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654화 (654/726)

#654화

작은 초가 타오르며 은은한 연기가 퍼지는 장소.

향초가 타오르며 불을 밝히는 주변에는 별다른 장식이 보이지 않는 마루 바닥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마치, 무술을 연습하기 위한 도장처럼 느껴지는 장소.

은은한 향초에 의해, 신성한 분위기까지 일렁이는 그 장소의 중앙에는.

“…….”

검은 머리를 깔끔하게 묶어 내린, 정갈한 도복을 입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허리를 곧게 펴고 눈을 감은 채 명상에 잠겨 있는 젊고 수려한 인상의 남자.

-스르륵!

바른 자세로 앉은 그의 다리 위에 놓인 검에서 푸른 기류가 흘러나오자.

“……음.”

명상에 잠겨 있던 이, 검성(劍聖)이라 불리는 자가 눈을 뜨며 침음을 흘렸다.

눈을 뜨고 명상에서 벗어난 검성이 잠시 침묵에 잠기고는.

“……정체가 무엇이냐?”

-탁.

다리 위에 얹어진 자신의 검을 잡으며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동시에, 다시 눈을 감고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심상 분신을 통해 마주했었던, 검은 도를 쥔 사내.

검성은 악도들을 구하러 온 듯 보이는 그 사내의 혼과 정신을 베어 버리려 했었다.

최상위 신수인 구미호조차 단번에 제압해 버린 검술, 참혼(斬魂) 베기.

현경의 경지에 도달한 무인도 막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그런데, 심상으로 마주했던 그 사내는 자신과 같은 자세를 취하더니.

-참혼 베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똑같은 검술을 구사하며 공격을 막아 내었다.

“상대의 공격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능력, 스킬이라 불리는 힘인가?”

검성이 다시 생각에 잠기며 읊조렸다.

이곳, 무림과는 다른 세계에서 특별한 이능을 깨우친 이들이 있다고 들었었다.

심상 분신을 통해 마주한 그 사내는, 그러한 이능을 깨우친 이로 보였다.

하지만.

-촤아아!

그 사내는 참혼 베기 안에 하나의 참혼 베기를 더 섞어 자신의 심상을 베어 냈다.

고작 상대의 공격을 흉내 내는 이능만으로 이러한 변칙적인 공격이 가능한가?

무려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련한 검성의 검술을 능가하는 게 가능한가?

아무리 특별한 이능을 깨우친 자들이라 해도, 그건 불가능했다.

검성이 개인적으로 판단해 봤을 때.

‘그 검술은…… 진짜였다.’

심상을 통해 마주한 자의 실력은 소위 말해 ‘진짜’로 보였다.

자신처럼 엄청난 세월 동안 검과 무를 연마해 온 진짜배기 고수.

즉, 검성이 도달한 경지.

‘그자 역시, 현경을 넘어선 생사경(生死境)의 경지, 신화(神化)에 도달한 자.’

심상 구현을 넘어서, 스스로의 신화를 개척한 자라 판단했다.

스스로의 신화를 적립한 이들끼리만 느낄 수 있는 격이 느껴졌으니까.

문제는.

‘신화의 경지에 도달한 또 다른 적이라…….’

그 드높은 경지에 도달한 자가 ‘적’이라는 것.

암영단을 돕는 것으로 봐서, 파멸을 예언하는 자의 동료인 것 같았다.

새로운 적에 대해 생각한 검성이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드르륵.

“형님.”

나무 미닫이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도장에 들어왔다.

검성보다 더 화려한 비단 도복을 입은 노인.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인이, 그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검성을 향해 형님이라 부르며 다가왔다.

노인이 검성의 앞에 앉으며 그를 마주 보자.

“어인 일입니까? 천림맹주(天林盟主).”

검성이 자신을 찾아온 노인을 향해 존중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을 높이듯 형님이라 말해 주는 노인에게 마찬가지로 말을 높이는 검성.

도장에 들어온 노인은 천림맹을 이끄는 맹주(盟主)였기 때문이었다.

“저희 둘만이 있을 땐, 편히 말하십시오. 전 형님의 아우가 아닙니까?”

-탁. 쪼르르.

천림맹주가 검성의 앞에 술잔을 놓고 고급스러운 도기에 담긴 술을 따르며 말했다.

스스로를 검성의 아우라 칭하는 천림맹주.

말 그대로, 천림맹주와 검성은 형제지간, 천림맹주는 검성의 동생이었다.

다만, 동생인 천림맹주는 아직, 완전한 신화경에 오르지 못한 무인이었다.

반면에, 검성은 완전한 신화경에 올라 수명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로 인해 환골탈태(換骨奪胎)를 겪었고 젊음이 유지되고 있었다.

육체가 수명의 제약을 벗어나 전성기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뜻했다.

두 형제의 모습이 확연히 다른 이유는 이러한 경지의 차이 때문이었다.

