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659화 (659/726)

#659화

천림맹의 무인들이 가로막던 서남쪽 관문을 지나친 처용이 계속 앞으로 나아갔고.

-탁.

이내, 눈앞에 드러난 산길의 입구에 도달하며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처용의 집이자 지구에 세워진 성지, 태룡사.

본래 사찰인 그곳과 비슷한 분위기가 일렁이는 산길이었다.

그 이유는 태룡사의 입구에 세워진 것과 같은 사찰 입구의 문.

일주문(一柱門)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용이 그 일주문을 지나치며 산 위를 향해 나아가자.

[소림사(少林寺)]

이내, 경건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일렁이는 넓은 사찰.

무림 세계의 대표적인 문파 중 하나인 소림사가 나타났다.

처용은 소림사의 간판을 바라보며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끼이이- 저벅.

봉문을 당해 굳게 닫혀 있던 정문을 크게 열어젖히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강제로 닫혀 있던 소림사의 문이 열리고 처용이 그 안으로 들어서자.

“이곳엔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미리 기다리고 있었던 듯 보이는 노승(老僧)이 처용을 바라보며 물었다.

허름하고 오래된 듯 보이는 승려복과 왼손에 쥐어진 백팔염주(百八念珠).

하얗고 길게 늘어진 눈썹과 수염, 인자함이 드러나는 눈가의 주름.

‘오랜만입니다. 신승(神僧) 님.’

처용이 자신의 앞에 나타난 노승.

신승(神僧)이라는 별호(別號)로도 불리는 소림사의 방장을 알아보며 속으로 반가움을 드러냈다.

회귀 전, 수호신이었던 처용을 지지하고 도와주었던 무림 세계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처용이 자신의 앞에 나타난 소림방장을 잠시 응시하고는.

‘장문인(掌門人)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었던 건가?’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척을 감지한 듯, 눈을 빠르게 돌리며 속으로 읊조렸다.

제 모습을 숨기 채, 처용을 지켜보는 시선들.

무림 세계의 기준에서, 상당한 경지에 오른 무인들이 처용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화산파 장문인, 제갈세가 가주…….’

처용은 제 모습을 숨긴 채, 자신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을 단번에 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군?”

소림방장, 신승을 바라보며 물었다.

“……천림맹의 성지를 부순 자이지요.”

그 물음에 짧게 침묵한 신승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용을 향한 두려움을 삼키며 진지하고 신중함을 보이는 듯했다.

근처에서 모습을 숨긴 채, 처용을 지켜보는 이들도, 신승과 같은 심정인 듯 보였다.

그들 모두, 하늘 관문을 통해 처용이 어떤 무력을 발휘하는지.

이곳에 있는 이들 모두가 덤벼도 이길 수 없는 검성과 어떤 싸움을 벌였는지도 보았었기 때문이었다.

“크크, 놈들이 나를 ‘재앙신’이라고 부른다지?”

처용이 천림맹을 비웃듯,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이명을 언급하자.

“…….”

-…….

재앙신이라는 그 이름에 공감하듯, 신승과 다른 장문인들이 긴장감을 드러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처용이 웃음기를 지우고는.

“나는 그대들에게, ‘진실’을 알려 주러 왔을 뿐이다.”

진지한 목소리로 이곳에 온 목적을 이야기했다.

“진실을 알고 싶다면, 모두 나를 따라와라.”

-저벅.

처용이 신승을 지나쳐 소림사 내부를 향해 나아가자.

-스륵. 스르륵.

근처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이들.

천림맹에 의해 봉문당한 다른 문파의 장문인들과 세가의 가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모두가 신승을 눈짓했고.

“……저자의 말대로 하시지요.”

짧게 고민한 신승이 답하듯 말하며 처용의 뒤를 따랐다.

다른 장문인들과 가주들 역시 그런 신승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저벅.

처용이 소림사의 내부를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나아갈 때.

‘어찌……?’

그런 처용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신승이 속으로 의문을 삼켰다.

이곳에 처음 와 보았을 터인 처용이 너무나도 익숙한 듯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마치, 오랜 시간 소림사에 거닐며 수행한 고승(高僧)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신기한가? 내가 이곳을 잘 아는 것 같아서?”

처용이 그런 신승의 의문 어린 시선을 알아챘다는 듯 말하자.

“……이 노승의 눈에는 신기할 따름입니다.”

신승이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

처용은 그런 신승의 말에 작은 미소를 흘리고는.

“곧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조금 전에 했었던 말을 다시 언급하며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소림사의 사찰들을 쭉 지나쳐 간 처용의 발걸음이.

