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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627화 (627/726)

#627화

판데모니움이 거세게 흔들리며 크게 무너지고.

“제길!”

처용이 무너지는 세계 속에 휘말리며 아래로 추락했다.

허공을 자유자재로 날 수 있음에도, 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판데모니움이…… 찢어지고 있다?”

주변을 빠르게 살핀 처용이 인상을 찌푸리며 침음을 흘렸다.

순환의 포식자와 충돌한 여파로 인해, 판데모니움 중심부가 무너지는 상황.

이 세계를 구성하는 핵이 무너진 결과.

-콰자자작! 콰작! 쿠구구!

판데모니움이라는 세계 전체가 갈가리 찢어지며 조각나고 있었다.

악의 제전.

잿빛 군도.

영원히 타오르는 강.

독 지대 협곡.

검은 바다.

부패의 늪지대.

.

.

판데모니움을 이루는 각 지역이 여러 갈래로 조각나며 서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마치, 세계 곳곳에 금이 그어지며 뜯어지는 듯한 광경.

처용은 무너지고 찢어지는 세계의 중심에서, 폭풍에 갇힌 듯 이리저리 휘말리고 있었다.

동시에, 침착한 눈빛으로 떨어져 나가는 세계들을 보며 어떻게든 자세를 고쳐 잡았다.

지금 처용은, 눈에 보이는 이 재앙과도 같은 광경이.

‘최후의 대격변…….’

조금 익숙하게 보였다.

한 세계가 멸망하는 과정인 대격변.

그중, 악신들도 재활용하지 못할 만큼, 그 세계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대격변이 있었다.

바로 최후의 대격변.

하나의 세계를 갈기갈기 찢어 조각내 완전히 파멸시키는 대격변이었다.

지금 판데모니움에는 그 최후의 대격변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최후의 대격변을 맞이한 세계는 완전히 파멸하여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을 수 없지만.

-탓.

자세를 고쳐 잡은 처용이 주변을 침착하게 둘러보았다.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침착하게 대처하려는 모습.

회귀 전, 최후의 대격변으로 인해 무너지는 세계 속에서 살아남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계가 무너지면, 그 세계를 감싸는 시스템의 장막과 법칙 또한 무너져 내린다.

그 말인즉, 판데모니움을 감싸는 시스템의 장막 또한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처용이 태룡전의 열쇠를 쥐고 게이트를 열려 하자.

-우웅. 치지직.

금빛의 전류가 뭉치며 작은 게이트가 열렸다.

연결은 성공했지만, 게이트가 작기에 아직 이동할 수 없었다.

처용이 정신을 집중하자, 게이트가 조금씩 크기를 키워 나갔지만.

-쿠구! 쿠구구!

판데모니움이 무너지는 속도가 점점 가속되는 상황.

이대로면, 무너지는 세계 속에 갇혀 영영 나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생각보다 아슬아슬한 상황.

그때.

-삑!

황금빛 게이트 속에서 맑은 울음소리가 울렸고.

-스르륵.

아담한 용의 머리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처용을 올려다보았다.

붉은빛과 푸른빛의 오드아이가 처용과 눈을 마주치자.

“유리아.”

처용이 게이트 속에서 머리를 내민 유리아를 보며 이름을 불렀다.

유리아가 작은 고개를 흔들며 주변을 둘러보고는.

-삑. 삐빅!

처용을 향해 다급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래, 고맙다.”

유리아의 울음소리를 들은 처용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동시에.

-우웅. 탁.

태룡전의 열쇠를 앞으로 내밀어 유리아의 머리에 댔다.

-화아아! 우우웅!

열쇠 끝에서 찬란한 황금빛이 밝게 퍼졌고 작은 게이트가 빠르게 넓혀졌다.

게이트가 처용이 오갈 수 있을 정도로 넓어진 순간.

-스르륵.

처용이 빠르게 게이트 속으로 몸을 던졌고.

-쿠구! 쿠콰콰! 콰르르-!

판데모니움의 중심부가 와르르 무너짐과 동시에, 서로 찢어지던 공간들이 멀리 튕겨 나갔다.

***

-우우웅!

허공에 황금빛 게이트가 생겨나고.

-후욱! 탓!

그 속에서 게이트에 몸을 던졌던 처용이 바닥을 구르며 나타났다.

그러자.

[돌아왔구나.]

태룡전에 있던 여래가 처용을 향해 안도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태룡전, 돌아왔군요.”

처용이 여래와 그 주변에 있는 미륵, 하늘 위에 부유하고 있는 황룡 등을 보며 읊조렸다.

유리아의 도움을 받고 다시 돌아온 이곳은 태룡전.

천신만고 끝에 다시 태룡전으로 귀환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하지만, 처용은 돌아왔다는 안심이 들기도 전에.

“보살님은…… 보살님은!”

다급한 목소리를 내지르며 주변을 둘러봤다.

순환의 포식자로 인해, 존재 그 자체가 분해되고 있던 자비의 대신.

