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5화
“네가, 그리고 당신들이 진지하게 도와준다면…….”
엘리스가 경악을 표하는 이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있을 악신들과의 전쟁에서 확실하게 배제할 수 있는 대악마.
그녀가 말하는 대악마의 정체는 다름 아닌, 메피스토였다.
심지어.
“가능성은 99%다.”
성공 가능성을 99%, 거의 확신하듯 이야기했다.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군.]
[같은 의견이오. 신법의 대신.]
이야기를 듣던 여래와 황룡이 진지한 눈빛으로 엘리스를 바라보며 읊조렸고.
“나름 ‘확신’하는 게 있으니까요.”
엘리스는 그런 신격들의 반응에 다시 한번 ‘확신’을 담아 말했다.
그리고.
“그보다도 전 벨페고르가 더 의외인데요? 심지어 저처럼 배제도 아니고 ‘배신’하게 만든다니요?”
니알라를 바라보며 의문이라는 듯 물었다.
엘리스가 말하는 메피스토는 어디까지나 전쟁에서 ‘배제’하는 것.
하지만, 니알라가 말하는 벨페고르는 배제가 아닌 ‘배신’이었다.
[판데모니움의 각 지역이 조각나며 던전이 된 건 알고 있지?]
“블랙 게이트가 나타난 순간 확신했죠.”
[그 덕분이지, 겸사겸사 몽마들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고 말이야.]
니알라가 엘리스의 물음에 답해 주자.
“서약자. 우린 리리아 공작을 통해 몽마들의 군주와 접촉했었어.”
루나가 처용을 보며, 그간 태룡전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이야기했다.
밤의 일족이라 불리는 종족은 크게 피의 일족과 꿈의 일족, 뱀파이어와 몽마로 구분되었다.
피의 일족인 뱀파이어들은 모두 처용의 아군으로 합류한 상황.
반면에, 꿈의 일족인 몽마들은 아직 악마들의 세력이었다.
하지만.
[후후, 밤의 마신이 된 이 아이와 내가 이곳에 있는 이상, 몽마들도 끌어들일 수 있었지.]
니알라가 루나와 자신을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전대 밤의 마신이자, 몽환의 종주 니알라.
새로운 밤의 마신으로 승천한 루나.
둘은 밤의 일족에게 있어서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게다가, 고위 몽마 가문의 영애인 타라샤도 이곳에 있는 상황.
완전히 지구의 생활에 녹아들어 루나의 편이 된 타라샤가 그 일을 도왔다.
“내가 아빠한테 살고 싶으면 배신하라고 했어. 잘했지?”
“리리아 공작이 뒷목을 잡으며 분노하긴 했지만…….”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 타라샤의 말에 루나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읊조렸다.
리리아 공작은 나름 가족에 대한 애정이 깊은 자였다.
딸인 타라샤의 연락을 받았을 때, 진심 어린 걱정과 무탈하냐는 말부터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걱정에, 타라샤는 발랄한 목소리로 배신하라고 말한 상황.
당연히.
-타라샤-! ……어윽!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속이 뒤집히고도 남았다.
그 외에도 여러 헤프닝과 과정이 있었지만.
“아무튼, 리리아 공작가를 시작으로 하나둘, 우리와 함께하기로 서약을 맺었어.”
결과적으로는 모든 계획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리리아 공작가를 시작으로 대부분의 몽마들이 니알라를 따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몽마들을 지배하는 벨페고르에 대한 소식도 들을 수 있었어.”
“거대한 어둠의 대악마에게 아주 불만이 많다고 하던데?”
루나와 타라샤의 말이 이어졌다.
고위 몽마들의 가문을 포섭하며 얻은 정보.
바로 벨페고르에 대한 소식이었다.
“그것만으로는 벨페고르가 배신하게 할 수 없어.”
처용은 루나와 타라샤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부정적인 의견을 표했다.
