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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610화 (610/726)

#610화

새하얀 섬광이 처용의 시야를 일순간 뒤덮었고.

-스스스.

이내 점점 섬광이 옅어지며 주변의 모습이 드러났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새까만 돌바닥과 푸른 불꽃이 타오르는 화로.

마치, 웅장한 대악마의 신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런, 젠장.”

점점 드러나는 주변의 모습을 본 처용이 긴장감 어린 침음을 흘렸다.

빛이 서서히 걷어지며 나타난 장소는 다름 아닌.

“악의 제전이라니.”

판데모니움 중심부, 모든 대악마가 모이는 바알의 성역이자 궁전.

악의 제전이었다.

새하얀 빛의 기둥 속에서 처용이 모습을 드러내자.

“성공했다!”

“드디어 저 변종을 처치할 수 있겠구나!”

-쿠구구!

강력한 마기를 내뿜는 존재들.

대악마들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리쳤다.

“……좋지 않네.”

악의 제전 중앙, 빛의 기둥에 휩싸인 처용이 대악마들을 하나하나 노려보며 읊조렸다.

지금 들려오는 대악마들의 목소리는 시스템을 거쳐 울려오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들 본연의 목소리가 그대로 울려오고 있었다.

마치 시스템의 방벽이 완전히 무너졌던 회귀 전과 같은 현상.

즉, 지금 처용은 시스템의 보호가 없는 장소.

판데모니움 중심부에 홀로 소환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직 소환이 완벽하게 끝나지 않았는지, 처용 주변을 감싼 빛의 기둥이 사라지지 않은 상황.

그것 때문인지, 여기저기서 증오를 드러내면서도 공격을 시도하는 대악마는 없었다.

그러나.

-스스스……!

처용을 감싼 빛의 기둥이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빛의 기둥이 사라지고 처용이 온전히 소환된다면, 대악마들에게 포위된 채 전투가 벌어진다.

이곳에 있는 대악마들이 하위 대악마들뿐이었다면 모르겠지만.

“드디어 이렇게 만나게 되는구나.”

-쿠구구!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거대한 옥좌.

바알이 자리에서 일어서 처용을 내려다보며 무거운 목소리를 내었다.

처용은 바알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반사적으로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바알과 같은 위치에 자리한 옥좌 위에 앉아 있는 두 삼천마.

메피스토와 디아블로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보다 아래에 위치한 좌석에는 최상위 서열의 대악마들까지 자리해 있었다.

“이번엔, 네놈을 도울 천사는 없다.”

-화르륵!

태룡사 전투 당시, 한 번 마주쳤었던 서열 7위의 대악마, 아몬.

“…….”

귀찮음과 흥미로움이 반씩 섞인 눈빛으로 처용을 바라보는 서열 13위의 대악마 벨페고르 등.

소멸하여 자리가 빈 몇몇 대악마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대악마가 이 자리에 있었다.

“……씨발.”

악의 제전 내부를 쭉 둘러본 처용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300레벨을 달성한 지금의 처용이라고 해도.

회귀 전의 힘을 거의 대부분 회복한 처용이라 해도 지금의 상황은 위험했다.

아니, 회귀 전, 전성기의 처용이라 해도, 지금의 상황은 무리였다.

정면 싸움이 벌어진다면.

‘승산은 제로.’

절대로 이길 수 없었다.

승리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게 있는 것도 아닌, 완전한 제로.

정면으로 힘 싸움을 벌였다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태룡전의 열쇠를 사용해 게이트를 열고 탈출을 시도해 보려 했지만.

‘역시나…… 게이트는 열 수 없다.’

예상대로, 태룡전의 열쇠를 통해 게이트를 열 수는 없었다.

보물전의 무구를 수납하고 불러들이는 것 외의 사용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처용은 주변의 대악마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나 고민했고.

-쿠구구! 쿠구!

대악마 대부분이 자리에서 일어서 처용을 처치할 준비를 했다.

빛의 기둥이 사라지는 순간, 일제히 처용에게 공격을 퍼부으리라.

그때.

“재미없군. 나는 관두지.”

-후우욱.

디아블로가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불길을 확 걷으며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고 팔짱을 끼며 등받이에 등을 기댄 모습.

마치, 곧 벌어질 싸움에서 빠지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뭐 하는 것이냐? 디아블로.”

바알이 디아블로를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묻자.

“관두겠다고 했다.”

디아블로가 단호한 목소리로 지금의 상황에 개입하지 않겠다 확실하게 말했다.

“대악마라는 놈들이 자존심도 없나? 고작 인간 하나 죽이겠다고 여러 명이 우르르 달려들고 말이야.”

마치, 지금 상황 자체를 비판하는 듯한 태도.

처용 한 명에게 단체로 공격을 퍼부으려는 대악마 모두를 비꼬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말에 대부분의 대악마가 인상을 찌푸려 보였고.

“디아블로, 지금은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다.”

