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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606화 (606/726)

#606화

태룡사에서 벌어진 악신들의 침공이 막 끝났을 당시.

인간들은 함부로 들어설 수 없고 평범한 성좌들조차도 발을 들일 수 없는 장소.

흔히, ‘저승’이라 불리는 죽은 자들의 영역 중 하나.

지붕에 검은 기와가 나열된 검은 동양식 궁궐, 저승을 다스리는 신격이자 심판의 신인 염라의 성역.

그곳에서는.

-쿠구구! 쿠구!

전쟁이 벌어진 듯, 강렬한 폭음과 충격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염라! 더 도망갈 곳은 없다!”

금관을 쓴 검은 자칼의 모습을 한 저승의 신격, ‘죽음의 신 아누비스’가 궁궐 입구에 서서 소리쳤다.

아누비스가 자신의 신물 오른손에 들린 금색의 뱀이 휘감긴 검은 지팡이를 앞으로 겨누자.

-파지지직!

검은 궁궐 입구에 펼쳐진 반투명한 벽이 갈라지며 찢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파창! 차창!

결계의 벽이 아누비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자.

“모두 없애라!”

아누비스가 검은 궁궐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며 소리쳤다.

그런 아누비스의 명령에.

-스르릉! 스릉! 샥!

양손에 날카롭게 휘어진 칼, 시미터(Scimitar)를 쥔 늑대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한 존재들.

아누비스를 따르는 저승의 수호자들, 검은 자칼들이 나타나 궁궐 안으로 들어섰다.

검은 궁궐 안에 자칼들이 발을 들이자.

-침입자를 저지하라!

검은 도포와 검은 삿갓을 쓴 새까만 피부의 인영들이 칼과 활을 치켜들며 나타났다.

그들은 이곳, 저승의 성역 중 하나인 염라의 검은 궁궐을 지키는 저승의 수호자들이었다.

두 저승의 세력이 서로 칼날을 부딪치며 격돌했고.

“비켜라!”

-콰화아아!

아누비스가 죽음의 신력이 응축된 검은 모래바람을 쏘아 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탕! 콰쾅!

검은 궁궐의 정문 앞에 도달한 아누비스가, 굳게 닫힌 문을 향해 지팡이를 내리쳤다.

-파직! 파직!

굳게 닫힌 궁궐의 문이 스파크를 튀기며 저항했지만.

-콰콰쾅!

이내 문이 크게 부수어지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궁궐 정문을 지키던 문이 통째로 떨어져 나가며 부수어지자, 내부의 모습이 보였다.

검은 기둥이 나열된 동양식 궁궐의 내부.

검은 안개가 은은하게 깔려 어두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검은 대전 같은 모습이었다.

“염라!”

-저벅!

아누비스가 염라의 성역 내부를 향해 나아가며 소리쳤다.

이윽고 대전 중앙에 다다르자.

“저승의 신들이 나 하나를 잡기 위해 이런 짓을 벌이다니, 제정신인가?”

대전 중앙에 솟아오른 계단 위의 검은 옥좌.

그 위에 앉은 창백한 인상과 검은 입술, 검은 눈썹과 눈 주변의 화장이 돋보이는 남자.

저승의 신 중 하나이자 심판의 신, 염라가 아누비스를 향해 물었다.

성역이 공격을 받았음에도, 분노를 표하는 것이 아닌, 침착하고 느긋한 느낌의 목소리였다.

그 모습을 본 아누비스가 인상을 찌푸리고는.

“다 알고 왔다. 염라.”

아누비스가 염라를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악한 존재가 검은 별들을 만들어 낼 수 있게 협력한 놈이 네놈이라는 것을!”

그간 염라가 저질러 온 일들과 악의 종주를 향해 사악하다 칭하는 아누비스의 말에.

“사악한 존재라니, 그분은 이 우주의 희망일세.”

-탁.

염라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악의 종주를 우주의 희망이라 말하는 염라.

스스로가 악의 종주의 편에 섰음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이 배신자가!”

