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1화
항마의 화신으로 발현한 최강의 권능, 천수 – 태극천체장.
처용은 항마의 화신에게 구백 개의 손을 맡겨 다른 대악마들을 저지했다.
본인은 백 개의 손을 제어하며 바알과 메피스토에게 맞설 생각이었다.
하지만.
-쿠구구! 콰자자작!
짙은 어둠이 일렁이는 손아귀로 반탄신장을 거침없이 부수며 다가오는 바알과.
-사각! 파사사-!
단 한 번의 검격으로 반탄신장을 한 번에 열 개씩 베어 버리며 돌진해 오는 메피스토.
아무리 항마의 화신으로 발현하는 최강의 권능이라 해도, 삼천마를 상대하기엔 무리였다.
천수 – 태극천체장의 모든 손을 바알과 메피스토에게 집중해도, 둘을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아니, 둘 중 한 명에게 집중한다 해도 이길 수 없었다.
이곳은 판데모니움, 게다가 바알의 성역인 악의 제전.
대악마들이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런 대악마 중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삼천마 둘이 동시에 덤벼 오는 상황.
천 개의 손들을 모두 집중해도 모자랄 상황에, 백 개의 손만 가지고 그들을 막을 순 없었다.
당연히, 이 상황을 처용의 무력만으로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태극천체장 - 반탄신장!”
-우웅! 후우우-!
처용은 절망하는 대신 부서진 손들을 빠르게 복구하며 두 삼천마를 저지했다.
그들의 발걸음을 아주 조금 늦추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처용은 침착하게 집중하며 실수하지 않도록, 머릿속으로 계속 계산을 이었다.
그때.
-우웅! 샥!
강렬한 마기를 내뿜는 두 대악마가 처용의 뒤에 나타났다.
“성가신 것.”
판데모니움 서열 24위, 감찰의 대악마 나베리우스와.
“끝장을 내 주겠다!”
두 개의 뿔이 자리나 있는 독수리의 머리, 그 입안에 자리한 험악한 인상의 얼굴이 돋보이는 대악마.
약탈의 대악마 샥스가 항마의 화신이 내뿜는 파마의 손들을 뚫고 처용에게 접근했다.
처용은 빠르게 눈을 돌려 뒤를 응시하고는.
“천마강림.”
-콰아아아!
강기와 신력을 내뿜으며 천마의 의지를 불러내었다.
-후워워!
천마의 의지가 처용의 위에 나타남과 동시에.
-우웅! 콰아아아!
칼을 크게 휘둘러 칼날을 뒤덮은 검은 강기를 쏘아 보냈다.
-캬아아!
-크아!
천마의 의지가 쏘아 보낸 강기가 서로 뭉치며 악귀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백귀야행이 샥스와 나베리우스를 향해 돌진하자.
-후우욱!
나베리우스가 마기를 뭉쳐 검은 보자기를 만들고는 장막처럼 펼침과 동시에 한발 물러났다.
샥스 역시 나베리우스 옆에 서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콰아아아!
강기로 이루어진 백귀의 파도가 나베리우스의 장막을 뚫어 내지 못하고 지나가자.
-후욱!
나베리우스가 마기의 장막을 거두고 다시 처용을 향해 나아가려고 했다.
그때.
-우워워!
-스르릉. 샤아악!
천마의 의지가 나베리우스와 샥스를 동시에 베어 버릴 듯, 가로로 검을 크게 휘두르며 나아갔다.
-피이이!
칼날의 궤적이 따라 공간을 가르는 얇은 선, 검성의 검술인 ‘단절’이 그어졌고.
-쩌적! 차카캉!
나베리우스가 펼친 마기의 장막이 그 선을 따라 잘려 나가며 부서졌다.
“성가신 변종 같으니라고.”
날카로운 검격을 피해 뒤로 물러난 나베리우스가 침음을 흘렸다.
샥스 역시 뒤로 물러나며 인상을 찌푸렸다.
천마의 의지가 처용에게 접근하려는 나베리우스와 샥스를 잠시 저지했을 때.
-파창! 차차창-!
반탄신장을 거침없이 부수며 돌진해 온 두 삼천마가 처용의 지척에 다가왔다.
“항마의 화신 - 방마진”
처용이 두 손을 합장하며 신력을 끌어 올렸다.
-우우웅!
항마의 화신 주변으로 강렬한 파마의 힘이 일렁이는 금빛의 보호막이 덧씌워졌다.
하지만.
“재롱은 끝이다.”
-콰자작!
바알이 강렬한 어둠의 손아귀로 금빛의 보호막을 거침없이 부수며 들이닥쳤고.
“여기까지다.”
-사각! 차카캉!
메피스토 역시 샤네로 보호막을 단칼에 베어 찢으며 쇄도했다.
항마의 화신이 발현하는 방어막이 단번에 찢겨 나가자.
“팔괘봉마진 - 대영멸!”
