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8화
핏빛의 결계, 징벌의 선고 안에서 터진 강렬한 폭발.
-콰아아! 콰아……!
징벌의 선고를 부술 듯, 거칠게 휘몰아치던 폭발이 조금씩 멎었고.
-파아아……!
이내 확 가라앉으며 폭발의 여파가 사라졌다.
그리고.
“……커헉!”
-툭! 주르륵!
이내, 모습을 드러낸 처용이 무릎을 꿇고 피를 한 움큼 토해 내며 주저앉았다.
새까맣게 타버린 오른손과 근육이 보일 정도로 벗겨진 팔 피부.
-주륵. 스르륵.
처용을 중심으로 분수가 터진 듯, 넓게 퍼져 나가는 핏물.
척 봐도 엄청난 부상을 입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건 따로 있었다.
왼쪽 가슴 부근, 피부와 근육이 뜯겨 나가고 부러진 갈비뼈까지 일부 드러난 상황.
뜯어진 가슴 안쪽, 끝이 부러진 갈비뼈 사이에는.
-두근.
겉으로 핏물이 새어 나오는 처용의 심장까지 보였다.
그런 처용의 앞에.
-부르. 부르르……!
붉은빛의 다리 두 개와 왼쪽 손목, 오른팔이 부르르 진동하며 떨어져 있었다.
날카로운 느낌의 검붉은 갑옷이 둘린 사지 한 쌍.
마치, 갑옷을 입은 전사가 폭탄을 맞고 폭사하여 몸통과 머리가 날아간 듯한 모습이었다.
“…….”
심각한 부상을 입은 처용이 숨소리 하나 없이 고개를 떨군 채, 침묵할 때.
-슈륵. 슈르륵.
처용의 앞, 잘려 나가 진동하고 있는 사지로 검붉은 기운이 모여들었다.
마치, 사라진 몸통을 다시 복구하려는 듯, 검붉은 기운이 절단면에 모이며 몸을 형성했다.
“……이, 이런…… 이런 미친…… 놈이……!”
분노의 파편이 몸을 재생시키며 침음을 내뱉었다.
처용과 분노의 파편은 서로 연결된 존재.
특히, 분노의 파편의 근원은 처용의 심장에 근원을 두고 있었다.
처용의 자해로 인해, 심장에 강렬한 타격을 받자, 그 영향을 받은 것.
분노의 파편이 점차 몸을 재생시키자.
-……스르륵.
처용 역시 육체의 겉에 신력과 마나가 흐르며 손상된 부분이 점차 아물기 시작했다.
심장에 난 작은 구멍들이 아물었고 부러진 갈비뼈가 복구되며 그 위로 손상된 근육과 피부가 재생했다.
상처가 조금씩 회복되자.
-……스륵.
정신을 차린 처용이 떨구었던 고개를 조금 들어 올린 채, 앞을 바라봤다.
“의식이…… 날아갔었나?”
반쯤 눈을 뜬 처용이 앞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조금 전, 스스로에게 내린 징벌로 인해 의식이 순간 날아갔었다.
육체에 엄청난 부상을 입었으니까.
시간이 돌아온 이후, 지금까지 이 정도의 부상을 입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프지가 않네.”
처용은 넋이 나간 목소리로 읊조리듯 침착하게 말했다.
크나큰 부상을 입은 만큼, 그에 비례해 강렬한 고통이 전해져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하나도…… 아프지가 않아.”
처용은 전혀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인상조차 찌푸리고 있지 않았다.
그때.
“이, 미친…….”
-스르륵. 스륵.
바닥에 엎어진 자세로 70% 정도의 육체를 회복한 분노의 파편이 이를 갈며 목소리를 내었다.
-스륵. 철컥.
사라진 목과 얼굴에 씌워져 있던 흉악한 도깨비 가면까지 재생되었고.
“정신 나간 놈이!”
딱딱 끊어지는 목소리로 처용을 향해 분노를 내질렀다.
전혀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처용의 말은 ‘진실’이었다.
의식이 날아갈 정도로 강렬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처용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마치…… 고통이라는 감정을 잃은 듯한 모습.
그런 처용의 혼란스러우면서도 반쯤 나간 정신상태가, 분노의 파편에게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이 머저리 같은 놈……!”
분노의 파편이 땅을 짚고 상체를 일으키며 처용과 눈을 마주쳤다.
흉흉한 핏빛의 눈동자가 처용과 눈을 마주했고.
“……그래, 난 머저리지.”
처용이 감정 없는 멍한 목소리로 분노의 파편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고통이 없다는 건 아직…… 내가 아직, 반성하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치직. 치직. 위이이-!
