없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인다. 본인이 작은 괴리감을 느낀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황룡은 그런 처용의 질문에 답해 주었다.

“괴리감이요?”

처용이 황룡의 말에 의문을 표하자.

“으음…… 이전의 나? 라고 해야 하나, 그 모습이 꿈처럼 느껴져.”

당사자인 보살이 처용의 말에 답하듯 말했다.

지금껏 대신으로서 지녔던 자신의 모습.

태룡전의 대신들과의 기억, 다른 성운의 신들과의 기억, 그리고 처용과의 기억.

보살은 그것들을 모두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 기억 속 대신으로서의 성숙한 모습이, 본인이라는 자각도 하고 있었다.

다만, 그 기억 속 스스로가 조금 멀고 어색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현실감이 옅은, 마치 꿈을 통해 겪었던 듯한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때문에 보살은 꿈을 꾼 것 같다고 말한 것이었다.

이것이 보살 본인이 이전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 사이에서 느끼는 괴리감이었다.

하지만.

“내가 다시 자라면, 곧 없어질 문제일 거야.”

보살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서로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

그 이유는 보살의 재생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재생을 모두 마치고 과거의 모습대로 몸이 성장하면, 그 어색한 괴리감은 곧 사라질 문제였다.

“난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알겠습니다.”

괜찮다는 보살의 말에, 처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무리 겉모습과 생각이 어린아이처럼 변했다 해도, 그녀가 보살임은 변하지 않는다.

현명한 여신인 그녀가 스스로를 무모한 위험 속으로 몰아넣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천교의 일도 나름 스스로의 안전을 확보하고 처용을 도와준 셈이었으니까.

처용은 보살에 대한 걱정과 생각을 그만두고는.

‘니알라 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성역 어딘가에 있을 니알라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그러자.

-아! 준비가 다 되었나 보네? 바로 이쪽으로 오면 돼.

곧장 니알라에게서 대답이 들려왔고.

-스르륵. 우웅!

처용 앞에 어둠이 뭉치며 직사각형 형태의 검은 게이트가 열렸다.

레나와 함께 처용이 니알라가 열어준 게이트로 들어섰고.

[그때 만들어 둔 마법진이 이렇게 쓰이네.]

-우웅.

보랏빛으로 빛나는 마법진 앞에 선 니알라가 처용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네, 이게 이렇게 활용될 줄은 몰랐지만요.”

처용이 그런 니알라의 말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니알라가 자신의 성역 안에 구축한 대악마 소환 마법진.

이 마법진은 처용이 판데모니움에 떨어졌을 때, 그를 구출하기 위해 만들던 소환 마법진이었다.

“잿빛 군도에 있는 마법진 역시 다 완성된 상태일 겁니다.”

처용이 니알라가 만든 마법진 앞으로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소환 마법진이란, 서로 다른 공간에서 두 개의 문을 만들고 동시에 여는 개념이었다.

니알라의 성역에 구축된 마법진이 입구라면, 잿빛 군도 어딘가에 출구 역할을 하는 마법진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그 두 개의 문을 통해 양측을 오갈 수 있으니까.

처용은 그 잿빛 군도 안에, 이미 ‘출구’를 만들어 둔 상태였다.

다름 아닌, 판데모니움에 자신이 갇혔을 때, 빠져나오기 위해 만들어 두었던 마법진이었다.

그곳에 남겨 둔 리치, 긴을 통해서 관리하도록 명령해 두었으니, 마법진은 그대로 있을 확률이 높았다.

“하, 그때 그런 걸 준비해 두었던 건가?”

사정을 들은 레나가 기가 막힌다는 듯 놀람을 표하며 말했다.

동시에, 처용이 왜 잿빛 군도로 즉시 갈 수 있다고 말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메피스토 모르게 그의 영지 안에다가 통로를 만들어 준 셈이었으니까.

“두 마법진이 잘 연결되는지 확인만 해 보지.”

-우우웅.

레나가 보랏빛으로 점멸하는 마법진에 어둠을 흘려보내며 읊조렸다.

처용은 소환 마법진에 더 손대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대악마 소환 마법진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건 그녀였으니까.

이미 입구와 출구, 두 개의 문은 완성된 상황.

안정적으로 문을 여는 건 레나와 엘리스가 제격이었다.

처용은 마법진을 살피는 레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으음.”

이내, 시선을 어느 한 곳으로 돌리며 작은 침음을 흘렸다.

처용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쿠-.]

검보랏빛의 푹신한 침대 매트 위에 대자로 뻗어, 옅게 코를 골고 있는 사람, 아니 악마.

