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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637화 (637/726)

#637화

검은 문을 강제로 집어삼킨 라사벨이 향한 곳은 아스터 제국의 중심부.

살아남은 아스터 교단의 세력들이 농성 중인 대신전이었다.

그곳에는 침입자들을 막는 결계가 펼쳐져 있었지만.

-슈화아아!

하늘에서 날아오는 라사벨을 결계가 빨아들이듯, 그녀를 집어삼켰다.

라사벨이 결계 안으로 들어서자.

“성녀 님.”

참회의 신관, 베드라가 라사벨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쿨럭. 신의 말씀은…… 전해 들으셨겠지요?”

검은 피를 토해 낸 라사벨이 베드라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묻자.

“……각오는 되었습니다.”

잠시 멈칫한 베드라가 이내 진지한 목소리로 각오를 이야기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듯 보이는 라사벨을 보며 잠시 놀랐지만, 지금 중요한 건 반격의 가능성이었으니까.

“저 잔악무도한 이교도들을 심판할 수만 있다면! 목숨도 바칠 수 있습니다!”

베드라가 광기 어린 외침을 내지르자.

-이교도들에게 심판을!

-심판을!

그 광기가 전염된 듯, 대신전 안에 모인 이들이 광기를 내질렀다.

라사벨은 그 모습을 보며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미소를 짓고는.

“위대하신 빛과 지혜의 신이시여!”

목소리를 높여 고함을 내질렀다.

동시에.

-키이! 콰아아아!

자신의 안에서 당장이라도 터질 듯 날뛰는 기운.

검은 문의 기운을 외부로 방출하며 강렬한 폭발을 터트렸다.

백색과 흑색이 섞인 기운이 대신전 내부를 순식간에 휘감았고.

-파아아……!

베드라를 포함한 신관, 성기사 사제 등, 살아남은 아스터 교단의 세력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

라사벨이 대신전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슈르륵!

대신전 외부에 펼쳐진 결계가 검게 오염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결계를 파괴하기 위해, 공격을 가하던 헌터 중 하나.

제시카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뒤로 물러나며 읊조렸다.

빛의 신력으로 이루어진 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악한 어둠.

“모두 물러난다! 탱커는 정면을 방어하고 모두 방어 스킬을 사용해라!”

그 어둠에서 불길한 기운을 느끼며 헌터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대신전을 포위해 공격하던 모든 이들이 발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콰아아아! 쿠구!

강렬한 폭발음이 들리며 지면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이변이 일어나는 중인 대신전이 폭발한 게 아니었다.

강렬한 폭발과 함께 폭삭 무너진 것은 다름 아닌 황궁이었다.

그리고.

-피이이!

무너지는 황궁 중심부에서 솟구쳐 오른 한 줄기 빛.

그 빛줄기가 대신전을 향해 휘어지더니.

-피이! 쿵!

대신전 바로 앞에 떨어지며 누군가가 나타났다.

청색과 붉은색의 브릿지가 있는 백색의 긴 머리와 각지고 수려한 얼굴.

야훼처럼 동공이 없는 빛만이 가득한 눈을 빛내는 신격.

에스라 성운의 주신, 아스터가 직접 지상에 강림했다.

아스터가 직접 모습을 드러낸 순간.

-우웅. 파앗! 팟!

그의 주변으로 빛이 퍼지더니, 에스라 성운의 신격들이 나타나 모여들었다.

수도 각지에서 지상에 강림한 길드 성운의 신격들과 맞서 싸우던 이들.

그들 모두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모습이었다.

에스라 성운의 신격들이 점점 검게 변하는 대신전 앞에 모여들자.

[궁지에 몰렸구나.]

-샥! 샤샥!

여래와 미카엘, 토르 등 연합군을 돕기 위해 강림한 신격들도 모여들었다.

그리고.

-파직! 콰르르릉!

무너지는 황궁 중심에서 솟구친 검붉은 벼락 한 줄기.

