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643화 (643/726)

#643화

마녀가 이야기한 두 개의 선택지를 들은 처용이 고민에 잠겼다.

판데모니움, 대악마의 성역과 연결되는 블랙 게이트.

무림 세계와 연결되는 월드급 게이트.

약 일주일 뒤, 처용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 도맡아야 했다.

두 가지 선택지 모두 다, 어느 하나 소홀할 것 없이 중요했다.

‘당장 급하다고 볼 수 있는 쪽은 블랙 게이트.’

생각에 잠긴 처용이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진지하게 계산하며 속으로 읊조렸다.

두 가지 사태가 동시에 발생한다면, 당장 급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는 건 바로 블랙 게이트였다.

S급 난이도를 아득히 초월하는 D(Death)급 던전.

무려 대악마의 성역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게이트였다.

도시 한복판에 블랙 게이트가 나타나고 폭주까지 일어나 대악마가 지구에 강림한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기껏 안전하게 안정시켜 놓은 지구가 다시 혼란 잠기게 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금의 지구는 회귀 전처럼 약하지 않다.’

현재 지구의 세력은 피폐했던 회귀 전과는 다르게 강성하다는 점.

거대 길드의 정예들이 직접 움직이면 S급 게이트 정도는 손쉽게 공략하는 정도였다.

아무리 D급 게이트가 나타난다고 해도, 지금 지구의 수준이라면, 충분히 공략이 가능했다.

특히 혹독한 훈련을 받은 한국의 헌터들, 스피릿 팀.

그들은 악신들이 태룡사를 습격했을 당시, 거의 본신 상태의 악마들을 상대로 훌륭하게 맞서 싸웠다.

진호의 경우는 대악마인 푸르카스를 홀로 상대하여 그를 저지하기도 했었다.

그들이 팀을 나눠 움직인다면, 블랙 게이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보였다.

하지만.

‘삼천마라는 변수가 있다……!’

문제는 앞으로 나타날 블랙 게이트 중에는 삼천마의 성역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만약, 지구 한복판에 블랙 게이트가 나타났고 그곳이 악의 제전과 연결된 통로라면?

그 블랙 게이트는 누구도 공략이 불가능했다.

전 세계의 S급 헌터들을 끌어모아 공략대를 구성하다 해도, 그들이 바알을 이길 순 없었으니까.

비단 삼천마만이 아닌, 한 자릿수 서열의 대악마들도 문제였다.

그들은 삼천마보다 약할 뿐, 지금 지구의 인간들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위험천만한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존재는 처용밖에 없었다.

이 논리대로라면, 당연히 블랙 게이트를 선택하고 무림은 차순위로 미루는게 맞았다.

그러나…… 무림 역시 그곳의 상황을 ‘예측할 수 없다’라는 변수가 있었다.

다소 일찍 방문한 에스라 대륙 역시, 처용이 알던 것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으니까.

악마를 따르는 마인들과 순혈자들을 따르는 순혈 신도들.

지구를 멸망으로 이끌던 이들이 다른 세계에 먼저 자리를 잡았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다면 무림 역시 마찬가지라는 뜻.

게다가, 무림에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벌어졌다는 사실 또한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검성…….’

무림의 최강자 중 한 명이자, 회귀 전 처용의 동료였던 이.

검성이 요정의 숲을 습격하고 요정 여왕인 티타니아를 공격했으니까.

심지어 악신들과 협조하는 듯한 정황까지.

그 일이 어떻게 된 일인지, 무림에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인지 서둘러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만약…… 이미 무림이 악신들의 손아귀에 거의 다 넘어갔다면?

에스라 대륙과 맞먹는 세계인 무림 세계의 게이트가 곧 ‘검은 문’으로 변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무림 세계의 사람들이 악마병으로 변해, 지구 혹은 에스라 대륙으로 쳐들어올 것이다.

당장 전 세계에 위협을 가해 오는 블랙 게이트.

언제 검은 문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무림 세계.

섣불리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배제하기가 힘들었다.

고민에 고민을 이은 처용은.

“네가 생각하는 베스트는?”

잠시 선택을 미루고, 레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확히는 진짜 예언자인 엘리스를 향해 의견을 물어보았다.

처용과는 다른 곳에서 악신들을 상대했던 그녀라면, 무언가 대책이 있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그런 처용의 물음에.