비록, 재생석을 이용해 분해를 막고 순환의 포식자와의 불합리한 계약까지 끊어 냈다지만.

“부작용은? 무슨 문제는!? 상태를 살펴야-!”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몰랐다.

아무리 재생이라는 특별한 힘이라 해도, 대신급 여신을 무사히 재생시킬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서둘러 상태를 살피고 변수에 대응해야만 했다.

처용이 거의 공황 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자.

“지, 진정하세요.”

처용의 뒤에서 아타의 목소리가 울렸다.

“자비의 대신님은…… 무사하십니다. 용님.”

-저벅.

아타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잇고는 옆으로 물러서며 자리를 비켜섰다.

-우웅.

그녀의 뒤, 태룡전의 중심에서 연분홍빛의 옅은 파동을 흩뿌리는 거대한 알이 드러났다.

-……저벅.

처용이 홀린 듯이 알에게 다가가자.

-스르륵.

알 주변에 흐르는 연분홍빛의 처용을 한 번 휘감으며 지나갔다.

마치……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을 전해 받은 처용이 눈꺼풀을 떨며 눈을 감고는.

“……아타, 알에 문제는 없나?”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타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아타가 잠시 눈치를 보더니.

“처음에는 조금 불안정했었는데…… 지금은 많이 안정되었습니다.”

솔직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했다.

유리아가 태룡전으로 대피하고 집어삼켰던 알을 뱉었을 때.

-우웅! 스스. 스스스……!

알이 불안정하게 흔들렸고 알을 감싼 껍질 겉이 조금씩 깨지며 내부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마치, 순환의 포식자, 분해의 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 듯 보였다.

황룡과 여래가 알에서 흩어지려는 기운을 붙잡았고 그 틈에 아타가 다급하게 태룡전으로 왔다.

재생은 본래 아타가 지닌 고유의 능력.

구체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아타는 본능적으로 작금의 상황을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아타가 알을 돌보자, 불안하게 흔들리던 알이 빠르게 안정되었고 분해되던 알 껍데기가 단단해졌다.

그리고 지금처럼, 은은한 기운을 주변에 흩뿌리며 안정된 상태가 유지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알은 무사했다.

보살 역시 무사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 때문…… 에……!”

-으드드! 으득!

처용은 손가락이 부러질 듯, 주먹을 강하게 쥐며 읊조렸다.

자신을 탓하는 듯한 처용의 목소리에.

[네 잘못이 아니다.]

여래가 안타까움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진심으로 처용을 탓할 생각이 없었다.

보살에게 벌어진 일을, 처용의 잘못이라고 비난할 수도 없었다.

지금의 상황은…… 보살이 스스로 선택하여 나타난 결과였으니까.

오히려 처용은 칭찬받아야 마땅했다.

스스로를 희생한 보살을 구해 내지 않았던가.

그러나.

“아뇨. 제 잘못입니다.”

처용은 여래의 말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강하게 탓하듯 말했다.

“전부…… 이 모든 것이 전부! 제가 오만했던 결과입니다…….”

절망의 연속이었던 회귀 전보다 훨씬 희망적으로 변한 현재 상황.

회귀 전보다 강해진 처용의 무력.

처용은 그 어떤 위험이라 해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적들이 어떤 수단을 준비하든 간에, 쳐부술 수 있다고 자신했었다.

악신들의 세력이 약해졌다) 판단했었다.

놈들이 무엇을 준비하든,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오만을 부렸다.

그 오만과 자만이…… 보살의 희생이라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머저리 새끼…….”

처용은 이 모든 사태가 자신 때문이라며 자책했다.

그리고.

“……놈과 담판을 짓고 오겠습니다.”

-스르르!

검붉은 기운을 스멀스멀 내뿜으며 여래를 향해 말했다.

자책을 잇다가 떠오른 생각.

어째서 이러한 사태가 일어났는가?

어떤 변수를 간과했기에 보살이 스스로를 희생하게 만들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자신의 안에 있는 분노의 파편을 떠올렸다.

“그리고…… 반성의 시간을 좀 갖겠습니다…….”

스스로를 책망하는 짙은 처용의 목소리에, 여래가 차마 바로 답하지 못하며 침묵했다.

-콰아아아!

처용이 징벌의 선고를 발동하며 핏빛의 결계 안으로 사라졌다.

징벌의 선고 속으로 처용이 사라지자.

[네 잘못만이 아니다…….]

침묵하던 여래가 처용이 사라진 장소와 보살이 깃든 알을 보며 낮은 목소리를 내었다.

조금 전, 처용이 스스로를 자책했던 것처럼.

[이 사태를 막지 못한 나 역시…… 책임이 크다……!]

여래 역시 주먹을 강하게 쥐며 자책하듯 읊조렸다.

그리고.

[자네만의 잘못이 아니네, 우리 모두의…… 잘못이지.]

미륵 역시 자책 어린 목소리로 여래를 향해 말했다.

***

-콰아아아!

핏빛의 신력이 휘몰아치는 공간.

처용이 징벌의 선고 안에 발을 들이고는.