-탓.

이내, 소림사의 중심, 가장 거대한 사찰 앞에 펼쳐진 드넓은 공터 위에서 멈추었다.

그저 소림사의 무승들이 대련하거나 수행하기 위한 장소로 활용되는 곳.

아무것도 없는 곳에 처용이 멈춰서자, 대부분 의문 어린 표정을 자아냈고.

“……여긴.”

신승은 혹시? 하는 표정으로 처용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오직, 소림방장에게만 전승(傳承)되는 비밀.

그 비밀과 관련된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이곳이었으니까.

“알고 있다.”

처용은 그런 신승에 반응에 답해 주듯,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우웅. 스르륵.

두 손에 강기를 모으고 손바닥을 펴며 아래를 겨누었다.

처용이 강기가 서린 손바닥을 지면에 내리치자.

-타앙! 쿠쿠궁!

지면에 처용이 내지른 손바닥 자국이 크고 넓게 새겨지며 퍼지더니.

-쿠궁! 쿠구구-!

공터의 중심 부분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며 숨겨진 무언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던 공터 한가운데에 나타난 것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

그 광경을 본 신승의 눈동자가 거침없이 흔들렸다.

다른 이들 역시 놀라움 어린 표정을 자아냈다.

처용이 그런 이들의 반응을 무시하고 계단 아래로 내려가자.

-저벅.

신승이 처용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따라나섰다.

계단을 쭉 내려가자, 어둠이 짙게 깔려 앞이 보이지 않는 공동이 드러났다.

“화염부 – 호롱불.”

-화륵.

처용이 공동 외곽에 나열된 화로에 화염부를 던지며 불을 피우자, 공동 내부가 밝아졌다.

위의 공터와 비슷한 넓이의 원형 공동.

단단한 강철로 되어 있는 외벽에는 부수고 깨진 듯한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중간중간에는 사람이 어떤 자세를 취하는 듯한 모습도 엿보였다.

마치, 벽에 새겨진 벽화가 오랜 세월을 견디지 못해 훼손된 듯한 모습이었다.

“여긴…… 소림의 비고(秘古)요?”

처용과 신승을 따라온 이들 중 한 명.

화산파의 장문인이 신승을 향해 궁금한 듯 묻자.

“……그렇소. 오직 소림방장을 통해서만 전해지던 비고이지요.”

신승이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최초의 소림, 소림의 시작이자 우리의 역사가 기록된 장소입니다.”

처용이 찾아온 이 장소는 소림의 역사가 새겨진 장소였다.

다만, 세월의 풍파(風波)를 견디지 못하고 벽에 새겨진 기록이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외벽에 새겨진 문자와 흔적들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희미한 이유였다.

“그대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신승이 처용을 바라보며 진심 어린 의문을 담아 물었다.

그러자.

“난 아직, 그대들에게 진실을 보여 주지 않았다.”

-저벅.

처용은 같은 말을 반복하여 답하고는, 비고의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

소림의 기록이 끝나면서도 시작되는 듯 보이는 지점.

-우우웅.

처용이 벽을 향해 두 손을 뻗으며 신력과 강기를 내뿜자.

-우우웅!

외벽 전체에 은은한 금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마치, 처용이 내뿜는 기운과 공명하는 듯한 모습.

그리고.

-스르륵. 저벅.

외벽의 중심에 있던 처용이 둘로 갈라져 좌·우 벽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둘로 나누어진 처용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걸어 나갈 때마다.

-촤라락! 촤락!

벽에 새겨진 자잘한 흔적들이 말끔하게 지워지며 평평한 벽으로 바뀌었다.

마치, 옛 그림이 그려진 헌 종이가, 새로 막 뽑아 낸 깨끗한 종이로 변하는 듯한 모습.

이윽고 벽의 흔적을 지우며 나아간 두 명의 처용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비고의 시작과 정확히 반대되는 부분에서 서로 마주친 것.

-스륵. 스르륵!

발걸음을 멈춘 두 명의 처용이 서로 뒤를 돌아 등지며 자세를 잡았다.

좌측으로 나아간 처용은 두 주먹을 쥐고 자세를 낮춘 모습.

우측으로 나아갔던 처용은 두 손바닥을 펴고 자세를 꼿꼿이 세운 모습이었다.

두 명의 처용이 보인 자세는 다름 아닌 소룡의 절권과, 반야의 반탄장이었다.

이윽고.

-탓! 후욱!

양측의 처용이 동시에 벽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절권 – 강격, 파권…….’