“아무리 한 자릿수에 가까운 상위 서열의 대악마라도, 바알의 명령은 절대적이니까.”
대악마들이 바알을 따르는 이유는 충성심이 아니었다.
물론, 나베리우스처럼 바알을 따르며 충성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대악마가 나베리우스와 같지는 않았다.
대악마들이 바알을 거스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두려움이었다.
바알의 심기를 잘못 거스르면 그 누구라 해도 소멸을 면치 못했으니까.
다른 대악마들보다 압도적으로 강력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삼천마의 힘.
그런 삼천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대악마들은 바알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러나.
[후후, 벨페고르는 다를 거야. 그 녀석도 태생이 조금…… 특이하거든.]
니알라가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벨페고르의 태생이요?”
그 말에 처용의 의문을 표했다.
악마들, 특히 대악마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처용조차도 알지 못했던 정보였으니까.
[나태의 대악마는 ‘최초의 몽마’야, 그러니까…… 인간들의 표현으로 내 친척 동생?]
“최초의 몽마라…….”
처음 듣는 벨페고르에 대한 정보에 처용이 작은 흥미를 보이며 읊조렸고.
“……설마, 나태의 대악마가 말했었던 ‘다시 보고 싶었던 이’가?”
엘리스가 과거를 떠올리는 듯, 잠시 생각에 잠기며 읊조렸다.
“음…… 아시다시피, 당장 판데모니움으로 갈 방법이 없습니다.”
잠시 흥미를 보인 처용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니알라에게 물었다.
니알라에 벨페고르를 배신하게 만들 수단이 있다 해도,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벨페고르와 어떻게 직접 접촉할 것인가?
당장 판데모니움에 가려면, 일주일 뒤에 열리는 블랙 게이트 외엔 없었다.
심지어 찾아낸 블랙 게이트가 벨페고르의 성역과 연결된 게이트인지도 미지수.
벨페고르와 확실하게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런 처용의 질문에, 니알라가 미소를 흘리고는.
[그 누구도 모르는 사실인데, 나랑 벨페고르는 서로의 성역이 연결되어 있어.]
진지한 목소리로, 그녀 자신만 알고 있는 사실을 밝혔다.
바로 니알라의 성역과 벨페고르의 성역이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나와 벨페고르는 태초의 ‘꿈’으로부터 태어났으니까.]
그 이유는, 니알라와 벨페고르의 태생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혹시…… 아까 준비가 끝났다는 말이?”
그런 니알라의 말을 들은 처용이 막 생각이 났다는 듯, 황룡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벨페고르의 성역과 직통으로 연결할 준비를 끝냈다는 말이었지.]
황룡이 처용의 질문에 답하고는.
[언제라도 연결할 수 있다.]
니알라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모든 준비를 이미 마쳤으니, 니알라가 원한다면, 벨페고르의 성역과 연결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으음, 지금 이 자리에서 해 보는 게 좋겠네.]
짧게 고민하며 침음을 흘린 니알라가 이내 손을 앞으로 뻗으며 말했다.
-스르르……!
니알라의 손에서 검은 안개가 몽실몽실 뿜어져 나오며 뭉쳐 들었고.
-스륵.
이내, 1미터 크기의 둥근 액자와 같은 형태로 변했다.
액자 안쪽의 공간이 물결처럼 일렁이더니, 이내 칠흑처럼 어두워졌다가 점점 밝아졌다.
이윽고.
[……음-.]
검은 구름을 쿠션처럼 끌어안고 고개를 떨구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이가 나타났다.
나선으로 휘어진 양의 뿔과 웨이브진 검녹색의 단발머리.
졸리고 무료한 듯한 인상이 물씬 묻어나는 여성형의 악마.
액자 속에 벨페고르의 모습이 나타난 순간.
[……으음? 뭐야 이건 또.]
꾸벅꾸벅 졸던 벨페고르가 눈을 슬며시 뜨며 정면을 응시했다.
