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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644화 (644/726)

#644화

-우우웅. 탓.

성역, 태룡전과 연결되는 게이트가 열리고 처용이 나타나자.

“이 성역과 성지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 한, 적어도 지구는 무사하겠지.”

-스르륵.

그런 처용을 뒤따라온 엘리스가 잔잔한 목소리로 태룡전 내부를 둘러보며 읊조렸다.

그리고.

“여기가…… 당신이 말한, 세계 최후의 보루였던 장소로군요.”

태룡전에는 처음으로 방문하는 사람 중 한 명.

하워드가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며 읊조렸다.

“참 새삼스럽지, 적이었던 너와 내가 나란히 이곳에 들어설 날이 있을 줄은…….”

그런 하워드의 말에 작은 미소를 지은 엘리스가 처용을 보며 말했다.

수호신인 처용과 학살의 마녀.

세상을 지키려는 저항군을 대표하는 인간과 세상을 파멸로 이끄는 이들을 대표하는 인간.

엘리스는 새삼 현재 상황이 신기하다는 듯, 읊조렸다.

그때.

“오랜만입니다. 관철의 대신.”

게이트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신격.

미륵의 붉은 눈동자를 마주하고 작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전했다.

불편한 기색 하나 없는 엘리스의 여유로운 인사에 미륵이 작게 인상을 찌푸리고는.

[약속을 지켰구나.]

복잡한 심정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약속 그 이상을 해냈죠.”

-저벅.

엘리스가 미륵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저승의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았군요.”

잠시 뜸을 들인 엘리스가 말을 이으며 저승의 일을 언급하자.

[……!]

미륵의 눈살이 찌푸리며 반응을 보였다.

페르세포네가 일으킨 반란.

미륵을 포함한 다수의 신격들이, 아누비스를 돕고 있었지만, 반란이 쉽게 수습되지 않고 있었다.

엘리스는 저승에서 일어난 일의 정황과 현재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미륵이 엘리스를 말없이 응시하며 소리 없는 의문을 던질 때.

-스륵. 우우웅.

엘리스가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며 옅은 마기를 내뿜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투구를 두 손으로 잡은 듯한 모습.

엘리스의 마기가 그녀의 머리 주변을 덮으며 일렁이자.

-우웅. 화아아!

점점 검은 실루엣이 드러나며, 투박한 형태의 투구가 나타났다.

-스륵.

엘리스가 머리 위에 나타난 투구를 벗고 두 손 위에 들어 보이자.

“……퀴에네(Kynee)!?”

처용이 그 검은 투구를 단번에 알아보며 말했다.

엘리스가 소환한 검은 투구의 정체는 퀴에네라 불리는 신물.

다름 아닌, 올림포스 소속 저승의 신, 하데스의 신물이었다.

하데스는 숨어 있던 순혈 의회의 일원인 페르세포네의 배신으로 인해, 소멸했던 성좌.

그런 그의 신물이 왜 엘리스에게서 나타났는가?

처용은 물론이고 이를 지켜보던 미륵 역시 의문을 품었다.

그때.

-화아아! 스륵.

엘리스의 손에 들려진 퀴에네가 검은빛을 짧게 점멸하더니, 허공에 떠올랐다.

동시에.

-스르르륵-.

투구 아래로 검은 신력이 모이며 점차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다.

칠흑처럼 짙은 검은 수염과 길고 구불거리는 머리카락.

[고맙구나.]

퀴에네 속에서 나타난 사람, 아니 성좌는 다름 아닌 소멸한 줄 알았던 하데스였다.

갑작스럽게 하데스가 모습을 드러내자.

“……어떻게?”

처용이 당황스러움을 드러내며 읊조렸고.

[분명, 퀴에네가 파괴된 것을 확인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미륵 역시 당황스러움을 드러냈다.

게다가, 미륵은.

-……퀴에네의 파편이다. 제길!