메피스토 역시 서늘한 목소리로 디아블로를 노려보며 말했다.

솔직히, 메피스토 역시, 디아블로의 말대로 자존심이 상하기는 했다.

상대가 변종이라 불리는 특별한 인간이라 해도, 대악마들이 때로 달려드는 건 보기가 좋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더 중요한 목적을 위해, 자존심은 굽혀야 하는 법.

“우리의 목적을 잊은 건가?”

“그건, 네 목적이겠지, 잿빛 왕도의 군주 메피스토.”

목적을 이야기하는 메피스토의 말에 디아블로가 강한 목소리로 답하듯 목소리를 내었다.

“재미도 없고 짜증만 나는군. 나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디아블로가 자신의 의지를 담아 강하게 선언하듯 목소리를 높이자.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네 멋대로 구는 것인가?”

-쿠구구!

메피스토가 인상을 찌푸리며 강렬한 마기를 내뿜었다.

‘……뭐지?’

상황을 관찰하던 처용이 속으로 의문을 품었다.

디아블로는 항상.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마! 한처용!

처용과 다시 만나 싸우기를 갈망하는 모습을 보였었으니까.

분명, 그의 성격대로라면, 지금 상황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 나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디아블로는 적의를 내뿜는 메피스토를 강하게 노려보며 자신의 의지를 전했다.

처용이 볼 때, 디아블로는 진심으로 이번 일에 참여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이유와 의도를 알 수 없지만.

‘부담이…… 아주 약간은 줄어들었군.’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한 부담이 조금 줄어든 것 같았다.

처용이 머릿속으로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한 작전을 세울 때.

“……디아블로는 신경 쓰지 마라. 메피스토.”

바알이 메피스토를 만류하듯 입을 열고는 디아블로를 강하게 노려봤다.

그 역시 방관만 하겠다는 디아블로가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우리 할 일에 집중한다.”

이내, 디아블로를 향한 시선을 거두고는 처용을 노려보며, 다른 대악마들에게 명령하듯 말을 이었다.

디아블로 한 명이 빠진다 해서, 처용이 이 상황을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으니까.

그때.

“……이것 참, 고맙다고 해야 하나. 무한한 공포의 대악마.”

처용이 디아블로를 향해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디아블로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가장 강력한 전력 중 하나가 스스로 물러난 상황.

처용에게는 달가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작금의 상황이 매우 위험하다는 건 변함이 없었지만.

-우우웅!

처용은 두 손을 모으고 신력을 끌어모으며 머릿속으로 세운 작전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단 한 번의 실수라도 생겼다간, 그 결과는 죽음으로 다가올 테니까.

-스스스…….

이미 처용 주변에 펼쳐진 빛이 점점 옅어져 거의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이 빛이 모조리 사라지는 순간, 대악마들의 일제 공격이 쏟아진다.

그 전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먼저 움직여야 했다.

신력을 끌어모은 처용은.

“항마의 화신.”

가장 먼저 항마의 화신을 불러내었다.

-스스스!

처용의 위로 신력이 모이며 그를 지키듯, 항마의 화신이 나타났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항마의 화신에 신력을 집중하고는.

“항마의 화신 – 결전기!”

-쿠구구!

항마의 화신 상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능을 발현했다.

본래, 처용이 항마의 화신 상태에서 발현하는 결전기, 태극천체장은 백 개의 손만 불러낼 수 있었다.

하지만, 300레벨을 찍고 더욱 강해진 지금은.

“천수(千手) - 태극천체장(太極天體掌).”

전성기 시절 발현했던 수준의 힘을 발현할 수 있었다.

-화아아아!

항마의 화신 뒤로 새하얀 손들이 꽃처럼 피어나듯 생성되었다.

백여 개의 손이 아닌, ‘천(千)’ 개의 손들.

모란처럼 피어난 손들이 항마의 화신을 감싸며 모여들었다.

처용은 항마의 화신 주변으로 천 개의 손을 소환해 꽃을 피운 순간.

“팔괘봉마진.”

-스르륵.

명환부를 소환하여 팔괘의 진법을 만들고는 지면 속에 숨겼다.

하얗게 빛나는 팔괘의 진법이 지면에 완전히 스며들기 전.

-우웅. 스르륵.

처용은 팔괘의 진법을 구성하는 명환부 위에 각각 검은 구슬을 한 개씩 놓았다.

팔괘의 진법이 검은 구슬을 감싸며 지면 속으로 사라졌다.

항마의 화신과 천수 – 태극천체장을 사용하며 악마들의 시야를 가린 찰나의 순간에 준비한 것들이었다.

처용이 준비를 마치자.

-스르륵……!

점점 옅어지던 새하얀 빛의 기둥이 빠르게 희미해져 갔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천마신권-.”

강력한 파마의 신력으로 이루어진 새하얀 손들.

천수 – 태극천체장을 대악마들에게 겨누며 일제히 주먹을 쥐었다.

동시에.

-스스스……!