그 벼락이 여래의 옆에 떨어지더니.

“이 정신 나간 새끼. 자기 성역을 무너뜨린 거냐?”

처용이 나타나 아스터를 노려보며 말했다.

방금 일어난 아스터 제국 황궁의 폭발.

그것은 단순한 폭발이 아니었다.

아스터가 제 성역을 과부하시켜 황궁과 함께 날려 버린 것이었다.

성운의 주신인 아스터가 멀쩡한 제 성역을 제 손으로 부쉈다는 말에.

[…….]

여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길드 성운의 다른 신격들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분위기를 보였다.

주신의 성역을 이용해 맞서 싸워도 모자랄 판에, 스스로 성역을 버렸으니까.

하지만.

“이 세계를 통째로 파괴하려고?”

처용은 어째서 아스터가 자신의 성역을 파괴했는지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이 대륙을! 나의 세계를 제물로 바쳐!]

아스터가 가득 일그러진 표정으로 소리치고는.

-화아아! 파아!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주변 일대를 휘감았다.

그의 주변에 있는 신격들과 대신전을 감싼, 검게 변색 중인 결계까지 빛에 휩싸였다.

[주신의 뜻에 따라.]

[부디 뜻을 이루소서.]

바로 옆에 있는 하메라와 로메라를 포함한, 에스라 성운의 모든 신격이 아스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화아아! 화아!

주변을 폭풍처럼 휘감은 빛이 신격들까지 휘감아 뒤덮어 버렸고.

-슈화아아!

이내, 아스터를 향해 응축되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네놈들을 영원한 침묵 속에 묻어 버리겠다!]

아스터가 빛을 더 강하게 퍼트리며 소리친 순간.

-쿠구! 쩌저저-적!!

하늘이 크게 갈라지며 검은 균열이 일어나고 점점 크게 번지기 시작했다.

지상 역시, 강렬한 지진에 의해 지각 변동이 일어난 듯, 크게 갈라지며 요동쳤다.

단순한 지진이나 천재지변이 아니었다.

하늘과 땅이 갈라지며 나타난 검은 균열.

그 검은 균열 너머로는 빛이 작게 반짝이는 우주가 보였으니까.

[……이 세계의 중심을 파괴한 것인가?]

여래가 점점 흔들리며 무너지는 하늘과 땅을 보며 상황을 파악했다는 듯 읊조렸다.

이 세계의 이름은 에스라 대륙.

에스라는 다름 아닌 태초신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태초신에게서 이 세계를 다스리고 관리할 권한을 받은 자가 바로 아스터.

아스터의 성역은 이 세계의 중심을 잡아 주는 기둥이자, 주춧돌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 세계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성역을 과부하시켜 폭파한 상황.

중심축이 무너진 세계는 붕괴하기 마련이었다.

-쿠콰콰! 쿠르르!

지금 에스라 대륙 전체가 갈라지고 무너지며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이유였다.

게다가.

-콰아아! 스르륵!

검은빛이 일렁이는 새하얀 빛이, 갈라지는 균열을 타고 퍼져 나가며, 붕괴를 가속화하고 있었다.

라사벨이 집어삼킨 검은 문과 그녀에게 붙잡힌 수많은 영혼.

대신전 안에 모여든 아스터 교단의 신관들과 신도들.

아스터에게 집어 삼켜진 에스라 성운의 모든 신격들 등.

그 모든 것들이 아스터의 에너지가 되어 세계의 붕괴를 가속화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잃는 건! 네놈들도 마찬가지니라! 하하하하!]

아스터가 붕괴하는 세계를 보며 광소를 내질렀다.

자신은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잃지만. 적들은 더 많은 것을 잃는다.

그 사실을 강조하며 점점 더 크게 광소를 내뿜었다.

그때.

“지금입니다.”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읊조린 순간.

-콰아아!

먼 곳에서 황금빛의 기둥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바로 처용이 두 번째 성지로 선포한 장소, 아라한 왕국의 왕궁이었다.

