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658화 (658/726)

#658화

천교의 성지에 초대형 운석이 떨어져 쑥대밭이 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쿠구구! 파아아……!

하늘 위에 펼쳐졌던 하늘 관문이 거칠게 진동하며 점점 사그라져 갔다.

동시에.

“놈들의 본거지를 처리했다.”

-우우웅. 탓.

처용이 루나와 루비아와 함께 황금빛 게이트를 열고 암영단 본부, 레나 앞으로 돌아왔다.

보살의 돌발행동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천교의 성지를 부수긴 했지만.

‘뭐, 결과가 좋았으니 문제는 없겠지.’

처용은 오히려 기회를 잘 잡아 활용했다고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천교의 성지를 완전히 부순 것에 그치지 않고 놈들이 그동안 모은 생명력도 강탈했다.

더불어 검성까지 마주해 그와 맞붙으며 메시지까지 전달했다.

여러모로 얻은 것도 많고 좋은 결과를 내었다고 판단했다.

“복잡해질 뻔한 일을 생각보다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었어.”

천교의 성지를 파괴하고 온 처용이 가볍게 산책을 즐긴 듯한 미소를 보이며 말하자.

“…….”

“…….”

암영단의 거점 안에 있던 사람들.

정확히는 하늘 관문을 통해 처용을 지켜보던 모든 사람이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음? 설마 생중계를 하고 있었던 건가?”

처용이 주변의 반응과 하늘 위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하늘 관문을 번갈아 보며 읊조리자.

“어, 영화 한 편 아주 재밌게 봤다. 한처용.”

어둠으로 만든 의자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던 레나가 처용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왼손에 팝콘 봉지와 그 옆에는 마실 음료까지 놓은 모습.

그녀의 말대로, 영화를 한 편 관람한 듯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그녀의 옆에는.

“계승자. 고생했어.”

-와그작.

보살이 편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팝콘 봉지를 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그녀의 무릎 위에 앉아 보살이 건네는 팝콘을 받아먹는 유리아까지.

둘 역시 엘리스처럼 하늘 관문을 통해 처용을 구경하고 있었던 듯 보였다.

“거의 모든 무림인이 네가 저지른 광경을 봤을 거다. 후후.”

“……일부러 그랬군?”

미소를 머금은 레나의 말에, 처용이 생각에 잠시며 읊조리듯 물었고.

“이 상황을…… 이용할 수 있겠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방금 천교의 성지에서 있었던 전투가 하늘 관문을 통해 무림 세계에 퍼진 듯 보였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처용이 천교와 대적하는 자이며,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 샘.

이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면?

여러 귀찮은 과정을 생략하고 즉시 움직일 수 있었다.

“역시, 나랑 같은 생각을 바로 떠올리네?”

“안 그래도 이것저것 준비하기가 귀찮았는데, 일이 수월해지겠어.”

처용이 엘리스의 말에 동의하듯,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

같은 시각, 천교의 성지.

아니, 천교의 성지였던 장소.

-쿠구구! 화륵! 쿠콰……!

아직도 자잘한 폭발과 화염이 들끓고 있는, 지상에 불지옥이 구현된 듯한 모습.

그런 지옥의 한복판에서.

-크윽! 당장 주변을 정리해라!

-불부터 꺼!

무인들과 병사들이 열기와 싸우며 주변을 수습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젠장.”

주변을 둘러본 검성이 참담한 목소리를 흘리며 읊조렸다.

짙은 책임감이 일렁이는 듯한 목소리.

이 모든 상황은, 자신이 칩입자를 저지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검성이 짚은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감고 인상을 찌푸렸다.

동시에, 성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사라진, 정체불명의 침입자를 다시금 떠올렸다.

-검성, 아니…… 남궁 진.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자.

-사흘 뒤, ‘맹약의 장소’로 찾아와라.

단 한 명밖에 알지 못하는 비밀을 알고 있는 존재.

계속해서 정체를 묻는 검성의 집요한 물음에 답해 주듯, 칩입자가 한 말들이었다.

“대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검성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문을 읊조렸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

그 의문을 해소하려면.

‘사흘 뒤…….’

침입자가 알려 준 대로, 사흘 뒤에 찾아가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검성이 의문과 탄식을 읊조릴 때.

“……형님.”

-저벅.

그런 검성의 곁으로 화려한 비단 도복을 입은 노인이 다가왔다.

검성을 향해 형님이라 부르며 다가온 이는 다름 아닌 검성의 동생.

천림맹주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해 들었습니다.”

