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5화
성자 일행이 검은 문을 해결하고 있을 당시.
-저 이교도들을 몰아내라! 당장!
아스터 교단의 사제와 성기사들이 수도에 진입한 연합군을 막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하지만.
-건랜스 나이츠! 성벽 대형으로!
-쿵! 쿠궁!
동쪽에서는 움직이는 성벽이라 봐도 무방한 거대 골렘들을 앞세운 군대.
아라한 왕국의 정예들과 마탑의 마법사들이 거침없이 진격해 오고 있었다.
서쪽에서는.
-쿠구구!
하늘 위, 구름을 해치며 나타난 거대한 형체.
커맨더의 함선인 마키나와 오크를 중심으로 모인 이종족들의 연합군이 다가오고 있었다.
“화산의 형제들이여! 분노를 불태워라!”
선두에 선 이는 다름 아닌 쿠루타.
그를 막기 위해 아스터 교단의 성기사들과 지상에 강림한 천사들이 방어에 나섰지만.
-콰화아아아!
활화산처럼 불타오르는 쿠루타의 대검을 저지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게다가.
[네놈들의 횡포도! 오늘부로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크롸아아!
북쪽에서는 에인션트급 드래곤, 유리티나를 포함한 드래곤들이 나타나 브레스를 내뿜고 있었다.
지금 아스터 교단은 개 중 하나의 세력만 해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감당하기 힘든 세력들이 연합해 사방에서 몰아치며 총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쪽에서는.
-우리가 우세하다!
-이대로 밀어붙여!
길드의 연합군이 맹렬한 기세로 아스터 교단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들 한 명 한 명이, 고레벨의 정예 헌터들로 이루어진 이들.
특히, 최전방에 선 이들은 모두 100레벨 중반대를 넘어선 이들이었다.
에스라 대륙의 기준으로 전원 오러 마스터라 할 수 있는 강자들.
게다가, 최전선에 선 헌터 중, 가장 앞에 선 길드장들은 모두 200레벨을 돌파한 이들이었다.
“결전기 - 미네르바!”
최전선에 선 길드장 중 하나, 제시카가 결전기를 사용하자.
-화아아! 스르륵-.
그녀의 머리카락이 황금빛으로 점멸하며 길게 자라났고 전신에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신관들이 지닌 가공된 신의 힘, 신성력이 아닌 온전한 신의 힘인 ‘신력’이었다.
“꿰뚫어라. 아스트라페!”
-파지지직! 콰르릉!
제시카가 아스트라페의 창날에 신력을 응축시키며 앞으로 내질렀다.
벼락처럼 쇄도하는 아스트라페의 창날이 앞을 가로막은 천사의 가슴을 꿰뚫으며 전격을 터트렸다.
[하계종 따위가 신의 힘을-!]
쓰러지는 천사가 제시카를 노려보며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읊조리자.
“나의 여신께서 허락하신 힘이다!”
-파지지직! 콰아!
제시카가 창날에 응축된 벼락을 터트려 천사를 끝장내며 소리쳤다.
천사 한 명이 제시카에 의해 쓰러진 순간.
“솔라 버스트!”
-위이잉! 콰아아!
태양의 신관, 라진이 응축한 태양열을 폭발시켜 앞을 가로막는 천사를 불태워 버렸고.
“벼락이여!”
루이스가 묠니르에 모은 벼락을 크게 퍼트려 아스터 교단의 성기사들을 휩쓸어 버렸다.
200레벨을 넘긴 길드장들은, 각각 천사 한 명쯤은 우습게 상대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지상에 강림한 에스라 성운의 신격들과 대천사들이 그들을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문제는, 지상에 강림한 신격이 에스라 성운의 신격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감히, 대악마에게 굴복하여 천사의 이름을 먹칠하다니.]
네 쌍의 날개를 크게 펼치며 지상에 강림한 에덴의 대천사.
다섯 하늘 중 하나인 미카엘이 티라루인을 사선으로 크게 휘두르자.
-촤아아! 파사사……!
에스라 성운의 대천사가 단칼에 베이며 사그라졌다.
비단 미카엘뿐 아니라.
[모조리 태워 주마! 대악마의 졸개 놈들!]
-파지직! 콰르릉!
묠니르와 라트요른을 쥐고 벼락을 터트리며 에스라 성운의 신격들을 몰아붙이는 토르 등.
각 길드의 성운에 속한 신격들이 지상에 강림하여 에스라 성운의 신들을 맹렬히 공격하고 있었다.
이미 전력의 차이만 봐도, 에스라 성운이 압도적으로 열세였다.
당연히.
-후, 후퇴!
-이길 수 없…….