-탁!
처용이 기다렸다는 듯, 땅을 짚으며 미리 준비해 둔 진법 중 하나를 발동했다.
팔괘봉마진(八卦封魔陣) – 대영멸(大永滅).
진법 안에 발을 들인 모든 마를 멸절하는 진법.
파마와 명환의 힘이 가득 응축된 진법에서 강렬한 빛이 솟구쳤다.
진법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강한 파마와 명환의 힘이 일렁이는 진법.
-화아아아!
강렬한 빛이 처용의 주변 일대에 퍼지며 하늘 위로 솟구치자.
“크음.”
“흠.”
-끼기긱.
그 진법의 힘에 의해 바알과 메피스토가 찰나의 순간 움직임을 멈추며 멈칫했다.
대영멸의 진법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기에, 그 영향을 받은 듯한 모습.
하지만.
-우웅! 파사사!
바알에게서 흘러나온 짙은 어둠이 빛을 집어삼키기 시작했고.
-우웅! 촤자자!
메피스토에게서 흘러나온 잿빛의 마기가 근처의 빛을 부수며 밀어냈다.
제아무리 마에 있어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진법이라 해도, 삼천마를 힘으로 저지할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고작 움직임을 일순간 멈추도록, 만든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웅! 쿠구구!
처용은 그 순간의 기회를 노렸다는 듯, 두 손을 합장하며 신력을 내뿜었다.
-후우욱! 콰쾅!
항마의 화신이 두 팔을 움직여 메피스토와 바알을 붙잡듯 그들을 감쌌고.
-콰아아아!
강렬한 파마의 신력을 폭포처럼 쏟아 내며 그 주변 일대를 강하게 짓눌렀다.
동시에.
-탓!
처용이 땅을 박차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항마의 화신이 두 삼천마를 붙잡은 순간, 이곳을 벗어나 하늘 위로 도망치려는 듯한 모습.
“어딜! 놓치지 않는다!”
-쿠구구! 콰자자작!
바알이 짙은 어둠을 뭉쳐 만들어 낸 네 개의 팔을 소환하며 소리쳤다.
새까만 어둠의 팔이 날카로운 손톱을 치켜세우고 크게 휘둘러지자.
-파사사사……!
주변을 짓누르는 파마의 신력이 갈기갈기 찢어지며 모래처럼 흩어졌다.
“증오해라. 샤네.”
-우우웅! 스르르릉!
메피스토 역시 순식간에 백 개의 사네를 만들어 내며 주변을 압박하는 파마의 신력을 베어 없애 버렸다.
폭포처럼 두 삼천마에게 쏟아지던 파마의 신력이 빠르게 고갈되었고.
-쩌적! 쩌저저적!
두 삼천마를 붙잡고 있던 항마의 화신에 빠르게 금이 가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최후의 희생.”
회심의 미소를 지은 처용의 입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키이이! 쩌저적!
바알과 메피스토를 붙잡은 항마의 화신이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콰콰쾅! 콰쾅! 쾅!
다시 재생해 낸 백 개의 손들이 마구잡이로 달려들어 메피스토와 바알을 붙잡았다.
그 손들 역시.
-쩌저적! 키이! 키이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 점점 금이 가며 강렬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쩌적! 화아아!
다른 대악마들에게 향했던 구백 개의 손과 주먹들 역시 갈라지며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최후의 희생.
처용이 수호신으로서 가졌던 가장 강력한 권능이자 마지막 권능.
그 권능의 묘리를 항마의 화신으로 재현한 것이었다.
이전, 지상에 소환된 디아블로의 화신체를 처치하기 위해 항마의 화신을 자폭시켰을 때와 같았다.
다만, 이번엔 항마의 화신만이 아닌, 천수 – 태극천체장으로 형성된 손들도 모두 포함되었다.
즉, 항마의 화신과 천 개의 손들로 ‘최후의 희생’을 사용한 것이었다.
-키이이-!!
항마의 화신과 천 개의 손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최대치에 도달한 순간.
-콰아아아아!!
강렬한 황금빛이 악의 제전 전체를 휘감으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무려, 항마의 화신과 천 개의 손들을 모조리 희생시켜 발현한 대폭발.
미리 하늘 위로 뛰었던 처용이 그 폭발력에 뒤로 밀려 더 높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처용은 폭발의 기류를 타고 몸의 중심을 잡음과 동시에.
-휙!
사방으로 터져 나가는 폭발의 빛무리 속에 무언가를 던져 넣었다.
빛과 함께 처용이 던진 무언가가 멀리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일단…… 여기까지는 무사히 성공-.’
처용이 속으로 작은 안도를 읊조리며 미소를 보인 찰나.
-콰지직!
날카로운 쿠크리 칼날이 처용의 가슴을 뚫고 튀어나왔고.
“잡았다.”
그런 처용의 뒤로 싸늘하고 높은 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입가에 피를 흘린 처용이 고개와 눈을 뒤로 돌리자.