하데스의 신물인 퀴에네가 파괴되었다는 것을 직접 확인까지 했었다.

즉, 하데스는 페르세포네의 함정에 당해 그대로 소멸한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했었다.

하지만, 엘리스가 보인 퀴에네는 그저 성물이나 복제품이 아닌, 진짜 신물 퀴에네였다.

그런 퀴에네에서 나타난 하데스 역시 미륵의 눈에는 ‘진짜’로 보였다.

[저승에 소속된 관리자들은 쉽게 소멸하지 않지요. 이번에는…… 위험했지만.]

그런 미륵과 처용의 의문에 하데스가 짧고 굵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고.

“페르세포네가 파괴한 퀴에네는 정교하게 만든 가짜였습니다. 진짜는 제가 가지고 있었지요.”

엘리스가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우연히 제 발이 저승에 닿았던 것이 행운이었습니다.”

네크로노미콘과 태초의 그릇을 통해 다른 세계를 오갔던 엘리스.

지금껏 처용이 악신들을 상대로 분투했던 것처럼, 그녀 역시 악신들과 악마들을 상대로 분투했었다.

그러던 와중 우연히 엘리스의 발길이 저승에 닿았고.

-……당신이 소멸하기라도 하면 곤란해.

엘리스는 그 기회를 이용해 하데스와 접촉했었다.

하데스는 엘리스가 내민 손을 잡았고 이 사실을 아테나에게만 전하려 했었다.

하지만, 아테나와 단둘이 독대하기도 전에, 페르세포네의 함정에 당해 버렸다.

다행히 엘리스를 통해 마련한 ‘보험’ 덕분에, 겨우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었다.

“당신을 도와주는 건, 이번만입니다. 하데스.”

엘리스가 하데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부디, ‘미련한 선택’을 반복하지 말기를.”

[예언자로서의 충고인가?]

하데스가 엘리스가 하고자 하는 말의 뜻을 알아들은 듯,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엘리스가 말한 ‘미련한 선택’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믿는 것이었으니까.

“그저 개인적인 바램입니다.”

[……그렇군.]

어깨를 으쓱이며 엘리스가 답하자, 하데스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답하고는.

[비밀리에 아테나를 만나야 하오. 도와주시오.]

미륵을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멸한 줄 알았던 저승의 대신, 하데스가 생존한 상황.

[잡게나.]

미륵은 즉시 하데스를 향해 손을 내밀며 답하고는.

[곧, 천찰이 직접 불러낼 것이다.]

처용과 엘리스, 하워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화아아아!

잿빛이 번쩍이며 미륵과 하데스가 사라진 순간.

-피이이!

찬란하게 터져 나온 황금빛이 처용과 엘리스, 하워드를 감싸며 사라졌다.

***

-피이이!

황금빛과 함께 처용이 다시 나타난 장소는 성역의 중심인 태룡전의 내부 대전이었다.

처용이 나타나자.

[고생했다. 제자야.]

태룡전에 모인 신격 중 한 명, 여래가 처용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그리고.

“어서 와, 계승자.”

-탓. 탓.

짧은 발걸음으로 처용에게 다가와 손을 잡아 주며 반겨 주는 소녀.

처용은 자신에게 다가온 어린 소녀를 보고는.

“왜 일어나셨습니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머리에 작은 연꽃이 피어난 소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보살이었다.

본래, 그녀는 알 속에서 잠들어 있어야 하는 상황.

그런 그녀가 깨어나 돌아다니는 것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너무 잠만 자는 건, 성장에 좋지 않으니까.”

보살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처용의 말에 답할 때.

“……자비의 대신?”

그런 보살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 엘리스의 눈이 점점 커지며 읊조렸다.

동시에, 처용을 바라보며 의문 어린 눈길을 보냈다.

가까이 가기만 해도 따듯한 신력이 느껴지는 어린 소녀.

다소 어려지긴 했지만, 겉에서 느껴지는 신력이나 외형으로 볼 때, 자비의 대신이 확실해 보였다.