마치, 자신의 성역 안에 일어난 이변을 눈치채고 잠에서 깬 듯한 모습.
벨페고르가 피로감이 가득해 보이는 퀭한 눈동자로 액자 너머를 응시하자.
[오랜만이야. 벨페고르.]
액자 앞에 선 니알라가 손을 가볍게 흔들며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전했다.
그 모습을 본 벨페고르의 반쯤 감긴 퀭한 눈동자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니알라는 판데모니움을 배신한 대악마.
그런 그녀가 바로 눈앞에서 나타난 상황이었다.
“…….”
처용이 돌발 상황에 대비하듯, 긴장감을 끌어 올리며 전투를 준비했다.
벨페고르는 바알을 따르는 대악마로서 당장 니알라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도 이상할 게 없었으니까.
그러나.
[……어? 알레인? 알레인이야!?]
눈이 점점 커지던 벨페고르가 이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반가움이 담긴 목소리로 니알라가 대악마였을 시기에 불리던 이름을 부르는 모습.
그런 벨페고르의 반응에, 처용이 작기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 없는 의문을 표했다.
벨페고르가 무언가를 보고 환한 미소를 짓는 모습은, 회귀 전에도 보지 못했던 광경이었으니까.
그리고.
“흠?”
의문을 표하는 것은 엘리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처음 보는 듯한 광경에 신기해하는 듯한 모습.
대악마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자부하는 두 사람이 의문을 표할 때.
[벨페고르, 바알 배신하고 나한테 오지 않을래?]
니알라가 벨페고르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너무나도 직설적인 니알라의 말에.
“그렇게 이야기하면, 어느 대악마가 바알을 배신하겠-.”
처용이 고개를 저으며 읊조리듯 말했다.
무언가 벨페고르를 배신하도록 만들, 획기적인 수단을 기대했다가 실망한 듯한 분위기.
엘리스 역시, 니알라를 지긋이 응시하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침묵했다.
그 순간.
[응! 그렇게 할래.]
벨페고르가 니알라에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거짓이 전혀 없는 듯한, 벨페고르의 진심 어린 즉답이 울리자.
“……!?”
고개를 젓던 처용의 목이 딱 멈추며 황당한 표정을 드러냈고.
“……으응?”
엘리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내었다.
비단 그들만이 아닌, 하워드, 루나를 포함한 다른 이들도 소리 없는 의문을 드러냈다.
[바알에게 하도 시달렸나 보네?]
니알라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벨페고르를 향해 말하자.
[계속 날 못살게 굴었어, 마기가 짙은 판데라움을 끊임없이 만들라고 명령해. 전엔 나베리우스가 와서-.]
벨페고르가 그간 쌓인 울분을 터트리듯,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을 쏟아 냈다.
대략 종합하자면, 바알이 휘하 대악마들에게 다소 무리한 일들을 지시했다는 것.
나베리우스가 수시로 대악마의 성역들을 드나들며 귀찮게 했다는 것.
벨페고르가 손수 만든 판테라움을 받기 위해 그녀를 독촉했다는 점 등.
그간 쌓인 불만들을 모두 토해 냈다.
[이제 안 해, 때려치울 거야. 나 좀 데려가, 나 배신할래.]
불만과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배신하겠다 말하는 벨페고르.
그 말에.
“진심이냐? 나태의 대악마.”
처용이 진심 어린 의문을 드러내며 물었다.
“고작 그 이유로 바알을 배신하겠다고?”
벨페고르가 쏟아 낸 불만들은 모두 사소한 것들이었다.
처용이 볼 때, 모두 별것 아닌 것들.
고작 그런 사소한 이유로 바알을 배신하겠다는 벨페고르의 말이 신뢰가 가지 않았다.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지만.
‘배신하겠다는 말만큼은…… 진실처럼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벨페고르에게서 나름 ‘진심’이 느껴지고 있었다.
