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2화
처용이 공격의 시작을 알리자, 대기 중인 모든 이들이 일제히 돌격하며 아스터 제국을 향해 나아갔다.
이미 아스터 제국의 방어선까지 궤멸된 상황.
아라한 왕국을 포함한 다수의 왕국군들, 헌터들, 이종족들이 모여 만들어진 연합군이 거침없이 진군했다.
-저 이교도들을 막아라!
-신을 위하여!
방어선 뒤에 있던 아스터 제국의 기사와 병사들이 연합군을 저지하기 위해 나섰지만, 그들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첫 번째 방어선을 아주 손쉽게 통과한 연합군은 국경 성벽 뒤에 있던 마을과 도시에도 발을 들였다.
국경 성벽과 가장 가까운 거대한 대도시에 헌터들이 들어서자.
“뭐, 뭐야 이게?”
“도시가…… 왜 이래?”
모두 하나같이 인상을 찌푸리며 멍한 목소리를 내었다.
마치,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광경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듯한 모습.
그들이 보는 광경은.
-지잉. 지이잉.
알 수 없는 의자 형태의 기계 장치들이 도시 곳곳에 설치되어 나열된 모습이었다.
게다가 그 기계 장치 위에는.
-…….
-……으.
희미한 침음을 흘리는 사람들이 구속되어 있었다.
모두, 도시에 거주하던 주민들로 보였다.
가장 먼저 돌입한 선발대의 헌터들이 통신 장치를 통해 작금의 상황들을 보고하자.
-화아! 샥!
헌터들 앞에 빛이 번쩍이며 성자와 제시카를 포함한 길드장들이 나타났다.
“……도대체 사람들을 잡아다가 무슨 짓을!”
도시 내부의 상황을 확인한 제시카가 분노 어린 침음을 흘릴 때.
“……시민들에게 생명력을 강제로 뽑아서 그 결계를 유지했던 것이로군요.”
-우우웅.
성자가 백색의 빛이 일렁이는 안광을 치켜뜨며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실의 마나를 통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시에서 살아가던 시민들을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지.
이런 짓을 통해…… 무엇을 했는지 등을 알아내었다.
“어떻게 믿고 따르는 신도들과 시민들을 이렇게……!”
성자가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주먹을 강하게 쥐며 말했다.
그리고.
“성자의 이름으로 빛의 교단에 전파합니다. 강제로 구속된 시민들은 공격하지 말고 한곳에 모으십시오.”
통신기 아티팩트를 통해, 다른 지역에 있는 교단의 헌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스티스 길드장이 전합니다. 교단의 사제들과 함께 도시 정리를 돕습니다.”
옆에서 성자의 말을 들은 저스티스 길드의 길드장, 라리네가 통신기를 통해 명령을 전파했다.
빛의 교단과 저스티스 길드는, 후속 조치와 최전선에 선 헌터들의 회복을 담당하는 후발대였다.
그들이 도시와 마을을 점거하며 지금의 상황을 수습하겠다는 것이었다.
“도시의 정리는 교단과 저스티스 길드가 맡겠습니다.”
“다른 길드들은 아스터 교단에 집중해 주십시오.”
성자와 라리네의 말에 다른 길드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각 길드장들의 명령을 전달받은 이들.
최전선에 선 길드의 헌터들은 이미 무력화된 도시를 지나쳐 아스터 제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아라한 왕국을 포함한 연합군들 역시 무력화된 도시를 지나쳐 아스터 제국 중심부로 향했다.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교단의 사제들과 저스티스 길드의 헌터들은.
-이 괴상한 장치부터 해제한다.
-생명을 빨아들이는 저주가 걸려 있다. 해주 스킬부터…….
시민들로부터 생명력을 강제로 빨아들이는 기계 장치들부터 해제하기 시작했다.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맞춰 차분히 대응하는 헌터들.
도시에서 벌어진 기괴한 일이 수습되는 모습을 보이자.
“슬슬 시작해도 되겠습니다.”
제시카가 길드장들을 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시에.
-파직. 콰르릉!
