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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656화 (656/726)

#656화

조금 전, 하늘 관문이 열리고 처용과 엘리스가 대화를 나눌 때.

“……유리아.”

하늘 관문을 지긋이 응시하던 보살이, 품에 안겨 있는 유리아를 바라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 말에 유리아가 고개를 기울이며 반응을 보이자.

“우리가 계승자를 도와주자.”

보살이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넌, 문만 있다면 제약 없이 어디로든 갈 수 있잖아?”

유리아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한 보살의 말에, 유리아가 잠시 침묵하고는.

-삑!

이내, 짧고 강한 울음소리를 내며 답했다.

앙증맞은 두 팔까지 가로저으며 안된다는 듯한 의사를 강하게 내비치는 모습.

마치, 보살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그녀의 요청을 거절하는 듯 보였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런 느낌이 들어.”

보살이 그런 유리아를 설득하려는 듯,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천황에게서 빼앗은 옥쇄를 이용한다면, 이번에 계승자를 도울 수 있을 거야.”

-삐. 삐익…….

처용을 도와야 한다는 보살의 말에, 유리아가 곤란하다는 듯한 목소리를 내었다.

“힘든 싸움을 하는 계승자를 돕고 싶어, 도와주지 않을래?”

보살이 진지한 목소리로 처용을 돕고 싶다고 말하자.

-……켁! 툭.

잠시 고민하듯, 침묵하던 유리아가 목을 들썩이며 입을 벌리더니, 무언가를 토해 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옥황상제의 신물 중 하나인 옥쇄였다.

이전 태룡사 습격 당시, 유리아가 삼켰던 것을 다시 토해 낸 것이었다.

그 옥쇄를 보살이 오른손으로 받아 집어 들자.

-스르륵. 탁.

옥쇄가 절반 정도 작아지며, 보살의 아담한 손에 딱 잡혀 들었다.

보살의 손 크기에 맞춰, 신물의 크기가 변화한 듯한 모습.

“가자, 이번엔 우리가 계승자를 돕는 거야.”

옥쇄를 쥔 보살이 하늘 관문을 올려다보며 말한 순간.

-우우웅!

유리아가 금빛이 일렁이는 기운을 은은하게 내뿜으며 보살과 자신을 감쌌다.

이윽고.

-스르륵. 피이-!

빛무리로 변해 사라졌다.

***

무림 세계에 세워진 천교의 성지.

그곳에는 중요한 제례를 앞둔 탓인지.

-모든 준비가 완벽한지, 다시 한번 확인해라!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천벌이 내리칠 것이다!

천림맹의 무인들과 천 제국의 관료, 병사들이 군기가 바짝 든 표정으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무려 신을 위한 제례, 천교의 신들이 지켜보는 중요한 의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제례를 준비하는 이들 모두가 신을 향한 경건함과 진지함을 보일 때.

-으흑…….

-……흡.

이번 제례를 통해 신에게 바쳐질 제물들.

백여 명의 어린아이들이 제단 위에 무릎을 꿇은 채 흐느끼고 있었다.

아이들 모두가 짙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그들의 발밑에는.

-파사사…….

새까맣게 그을린 채 바스러지는 뼛조각과 두개골 조각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다 큰 성인의 뼈라기엔 조금 작은 크기.

그 백골의 정체는 바로 이전의 제례에 제물로 바쳐진 아이들이었다.

천교의 신들을 위한 신성한 제례가 시작되면.

-콰르르릉!

하늘에서 새하얀 벼락이 제단 위로 내리쳐 제물들을 모두 불태운다.

제단 위에 굴러다니는 뼛조각은 그 흔적.

지금, 제단 위에 제물로 바쳐진 아이들이 맞이할 운명이기도 했다.

-으흐흑!

곧 자신들이 당할 모습을 미리 봤기 때문일까.

공포 어린 흐느낌이 점점 짙어졌다.

그러자.

“시끄럽다!”