나태의 대악마, 벨페고르의 모습이 보였다.

니알라의 권유를 망설임 없이 받아들이며, 바알을 배신한 대악마.

“참나…….”

처용은 세상 편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벨페고르를 보며 어이없는 헛웃음을 흘렸다.

모든 악마가 나베리우스처럼 바알에게 충성하는 건 아니라고 해도.

아무리 벨페고르가 다른 대악마와 달리 개성이 특이하다고 해도.

처용이 다시 생각해 봐도, 작금 상황은 황당함, 그 자체였다.

[벨페고르가 날 도와주겠다고 했어.]

그런 처용의 옆에 니알라가 다가오며 말했다.

니알라는 벨페고르에게 자신이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했고.

-그 정도쯤이야.

오랜만에 편안히 숙면한 벨페고르는 그런 니알라를 도와주겠다고 말했었다.

지금은 그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침대 위에서 자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르륵. 스륵.

그 검보랏빛의 침대에는 벨페고르의 기운, ‘나태’의 힘이 축적되고 있었다.

숙면 중인 벨페고르에게서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침대가 흡수하는 것이었다.

[벨페고르가 날 도와준 덕분에, 수련탑에 재밌는 걸 만들 수 있을 거 같아.]

“……헌터들의 수련에 도움이 된다면야, 환영이죠.”

처용이 헛웃음을 흘리며 니알라의 말에 답했다.

작금의 상황이 조금 황당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득인 상황이었으니까.

그때.

“……좋아, 연결이 끝났다.”

소환 마법진을 살펴보던 레나에게서 미소 어린 목소리가 울렸다.

“너와 나, 둘이 가도 문제는 전혀 없겠어.”

“바로 가지.”

레나의 말에 답한 처용이 소환 마법진 위에 올라섰고 레나 역시 따라 올라섰다.

동시에.

“무사히 갔다 오렴.”

-화아아!

니알라가 소환 마법진에 어둠을 흘려보내며 손을 흔들었다.

이윽고.

-파아아!

소환 마법진 위로 보랏빛의 섬광이 터지며 처용과 레나의 모습이 사라졌다.

***

정상적으로 소환 마법진이 작동되자.

-피이이!

보랏빛과 함께 처용과 레나가 어두운 장소에 나타났다.

그곳은 다름 아닌, 처용이 잿빛 군도 내에 미리 구축해 두었던 장소.

설계자에게서 대여받은 마공간, 그곳에 형성한 정원 아래의 어둠 속이었다.

처용과 레나가 소환 마법진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인님.”

이곳을 지키고 있던 리치, 긴이 처용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긴, 특이 사항은?”

“없습니다. 평소처럼 정원을 관리하며 설계자와만 접촉하고 있었습니다.”

처용의 물음에, 긴이 그간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결론짓자면, 처용이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변수는 일어나지 않았다.

“설마, 이 녀석 추기경의……?”

그런 긴을 유심히 바라본 엘리스가 헛웃음을 흘리며 처용에게 묻자.

“말파스의 보물창고 안에 처박혀 있더라고 내가 부활시켜서 요긴하게 다루고 있었지.”

“저는 오롯이 주인님만을 위해 존재합니다.”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고 긴이 정중한 목소리로 처용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이젠 놀랍지도 않네.”

엘리스가 황당한 목소리로 읊조리고는.

“설계자의 마공간이라…… 네 철저한 준비 덕분에, 그걸 훔치기 아주 수월해지겠어.”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미소를 담아 말했다.

지금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곧장 파악했고 앞으로 어떻게 움직이면 좋을지까지 생각한 듯한 모습.

“이제부턴 네가 나를 안내해야 한다.”

“네가 거의 떠먹여 주다시피 했는데, 이 내가 차려진 밥상을 엎을 리가 없잖아. 흐흐.”

이어지는 처용의 말에 엘리스가 자신감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잿빛 군도 내부로의 잠입.

이 문제는 처용이 미리 만들어 두었던 소환 마법진 덕분에, 손쉽게 해결되었다.

무사히 잿빛 군도 내부로 잠입까지 성공한 상황.

지금부터는 엘리스의 몫이었다.

“긴, 혹시라도 메피스토가 돌아온다면, 즉시 내게 알리거라.”

“알겠습니다. 주인님.”

처용의 명령에 긴이 고개를 숙이며 답하고는.

“전송.”

-피이이!

두 손을 앞으로 뻗으며 처용과 레나를 마공간 밖으로 전송시켰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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