아직 상처를 재생 중인 오른손에 다시 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내리는 징벌인 자해.
처용이 자해를 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고통스러운 자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트라우마.
게다가 그 트라우마를 제 손으로 만들어 내었다.
자신의 오만함 때문에, 보살이 스스로를 희생하게 만든 결과를 초래했으니까.
같은 비극을 초래했다는 후회감과 죄책감, 자책감 등.
그 죄업이 심장을 옥죄는 사슬처럼, 마음을 강하고 무겁게 옥죄고 있었다.
이 드넓고 무거운 늪처럼 가라앉는 심정을 덜어 내고 싶었기에, 자해를 선택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육체에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강인한 정신을 지닌 처용이 잠시 혼절할 정도의 부상을 입었음에도.
전혀……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며 휘몰아치는 후회와 자책이,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처용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고작 고통 따위로 자신의 실수를 지우려 하냐는 또 다른 질책처럼 느껴졌다.
“죽기 직전까지 맞아도 정신을 못 차릴 놈이면-.”
-위이이잉!
손아귀에 강렬한 에너지를 뭉친 처용이 멍한 표정과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읊조렸다.
그 모습을 본 분노의 파편이 눈을 크게 뜨며 경악하고는.
“멈춰-!”
-철퍽!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으로 처용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죽어야 정신을 차리겠지.”
-위이잉! 후욱!
이미 처용의 오른손은 다시 제 심장을 향해 쇄도했고.
-콰아아-!
심장 부근에 불안정한 에너지 덩어리가 닿으며 강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
반쯤 무릎을 꿇고 있던 처용이 폭발에 휩싸이며 불타올랐다.
다시 한번 가슴에 구멍이 난 처용이 옆으로 고꾸라지며 쓰러졌고.
-푸확! 푸화악!
몸을 회복해 가던 분노의 파편은, 풍선이 터지듯 육체가 터져 나갔다.
-딸그락. 후둑. 투툭.
반 이상 부서진 도깨비 가면이 지면에 나뒹굴었고 손목 발목만 남은 신체들이 사방에 널브러졌다.
강렬하게 터지던 폭발이 조금씩 멎고 긴 침묵의 시간이 지나자.
-스륵. 스르륵.
검붉은 신력이 은은한 바람처럼 불며 반쯤 깨진 도깨비 가면에 모여들었다.
사방에 널브러진 손목 발목들도 삐걱삐걱 바닥을 기어 가면을 향해 나아갔다.
-슈르륵. 슈륵-!
깨진 가면이 복구되고 손목, 발목의 절단면을 시작으로 검붉은 갑옷이 형성되며 재생하기 시작했다.
“크으…… 으윽!”
분노의 파편이 반쯤 육체를 재생시키고 겨우 말을 내뱉을 수 있게 된 순간.
“이-!”
입에서 짧고 굵은 침음을 흘리며 경악을 드러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아직도…… 아프지 않다.”
-위이잉!
하늘을 보고 쓰러져 있는 처용이 다시 손아귀에 에너지를 모아 심장을 향해 뻗는 모습이었다.
“진짜 한번 죽어 봐야…… 정신을 차리겠어.”
처용은 육체에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핑계로 다시 한번 자해를 가했고.
“멈춰! 이 미친 새-!”
분노의 파편이 다급하게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그러나 그 손이 처용에게 닿기도 전에.
-콰콰콰-!
다시 강렬한 폭발이 솟구쳤고.
-콰화아아! 콰쾅!
폭발에 휩싸인 처용이 제 몸을 가누지 못하며 뒤로 날아가 결계 외곽에 충돌했다.
그리고…… 긴 침묵이 이어졌다.
***
“……아.”
긴 침묵의 시간 끝에, 다시 눈을 뜬 처용은 짧은 침음을 흘렸다.
멍한 눈빛과 목소리, 그리고.
-슈르륵. 슈륵.
처용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며 회복되는 모습이 보였다.
방금까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잊었다는 듯, 잠시 멍한 표정을 지은 처용은.
-풋-.
“……징벌을 받아야 할 새끼가, 기절해서 잠이나 처자고 있었네.”
입안에 고여 있던 검붉은 핏물을 뱉어 낸 후 읊조리듯 말했다.
스스로를 향해 내리는 징벌인 자해.
아마…… 지금까지 적어도 수십 번은 자해를 한 것 같았다.
자해를 할 때마다 정신을 잃었고 육체가 회복하면 다시 정신을 차리는 과정을 반복했다.
정신이 들면, 다시 자해를 가하고 또다시 정신이 들면 자해를 가한다.