“나와 같이 무림으로 가는 것.”

엘리스는 흔쾌히 그 질문에 답해 주었다.

그녀가 개인적으로 바라는 처용의 선택은 블랙 게이트가 아닌, 무림 세계였다.

엘리스의 말이 예상 밖이었는지, 처용이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라면 전자, 블랙 게이트를 맡아 달라고 말할 줄 알았으니까.

게다가 처용과 엘리스, 두 전력을 나누는 것이 아닌, ‘함께’ 무림 세계로 가자 말했다.

이 또한 예상 밖이었다.

“삼천마를 걱정하는 건 이해가 간다.”

그런 처용의 소리 없는 의문을 알아차린 엘리스가 대답하듯 말했다.

“하지만, 지구에 삼천마가 나타난다 해도, 성운의 신격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아?”

지구에 삼천마의 성역과 연결된 블랙 게이트가 나타난다?

그렇다면, 각 성운의 신들이 가만히 두고만 볼 리가 없었다.

기껏 안정시킨 지구가 망가지는 건, 그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손해였으니까.

게다가.

“우리가 없어도 충분히 블랙 게이트에 ‘대처’할 순 있다. 정확히는 네 덕분에 대처법이 생겼지…….”

엘리스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대처 방안을 이야기했다.

처용과 엘리스 없이 블랙 게이트 공략은 거의 불가능했지만, 공략하지 않아도 대처 방안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무림에 문제가 있나 보네.”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처용이 엘리스를 향해 나지막하게 묻자.

“내가 거기에 있었거든.”

엘리스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그 대답에 처용이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짧게 고민을 이은 처용은.

“좋아, 네 말대로 하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처용이 엘리스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블랙 게이트에 대한 대처 방안이 있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녀가 얼마 전까지 무림 세계에 있었다는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

무림 세계에 있었던 그녀가 처용에게 함께 무림으로 가자고 한 이유.

그 이유는 무림 세계에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했다는 뜻이었으니까.

엘리스의 제안을 받아들인 처용이 진지하게 생각에 잠길 때.

“혹시 블랙 게이트가 나타날 전조 증상이나 특징 같은 게 있습니까?”

제시카가 레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블랙 게이트는 처용의 도움 없이 길드의 힘만으로 해결해야 할 듯 보였다.

그렇기에, 블랙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묻는 것이었다.

“주변에 마기가 뭉치고 폭발하며 흑색 기둥이 솟구칠 거야.”

엘리스는 헌터들이 묻는 말에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모두 이야기했고.

“으음, 아직 운용이 가능한 가문의 전투기들을 수색에 활용하면 되겠군요.”

“마키나와 수송선도 수색에 활용하겠습니다.”

제시카와 커맨더를 포함한 헌터들은 즉각 대처 방안을 이야기했다.

이윽고 서로 의논을 마친 헌터들이 대부분 돌아갔을 때.

“카란디아를 불러 주시겠습니까?”

성자는 돌아가지 않고 처용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의 뒤에는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루비아도 있었다.

“카란디아.”

-우우웅.

처용은 성자의 부탁 어린 목소리에, 흔쾌히 왕궁 밖에 있던 카란디아를 게이트로 불러왔다.

카란디아가 나타나자.

“……두 분, 나오십시오.”

-우웅.

성자가 눈을 감고 은은한 빛을 흩뿌리며 누군가를 부르듯 읊조렸다.

-후욱. 후우우-.

그 말에 부름을 받은 듯, 두 줄기의 빛이 성자에게서 흘러나왔고.

-화아! 화아아!

반투명한 형체의 두 인영이 성자 옆에 나타났다.

한 명은, 눈과 이마를 가린 철제 투구에 그 아래로 흘러내린 백발이 돋보이는 기사.

다른 한 명은, 엘프들 중에서도 유독 긴 귀와 백금발의 머리가 특징인 하이 엘프였다.

성자가 소환한 영혼의 정체는 바로 라사벨에게 굴복당해 붙잡혀 있던 영혼이었다.

라사벨은 성자에게 교화되어 리사가 되었고 그녀에게 붙잡혀 있던 영혼들은 모두 성자가 거둬들였었다.

“붙잡혀 있던 대부분의 영혼은, 황룡 님을 통해 모두 안식에 들었습니다.”

성자는 대부분의 영혼을 황룡에게 인계했고 황룡은 그 영혼들을 모두 천도(薦度)했다.