오른손에 성물, 아스트라페를 소환하며 신성력을 모았다.
시작해도 되겠다는 제시카의 말.
길드장들은 그 말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태양의 눈이여.”
-화륵. 피이이!
파라오 길드의 길드장, 라진이 태양의 힘을 모으며, 황금색의 작은 눈알, 태양의 눈을 소환했고.
“천상의 성서.”
-우웅. 촤르르…….
라리네가 푸른색의 책, 성물인 천상의 성서를 펼쳤다.
신의 신관인 길드장들이 모두 성물을 소환하자.
-라이트닝 워리어 길드, 준비 완료.
-신의 검객, 준비 완료.
-그랜드 실더 길드…….
-블레이즈 길드….
-…….
제시카의 통신기로 올림포스 산하 길드의 길드장들과 다른 성운의 길드장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 모두, 제시카 옆에 모인 이들처럼 성물을 소환한 것.
준비를 마쳤다는 길드장들의 목소리가 울리고.
“성지쟁탈전을 선포한다!”
-쾅! 콰르르릉! 콰릉!
제시카가 아스트라페로 땅을 찍어 벼락을 일으키며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성지쟁탈전을 선포한다!”
“성지쟁탈전을 선포한다!”
.
.
-화아아!
그녀의 옆에 있던 신관들이 그녀를 따라 성물에 신성력을 주입하며 소리쳤다.
-성지쟁탈전을 선포한다!
-성지쟁탈전을 선포한다!
각기 다른 지역에 있는 신관들 역시 그들과 같은 행동을 취했다.
그 순간.
-파아아아!
성물들이 환하게 발광하며 하늘 위로 형형색색의 빛을 쏘아 보냈다.
아스터 제국 외곽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수많은 빛의 기둥들.
그 기둥들이 땅과 하늘을 이으며 밝은 빛을 퍼트린 순간.
[성지쟁탈전이 선포되었습니다.]
신관들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성지쟁탈전.
양측의 세력이 성지를 놓고 벌이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성지쟁탈전이 성공적으로 선포되자.
“한처용 헌터가 나아간 곳을 제외한 다른 장소부터 점령합시다.”
제시카가 성자와 다른 길드장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처용 헌터는요?”
라리네가 궁금한 듯 입을 열고는 아스터 제국의 중심부로 향하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곳은 지금.
-파직. 파직.
붉은 벼락이 이글거리며 지면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 흔적이 아스터 제국의 중심부를 향해 쭉 이어져 있었다.
다름 아닌 처용이 지나간 흔적이었다.
“에스라 성운의 주신을 직접 소멸시키겠다더군요.”
라리네의 물음에 아테나가 답했다.
조금 전, 아테나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
“……주신을요!?”
“우리가 도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헌터들이 놀라움과 우려를 표하며 말했다.
몇몇 길드장들도 같은 의견을 보였다.
처용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이곳은 적진 한복판, 게다가 제국이라는 강대한 세력이었다.
제국을 받쳐 주는 성운 역시, 천사와 신격들이 다수 존재하는 거대 성운.
그런 성운의 주신을 직접 죽이러 간다?
가로막는 적들을 홀로 감당하면서?
무모한 짓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콰아아아아!!
아스터 제국의 중심부로 보이는 장소에서 강렬한 붉은빛의 벼락 기둥이 솟구쳤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쿠콰! 콰콰콰-!
제국의 수도가 풍비박산 나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중심부를 향해 나아간 이는 단 한 명, 처용뿐이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전율적인 검붉은 기운은 바로 처용이 내뿜는 힘이었다.
즉, 홀로 아스터 제국의 수도를 박살 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테나 님께서 전혀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하십니다.”
제시카가 강렬하게 솟구쳐 오르는 검붉은 기둥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하고는.
“아스터 제국을 장악하고 잔당을 정리하는 것이, 한처용 헌터를 돕는 일입니다.”
자신들의 맡은 바를 다하자며 길드장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그 말에 길드장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라진과 라리네가 먼저 출발한 선발대를 따라, 헌터들과 함께 나아갔고.