일개 성기사들이 그들을 저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맞서 싸우던 이들은 하나둘 자리를 이탈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합군은 이미 수도 전체를 포위하며 진격해 오는 상황.
도망친다 해도, 도망칠 곳이 없었다.
결국.
-모두 대신전 안으로 대피하라!
더 버티지 못한 아스터 교단의 세력은 사방에서 몰아쳐 오는 적들 피해 대신전 안으로 후퇴했다.
황궁으로 간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곳만큼은 기피했다.
그곳에는…….
아스터 제국의 방어를 단신으로 뚫어 낸 존재, 마신이 있었으니까.
살아남은 아스터 교단의 세력들이 모두 대신전 안으로 들어서자.
-우웅. 지이잉!
아스터 제국 전체에 펼쳐져 있던 결계와 같은 새하얀 백색의 결계가 펼쳐졌다.
“남은 이들은…… 이게 고작인가?”
대신전 안으로 피신한 신관 중 한 명.
참회의 신관인 베드라가 주변을 살펴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을 포함한 신관들과 몇몇 대주교들, 고위 성기사, 사제들은 대부분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 휘하의 병사들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
마신이 국경 방어선을 단번에 무너뜨리며 방어 병력을 몰살했고.
수도로 진격해 오는 적들을 힘겹게 막다가 겨우 대신전으로 대피한 상황.
살아남은 이들은…… 총 전력의 20%도 채 되지 않았다.
문제는, 적들의 피해가 전무하다는 것.
개개인이 천사 한 명을 손쉽게 상대할 수 있는 강자들이 앞장서 밀고 들어왔기에,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애초부터 전력의 차이가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쿠궁! 쿠콰콰-!
대신전의 주변에 펼쳐진 강력한 신성 결계가 크게 흔들리더니.
-쩌적!
이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금이 가기 시작했다.
수도를 점령하다시피 한 적들이 결계를 힘으로 부수려는 것 같았다.
절체절명의 상황이라 볼 수 있었지만.
“아직이다…… 아직 반격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있다.”
베드라는 이를 아득바득 갈며 희망을 읊조렸다.
남은 병력을 대신전으로 대피시키라는 명령은 교단의 최고신, 아스터에게서 내려온 명령이었으니까.
분명, 빛과 지혜의 신이 무언가 방법을 찾았기에 이러한 지령을 내렸으리라 생각했다.
그때.
“신관 베드라. 회개의 신관은 어디 있는가?”
살아남은 신관 중 한 명, 제1 성기사 단장 아데인이 베드라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 말에 베드라가 주변을 살피고는.
“……루메오? 신관 루메오!”
보이지 않는 회개의 신관, 루메오의 이름을 불렀다.
베드라의 외침에, 대신전으로 피신한 이들도 루메오를 찾았지만,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전 안에 보이지도 않고 대답도 없는 상황.
즉, 회개의 신관은 대신전 안으로 대피하지 못한 것.
아니 어쩌면…… 이미 적들에게 죽었을 수도 있었다.
베드라가 좋지 않은 상상을 하며 인상을 찌푸릴 때.
-파직.
-신관 베드라.
그의 귀 옆에서 작은 전류가 튀더니, 루메오의 목소리가 울렸다.
신관인 루메오가 지닌 권능, 같은 신관들끼리 전류를 연결하여 원거리에서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루메오, 무사한가?’
베드라가 정신을 집중하며 루메오에게 말을 걸자.
-……일단은, 무사합니다.
루메오의 입에서 힘겨운 감정이 일렁이는 침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베드라, 지금부터 내 말 진지하게 잘 들으십시오.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최고신께서는…… 우리들을 대신전과 함께 제물로 삼을 생각이십니다.
아스터가 살아남은 모든 신도에게 대신전으로 후퇴하라 명한 이유.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현재 불리한 정황을 뒤집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그 방법이…… 지상의 모든 신도를 희생시키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제가 따로 알아본 바로는…… 이 세계를 흔적도 없이 없애 버리겠다고-.
신도들을 희생시켜 발휘하려는 짓이, 에스라 대륙의 파멸이었다.
역전이나 반격의 발판을 만드는 것이 아닌, 다 같이 파멸하는 것.
이것이 아스터가 선택한 방법이었다.
루메오가 이 사실을 베드라에게 전하며 심각함을 전하자.
‘다행이군.’
베드라는 루메오의 말을 모두 듣지 않고 다행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이곳에 있는 모두가 죽는다고 했음에도.
‘우리의 작은 희생으로 저 막강한 이단자들을 모두 처치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베드라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듯, 광기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자신이 믿는 신과 교리에 대한 광기였다.
‘신의 뜻을 거부할 생각은 아니겠지? 루메오.’