“……후, 미안하오. 천림맹주.”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는 천림맹주의 말에 검성이 한숨을 내쉬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말에 천림맹주가 순간 눈썹을 꿈틀거리며 불편한 기색을 흘리고는.

“아닙니다. 검성께서 나서주신 덕분에, 그나마 이 사람들이 살아남은 것이겠지요.”

이내, 작은 미소를 흘리며 검성을 위로하듯 말했다.

그리고.

“그 침입자의 무력이…… 어느 정도입니까?”

진지한 목소리로 이곳을 습격한 이들의 무력을 물었다.

성지에 침입한 적은 전부 세 명으로 추정되었다.

중요한 무언가를 훔쳐 간 흑발의 여인.

이 성지에 거대한 바위를 떨궈 완전히 파괴해 버린 백발의 여인.

그리고…….

검성과 검을 맞대며 호각으로 싸운 존재.

이렇게 셋이었다.

다만, 천림맹주가 말한 침입자의 무력은 셋 전부가 아니라.

“검성과 검을 섞은 자. 말입니다.”

검성을 저지한 정체불명의 침입자를 말한 것이었다.

우려감이 일렁이는 천림맹주의 물음에.

“나보다…… 강할 수도 있습니다.”

짧게 침묵한 검성이,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했다.

“큰일……이군요. 하필이면 이럴 때……!”

검성의 솔직한 말에, 천림맹주가 인상을 와락 구기며 침음을 흘렸다.

지금껏, 검성이라는 무림의 절대자가 있었기에, 모든 일이 수월하게 풀려 갔다.

곧 있으면 방해되는 모든 세력을 정리하고 원대한 꿈을 이룰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강력한 훼방꾼이 나타났다.

그것도 검성을 무력으로 능가하는 존재가 나타나 버렸다.

“그 침입자…… 천교의 신들께서 제게 해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천림맹주가 기억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세계의 법칙을 파괴하고 신들마저 죽일 수 있는 아주 사악한 존재가 있다고 들었으니까.

조금 전, 성지를 파괴한 그 정체불명의 존재가 천교의 신들이 말한 그 존재인 것 같았다.

“역천군주 한처용. 천교의 권리를 강탈한 악신이 만든 인간병기라고 했었습니다.”

천림맹주가 천교의 신들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를 검성에게 전하자.

“걱정하지 마시오. 맹주.”

인상을 편 검성이 침착해진 목소리로 답하듯 입을 열었다.

“여차하면, ‘최후의 검술’을 사용해서라도 그를 막을 터이니…….”

“…….”

각오가 일렁이는 검성의 말에 천림맹주가 순간적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천교의 신들께서도 도와주신다고 하시니, 함께 대책을 강구하시지요.”

빠르게 표정을 감추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

천교의 성지가 쑥대밭이 되어 버린 지 하루가 지난 시점.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어제 그거…… 진짜입니까?”

서남쪽에 자리한 천림맹의 관문.

그곳을 지키는 무인들과 천 제국의 병사들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된 주제는 다름 아닌.

“재앙신(災殃神)이 성지를 파괴한 거…… 진짜일까?”

“그대들도 직접 보지 않았소?”

하루 전, 천교의 성지에서 벌어진 재앙에 대한 이야기였다.

본래는 하늘 관문을 통해, 천교의 제례를 무림 세계에 알리고 그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의식.

그러나 그 신성한 의식 도중, 정체를 알 수 없는 침입자가 나타나 제물을 빼앗고 성지를 파괴했다.

무림 최강이라 불리는 검성까지 나서서 침입자와 맞섰지만.

-이게 고작인가? 검성.

검성조차도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침입자를 처치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검성이 침입자의 검술에 의해 밀려나는 듯 보였다.

“검성이 재앙신에게 패배한 게-.”

천림맹의 무인 중 한 명이 검성을 언급하며 말한 순간.

“시끄럽다! 쓸데없는 소리 지껄일 시간에, 경계나 철저히 서라!”

견장을 차고 있는 천림맹의 무인이 방금 입을 연 무인을 향해 호통치듯 소리쳤다.

“하지만 조장(組長), 누가 봉문된 세가를 찾아옵니까?”

“여기는 검성 외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고요.”

지금, 천림맹의 무인들과 천 제국의 병사들이 지키는 곳.

이곳은 전 무림맹의 핵심 세가들이 봉문된 장소로 향하는 길목이었다.

천림맹에 규합되는 것을 거절한 대가로, 봉문을 당한 세가들.

이곳을 지나 봉문된 세가를 만나려면, 천림맹주의 허락이 필요했다.

혹은, 검성이나 십성 장군들처럼 천림맹의 절대 권력자들만이 드나들 수 있었다.