하늘 높이 솟구친 황금빛의 기둥이 유연하게 휘어지며 처용에게로 향했고.

-파아! 쿠우우!

처용의 위로 거대한 황금빛의 용, 황룡이 나타났다.

[관리자의 권한으로, 나 천찰이 이 세계의 중심을 잡겠노라.]

-우우웅.

황룡이 손에 쥔 여의주로 황금빛을 퍼트리며 읊조리자.

-쿠궁……!

붕괴하며 거칠게 흔들리던 세계의 진동이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했다.

에스라 대륙에 강림한 황룡이 부수어진 이 세계의 중심축을 대처했을 때.

-화아아!

황룡과 조금 떨어진 곳에 황금빛이 빛나며 퍼지더니.

[기어코 나락의 길을 가려 하는구나. 빛과 지혜의 신.]

-쿠우우!

금빛의 비늘이 빛나는 거대한 드래곤.

드래곤 로드인 바하무트가 아스터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며 나타났다.

-화아아!

바하무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의 드래곤 포스가 황룡의 신력에 섞이며 넓게 퍼지자.

-쿠구구……!

점점 약해지던 진동이 더욱 빠르게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대의 차례라네, 기계 장치의 여신.]

황룡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부유하고 있는 거대한 함선.

커맨더의 성지, 마키나를 바라보며 말하자.

[테라포밍 로딩(Terraforming Loading)!]

-우웅.

함선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목소리가 울리며 옅은 은빛을 넓게 퍼트렸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신력이 담긴 은빛이 서로 뭉치며 길고 얇은 은빛의 실들을 형성하더니.

-촤자자작! 촤자작!

점점 갈라지며 검은 우주를 드러내는 세계의 균열을 꿰매기 시작했다.

은빛의 실들이 균열의 끝에 달라붙어 서로 이어지자.

-쿠구구!

곳곳에 갈라진 틈이 다시 닫히기 시작했다.

마치, 세계 곳곳에 난 상처를 꿰매 치료하는 듯한 모습.

[우리의 힘만으로는 이 무너지는 세계를 계속 지탱할 수 없소. 도와주시오.]

황룡이 지상에 강림한 다른 신격들을 향해 부탁하듯 말하자.

-화아아! 콰르릉!

[올림포스 성운 전원! 천찰의 대신을 돕는다!]

한 줄기 벼락과 함께 지상에 강림한 아테나가 명령하듯 소리쳤다.

그 말에.

-탁! 우우웅!

지상에 강림한 올림포스 성운의 신격들이 땅에 손을 짚으며 신력을 내뿜었다.

토르를 포함한, 다른 성운의 신격들 역시 땅을 짚으며 신력을 분출했다.

그들이 내뿜는 신력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퍼트린 은빛의 실에 섞여들었고.

-촤라라라!

벌어진 균열을 닫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이젠, 새로 벌어지는 균열보다, 닫히는 균열이 더 빠를 지경.

[이-!]

그 모습을 본 아스터가 인상을 험악하게 찌푸리며 자신에게 응축된 에너지를 더 강하게 퍼트렸다.

그때.

“어쩌냐.”

-저벅.

처용이 아스터를 향해 한 발 나아가며 비웃음 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파산은 너 혼자 하게 생겼는데.”

[으드득!]

여유로운 비웃음을 흘리는 처용의 말에 아스터가 이를 거칠게 갈고는.

-우웅! 파아아! 피잉!

응축된 에너지를 퍼트리며 여러 갈래의 빛줄기를 사방으로 쏘아 보냈다.

그러자.

-캬아아!

-크아아!

아스터에게 흡수된 이들이 괴성을 지르며 다시 나타났다.

아스터 교단의 성기사와 사제들, 베드라를 포함한 신관들.

마지막으로 흡수된 에스라 성운의 신격들까지.

모두 새하얗게 탈색된 듯한 모습.