베드라가 루메오에게 낮은 목소리로 묻자.
-……당연히 따라야겠지요. 신을 위해서.
루메오가 침음을 흘리며 답하고는.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 볼 테니, 뒷일을 부탁합니다. 베드라.
뒷일을 부탁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통신이 끊어졌다.
루메오의 말을 들은 베드라가 잠시 침묵하더니.
“위대하신 신들께서 곧 저 이단자들을 박멸할 것이다!”
대신전에 모인 이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곧, 빛과 지혜의 신이 우리의 세계를 침범한 이들을 모두 숙청할 것이라는 사실.
“신들께서 대업을 이룰 때까지, 우린 이곳을 사수한다!”
그런 신들을 위해, 이곳에서 대신전을 지켜야 한다고 공표했다.
그 말에, 살아남은 성기사와 사제들이 환호를 내질렀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베드라의 말은 가뭄의 단비처럼 느껴졌으니까.
환호하는 신도들을 본 베드라는.
“신을 위해! 목숨을 바쳐 이곳을 지킨다!”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신도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
같은 시간, 검은 문의 앞에서는.
“이 타락한 년이, 날 방해하지 마라!”
“방해가 아니라. 이 자리에서 널 죽일 생각인데?”
빛과 어둠의 성녀가 서로를 향해 맹렬한 공격을 퍼부으며 충돌하고 있었고.
“단 한 놈도 이 앞을 지나갈 수 없다!”
네이션을 포함한 불사의 기사단 일원들이 검은 문을 막아선 채, 괴물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을 지켜보며, 검은 문을 파괴하기 위해 준비하는 이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레나와 성자가 검은 문을 향해 힘을 흘려보내며 집중하는 중이었다.
-쩌적. 쩌저적!
조금씩 금이 가던 검은 문은, 이제 절반가량 금이 번진 상태.
넓게 퍼져 나간 균열은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 균열이 검은 문을 모두 뒤덮는 순간, 검은 문은 산산조각 나며 사라질 것이다.
레나가 계속 집중하며 작은 미소를 흘릴 때.
“지금 검은 문을 파괴하면 안 됩니다!”
-파직. 화아아!
빛과 전류가 번쩍이며, 성자와 레나 앞에 누군가가 나타나 소리쳤다.
“……아스터 교단의 신관.”
성자가 자신의 앞에 나타난, 하얀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
회개의 신관 루메오를 알아보며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자가 잠시 검은 문을 향해 흘려보내던 힘을 거두고 루메오를 향해 공격하려는 순간.
“항복하겠습니다. 성자님.”
-툭.
루메오가 즉시 성자를 향해 엎드려 고개를 숙였다.
아스터 교단의 신관이 다짜고짜 항복하겠다며 성자 앞에 부복한 상황.
성자와 레나가 작게 인상을 찌푸렸고.
“루메오! 뭐 하는 짓인가!”
호네아와 맞서 싸우던 라사벨이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며 소리쳤다.
-지잉. 콰아아!
라사벨 뒤에 있던 거대 악령의 집합체가 루메오를 향해 광선을 내뿜었다.
성자가 있는 제단을 향해서는 공격을 하지 않았던 그녀가 루메오에게 공격을 내질렀다.
“이-!”
그 모습을 본 루메오가 기겁한 침음을 흘릴 때.
“분쇄해라. 흑익.”
-후욱! 촤아아-!
호네아가 검은 날개를 크고 넓게 펼치며 제단을 향하는 빛의 광선을 찢어 흩어 버렸다.
“뭔진 모르겠지만, 문제가 생겼나 봐? 크크.”
광선을 막아 낸 호네아가 라사벨을 향해 비웃음 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루메오! 배반자의 죄로 선고하니! 교리에 따라 당장 자결해라!”
라사벨이 분노가 가득한 목소리로 루메오를 향해 자결하라 소리쳤다.
루메오는 자신이 따르던 성녀의 명령을 무시하고는.
“성자님의 능력을 정확히 아는 건 아니지만, 진실을 볼 수 있다지요?”
-슥.
엎드려 있던 자세를 반쯤 무릎을 꿇은 채 몸을 일으켜 성자를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믿어 주십시오.”
“……진실.”
성자는 루메오가 한 말이 진실임을 알아차리며 잠시 그가 내민 손을 바라봤다.
생각을 잇듯, 짧게 침묵한 성자는.
-탓.
빛이 은은하게 일렁이는 루메오의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이건!?”
루메오가 알아낸 ‘진실’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진실을 알아낸 성자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아스터, 이 빌어먹을 놈이 설마?”
옆에 있던 레나가 무언가를 짐작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침음을 흘렸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