“맞다.”

처용이 엘리스의 의문에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하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묻지 않도록 하지.”

엘리스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비의 대신이 왜 어려졌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게 있었으니까.

그때.

“안 봐도 뻔하지 않나?”

-스르륵.

하워드에게서 어두운 그림자가 스멀스멀 솟아나더니, 중성적인 목소리가 울렸다.

꿈틀거리던 어둠이 이리저리 뭉치더니, 이내 흑백의 하회탈이 형성되었고.

“안 그래? 브라더.”

-슈륵.

하워드의 어깨 위로 조커의 얼굴이 나타나며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브라더가 거하게 사고를 친 것 같구만?”

조커가 처용, 정확히는 처용 안에 깃든 자신의 형제, 수라를 바라보며 말하자.

“시끄럽다.”

-우우웅.

처용에게서 붉은빛의 기류가 흘러나오며 수라의 목소리가 울렸다.

짜증이 일렁이는 수라의 대답에.

“그러게, 나처럼 진작 숙주와 친구가 되었으면 좋았잖나?”

조커가 옅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이 녀석이 무슨 짓을 꾸밀지 알고 있었나? 조커.”

처용이 조커의 말을 듣고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지금 조커의 말은 마치, 수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는 듯 보였으니까.

“브라더와 난 같은 존재니까.”

조커가 그런 처용의 물음에 흔쾌히 답하듯 입을 열었다.

“어렴풋이 브라더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지, 하지만 말할 수 없었지.”

즐거움, 즉 쾌락의 파편인 조커와 분노의 파편인 수라.

둘은 서로가 같은 존재, 아니 하나의 완전한 존재가 분리되어 탄생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로의 생각이 느껴지는 ‘공감’에 가까웠다.

덕분에 조커는 분노의 파편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안타까웠어. Bro가 브라더의 의지를 거스르리란, 불가능하다고 여겼거든.”

개인적으로 처용이 조금 아깝다고 생각했다.

분노의 파편은,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해 계승자를 집어삼킬 생각이었으니까.

다른 태초의 조각이었으면 몰라도, 분노는 조크 – 크타니드의 중심에 있던 파편.

그 무엇보다도 조크 – 크타니드와 가까웠던 존재였기에, 처용이 그를 이기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런데, 둘이 계약을 했네? 브라더, 아니…… 이젠, ‘수라’라고 해야 하나?”

조커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현재 상황에 놀라워하며 말을 이었다.

“설마, 브라더가 제 고집을 꺾을 줄이야. 이거 정말 재밌잖아. 하하!”

“난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재밌다는 듯, 웃음을 내지르는 조커의 말에 수라가 인상을 쓰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말대로, 처용과의 계약은 정말 어쩔 수 없었기에 맺어진 것이었으니까.

“그래, 그래, 열심히 하라고. 난 그딴 거 관심 없으니까.”

조커가 미소를 거두지 않은 목소리로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비아냥거리는 듯한 조커의 태도에, 수라가 점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듯, 짙은 기운을 흘렸다.

그때.

“……시비를 걸려고 나온 게 아니라면, 잠깐 들어가 있으십시오. 조커.”

-파아아.

하워드가 주변에 일렁이는 어둠을 손아귀로 걷어 내며 말했다.

그의 어깨 위에 떠 있던 하회탈 가면 역시 흐려졌고.

“다시 봐서 즐거웠다고. 하하.”

-스르륵.

이내, 주변의 어둠과 하회탈이 완전히 사라지며 조커가 모습을 감추었다.

하워드가 조커를 자신의 내면으로 돌려보내고는.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알레인 님.”

여래 옆에 서 있던 대악마, 아니 태초의 마수.

자신의 성좌인 니알라를 보며 인사를 전했다.

[후후, 그 지옥을 벗어났는데 잘 지내다마다. 그리고 이젠 알레인이 아니라 니알라란다.]