“그 하찮은 목숨이 신에게 바쳐지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제단 위를 지키는 천 제국의 병사들이 아이들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병사들이 아이들을 향해 날카로운 창을 겨누며 호통을 내지르자, 아이들이 고개를 숙이며 입을 막았다.

짙은 두려움과 공포 어린 분위기가 제단 위에 맴돌 때.

“울지마.”

돌연, 제단 중앙에서 잔잔한 목소리가 울렸다.

차가운 공포를 몰아내는 따듯한 목소리에, 제단 중앙에 있는 아이 하나가 고개를 들자.

“너희들은 죽지 않을 거야.”

무림에서 흔한 검은색이 아닌, 녹음빛 머리, 옆머리에 피어난 연꽃.

평범한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질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의 소녀가 나타나 말했다.

제단 위에 나타나 아이들을 안심시킨 보살이 작은 미소를 짓고는.

“계승자.”

-스륵.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 위를 바라보며 처용을 향해 말했다.

“이 아이들 좀 구해 줄래?”

-피이이!

보살이 하늘 위로 왼손을 뻗자.

-스륵. 피이-!

그녀의 오른손에 쥐어져 있던 옥쇄에서 밝은 빛이 한 번 점멸했다.

그때.

“뭐야? 저건.”

“……제물 중에 저런 녀석이 있었나?”

제단 위의 병사들이 그런 보살의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질적인 보살의 모습을 보며 잠시 당황한 눈치였지만.

“누가 일어서라고 했나!”

“당장 무릎 꿇어라!”

-스릉!

이내 보살을 향해 긴 창을 겨누며 위협적으로 소리쳤다.

병사들의 고함에도 보살이 하늘을 응시한 채 움직이지 않자.

“이 건방진 계집이! 네년의 다리를 잘라야-!”

-후욱!

두 명의 병사가 제단 중앙을 향해 다가가 보살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창대와 창날이 보살을 향해 쇄도한 순간.

-콰르르릉!

하늘 위에서 검붉은 벼락이 내리쳤고.

“어-.”

-파지직! 파사사……!

보살에게 접근하는 두 명의 병사를 불태우며 순식간에 잿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제단 위를 지키는 다른 병사들 역시.

-파직! 콰르릉! 파아……!

모두 검붉은 벼락에 맞아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제단 위로 검붉은 벼락이 내리치자, 아이들이 몸을 웅크렸다.

병사들이 잿더미가 되어 버린 것처럼, 자신들 역시 곧 그리될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쿠르릉! 쿠구!

제단과 그 주변에 내리치는 검붉은 벼락은 아이들에게 향하지 않았고.

-으아아!

-어째서!?

제단 주변에 있는 병사들과 무인들에게만 내리치고 있었다.

지금껏 없었던 이변이 발생하자.

“뭐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

가장 화려안 비단옷을 입은 무인들이 소리쳤다.

그들은 성지에서 제례를 준비하던 십성(十星) 장군들.

지금껏 많은 제례 준비를 도맡아 왔었기에, 작금 일어난 이변에 당황스러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본래라면, 새하얀 벼락이 내리쳐 제물이 된 아이들을 태워야 했다.

하지만, 제단 위에는 신성한 새하얀 벼락이 아니라, 불길한 검붉은 벼락이 내리치고 있었다.

게다가, 제단 위에 놓인 제물을 태우는 것이 아닌, 천림맹의 무인들과 천 제국의 병사들을 태우고 있었다.

성지에 있는 모든 이들이 당황스러워할 때.

-콰르르릉!

지금껏 내리친 벼락보다 더 강렬하고 굵은 벼락 한 줄기가 제단 위로 내리쳤고.

-쿠궁!

그 벼락과 함께 누군가가 나타났다.

주변을 무겁게 짓누르는 검붉은 기류를 넘실넘실 내뿜는 존재.

날카로운 느낌의 검붉은 갑주와 흉악한 도깨비 가면.

제단 위로 검붉은 벼락을 쏟아내는 이로 추정되는 존재가 핏빛의 안광을 번뜩였다.