“……나와.”

낮은 목소리로 누군가를 부르듯 말했다.

그러자.

-콰아아! 화아악!

처용 앞에 검붉은 신력이 뭉치며 모여들더니.

-촤라라락!

날카로운 느낌의 검붉은 갑옷과 흉악한 도깨비 가면이 나타났다.

“내 탓을 하고 싶은 거냐.”

징벌의 선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분노의 파편이 낮은 목소리로 처용에게 말했다.

처용이 분노한 듯 보이는 분노의 파편을 응시하며 침묵하자.

“따지고 싶은 것은 나다! 이 멍청한 녀석!”

분노의 파편이 처용을 향해 분노를 내지르며 소리쳤다.

서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존재로 재탄생했던 처용.

그는 이 우주의 절대자라고 할 수 있는 악의 종주.

오랜 시간 힘을 축적해 온 그 강력한 존재와도 맞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격이 높아졌었다.

게다가 악의 종주는 아직 자신의 힘을 모두 회복하지 못한 상태.

그대로 계속 맞서 싸웠으면, 분명히 악의 종주를 이겼으리라고 분노의 파편은 판단했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발생했다.

첫 번째는 자비의 대신이 태초의 권능을 사용한 것.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아무리 태초의 권능이라 해도, 완전한 존재로 재탄생한 처용은 다시 나누어질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진짜 문제는 두 번째.

바로, 보살에 관한 처용의 트라우마였다.

보살의 희생, 그 트라우마가 처용의 눈앞에서 재현된 순간, 모든 것이 틀어졌다.

그로 인해, 완전한 존재였던 처용은 다시 둘로 나누어졌다.

처용은 트라우마에 의해 이성을 놓아 버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분노의 파편이 가까스로 처용의 자폭만큼은 막아 냈지만.

“그깟 변수만 아니었다면, 완전한 존재가 된 우리가 모든 것을 거머쥐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엎어져 버렸다.

그동안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해 기다리고 인내하며 기회를 노리던 모든 시간이 허투루 돌아갔다.

“이 우주의 문제 역시 해결할 수 있었다!”

완전한 존재가 되었다면, 수명이 다해 가던 우주의 문제 역시 해결할 수 있었다.

이 우주에서 유일한 절대자가 된다면, 순환의 포식자와 프로토를 저지할 수 있었으니까.

“이 모든 건! 나약했던 네놈 때문이다!”

분노의 파편은 처용을 탓했다.

자신의 계획이 어그러지고 자비의 대신이 스스로를 희생하려 한 것.

이 모든 것을 처용의 탓이라 여겼다.

그런 분노 어린 외침에.

“……네 말이 다 맞아.”

처용은 분노의 파편의 말에 수긍했다.

그 말에, 분노의 파편이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의문을 드러냈다.

처용의 성격대로라면, 자신처럼 분노를 드러냈어야 했으니까.

그러나.

“이 모든 사태를 초래한 멍청이는 바로…… 나다.”

예상외로, 처용은 분노의 파편이 아닌 스스로를 탓했다.

“이 모든 결과는…… 나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

자책하는 처용의 모습을 본 분노의 파편이 인상을 찌푸리며 침묵할 때.

-위이이잉!

처용이 오른손을 들고 손아귀에 강렬한 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강기, 신력, 온갖 속성의 힘들이 마구잡이로 뭉치며 불꽃과 전류를 튀겼다.

“이제…… ‘징벌’을 받을 때다.”

처용이 손아귀에 힘을 모으며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자.

“나약한 네놈은 날 이길 수 없다.”

-쿠구구!

분노의 파편 역시, 검붉은 신력을 내뿜으며 위협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야말로, 네 정신을 완전히 굴복시켜 주겠다.”

“크, 크크…….”

강렬한 힘을 내뿜는 분노의 파편의 모습에, 처용이 실소를 지었다.

그리고.

“뭔가 착각하고 있는데, 징벌을 받을 자는 네가 아니야.”

멍한 눈빛으로 분노의 파편을 응시하며 진지하게 말했다.

그 눈빛을 마주한 분노의 파편은.

“……네놈, 설마?”

무언가를 짐작한 듯, 일그러졌던 인상이 점점 펴지며 눈이 커졌다.

“멸천의 신으로서, 징벌자로서-.”

-위이잉!

처용은 손아귀에 마구잡이로 끌어모은 불안정한 에너지를 강하게 쥐며 읊조리고는.

“나 자신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파아아악!

자신의 가슴을 강하게 끌어 쳤다.

정확하게 ‘심장’이 뛰고 있는 왼쪽 가슴 부근.

그곳에.

-콰아아!

처용이 움켜쥔 불안정한 에너지의 덩어리가 닿으며, 굉음과 함께 일그러졌다.

“멈춰-!”

그 광경을 본 분노의 파편이 경악을 내지르며 처용을 향해 손을 뻗은 순간.

-피이이! 콰아아아-!!

강렬한 폭발이 거세게 솟구치며 처용과 분노의 파편을 휘감았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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