-후우욱! 훅! 스륵-!

굳게 쥔 주먹을 앞으로 뻗으며 절권을 구사하는 좌측의 처용과.

‘반탄장 – 반탄의 원.’

-스르륵. 후욱!

두 손으로 태극을 그리며 반탄장을 구사하는 우측의 처용.

두 명의 처용이 벽을 따라 이동하며 절권과 반탄장을 구사하자.

-쿵! 쿠궁! 촤아아!

절권과 반탄장을 구사하는 처용의 모습과 흔적들이 고스란히 벽에 새겨졌다.

이내, 절권과 반탄장을 구사하며 나아가던 두 명의 처용이 다시 서로를 마주하자.

“절권 – 오의.”

-후우-욱!

좌측의 처용이 주먹에 강기를 압축하여 우측에서 온 자신을 향해 내질렀고.

“반탄장 – 오의.”

-스르륵.

우측의 처용은 좌측의 처용이 내지른 주먹을 향해 손바닥을 부드럽게 내뻗었다.

이윽고.

“제천(齊天).”

“평정(平定).”

-쾅! 파아아-!

절권과 반탄장의 오의가 서로 충돌하며 잔잔하고 묵직한 강기가 짙게 퍼져 나갔다.

강렬한 기운이 파동처럼 퍼지며 주변의 무엇이든 파괴할 듯 보였지만.

-우우웅. 스르륵-.

그 파동은 벽과 바닥에 흔적만이 남길 뿐, 주변은 일절 파괴하지 않았다.

두 명의 처용이 절권과 반탄장의 오의를 펼치며 충돌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스르륵.

둘로 나뉘었던 처용이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처용이 소림사의 비고에서 절권과 반탄장을 펼친 결과.

-우우웅.

풍파에 마모되어 가던 소림의 기록이 선명하게 다시 새겨졌다.

비고 전체에는 신성함이 가득한 금빛이 일렁였고.

“소림의 역사가…… 마모되어 가던 소림의 역사가…… 다시 새겨졌다.”

그 모습을 본 신승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벽을 둘러보며 읊조렸다.

동시에, 처용이 펼쳤던 절권과 반탄장이 다시 머릿속에 상기되었다.

강하고 절도 있는 절권의 묘리와 부드럽고 탄성 있는 반탄장의 묘리.

이윽고 두 명의 처용이 마지막에 펼친 제천과 평정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떠올린 순간.

-파아아-!

신승에게서 강렬한 강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 소림방장인 신승의 경지는 현경(玄境).

그런 그가 처용을 통해 거대한 깨달음을 얻은 결과.

-콰아아!

현경 다음의 경지, 신화경(神化境)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파사사…… 파삭!

주름이 자욱한 겉 피부가 나무껍질처럼 바스러지며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주름 가득한 피부와 새치들이 떨어져 나가며 사라지고 탄탄한 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번데기가 낡고 허름한 껍데기를 벗고 나비로 변화하는 듯한 모습.

환골탈태(換骨奪胎).

육체가 수명의 제약을 벗어나 젊음을 되찾고 전성기 상태를 유지하는 현상이었다.

깨달음을 얻고 신화경에 오른 신승이 낡은 육체를 벗어 내고 새로 태어난 것이었다.

“가지런한 하늘 아래…….”

그 모습을 본 처용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자.

“모두가 고요하고 평온한 세상을 만들리라.”

젊음을 되찾은 신승이 강한 목소리로 처용의 말을 잇듯 목소리를 내었다.

가지런한 하늘 아래 모두가 고요하고 평온한 세상을 만든다.

소룡과 반야의 오의인 제천과 평정을 의미하는 말.

이는 소림방장에게만 전승되는 소림의 구결 중 하나였다.

신승의 강한 목소리에 처용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악과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아라한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소림의 명맥을 지켜 준 그대에게-.”

신승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탁. 스륵.

처용이 정중한 목소리로 신승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했다.

“그대들에게도 역시, 같은 감사를 전합니다.”

신승의 뒤에 있는 이들에게도 같은 자세를 취하며 감사를 전하자.

“소림방장, 운림! 아라한의 진인(眞人)을 뵙습니다!”

-탁!

그런 처용의 감사에, 신승이 마주 포권을 취하며 강하게 말했다.

신승의 포권을 시작으로.

“화산파 장문인이 아라한의 진인을 뵙습니다!”

“청성파 장문인이-!”

-탓!

화산파 장문인을 포함한 다른 이들 역시 처용에게 포권을 취하며 소리쳤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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