“이 빌어먹을 하계종 새끼, 이번에야말로 찢어 죽여 주마!”
환희와 분노가 뒤섞인 표정의 아르테미스가 보였다.
사냥과 달의 여신.
그녀는 처용이 나타났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기척을 강하게 죽인 채 숨어 있었다.
그토록 죽여 없애고 싶었던 처용을 처치하기 위한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기회를 노리다가 처용이 항마의 화신을 벗어나고 최후의 수단까지 사용한 듯 보이는 순간.
처용의 뒤를 기습하는 데 성공했다.
환희의 미소를 지은 아르테미스가 칼날을 비틀며 손목에 힘을 주었다.
이대로 심장과 가슴을 찢어 처용에게 강렬한 고통을 선사함과 동시에 처치하려 했으니까.
그러나.
“……뭐지?”
칼날을 비틀던 아르테미스가 의문을 표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기습을 당해 가슴이, 정확히 심장이 꿰뚫렸는데도.
칼날이 가슴을 찢어 내고 있는데도, 처용은 고통 어린 비명이나 침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만이다. 이 쌍년아.”
입가에 피를 흘리는 처용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차분했다.
아르테미스가 그 모습을 보며 소리 없는 의문을 드러냈다.
분명, 처용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었고 당장 죽기 일보 직전의 위기 상황이었다.
그런데 저 여유 있어 보이는 미소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르테미스가 의문 어린 생각을 이을 때.
-촤자자작-.
처용의 손끝과 발끝이 점차 지푸라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설마!?”
그 모습을 본 아르테미스가 눈을 크게 뜨며 경악을 드러냈고.
“네 권능, 생각보다 좋더라고”
처용이 아르테미스의 경악 어린 표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너는 내가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게 해 준 1등 공신이야. 정말 고마워.”
“닥쳐라! 감히 내 권능을-!”
처용의 진심 어린 칭찬에, 아르테미스가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처용이 조금 전, 사방으로 터져 나가는 파마의 신력 속에 은밀하게 던져 넣은 무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지푸라기 인형이었다.
아르테미스가 사용하는 권능인 달그림자 꼭두각시.
그 권능을 사용하기 위한 매개체였다.
처용이 이 위기를 빠져나가기 위해 사용한 결정적인 수단은 ‘최후의 희생’이 아니었다.
바로, 아르테미스의 권능, 달그림자 꼭두각시였다.
회귀 전, 결정적인 순간마다 처용에게서 도망쳐 위기를 벗어났었던 아르테미스의 권능.
그토록 혐오스럽고 증오스러웠던 권능이, 지금은 처용을 위기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만든 방책이 되었다.
“진심으로 고맙다고 이 쌍년아. 크크. 하하하!”
처용이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린 아르테미스를 향해 비틀린 미소를 담아 도발하자.
“당장, 이 하계종을 찾아! 이 주변에-!”
아르테미스가 파마의 힘이 일렁이는 폭발을 견디고 있는 대악마들을 향해 소리쳤다.
처용이 멀리 사라지기 전에, 모두 사방으로 흩어져 추적해야만 했으니까.
그러나.
“팔괘재앙진(八卦災殃陣).”
처용의 입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피이이!
아르테미스의 칼날에 의해 갈라진 처용의 가슴 속에서 검붉은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피이! 피이이!
파마의 신력이 폭발한 지면 속.
정확히는 처용이 서 있던 자리 밑으로 검붉은 빛이 흘러나왔다.
“전부 써 버리는 게 아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처용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결정적인 수단은 바로 달그림자 꼭두각시.
하지만 그 수단은 ‘마지막’ 수단이 아니었다.
처용이 전투가 벌어지기 전, 미리 준비해 두었던 마지막 수단은 따로 있었다.
항마의 화신을 사용하기 전에 준비해 둔 진법은 총 두 개.
첫 번째는 명환부를 지면에 숨겨 만든 팔괘봉마진 – 대영멸.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그 대영멸의 진법 아래에 숨겨 둔 마지막 진법.
가진 ‘재앙옥’을 모두 소비해 만든 진법이었다.
무려 여덟 개의 재앙옥이 서로 연결되어 강렬한 파멸의 폭발을 일으키는 진법.
게다가.
-키이이잉!
마지막 재앙옥은 이 상황을 예상한 처용이 가지고 있었다.
“즐거운, 숨바꼭질 놀이 시간이야.”
처용의 마지막 말이 끝난 순간.
-콰아아아-!
악의 제전에서 퍼지는 황금빛의 폭발 속에, 검붉은 빛의 폭발이 추가로 터지며 재앙의 힘이 폭발했다.
동시에.
-파사사삭.
처용이 완전히 지푸라기 인형으로 변했고.
-키잉! 콰콰콰!
아르테미스의 눈앞에서 파멸의 힘이 일렁이는 폭발이 터져 나갔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