마음을 옥죄고 짓누르는 죄책감이 사라질 때까지 반복할 생각이었다.
얼마나 자해를 했는지 이제 기억도 나지 않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직…….”
-치짓. 치짓.
처용은 이 자해, 아니 징벌을 멈출 생각이 없다는 듯, 다시 손을 들어 힘을 모았다.
그때.
“멈……춰-!”
-철푸덕. 탁.
바닥을 기어 온 검붉은 손이 처용의 발목을 잡으며 힘겨운 목소리를 흘렸다.
“그만……!”
슬라임처럼 흐물흐물해진 분노의 파편.
그가 절반도 채 복구가 되지 않은 도깨비 가면을 보이며 말하자.
“……징벌의 시간을 마저 갖자고.”
처용이 멍한 목소리와 눈빛으로 분노의 파편을 바라보며 답하고는.
-치지직. 콱!
망설임 없이 자해를 가했다.
-콰쾅!
조금 약한 폭발음이 울리며 처용이 고개를 떨구었고.
-푸화악!
분노의 파편은 처용의 발목을 잡은 왼쪽 손모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육체가 터져 나갔다.
“……하.”
고개를 떨구었던 처용이 다시 고개를 들며 떨리는 침음을 흘렸다.
지금껏 몇 번의 자해 이후, 기절한 시간에 비하면, 빠르게 정신을 차린 상황.
반복된 자해로 인해, 손아귀에 힘이 제대로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약한 새끼.”
처용은 제대로 징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판단하며 불만 어린 목소리를 내고는.
-치짓! 치짓!
정신을 집중해 손아귀에 에너지를 끌어모았다.
이번에야말로, 죽을 각오를 하고 스스로에게 징벌을 내릴 생각이었다.
죽기 직전의 상황, 아직 회복되지 않은 육체, 뻥 뚫려 있는 가슴.
이번에야말로 징벌을 제대로 받기 딱 좋은 상황이라 판단했다.
-지이잉!
처용의 손아귀에 강렬한 에너지가 뭉쳐 들었고.
-스윽.
그 손아귀가 희미하고 불규칙적으로 박동하는 심장을 향했다.
이대로 심장에 더 손상을 가하면, 아무리 괴물 같은 육체의 회복력이라 해도 죽을 수도 있었다.
그때.
-쩌적! 쩌저적!
처용의 바로 앞, 징벌의 선고 안에서 새하얀 균열이 벌어지며 공간이 깨져 나갔고.
“계승자!”
-파창! 창! 후욱!
맑고 고운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균열을 깨고 들어서 처용에게 달려들었다.
-후욱. 툭!
다짜고짜 처용을 향해 달려들며 안겨든 이는 작은 체구의 어린아이.
마치, 처용의 자해를 온몸으로 막으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계승자! 그만……!”
처용에게 안겨든 어린아이가 작은 손으로 처용의 얼굴을 붙잡고 시선을 마주 보며 말했다.
자연을 형상화한 듯한 녹음 빛 머리와 연꽃이 피어 있는 화관.
눈, 코, 입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귀여우면서도 온화한 인상의 여아.
“그만해, 이제.”
여아가 울먹이며, 아이 특유의 짧은 발음으로 처용에게 그만하라 말하자.
“……보살님?”
처용은 자신을 말린 여아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보며 그녀를 불렀다.
겉모습이 어려지고 조금 변하긴 했지만, 처용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자책하지 마. 그만해.”
어린 여아의 모습을 한 보살이 다시 한번 처용을 향해 그만하라고 말하고는.
-우웅. 화아아!
연분홍빛 신력을 처용에게 내뿜었다.
따듯하고 온화한 느낌의 신력이 처용에게 깃들자, 다친 상처가 점점 아물었다.
처용은 보살을 잠시 바라보고는.
“……알겠습니다.”
-피이…….
손아귀에 힘을 풀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마음을 옥죄던 죄책감과 자책감이 조금 누그러지는 것을 느끼며 안도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때.
-스르륵. 스륵.
고개를 떨군 처용의 앞에서 검붉은 신력이 뭉치며 분노의 파편이 몸을 재생했다.
처용이 회복됨에 따라, 그 역시 빠르게 육체를 재생시킬 수 있었던 것.
“너, 너 때문……에!”
-철퍽. 철크럭.
분노의 파편이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오른손을 뻗으며 읊조렸다.
원망과 분노 어린 감정이 향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처용에게 안겨 있는 보살을 향해 있었다.
자신의 계획을 어그러뜨린 존재.
-드드득.