마치, 빛으로 형성된 망령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겉에는.

-스스스.

불길하게 일렁이는 검붉은 기운.

아스터가 악의 종주에게서 하사받은 파멸의 힘이 일렁이고 있었다.

[감히 나의 대업을 방해하려는 모든 이들을 죽여라!]

분노 어린 아스터의 명령이 울리자.

-피이이! 피이!

빛의 망령으로 되살아난 이들이, 모두 빛줄기로 변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이 쇄도하는 방향은 다름 아닌, 이 세계를 안정시키려는 신격들.

-캬아아!

참회의 여신, 하메라의 모습을 한 망령이 괴성을 지르며 황룡에게 돌진해 나갈 때.

“불! 카아아-르!”

-화르륵!

강렬하게 타오르는 화염의 덩어리가 하메라의 앞을 가로막았고.

-후루룩! 콰콰쾅!

불덩이 속에서 나타난 쿠루타가 하메라를 향해 새빨갛게 달아오른 대검을 내리쳤다.

용암과 화염이 폭발하며 강렬한 충격을 퍼트렸고 그 폭발력에 밀린 하메라가 땅으로 추락했다.

“화산의 전사들이여! 저 망령들을 모조리 불태워라!”

하메라를 저지한 쿠루타가 오크들을 향해 우렁찬 함성으로 명령을 내리고는.

-콰화아아!

불타오르는 화염의 덩어리로 변하며 지상으로 추락한 하메라를 향해 돌진했다.

가장 먼저 움직인 쿠루타를 시작으로.

-콰르릉! 차캉!

결전기를 사용해 미네르바의 모습으로 변한 제시카가 바하무트에게 향하는 로메라를 가로막았고.

“어딜 가 이 새끼들아!”

-휘리릭! 촤자자자!

쌍검을 치켜든 진호가 바람처럼 움직이며, 신격들을 노리는 망령들을 빠르게 베어 버렸다.

그들을 시작으로.

-성좌님들을 지켜!

-놈들이 방해하게 두지 마라!

연합군 모두가 합심하여 이 세계를 지탱하느라 움직이지 못하는 신들을 지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자야.]

여래가 처용을 바라보며 입을 열자.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다른 신들을 도와 이 세계의 붕괴를 막아 주십시오.”

처용이 여래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들은 듯, 대답했다.

여래는 강한 믿음이 일렁이는 처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샥. 우우웅.

멀리 떨어진 후방으로 이동하여 다른 신격들처럼 지면에 신력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이제 네놈 차례야 아스터.”

처용이 인상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는 아스터를 노려보며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징벌의 선고.”

-콰아아아아!

검붉은 신력을 드넓게 퍼트리며 아스터와 자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징벌의 선고가 둘을 완전히 뒤덮기 직전.

-우웅. 파아앗!

처용 옆에 검은 어둠이 일렁이며 번쩍이더니, 레나가 나타났다.

“저들에게 맡겨도 충분할 거야.”

레나는 처용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미리 알아챘다는 듯 입을 열고는.

“나 역시 저 빌어먹을 신에게 물어야 할 안부가 많거든.”

확 가라앉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마지막 말, 증오와 원한이 가득한 목소리는 레나가 아닌, 엘리스의 말이었다.

“……이 상황이 좀 웃기네.”

처용은 아스터를 향한 진심 어린 증오와 원한을 보이는 엘리스를 향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이런 날이 올 줄은 꿈도 꾸지 못했는데.”

그 말에, 엘리스 역시 작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처용과 레나.

세상을 지키려는 수호신과 세상을 파괴하려는 학살의 마녀.

회귀 전, 서로가 서로를 필사적으로 죽이기 위해 맞붙었던 숙적.

서로 적이었던 그들이.

“설마, 너와 나란히 서서 저 빌어먹을 놈을 조지게 될 줄이야.”

지금은 같은 편이 되었다는 사실이 다시금 놀랍게 다가왔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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