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9화
엘리스의 말대로 정확히 일주일 뒤에 나타난 다수의 블랙 게이트.
게다가 블랙 게이트 중 몇 개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폭주하기까지 했다.
게이트 안에 있는 대악마가 밖으로 튀어나올 위기였다.
그러나 헌터들은 기계 장치를 조작하여 폭주 조짐이 있는 게이트를 일부러 터트렸다.
그 결과, 블랙 게이트 안에 있는 대악마가 밖으로 튀어나왔고 주변에 마기를 퍼트려 오염시키기 시작했다.
물론, 게이트를 일부로 폭주시킨 이유는 대악마와 그 권속들을 밖으로 유인하기 위함이었다.
블랙 게이트가 나타난 순간, 헌터들이 재빠르게 설치한 기계 장치.
그것들은 다름 아닌 엘리스가 고안한 판테라움 기계 장치였다.
그녀가 사로잡은 기갑 마인인 오거를 연구하여 독자적으로 개발한 아티팩트.
엘리스는 그 아티팩트를 양산하기 위해, 그것의 설계도를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게 넘겼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가진 설비와 루돌프, 태룡사의 드워프들까지 합세한 결과, 아티팩트 양산에 성공했다.
그 아티팩트의 효능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블랙 게이트의 상태와 내부의 정보를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게이트 내부의 대악마가 어느 정도의 서열을 지닌 대악마인지.
어떤 환경과 특징을 지닌 장소인지 등, 던전을 측정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블랙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마기의 영향을 일정 범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는 것.
이로 인해, 마기가 헌터들과 주변 환경에 주는 영향까지 억제할 수 있었다.
아티팩트 기계 장치는 쉽게 말해, 블랙 게이트를 ‘통제’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장치였다.
물론, 엘리스가 고안한 아티팩트만으로는 블랙 게이트를 해결할 수 없었다.
해서, 블랙 게이트가 나타난 순간 가장 먼저 나선 이들이 바로 드래곤들이었다.
그들이 블랙 게이트 인근에 퍼트린, 금빛이 반짝이는 드래곤 포스.
그 드래곤 포스는 그들만의 힘이 아니었다.
바로 황룡의 기운이 섞여 있었다.
아티팩트로 형성한 결계를 임시 성지로 만들고 신격들이 손쉽게 강림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
블랙 게이트가 폭주하여 대악마가 튀어나오면, 태룡사에서 대기 중인 신격이 해당 지역에 즉시 강림할 수 있었다.
신격들이 가세하는 것으로 블랙 게이트를 막아야 하는 헌터들의 부담을 줄여 준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황룡이라고 해도, 지구와 에스라 대륙을 동시에 관리하기엔 조금 버거웠다.
이때, 나선 것이 바로 드래곤 로드인 바하무트.
드래곤들은 세계의 ‘수호’를 담당하는 신수 일족들, 바하무트는 그런 신수들의 수장이었다.
지상에 블랙 게이트라는 거대한 이변이 발생했으니, 바하무트가 직접 나설 명분까지 생긴 상황.
게다가.
-그놈이 지녔던 주신의 권한을 맡기겠습니다.
처용이 바하무트에게 에스라 대륙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까지 넘겨주었다.
바로, 태초신이 아스터에게 주었던 에스라 대륙 주신의 권한.
아스터에게서 몰수한 그 권한을, 처용은 바하무트에게 넘겨주었다.
지구에서는 황룡, 에스라 대륙에서는 바하무트가 관리를 맡은 상황.
그리고 각 성운의 성좌들이 인원을 나눠 양측의 세계를 돕고 있었다.
철저하게 세운 작전 덕분에 블랙 게이트에 대한 대처는 수월하게 진행 중이었다.
지금조차도, 무려 30위 서열의 대악마, 포르네우스가 지구에 발을 들였지만.
-진형을 유지해라!
-절대 무리하지 마라! 공격을 분산시켜!
토르가 직접 강림하여 포르네우스를 상대하고 해전무신과 헌터들이 악마들과 마수들을 저지하고 있었다.
폭주가 일어난 다른 블랙 게이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에스라 대륙 남부 인근에서 발생한 블랙 게이트의 폭주.
[이런, 빌어먹을 놈들이-!]
그로 인해 나타난 대악마는, 판데모니움 서열 68위, 부정의 대악마 벨리알.
그가 인상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침음을 내뱉었다.
당장이라도 눈앞의 인간들을 치워 버리고 이 세계에 ‘부정’을 퍼트리고 싶었지만.
“네놈은 이곳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미네르바의 모습으로 변한 제시카가 벨리알의 앞을 가로막았고.
-놈들을 몰아내!
-게이트 쪽으로 밀어붙여!
올림포스의 최정예 헌터들이 벨리알 휘하의 권속 악마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성좌의 도움 없이, 헌터들의 힘만으로 블랙 게이트의 폭주가 진압되는 중이었다.
결국.
[제길, 두고 보자!]
벨리알은 더 이상 안 되겠는지, 블랙 게이트 속으로 몸을 던지며 제 성역으로 돌아갔다.