그 모습을 본 제단 위의 아이들, 천림맹의 장군, 무인, 천 제국의 병사들까지.

모두가 위압감에 짓눌린 듯, 섣불리 움직이거나 제단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그리고.

-저벅.

보살이 그 존재 앞으로 다가가자.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보살님.”

제단 위에 강림한 검붉은 존재.

처용이 한쪽 무릎을 꿇고 보살과 시선을 마주하며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는 강렬한 존재가, 연약한 소녀에게 순종하는 듯한 모습.

“제멋대로 굴어서 미안해. 그래도 계승자를 돕고 싶었어.”

보살이 처용을 향해 멋대로 굴어 미안하다고 말하자.

“……다음부터는 미리 말씀이라도 해 주십시오.”

처용이 안도 어린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그때.

“감히 제물을!”

“신성한 신의 제례를 망치려 하다니!”

-탓! 타탓! 스릉!

천림맹의 무인들이 검을 뽑고 제단 위에 나타났다.

가장 앞서 나타난 천림맹의 무인, 서른 명의 검에는.

-우우웅!

모두 선명하고 짙은 강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전원 화경의 경지에 이른 강자들.

그런 그들보다도 앞에 서서 처용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는 다섯 명의 무인.

화경에 오른 다른 무인들보다도 더욱 강한 기를 내뿜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화경의 상위 경지, 현경의 경지에 오른, 천림맹에서 십성 장군이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다만, 분노 어린 표정을 드러내는 화경의 경지에 오른 무인들과는 다르게.

“묻겠다. 네놈은…… 누구냐?”

십성 장군들은 처용을 향해 긴장감 어린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처용은 주변을 포위한 무인들을 무시하고는.

“루나, 아이들과 보살님을 데리고 여기서 벗어나.”

-우웅. 슈르륵.

핏빛의 게이트를 만들어 내며, 루나를 불렀다.

-스르륵. 쏴아아!

게이트 속에서 나타난 루나가, 제단 주변을 핏빛의 혈기로 휘감았다.

보살과 아이들의 모습이 혈기에 휘감겨 사라지려 하자.

“감히 신의 제물을-!”

“모두 공격하라!”

다섯 명의 십성 장군 중 두 명이 처용을 향해 검을 내지르며 달려들었고.

-탓. 스르릉!

주변을 포위한 화경의 무인 중 열 명이 제단 위의 아이들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제단 위에 나타난 처용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물을 지키기 위해 나타난 듯 보였기에.

“제물은 내줄 수 없다.”

“저 사특한 제물은 반드시 잡아라!”

제단 위의 아이들, 특히 눈에 확 띄는 외형인 보살을 노렸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의 눈빛이 확 가라앉았고 즉시 오른손에 멸절을 꺼내 쥐었다.

-스릉. 쿠구구구!

칼날 위로 강기와 신력이 압축되며 강렬한 진동을 퍼트린 순간.

-사아-악! 파아아!

처용이 멸절을 가로로 크게 휘두르며 극한으로 압축된 신력과 강기를 쏘아 보냈다.

압축된 강기와 신력이 둥근 원형의 파동을 그리며 퍼져 나가자.

-촤아! 촤아아-!

제단 위로 달려들던 열 명의 무인들이 조각조각 썰려나가며 즉사했고.

“커-!”

“……!”

처용에게 달려들던 두 명의 십성 장군 역시, 단말마조차 제대로 내지르지 못한 채 사지가 잘려 나갔다.

무려 화경의 경지에 오른 열 명의 무인과 십성 장군 둘이 일격에 사망한 상황.

“사성…… 오성 장군이-!”

“말도 안 된다!”

주변을 포위한 무인들이 경악을 내지르며 기겁하고는 즉시 뒤로 물러났다.

무인들이 뒤로 물러났을 때.

“흐음? 상당히 강한 놈이 온 것 같은데?”

-슈르륵! 파아!

아이들과 보살을 혈기로 휘감아 이동시킨 루나가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순간.

-샥! 스르릉!