그나마 이곳을 주기적으로 찾는 이는 검성 한 명뿐.

“누가 여길 찾아온다고…….”

무인 중 한 명이 그 사실을 언급하며 지루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읊조릴 때.

-……저벅.

누군가가 이곳으로 다가오는 듯한 발소리가 울렸다.

그 발소리에 관문을 지키는 무인들과 병사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처음에는 이곳을 주로 찾는 검성인 줄 알았지만.

“……여긴 통제 구역이다. 물러나라.”

이곳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는 사람이 낯선 얼굴임을 확인하며 경고하듯 말했다.

무인들이 손을 뻗으며 접근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점점 다가오는 이가 발걸음을 멈추지 않자.

-스릉. 철컥.

병사들이 창을 겨누고 무인들이 칼자루에 손을 올렸다.

그때.

“……저, 저, 저…… 저건……!”

무인 중 한 명이 점점 다가오는 이를 보다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를 흘렸다.

그 목소리에 다른 무인들과 병사들이 의문을 표했고.

“어……!”

“서, 설마?”

이내, 같은 반응을 보이며 안색이 창백해졌다.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점점 다가오는 존재.

게다가 점점 가까이 다가올수록.

-쿠구구!

무겁고 싸늘한 기운이 주변 일대를 짓누르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서로 떠들며 검성과 함께 언급하던 존재.

천교의 성지를 파괴한 정체불명의 존재, 재앙신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저벅.

관문 앞을 지나가려는 듯,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이젠, 하늘 관문을 통해 보았었던 재앙신의 얼굴을 육안으로 확인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상황.

본래라면, 함부로 이곳을 지나가는 이를 가로막고 저지해야 했지만.

“으, 으으…….”

“……!”

두려움에 떠는 무인들과 병사 중, 처용의 앞을 가로막는 이는 없었다.

처용이 관문 사이를 지나가고 있음에도, 아무도 저지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모두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으니까.

칼을 뽑거나 무기를 겨누면 죽는다.

앞을 가로막아도 죽는다.

입을 뻥긋해도 죽는다.

아니.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죽는다.

강렬한 공포에 사로잡힌 병사들이 입술만 달달 떨며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일 초가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영겁처럼 느껴지던 짧은 시간이 흐르고.

-……저벅.

이내, 처용의 발걸음이 점점 멀어지며 발소리가 흐릿해졌다.

처용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자.

“어, 으, 어으어……!”

-툭!

병사 중 하나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주저앉는 것을 시작으로.

“으…… 으허억!”

“허!”

긴장감이 확 풀린 탓인지, 다른 무인들과 병사들이 무기를 놓치며 비틀거렸다.

“매, 맹의 명령은……!”

무인 중 한 명이, 정신을 차린 듯 이곳에서의 임무를 떠올리며 읊조리자.

“명령은 지랄! 검성도 막지 못한 재앙신(災殃神)을 우리가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이야!”

견장을 찬 조장급 무인이 벌게진 눈으로 호통을 내지르며 소리쳤다.

그리고.

“이, 일단 맹에 알려야-.”

목소리를 떨며 말을 이었다.

고작 관문을 지키는 이류 이하의 무인들로는 절대로 재앙신을 저지할 수 없다.

이는 천림맹의 수뇌부도 인정해 줄 것이다.

다만, 이곳에 재앙신이 왔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할 필요는 있었다.

조장이 전서구(傳書鳩)를 쓰기 몸을 더듬으며 양피지를 꺼내 들었다.

그때.

-비명을 질러도 좋다. 도망쳐도 좋다. 너희들을 잡지 않을 것이다.

-쿠구구!

돌연, 주변 일대를 짓누르는 무거운 기운이 퍼짐과 동시에, 처용의 목소리가 울렸다.

사라진 줄만 알았던 재앙신의 목소리가 울리자, 병사들과 무인들이 주저앉았다.

-허나, 내가 여기 온 것을 누군가에게 알린다면-.

처용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고.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기대해 봐도 좋을 것이다.

이내 경고가 담긴 말을 마지막으로 주변을 짓누르는 압박감이 사라졌다.

무거운 압박감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무인들과 병사들이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전서구를 쓰기 위해, 양피지를 손에 쥐고 있던 조장은.

-툭! 타탓!

손에 쥐고 있던 양피지와 먹을 내던지고는 부리나케 도망쳤다.

저승사자를 마주한 것 이상의 공포를 마주한 결과, 그가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탈영이었다.

조장이 가장 먼저 도망치자.

-탓! 타탓!

무인들과 병사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모두, 관문을 버린 채 도망쳤다.

나 홀로 계승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