다만.

“두 분을 제외하고요.”

아직 미련이 남은 듯, 천도를 거부한 두 영혼이 있었다.

지금 성자가 불러낸 두 영혼이 바로 그들.

“카라스······ 오라버니.”

카란디아가 투구를 쓴 기사를 보며 그의 이름을 읊조리자.

“이제야…… 만나는구나.”

투구를 쓴 기사의 영혼.

룬테라 왕국의 왕족이자, 카란디아의 형제 중 하나.

카라스 룬티르가 카란디아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이전, 라사벨의 꼭두각시였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이지를 찾은 듯한 모습이었다.

“미안하다. 카란디아…….”

카라스의 입에서 미안하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복잡한 감정들이 함축된 그 말에.

“아니에요.”

카란디아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읊조렸다.

그리고.

“오랜만에 보네? 루비아.”

루비아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손을 흔들어 보이는 하이 엘프.

그리움과 애정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루비아의 이름을 부르자.

“지금 웃음이 나와요?”

루비아가 인상을 찌푸린 채 복잡한 얼굴로 말했다.

불만과 울분이 옅게 일렁이는 루비아의 감정과 목소리에.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우리 ‘딸’과 다시 만났는데, 울기보단 웃는 게 좋지 않을까?”

미소 어린 하이 엘프의 목소리에 울먹임이 일렁이며 조금 떨렸다.

루비아를 향해 자신의 자녀라 칭하는 하이 엘프.

그녀는 루비아의 모친이자, 용기사 루시우스의 연인인 리피아였다.

리피아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라앉히려는 듯, 잠시 침묵하더니.

“루시우스는?”

자신의 연인, 루시우스의 안부를 물었다.

“바하무트 님에게 배웅했어요.”

“그렇구나.”

루비아가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린 듯, 인상을 찌푸리며 답하자, 리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피아는 루비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략 짐작이 간다는 듯, 어두운 표정을 내비치고는.

“……미안해, 루비아.”

이내, 고개를 숙이며 루비아를 향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엄마가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아니, 아니야. 자책하지는 마…….”

미안하다는 리피아의 말에 루비아가 잠시 언성을 높이더니, 이내 고개를 젓고 자책하지 말라며 읊조렸다.

카라스와 리피아, 해방된 두 영혼이 자책 어린 분위기를 보일 때.

“루비아의 말대로 자책할 필요는 없죠.”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진짜 잘못을 저지른 이들은 따로 있고 놈들은 이미 그 대가를 치루었으니까.”

자책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처용의 말에.

“룬테라의 백성들을, 카란디아를 구해 주어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카라스가 처용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정중한 목소리로 감사를 전했다.

처용이 누구인지, 이곳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이미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처용의 목적 또한 알고 있었고.

“미약한 힘이지만, 카란디아를 도와 그대를 위해 싸우겠습니다.”

“저도요. 그대의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루시우스와 재회하는 걸 미루죠.”

카라스와 리피아는 그런 처용을 돕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카란디아.”

“잠시, 신세 좀 질게.”

두 영혼이 카란디아를 향해 손을 내밀며 옅은 안개로 변하자.

-스르륵.

카란디아가 두 손을 앞으로 뻗으며, 두 영혼을 받아들였다.

악신들에 의해 이별했었던 가족들이 다시 만나고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지을 때.

[계승자, 잠깐 성역에 오지 않을래?]

돌연, 처용의 머릿속으로 니알라의 목소리가 울렸다.

[우연이긴 한데, 너한테 큰 도움이 될 것 같은 일이 있거든.]

‘……알겠습니다.’

처용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니알라의 말에, 처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한 순간.

“네 성지로 돌아갈 거면, 우리도 같이 가지.”

레나가 하워드와 함께 처용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처용이 그런 레나와 하워드를 보며 소리 없는 의문을 표하자.

“블랙 게이트에 대처하려면 네 성좌들이 도와줘야 하니까. 그리고-.”

레나의 입에서 엘리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금 전 말했던, 블랙 게이트에 대한 대처.

그 대처를 준비하려면, 태룡전에 거주하는 성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잘하면, 대악마 중 한 명을, 확실하게 이번 전쟁에서 이탈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엘리스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전하자.

“……대악마 중 한 명을?”

처용의 눈빛이 점점 진지하게 변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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