니알라가 오랜만에 직접 마주하는 자신의 신관, 하워드를 보며 손을 흔든 순간.

-화아아!

[준비는 끝났다.]

황금빛이 넓게 퍼지며 황룡이 나타나, 니알라를 보며 말했다.

동시에.

-후우우! 후우!

니알라의 옆으로 그녀의 형제인 카투라와 크루마, 그리고.

“아이고 힘들었다…….”

“고작 그걸로 엄살 피우지 마.”

밤의 마신으로 변한 루나와 타라샤도 함께 나타났다.

마치, 지금까지 태초의 마수들과 함께 무언가를 한 듯한 분위기.

“그러고 보니, 니알라 님이 절 부르셨죠?”

그 모습을 본 처용이 니알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처용이 성역에 온 이유는, 니알라가 불렀기 때문이었으니까.

[후후.]

니알라는 짧은 웃음을 흘려 보이고는.

[대악마 중 한 명을 나처럼 배신하게 만들 수 있을 거 같아.]

어째서 처용을 불렀는지, 그 이유를 이야기했다.

바로, 대악마 중 한 명을 배신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게…… 가능합니까?”

처용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니알라, 안개의 대악마 알레인의 경우는 정말 특별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정체가 태초의 마수였고 악의 종주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피하려 배신한 것이었다.

그런데, 다른 대악마를 니알라처럼 배신하게 만들 수 있다?

처용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밤의 일족과 연관이 깊은 대악마야, 지금 몽마들을 이끄는 녀석이기도 하고.]

니알라가 그런 처용의 의문에 답하듯 입을 열자.

“몽마들을 이끄는 대악마? 하지만, 아스모데우스는 이미…….”

처용이 고개를 기울이고 인상을 찌푸리며 읊조리듯 말했다.

본래, 몽마들과 뱀파이어들을 이끌던 대악마는 색욕악신 아스모데우스.

하지만, 아스모데우스는 밤의 성채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패배했고 완전히 소멸했다.

[당연히, 다른 대악마가 몽마들의 지휘 권한을 양도받았지.]

니알라가 처용의 의문에 답해 주었다.

그때.

“공교로운 우연이군요.”

이야기를 듣던 엘리스가 입을 열었다.

“저 역시, 대악마 중 한 명을 배제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습니다만.”

엘리스가 이곳에 방문한 이유 중 하나.

그것은 다름 아닌, 대악마 중 한 명을 악신들과의 전쟁에서 배재할 방법이 있기 때문이었다.

“같은 대악마인가……? 일단, 니알라 님이 말하는 그 대악마가 누구입니까?”

짧게 생각에 잠기며 읊조린 처용이 니알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벨페고르야.]

니알라가, 배신하도록 만들려는 대악마가 누구인지 말해 주었다.

“……나태의 대악마요?”

그 말에 처용이 고개를 기울이며 의문을 표했고.

“흐음, 다행히 중복되는 대악마가 아니네?”

엘리스가 흥미롭다는 듯, 읊조렸다.

그 말에 처용이 엘리스를 바라보았고.

“넌 누군데?”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대악마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니알라가 말한 대악마는 벨페고르.

그렇다면, 엘리스가 말하는 대악마는 누구인가?

그런 처용의 질문에.

“그놈만큼은 내가 확실하게 배제할 수 있다.”

엘리스가 자신감 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고.

“메피스토를……!”

아내, 그 대악마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했다.

엘리스가 자신감 있게, 악신들과의 전쟁에서 배제할 수 있다고 말하는 대악마.

그는 다름 아닌 삼천마 중 한 명.

끝없는 증오의 대악마, 메피스토였다.

“메피스토!?”

엘리스의 말에 처용의 눈이 커지며 경악과 의문을 드러냈고.

[어…… 그게 가능해?]

조금 전, 벨페고르를 배신하게 만들겠다고 말한 니알라 역시 당황스러움을 드러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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