처용을 가두듯 주변 일대에 퍼져 있던 새하얀 빛이 사그라졌다.

그 순간을 노린 처용은.

“천보명환신권(千步明煥神拳)!”

-후우우-! 콰콰콰쾅!

파마의 신력을 가득 응축시킨 천 개의 주먹들을 사방으로 쏘아 보냈다.

그저 단순히 천 개의 손들을 무작위로 쏘아 보낸 것이 아니었다.

하위 서열의 대악마들에겐 다섯 개에서 열 개.

상위 서열의 대악마들에겐 열 개에서 스무 개.

삼천마인 바알과 메피스토에겐 오십여 개의 주먹을 쏘아 보냈다.

처용의 공격이 작렬하자.

“먼저 공격할 줄은-.”

“막아 내라.”

대악마들이 마기를 내뿜으며 방어에 나섰다.

설마, 처용이 선제공격을 가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모습.

“성가신!”

“파마의 힘을 부정한다!”

안드로말리우스나 벨리알 같은 하위 서열의 대악마들은 마기를 짙게 끌어 올려 스스로를 방어했다.

제 권능을 활용하여 회피하거나, 마기의 방어막을 형성해 처용의 공격을 막는 모습.

“불태워 주마!”

-화르륵! 차카카캉!

아몬 같은 한 자릿수 서열의 최상위 대악마들은 다가오는 공격을 쳐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공격을 견디고 방어함과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 처용에게 역공을 가할 듯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빙백신장 - 빙백십육장!”

-쩌저저적!

아몬에게 쏘아 보낸 스무 개의 팔 중 열여섯 개에 빙 속성을 더해 빙백신장을 발현했다.

파마의 신력에 더불어 강렬한 냉기까지 더해지는 열여섯 개의 신장이 아몬에게 작렬하자.

“성가신 짓을-!”

-쩌저적!

발과 손톱이 얼어붙은 아몬은 그 자리에서 저지되었다.

염수의 대악마가 지닌 화(火), 마(魔) 속성과 대비되는 빙(氷) 속성과 파마(破魔)의 힘으로 대처하는 모습.

비단 아몬만이 아닌, 다른 대악마들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각각의 대악마들이 지닌 특징과 반대되는 힘으로 그들을 저지했다.

처용은 회귀 전, 대악마들과 수십, 수백 번의 싸움을 반복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대악마들과 무수히 싸운 그 방대한 전투 경험과 지식이 있기에, 그들을 모두 저지할 수 있었다.

처용은 항마의 화신을 통해 각각 천수 – 태극천체장을 세세하게 한 번 다루고는.

“항마의 화신 – 심심상인(心心相印).”

항마의 화신에 내재된 권능을 사용했다.

그러자.

-화르륵! 쩌저적! 파지직!

파마의 힘이 일렁이는 손들, 천수 – 태극천체장에 속성의 힘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처용이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각각 대악마들의 특성에 맞서 속성으로 싸우는 듯한 모습.

게다가.

“반으로 갈라 주마!”

수확의 대악마 푸르카스가 마기를 응축한 대낫을 크게 휘둘러오자.

-우웅! 콰아앙!

파마의 손 중 하나가 크기를 키우더니, 돌진해오는 푸르카스를 손바닥으로 강하게 쳐 밀어냈다.

처용이 항마의 화신으로 사용하는 기술, ‘반탄신장’이었다.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항마의 화신이 처용의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항마의 화신 – 심심상인(心心相印).

처용이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항마의 화신이 전투 상황에 맞춰 스스로 움직이는 권능.

항마의 화신이 처용의 전투 경험과 기술을 학습해 전투하는 것.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항마의 화신을 오토 모드(Auto Mod), 자동 전투 태세로 바꾼 것이었다.

처용은 항마의 화신에게 다른 대악마들을 맡기고 앞을 노려보며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건방진 것!”

-콰아아! 콰쾅!

바알이 강렬한 어둠을 내뿜어 오십여 개의 주먹을 단번에 부수며 처용에게 쇄도했고.

-스르릉! 차카카캉!

메피스토 역시 자신에게 향하는 주먹들을 단칼에 베어 내며 처용에게 돌진해 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둠을 머금은 바알의 손아귀와 잿빛의 마기가 일렁이는 샤네의 칼날이 순식간에 처용을 향했다.

“태극천체장.”

-화아아!

처용은 바알과 메피스토에 의해 부서진 백 개의 손을 다시 재생해 내고는.

“반탄신장 – 구십구장!”

-후우우-!

수십 개의 반탄신장을 앞세우며 바알과 메피스토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리고.

“하하하!”

눈앞의 전투를 흥미롭다는 듯 구경하는 삼천마.

디아블로가 사방에서 터지는 파마의 신력을 느긋하게 구경하며 웃음을 내질렀다.

파마의 신력이 일렁이는 손들은, 디아블로에게 단 한 개도 향하지 않는 상황.

그럼에도, 디아블로는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사태를 구경하며 방관하고 있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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