“저도 완전한 신화경에 오른다면, 형님보다 젊어질 겁니다.”

천림맹주가 씁쓸함이 담긴 목소리로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하자.

“머지않아, 그런 날이 올 것이다.”

검성이 위로 어린 작은 미소를 보이며 술잔을 마주 들었다.

두 형제가 한 잔의 술을 들이켠 후.

“……이번에도, 세가의 가주들과 천마를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천림맹주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검성에게 물었다.

중요한 본론을 묻는 듯한 노인의 목소리에.

“계속 설득해 봐야지.”

검성이 착잡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런 검성의 대답에 천림맹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검성께서는 너무 선하십니다.”

“무를 갈고 닦는 도사라면, 응당 선을 추구해야 하는 법이다.”

검성의 태도를 지적하는 듯한 천림맹주의 말에, 검성이 작은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그러자.

“선함만을 추구한다 하여, 세상을 구할 순 없는 법입니다. 형님.”

천림맹주가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검성의 미소가 사라지고.

“알고…… 있다.”

어두운 표정을 내비치며 읊조리듯 말했다.

천림맹주의 말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듯한 분위기.

그런 검성의 반응에 천림맹주가 속으로 미소를 숨기고는.

“모든 건, 무림을 위해서입니다.”

-조르륵.

빈 술잔에 술을 채우며 경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모든 건…… 이 무림과 세상을 위해서지.”

검성이 천림맹주의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형제가 채워진 술잔을 다시금 들이켰다.

그리고.

“…….”

술잔을 들이켜는 천림맹주의 입꼬리가 순간적으로 비틀리며 비웃음을 자아냈다.

***

암영단을 향한 천림맹의 습격이 끝난 후.

“하필이면…… 내가 없을 때를 노릴 줄이야.”

그간 있었던 일을 보고받은 레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침음을 흘렸다.

이번에 벌어진 천림맹의 습격은 단순한 습격 정도가 아닌, 대대적인 토벌에 가까웠다.

천림맹이 매번 귀찮게 구는 암영단을 단번에 처리하기 위해 벌인 작전.

암영단과 잦은 전투를 벌이는 것으로 그들의 거점을 알아내어 조금씩 포위망을 형성한 것이었다.

그리고 암영단의 거점이 어디인지 알아낸 순간.

미리 대기 중이던 천림맹의 정예들이 총공세를 가했다.

전력을 모아 단번에 밀어붙이는 천림맹의 공격.

암영단은 그 공격에 허를 찔러 당한 것이었다.

단장과 블래스터 등의 강자들이 방어에 나섰지만, 전력적으로 밀리는 상황.

하필이면, 암영단주인 레나가 자리를 비웠을 때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딱 레나와 처용이 무림 세계에 도착했다.

처용이 즉시 현장으로 향했고 암영단을 습격하는 천림맹의 본대를 무력으로 쓸어버렸다.

“네 덕분에 수월하게 끝난 셈이네.”

레나가 다행이라는 듯 안도 어린 웃음을 흘리자.

“고작, 그 정도 놈들은 떼거리로 몰려와도 문제 될 게 없어.”

처용은 별 것 아니었다는 듯, 무심한 목소리로 답했다.

실제로 처용에게 있어서, 벌 것 아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지금의 처용이 전력을 발휘하면, 주신급 악신도 소멸시키는 게 가능했으니까.

“음, 지금 당장 천림맹의 본거지를 쓸어버릴 생각은?”

레나가 처용의 전력을 다시금 떠올리며 진지한 목소리로 묻자.

“……고민 중이다.”

짧게 침묵한 처용이 고민 중이라 답했다.

천교의 성지와 휘하의 모든 신도를 쓸어버리는 건 이제 일도 아니었다.

다만, 그런 처용이 신경 쓰는 단 한 가지.

‘검성……!’

다름 아닌, 검성 때문이었다.

그는 회귀 전과는 다르게, 적이었던 천교에게 가담해 그들을 돕고 있었으니까.

“……검성과 간접적으로 충돌했다고 들었다.”

잠시 침묵한 레나의 입에서 엘리스의 말이 울렸다.

그녀가 검성을 언급하자, 근처에 있는 모든 이들이 긴장감 어린 눈빛을 보였다.

검성, 천림맹주의 명을 따라 움직이는 강력한 무인.

암영단주인 레나조차도 이길 수 없었던 자였다.

“한처용, 너만이 검성을 막을 수 있다.”

“알고 있어, 그 녀석 때문에 내가 직접 이곳에 온 거니까.”

이어지는 엘리스의 말에, 처용이 단호한 눈빛을 보이며 답했다.

그때.

“그를…… 이길 수 있는 건가요?”

월향이 레나와 처용을 번갈아 바라보며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녀는 천년 가까이 살아온 완전한 신수인 구미호.

섀도우 헌터 중에서도 그런 월향을 무력으로 이길 수 있는 자는 손에 꼽았다.