“저 역시, 맡은 바를 다해야겠군요.”
성자가 왼쪽 손목에 채워진 아티팩트를 어루만지며 읊조리듯 말했다.
아티팩트에 마나가 일렁이자.
-지잉.
팔찌에서 옅은 빛이 반짝이더니, 점점 길어지며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 빛을 본 성자의 눈빛에 각오와 투지가 일렁였고.
“광휘의 발걸음.”
-우웅. 파아아!
이내, 한 줄기의 빛으로 변하며 아티팩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
같은 시각.
“방해다.”
-스릉. 콰아아!
처용이 멸절을 가로로 크게 휘두르며 반달 형태의 강기를 일으켜 쏘아 보냈다.
견고하게 압축된 강기의 칼날이 앞으로 나아가며 쇄도하자.
[크아아-!]
[커어!]
-촤자자! 콰아!
앞을 가로막는 천사들을 밀쳐 내며 뒤로 크게 밀어냈다.
가장 앞에 있는 천사들은 허리와 팔이 잘려 나가며 빛으로 산화했다.
가까스로 처용의 공격을 막긴 했지만.
-우웅. 촤아아!
다시 한번, 금빛의 기류가 일렁이는 검붉은 반월이 크게 쏘아졌다.
그때.
-화르륵! 콰르릉!
강렬한 화염과 벼락이 솟구치며 모여들더니.
[이 하등한 것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에스라 성운의 대신급 신격, 하메라와 로메라가 나타나 처용의 강기를 막아섰다.
게다가.
-쿠웅! 쿠구!
하늘 위에서 빛의 기둥이 나타나 지상으로 내리치더니.
[겁도 없이 우리의 성지에 발을 들이다니!]
[이번에야말로 없애 버리겠다!]
-화아아!
에스라 성운에 속한 신들이 지상에 강림하며 나타났다.
처용이 있는 곳은 아스터 제국의 중심인 수도, 즉 에스라 성운의 성지 중심부였다.
게다가, 성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대신전과 황궁의 바로 앞.
에스라 성운의 신과 천사들이 제약 없이 화신체로 강림할 수 있는 장소였다.
아니, 그저 화신체 정도가 아니라.
“……그래, 네놈들 구역이다 그거냐?”
성지의 이점을 받아, 화신체의 성능이 증폭되고 있었다.
처용이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차가운 눈빛으로 응시하고는 그들 너머를 바라봤다.
아스터 제국의 중심부에 세워진 거대한 두 건축물.
커맨더의 뉴클리어를 직격으로 맞았음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성지의 핵심.
개중 오른쪽에 있는, 화려하고 웅장한 크기의 궁전, 황궁이 바로 처용의 목표였다.
아스터 제국의 황궁, 그곳은 그저 단순한 제국의 황궁이 아니었다.
바로, 에스라 성운의 성역과 직통으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태룡사로 따지면, 대웅전과 산신각 같은 장소.
처용은 성역과 이어지는 통로인 황궁을 통해.
“멍청한 아스터 새끼, 내가 직접 찾아가는 게 무서웠나 봐?”
에스라 성운의 성역으로 들어설 생각이었다.
바로 에스라 성운의 주신, 아스터를 직접 죽여 버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적들의 저항 역시,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초월의 영역에 들어선 처용이 검격을 휘두르면 적들이 때로 쓸려 나갔지만.
-파아! 화아아!
천사들은 화신체를 잃고 빛으로 산화했음에도, 다시 처용을 막기 위해 나타났다.
보통, 신격이 화신체를 잃고 충격을 받으면, 일정 시간 동안 화신체를 만들 수 없었다.
그러나.
-우우웅.
대신전과 황궁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력이 천사들의 화신체에 깃들며 그들을 강화해 주고 있었다.
아마, 그동안 무수히 강탈해 온 생명력을 사용하는 듯 보였다.
-스릉. 우우웅!
처용이 멸절을 굳게 쥐며 강기와 신력을 끌어 올렸다.
큰 기술 한 방으로 방어를 뚫어 내고 황궁으로 곧장 갈 생각이었다.