처용의 앞에 정갈한 도복을 입은 누군가가 나타나 검을 내질렀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반갑다. 검성(劍聖).”

자신의 앞에 나타나 분노 어린 표정으로 검을 내지르는 이.

검성을 향해 미소를 보이고는.

-스릉! 차카캉!

멸절을 앞으로 세우며 검성이 내지른 검을 막아 내었다.

-쿠구구! 쿠구-!

처용의 강기와 검성의 강기가 서로 맹렬히 충돌하며 터져 나갔고.

“흠!”

-탓! 스르릉!

힘 싸움을 벌이던 검성이 뒤로 물러나 검을 고쳐 잡았다.

“검성이다!”

“검성께서 와주셨다!”

그 모습을 본 천림맹의 무인들이 환호를 내질렀다.

무림 세계에서 그 누구도 대적할 자가 없다는 검술의 최강자.

검성이 직접 나타난 이상, 제단을 점거한 정체불명의 존재도 처치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

처용을 노려보며 검을 겨누는 검성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가득해 보였다.

그런 검성의 반응을 본 처용은.

“기다리느라 지루해서 말이야.”

-스륵. 딸깍.

왼손으로 얼굴을 가린 가면을 벗어 보이고는.

“내가 직접 너를 찾아왔다.”

미소가 가득한 얼굴을 드러내며 검성을 향해 말했다.

처용이 자신의 얼굴을 보이자.

“……네놈은!”

검성이 처용의 얼굴을 알아본 듯, 눈을 크게 뜨며 읊조렸다.

제물로 바치기 위해 붙잡아 놓은 구미호를 구하러 온 정체불명의 강자.

자신의 검술을 완벽하게 따라 한 존재가 눈앞에 나타났으니까.

처용은 그런 검성과 시선을 마주하며 미소를 짓다가 루나를 눈짓했다.

“으음, 그럼 난 따로 내 할 일을 할게.”

-슈화아아!

그 시선을 받은 루나가 핏빛의 혈기로 자신을 감싸며 사라진 순간.

-샥! 차카캉!

처용과 검성이 서로에게 검을 겨누며 재차 충돌했다.

***

처용이 보살의 도움을 받아 천교의 성지에 들어섰을 때.

“자비의 대신이…… 왜 저기에?”

하늘 관문을 통해 상황을 지켜본 엘리스가 황당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리고.

“……단주, 이걸 어쩌죠?”

옆으로 다가온 단장 역시 황당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엘리스에게 물었다.

기존의 작전과는 다른, 돌발 상황이 벌어졌으니까.

“어쩌긴 뭘 어째, 당장 우리가 할 게 없는데. 어휴.”

엘리스는 하늘 관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동시에.

-우웅. 스르륵. 탁.

어둠을 내뿜으며 자신의 뒤에 의자를 만들어 그곳에 앉고는.

“그냥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구경이나 해야지…….”

-와그작.

팝콘을 꺼내 입으로 가져가며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현재 상황에선, 그저 구경하는 거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금은, 처용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지켜보고 이후의 계획을 세워야만 했다.

엘리스가 하늘 관문을 바라보며 상황을 지켜볼 때.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상황을 이용해 볼까?’

마침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읊조렸다.

동시에.

-우웅. 스르륵!

하늘 관문을 향해 어둠을 흘려보냈다.

엘리스가 내뿜은 어둠이 하늘 관문에 스며들자.

-스르륵! 스륵!

하늘 관문의 크기가 조금 더 커지고 그곳에 비추어지는 처용과 검성의 모습이 더 선명해졌다.

작은 수작질을 마친 엘리스가 기대감 어린 미소를 짓고는.

“이참에 잘 봐 둬, 우리를 돕는 저 한처용이 얼마나 강한지.”

밖으로 나와 작금의 상황을 지켜보는 다른 이들을 향해 말했다.

그런 엘리스의 진지한 목소리는 비단 암영단의 일원들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닌.

“저 녀석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를, 모두 똑똑히 봐 둬라.”

무림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세력.

작금의 상황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을 겨냥해 말하는 듯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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