이대로 밀어붙이기엔, 버겁다고 판단하여 잠시 뒤로 물러난 것이었다.
게이트 폭주로 인해 밖으로 튀어나온 대악마가 다시 게이트 안으로 퇴각하자.
-우우웅.
주변에 일렁이는 황금빛의 기류가 블랙 게이트를 감싸기 시작했다.
폭주가 일어나기 전처럼, 블랙 게이트에서 퍼지는 파동과 진동이 잠잠 점점 잠잠해졌다.
이윽고.
[균열이 안정되었습니다.]
[남은 시간 : 482시간 59분…….]
결계를 형성하는 기계 장치 위로 대략 20일의 시간이 표기되었다.
이는 안정화가 유지되는 시간 즉, 언제 게이트가 다시 폭주하는지 알려 주는 시간이었다.
한번 게이트 폭주를 막아 내면, 균열이 안정화되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벨리알이 자신의 성역으로 후퇴하고 블랙 게이트가 안정화되자.
“작전 종료! 모두 신전으로 돌아가 재정비한다!”
제시카가 휘하 헌터들을 지휘하며 돌아갔다.
지구에 발생한 블랙 게이트의 폭주 역시.
[이런……!]
포르네우스가 인상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고는 권속 악마들과 함께 블랙 게이트 속으로 돌아갔다.
토르와 헌터들을 처치하고 지구를 점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벨리알과 마찬가지로, 더 의미 없는 공격을 하지 않고 잠시 물러난 것이었다.
폭주를 일으킨 각 세계의 블랙 게이트가 완전히 안정되자.
“10일 후에 1-8팀의 게이트가 폭주할 예정입니다. 관측 결과, 서열 61위의 대악마 자간으로 추정…….”
본부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커맨더가 작은 안도를 표하고는 차후 일정을 전파했다.
다음 폭주를 일으킬 법한 블랙 게이트가 어디인지, 언제 터지는지 등을 말했다.
-61위라…… 저희가 가까우니, 파라오 길드가 맡겠습니다. 호루스 님께서 도와주신다고 하시더군요.
커맨더의 말에, 라진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리고.
-벨리알의 능력과 전력을 더 파악하면, 토벌대 구성을 고려해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조금 전, 벨리알을 몰아낸 제시카가 통신으로 말을 이었다.
그녀는 홀로 벨리알과 맞서 거의 대등한 싸움을 보였다.
벨리알이 다른 헌터들에게 공격을 퍼붓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그를 집중 마크했다.
그 결과, 올림포스의 정예 헌터들이 손쉽게 악마들을 몰아낼 수 있었다.
압도적인 힘을 보였던 삼천마, 디아블로에 비하면 현저히 악한 대악마.
제시카는 이번 기회에 위협이 되는 대악마 하나를 완전히 사냥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토벌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그 말에 커맨더가 진자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했다.
“대악마가 밖으로 튀어나오면 시스템의 제약을 받지만, 성역 안에서의 놈들은 ‘본신’의 힘을 발휘합니다.”
아무리 낮은 서열의 대악마라지만, 제시카가 수월하게 벨리알을 상대할 수 있었던 이유.
그 이유는, 대악마가 지구에 발을 들이는 순간, 시스템의 제약을 받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으로 헌터들이 벨리알의 성역으로 들어서게 되면, 입장은 반대가 된다.
벨리알은 본신의 무력을 발휘할 수 있고 헌터들은 벨리알의 ‘부정’에 더욱 강한 악영향을 받는다.
그렇기에, 대악마의 성역을 직접 공격하는 것만큼은, 더 많은 준비와 조사가 필요했다.
“한 달에서 두 달은, 기본 매뉴얼 대로 거점 방어에만 집중합시다. 토벌은 이후에 논의해 보죠.”
커맨더가 무리하지 않고 안전하게 진행하자는 의견을 비추자.
-그렇게 하죠.
-같은 의견입니다.
제시카를 포함한 길드장들이 동의한다는 듯 답했다.
블랙 게이트에 대한 대처가 순조롭게 진행 중일 때.
“순조롭네, 정말로 나서지 않아도 되겠어.”
본부, 마키나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읊조렸다.
그러자.
“이건…… 내 예상보다 더 수월하게 막아 냈는데?”
옆에 있던 엘리스가 작은 놀람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블랙 게이트의 대처 방법과 방안을 수렴하고 철저한 준비까지 갖추어 놓았다.
그럼에도 엘리스는,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블랙 게이트는 회귀 전, 지구를 포함한 여러 세계를 처참하게 망가뜨렸던 대재앙이었으니까.
그러나.
“설마, 아무 피해 없이 완벽하게 막아 낼 줄이야.”
헌터들은 받은 피해가 미미하다 봐도 무방할 정도로 훌륭하게 블랙 게이트를 잘 막아 내었다.
엘리스는 현재 상황에 놀람을 표하고는.
“결과적으로 보면 다 네 덕분이네.”
어째서 헌터들이 블랙 게이트를 순조롭게 막아 냈는지.
비단 지구뿐만이 아닌, 에스라 대륙에서도 왜 피해가 없는지 그 원인을 파악했다는 듯 말했다.