그런 강한 상위 신수인 구미호가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검성에게 당했다.

그만큼, 검성이 강력하고 위험한 적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처용은 구미호를 단번에 제압한 검성의 검술과 정면으로 맞붙어 이겨 내었다.

“내가 장담하는데, 천교의 신들이 직접 지상에 강림해도 이 녀석을 막을 수 없어.”

엘리스가 강한 목소리로 처용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 이야기했다.

“옥황상제의 오른팔을 잘라 버린 놈이 바로 이 녀석이다.”

“이번엔 오른팔이 아니라, 놈의 모가지를 가져올 거다.”

처용이 엘리스의 말에 부정하지 않고 다짐하듯 말했다.

태룡사에 악신들이 습격했을 때, 옥황상제를 처치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놈의 오른팔과 옥쇄를 빼앗는 것에 그쳤다.

“멸천의 신으로서, 천교를 반드시 파멸시킬 거다.”

처용이 천교의 완전한 파멸을 예고하며 선언하듯 말하자.

“후후, 하늘을 무너뜨리는 자가 우리의 편이니, 아주 든든하네.”

엘리스가 후련한 심정이 담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동안, 홀로 악신들과 대악마를 상대했었기에, 조금 힘에 부쳤었다.

하지만, 무려 전성기의 힘을 되찾은 처용이.

아니, 전성기 이상의 힘을 가진 처용이 직접 이곳에 왔다.

적들에 비해 모자라던 전력의 차이가 처용의 합류로 인해 단번에 뒤집힌 상황.

엘리스는 이번 기회를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네 덕분에, 그나마 일이 좀 쉬워지겠어.”

엘리스가 진지한 눈빛을 띠며 말을 잇자.

“……문제라도 있나?”

처용은 그런 엘리스의 말속에 일렁이는 답답함을 눈치채곤 물었다.

본론을 묻는 처용의 말에.

“후우,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엘리스는 짧은 시간, 자신이 무엇을 알아냈는지를 이야기했다.

“우선, 천교의 성지에 바로 진입하기가 어렵다는 거.”

두 가지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처용이 무너뜨려야 할 천교의 성지.

천 제국의 중심이자, 천림맹의 본거지, 천교의 성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늘 관문을 통해서만, 천교의 성지에 들어설 수 있어.”

천교는 이전 지구에 세웠던 성지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했었다.

그 때문인지, 이번 성지는 거의 요새에 가깝게 구축한 상태였다.

선택받은 이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들어설 수 없는 장소로 만든 것.

“너도 알다시피, 하늘 관문은 천교의 성역, 하늘궁으로 발현하는 권능이다.”

“파천으로 부술 수 있을지는…… 해 봐야 알겠네.”

처용은 엘리스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

하늘 관문은 옥황상제가 자신의 성역인 하늘궁을 이용해 발휘하는 권능이었다.

즉, 하늘 관문을 부수고 적들의 성지에 진입하는 건 쉽지 않다는 것.

다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누군가가 천교의 성지에 잠입해, 안쪽에서 문을 열면 쉽게 진입할 수 있을 거야.”

바로 외부에서 부수는 것이 아닌, 안쪽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어 주는 것이었다.

“솔직히…… 이것도 너 외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엘리스는 그 잠입자의 역할로 처용을 지목했다.

강제로 하늘 관문을 파괴하든, 몰래 내부에 진입하여 문을 열든.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모두 처용 외엔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알았다. 그럼…… 두 번째 문제는 뭐냐?”

처용이 엘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번째’ 문제를 언급했다.

그 말에 엘리스가 한숨을 내쉬고는.

“이곳에도 블랙 게이트가 나타났다.”

두 번째 문제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했다.

“누구인지는 아직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지만, 삼천마 중 한 명이 천교를 돕고 있다.”

불행히도 천림맹이 차지한 영역에 블랙 게이트가 나타났다.

천림맹은 천교의 세력, 판데모니움과 동맹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블랙 게이트란, 토벌해야 하는 적이 아닌, 지원군이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그 블랙 게이트는 다른 대악마도 아닌, 삼천마로 추정되는 상황.

“일단…… 그 삼천마가 누구인지부터 확인해야겠네.”

엘리스의 말에 처용이 골치 아프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삼천마라는 존재 자체가 성가신 부분도 있었지만.

‘메피스토…….’

만약, 그 블랙 게이트의 성역이 잿빛 군도와 연결되어 있다면?

그렇다면, 작전의 우선순위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바로, 엘리스가 말했었던 메피스토의 배제할 방법.

그 방법부터 실행해야 했으니까.

“네 존재가 적들에게 알려진 이상, 놈들이 오늘처럼 함부로 행동하진 못할 거다.”

엘리스가 그런 처용의 생각을 알아챘다는 듯, 말하며 말을 이었다.

“삼천마가 누구인지부터 알아낸 즉시, 움직이도록 하지.”

“좋다.”

그런 엘리스의 말에 처용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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