처용은 도저히 벨페고르가 이해되지 않기에, 직접적으로 물어본 것이었다.
그러자.
[바알도, 삼천마도 그 누구도 알레인이 있는 곳을 침범하지 못했잖아? 흐아암~.]
벨페고르가 태평하게 하품을 내지르며 즉답했다.
[그런 알레인의 옆이라면, 마음 편히 잘 수 있을 거야.]
그런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태평한 대답에.
“……아니 무슨-.”
처용이 어이가 없는 듯, 하던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니알라는 그런 벨페고르의 모습을 보며 작은 미소를 짓고는.
[바로 이쪽으로 넘어올래?]
손을 앞으로 내밀며 벨페고르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그래, 거기라면, 바알도 쉽게 못 오겠지. 히히.]
-탓.
벨페고르가 니알라의 손을 맞잡고는.
-스르륵.
망설임 없이 액자 속으로 몸을 던지며 태룡전으로 건너왔다.
무려 최상위 서열의 대악마가 본신 상태로 태룡전에 넘어왔다.
위험한 적이 태룡전 한복판에 나타났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
하지만.
“…….”
[…….]
처용과 여래를 포함한 그 누구도, 벨페고르를 공격하려는 이는 없었다.
게다가.
[나 좀 재워 주라…….]
-후욱.
적진 한복판에 제 발로 들어온 대악마는 니알라의 품에 안겨 자신을 재워 달라 말하고 있었다.
[내 방에 아주 좋은 침대가 있거든, 거기서 푹 자.]
니알라가 안겨든 벨페고르를 안아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화아아! 파아-!
검은 안개를 퍼트려 벨페고르를 감싸 자신의 성역으로 보냈다.
[작전 성공, 지구에서는 이럴 때, 이렇게 말한다지?]
벨페고르를 성공적으로 꿰어 낸 니알라가 밝은 미소를 보이며 작전 성공을 외치자.
“아니…… 이거, 실화인가?”
처용이 어이없는 목소리로 작금의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읊조렸다.
벨페고르가 특이한 성향의 대악마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으니까.
“……놀랍게도, 실화인 것 같다.”
엘리스가 그런 처용의 심정에 동의한다는 듯 답했다.
다소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긴 했지만.
“뭐……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네.”
처용은 이내 황당한 마음을 다잡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정과 결과가 어이없든 아니든 간에, 중요한 건 벨페고르가 확실하게 배신했다는 사실이었다.
무려 판데모니움 서열 13위의 대악마가 배신한 상황.
이는 전략적으로도 엄청난 이득이었다.
게다가, 벨페고르는 판테라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대악마.
그녀가 없다면, 적들은 더 이상 판테라움을 공급받을 수 없었다.
이 또한, 처용과 헌터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이점으로 작용했다.
벨페고르에 대한 일이 마무리되자.
“이제 남은 건…… 내 용건인가?”
이번엔 엘리스가 자신의 본론을 이야기했다.
바로, 삼천마 메피스토를 악신들과의 전쟁에서 배제하는 것.
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문제가 있다면, 우리가 잿빛 군도로 가야 하는데, 갈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거지.”
엘리스가 잿빛 군도로 갈 필요가 있었다.
당장 방법이 있다면, 바로 블랙 게이트를 통해서 가는 것.
“잿빛 군도와 연결된 블랙 게이트를 수색하는 게 그나마 현실적인 방법인데…….”
이를 떠올린 처용이 생각을 곱씹으며 읊조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 뿐, 그 또한 쉽지 않은 방법이었다.
“잿빛 군도로 갈 다른 방법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때.
“……있다!”
돌연 처용의 머릿속에 번뜩하며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잿빛 군도로 갈 방법이 떠오른 것.
심지어, 그저 단순한 방법이 아닌.
“잿빛 군도로 ‘확실하게’ 갈 방법이 있다.”
확실하게 잿빛 군도로 갈 방법이 있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