그런 보살을 향해 떨리는 오른손을 들어 뻗으며 나아갔다.
그때, 보살이 고개를 숙이고는.
“……미안해, 나 때문이야.”
미안하다는 목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처용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 하는 말인지, 그 대상을 알 수 없는 한마디.
그 말이 울림과 동시에.
-스스스.
그녀에게서 퍼지는 연분홍빛 신력.
점점 넓게 퍼져 나가는 자비의 손길이 뒤에서 다가오는 분노의 파편에게도 닿았다.
분노의 파편이 잔잔한 냇물처럼 흘러오는 신력을 거스르고 앞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젠……장……!”
-툭!
떨리는 침음을 흘리며 앞으로 내뻗던 손을 떨구었고.
“어쩔 수…… 없군.”
-스르륵.
지면에 녹아들 듯, 검붉은 기류로 변해 허물어지며 사라졌다.
그리고.
-파창! 차카캉!
징벌의 선고가 완전히 깨져 나가며 핏빛의 결계가 사라졌다.
***
핏빛의 결계, 징벌의 선고가 사라지자.
-스으으…….
처용을 중심으로 주변의 환경이 일렁이더니, 심상세계가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본 처용의 심상세계는 온갖 것들이 부서지며 파괴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우웅. 스르륵.
부러지고, 찢어지며 태풍 속으로 휘몰아치던 나무들이 다시 복구되고 있었다.
부러진 부분이 다시 붙어 이어졌고, 부서지고 파괴된 바위 더미들도 다시 복구되어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하나하나 천천히 재생되는 심상세계 안에는.
-우우웅.
연분홍빛 바람이 은은하게 불며, 그 기운이 곳곳에 깃들어 있었다.
마치, 부러지고 파괴된 심상세계를 그 연분홍빛 기운이 고쳐 주는 듯한 모습.
-툭.
심상세계 중심에 나타난 처용이 고개를 떨군 채 침묵할 때.
-슈르륵. 파아!
그런 처용의 앞에 검붉은 기운이 뭉치며 분노의 파편이 나타났다.
“계승자…… 아니, 한처용.”
분노의 파편이 처용을 똑바로 응시하며 입을 열고는.
“계약을 다시 하지.”
진지한 목소리로 ‘계약’이라는 말을 언급했다.
그러자.
“무슨 수작이냐?”
처용이 고개를 들어 올리고 분노의 파편과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
의심 어린 목소리라기보단, 진심으로 그 의도를 묻듯, 잔잔한 목소리.
순전히 의도를 묻는 처용의 물음에.
“수작은 없다.”
분노의 파편 역시,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어쩔 수 없이…… 인정한 거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잇는 분노의 파편.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수긍’과 ‘인정’이라는 감정이 전해졌다.
서로 거친 감정이 누그러진 처용과 분노의 파편이 시선을 마주한 채,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내 조건은 변하지 않았다.”
짧은 침묵 끝에, 처용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신의 조건은 변하지 않았다는 말.
같은 비극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처용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런 처용의 대답에.
“나 역시 변하지 않았다.”
분노의 파편 역시 입을 열었다.
그의 조건도 변한 것은 없었다.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
바로, 계승자와 일체(一體)가 되어 완전한 존재로 승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초월을 넘어서라. 한처용. 그러면 나 역시…… 완전한 존재가 될 테니.”
분노의 파편이 말을 이었다.
목적은 같았지만, 다른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처용과 분노의 파편, 서로가 서로에게 조건을 말했고 서로가 수긍하자.
-스르르.
심상세계가 일그러지며 점점 희미해졌고.
-화아아.
분노의 파편이 검붉은 기류로 변하며 처용에게 흘러 들어갔다.
심상세계가 점점 사라지고 분노의 파편이 처용에게 스며들 때.
“……이름이 뭐냐?”
처용이 자신에게 스며드는 분노의 파편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하워드에게 깃든 즐거움의 파편은 ‘조커’라는 이름이 있는 반면에, 분노의 파편은 없었으니까.
“우리에게 정해진 이름은 없다.”
분노의 파편은 사실을 이야기했다.
태초의 조각, 파편에 불과한 그들에게 정해진 이름은 없었다.
즐거움의 파편에게 붙여진 이름, 조커 역시 숙주인 하워드가 붙여 준 이름일 뿐이었다.
그런 분노의 대답에.
“……수라.”
잠시 침묵한 처용이 분노의 파편을 향해 말했고.
-스르르.
분노의 파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처용에게 완전히 깃들었다.
동시에.
-파아아!
망가졌던 심상세계가 완전히 복구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이내 사라졌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