두 세계가 블랙 게이트라는 대재앙을 손쉽게 막아 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그것은 다름 아닌 처용이었다.
헌터들을 성장시키고 성운들을 하나로 결집한 이가 바로 처용이었으니까.
“그만큼 공을 들였으니까.”
처용은 엘리스의 말을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헌터들을 성장시키고 성운들끼리의 마찰을 억제하며 이들 모두를 동맹으로 규합한다.
이는 미래의 재앙을 대비하기 위해 처용이 만들어 놓은 결과였다.
처용은 블랙 게이트에 대처하는 헌터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삼천마의 성역과 연결된 게이트는 나타나지 않았군.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내, 진지한 눈빛을 띠며 말을 이었다.
지구와 에스라 대륙에 나타난 블랙 게이트.
그 블랙 게이트에 대한 측정이 모두 끝났고 그 결과가 본부에 전송되어 있었다.
지금 홀로그램 모니터로 보이는 그 결과지에는, 삼천마의 성역이 없었다.
“이후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엘리스가 이후에 벌어질 법한 일을 언급하며 읊조렸다.
블랙 게이트는 이번에 나타난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며칠을 간격으로 추가적인 블랙 게이트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었다.
정말 운이 없다면, 이번에 나타나지 않은 삼천마의 성역이 나타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삼천마의 성역이 나타난다 해도, 충분히 잘 대처할 테지만 말이야.”
엘리스는 삼천마의 성역이 나타난다 해도,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했다.
그만큼, 블랙 게이트의 대비책을 잘 준비했고 또 헌터들이 예상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보여 주고 있었으니까.
다만, 앞으로의 일정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면.
“지금, 무림이 어떤 상황인지가 좀…… 문제인데.”
지금부터 처용과 함께 갈 또 다른 세계.
무림 세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또 어떤 변수가 발생했는지가 문제였다.
왜냐하면, 그곳에도 블랙 게이트가 나타났을 테니까.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메피스토의 성역이 그곳에 나타나면 곤란해.”
악신들과의 전쟁에서 엘리스가 배제시키기로 한 대악마, 메피스토.
그의 성역과 연결된 블랙 게이트가 무림 세계에 구현되었다면?
혹시나 폭주를 일으켜서 메피스토가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면?
그것은 앞으로의 일정에 있어 큰 차질이 생기는 변수였다.
엘리스가 골치 아픈 변수를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릴 때.
“아니, 오히려 메피스토가 무림 세계로 나왔다면, 우리에게 기회가 될 거다.”
처용이 걱정은 없다는 듯,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메피스토가 없을 때를 노려…… 잿빛 군도 한복판에 잠입할 수 있을 테니까.”
“……정말로, 잿빛 군도로 확실하게 갈 수 있는 거겠지?”
그런 처용의 말에 엘리스가 다시 한번 확인 차 묻자.
“확실하게 갈 수 있다. 너야말로 메피스토를 확실하게 배제할 수 있는 거겠지?”
처용이 강하게 긍정하고는 엘리스에게 계획의 성공 여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내가 잿빛 군도, 정확히는 잿빛 왕궁에 발을 들일 수만 있다면, 반드시 성공한다.”
엘리스 역시 처용의 질문에 강하게 긍정하듯 답했다.
잿빛 군도의 중심부에 세워진 낡은 왕궁.
그곳이 바로 메피스토의 성역.
엘리스는 그 잿빛 왕궁 안에서.
“뭐 하나를 훔쳐 오기만 하면 끝이야. 간단하지?”
메피스토가 숨겨 놓은 무언가를 찾아 훔쳐와야 했다.
성공만 한다면, 메피스토를 악신들과의 전쟁에서 배제시킬 수 있었다.
“좋아, 지구와 에스라 대륙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으니, 우리도 슬슬 이동하지.”
처용이 엘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이동.”
-우우웅. 파아!
엘리스가 마기로 공간 이동 마법진을 만들며, 처용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우웅. 스르륵.
처용과 엘리스가 다시 나타난 장소는 다름 아닌 태룡사 하단부의 북쪽.
-우우웅-!
거대한 게이트가 형성된 장소 앞이었다.
그 거대한 게이트의 정체는 다름 아닌 무림 세계와 이어지는 게이트였다.
무림 세계의 게이트가 태룡사에 있는 이유는 엘리스와 황룡이 조치한 덕분이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다른 세계와 이어지는 균열이 발생하는 것을 태룡사로 유도한 것이었다.
처용과 엘리스가 게이트 앞에 다가가자.
“왔어?”
“이거, 우리끼리만 가도 괜찮은 건가?”
루나와 루비아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둘은, 처용과 함께 무림 세계로 갈 이들이었다.
“우리끼리만 가도, 문제는 전혀 없을 거다.”
처용이 루비아의 물음에 답할 때, 엘리스가 잠시 루비아를 바라보며 침묵에 잠기더니.
‘……한처용, 너 설마?’
혹시나? 하는 심정이 담긴 눈빛으로 처용을 응시하며 속으로 읊조렸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