그때.
[성지쟁탈전이 선포되었습니다.]
처용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고.
-콰아! 콰아아!
아스터 제국의 외곽에서 형형색색의 빛기둥이 솟구치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천마신공 – 천마군림보 개(改).’
-우우웅!
오른발을 들어 올리고는 강기와 신력을 발에 강하게 압축시켰다.
금빛의 기류가 일렁이는 검붉은 힘이 강렬하게 요동치며 최대치로 압축되었을 때.
“멸천군림보!”
-콰콰쾅-!
땅을 거세게 밟으며 압축된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처용이 밟은 지점을 중심으로 지면에 검붉은 균열이 드넓게 퍼지며 강렬하게 흔들렸다.
이내.
-쿠구! 쿠콰콰-!!
지진이 들이닥친 듯, 지면이 거세게 뒤흔들리며 땅거죽이 뒤집혔다.
갈라진 균열 사이로 검붉은 에너지가 솟구쳐 올랐고.
[크아아!]
[물러나야-!]
-콰자작! 파사사……!
솟구치는 검붉은 에너지에 직격당한 천사들과 신격들 중 일부는 화신체가 파괴되며 사그라졌다.
하늘 높이 솟구치는 검붉은 에너지 폭발이 처용을 잠시 가려 주는 찰나.
-우웅. 탁!
처용이 태룡전의 열쇠를 꺼내 들고는 지면에 대며 신력을 흘려보냈다.
그러자.
[성지쟁탈전에 참여합니다.]
[태룡사와의 연결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태룡사와 연결되었다는 시스템 문구가 떠올랐다.
그때.
-화르륵! 콰르릉!
하메라와 로메라가 화염과 번개를 두르고 처용을 향해 돌진해 왔다.
주변에서 솟구치는 검붉은 에너지의 폭발을 뚫고 처용을 노리는 모습.
-스르릉.
처용은 동시에 공격해오는 하메라와 로메라를 차가운 눈빛으로 응시하고는.
-파지직! 스릉!
멸절에 검붉은 벼락을 휘감아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로메라를 향해 휘둘렀다.
하메라의 공격은 신경 쓰지 않고 로메라와 맞서려는 모습.
[어리석은 것! 이번에야말로 참회시켜 주마!]
하메라가 손아귀에 모은 참회의 화염을 더욱 크게 키우며 소리쳤다.
-파직! 파지직! 콰르릉!
처용과 로메라가 서로 벼락을 튀기며 충돌하고.
-화르륵! 콰아!
하메라의 화염이 처용의 옆으로 쇄도하며 다가오려는 순간.
-화르륵! 콰아아!
하메라의 앞에 새하얀 화염이 폭발하며 퍼지더니, 그녀의 저지하듯 공격을 막아섰다.
동시에.
-쏴아아아! 콰아-!
처용의 뒤로 짙은 파도가 뭉치며 순식간에 커지더니.
-쏴아! 콰아앙!
하메라와 로메라를 밀어 치며 둘을 동시에 밀어냈다.
[이 힘은!?]
[……!]
뒤로 밀려난 두 여신이 익숙한 신력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화륵! 화르륵! 쿠궁!
하메라의 앞을 가로막았던 새하얀 불꽃이 순식간에 불어나며, 크루마가 나타났고.
[물이 없는 장소라 조금 아쉽네.]
-쏴아아!
처용의 주변을 맴도는 짙은 파도가 뭉치며 인간형의 카투라가 나타났다.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라. 제자야.]
-우우웅.
황금빛 게이트가 열리며 그 안에서 여래가 걸어 나왔다.
[해야 할 일을 하거라.]
여래가 처용의 앞에 서며 강하게 말하자.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스승님.”
-콰르릉!
처용이 짙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검붉은 벼락으로 변하며 황궁을 향해 나아갔다.
하메라와 로메라, 다른 에스라 성운의 신격들과 천사들이 처용을 저지하려 했지만.
[방해할 수 없다.]
-샤라락.
여래가 바람처럼 나타나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