-스스스!

아누비스가 인상을 찌푸리고 이빨을 드러내며 신력을 내뿜었다.

검은 모래바람이 아누비스 주변에 몰아칠 때.

“그대 역시 이 우주의 진정한 주인을 따르는 것이 어떤가?”

-쿠화아아아!

염라가 아누비스를 향해 손을 뻗으며 검은 안개를 내뿜었다.

-크아아!

-크어!

새까만 안개 속에는 사람의 뼈로 보이는 형체들이 팔과 머리를 뻗으며 고통을 내지르고 있었다.

마치, 영혼이 안개 속에 갇혀 고통받는 듯한 모습.

염라의 신력 안에 갇혀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듯 보였다.

“지옥의 영혼을 네 멋대로 다루다니!”

-쾅! 우드드-!

그 모습을 본 아누비스가 분노를 내지르고는 오른손에 잡힌 지팡이를 땅에 내려치며 왼손을 들어 올렸다.

“죽음의 순환!”

아누비스가 왼손에 검은 모래바람을 끌어모으며 권능을 발현하자.

-콰화아아! 콰드드득!

검은 모래바람이 보랏빛의 룬 문자가 빛나는 검고 긴 붕대로 변했다.

-촤라라락!

검은 붕대가 아누비스의 왼팔을 감싸며 거대한 팔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마치, 보랏빛 기류가 일렁이는 거대한 검은 미라의 손과 같은 모습.

-후우우!

아누비스가 왼손을 앞으로 뻗자, 검은 미라의 손이 염라를 향해 쇄도했다.

-쿵! 콰아아!

염라가 내뿜은 검은 안개와 아누비스가 형성한 검은 미라의 손이 서로 충돌했다.

“나 역시 그대와 같은 대신급 신격, 홀로 나의 성역에 발을 들인 건 실수라네.”

-후우우!

염라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는 검은 안개와 신력을 더 끌어 올렸다.

이곳, 검은 궁궐은 염라의 성역, 즉 염라의 힘을 증폭시켜 주는 장소였다.

같은 대신급 성좌를 상대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염라가 검은 안개에 신력을 더하자.

-크아아!

-캬아!

검은 안개 속에서 몸부림치는 영혼들이 더 거세게 날뛰었다.

염라의 검은 안개가 점점 커지며 아누비스의 권능을 밀어내려 할 때.

“내가 아무 준비도 없이 네놈을 잡으러 온 줄 알았느냐!”

-스스스!

아누비스가 오른손에 잡힌 지팡이에 신력을 불어넣으며 소리쳤다.

-화아아!

검은 지팡이 위에 휘감긴 금색의 뱀이 입을 벌리며 금빛이 반짝이는 기류를 내뿜었다.

그 금빛의 기류가 아누비스를 타고 그가 만들어 낸 미라의 손을 휘감았다.

-우웅! 화아!

검은 붕대 위에 빛나는 검보라색 문자에 금빛이 깃들며 황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콰아! 콰자자작!

미라의 손에 닿은 악령과 검은 안개가 가루처럼 흩어지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콰자자작! 콰쾅!

영혼을 가둔 검은 안개가 모두 부수어지고 금빛이 일렁이는 검은 미라의 손이 염라에게 쇄도했다.

미라의 손이 염라를 붙잡을 듯, 손을 펴며 쇄도해 오자.

“이런.”

-훅!

염라가 검은 안개로 변하며 발을 박차 왼쪽으로 피했다.

-콰콰쾅! 콰직!

금빛이 일렁이는 미라의 손이 염라가 앉아 있던 옥좌를 강하게 쥐며 부수었다.

-후욱! 후화아아!

염라가 다시 영혼을 가둔 검은 안개를 일으켜 아누비스에게 쏘아 보냈지만.

“모두 해방되어라!”

-콰아아-!

아누비스가 옥좌를 부순 미라의 손을 회수하여 크게 휘둘러 안개를 모두 쳐냈다.

금빛이 일렁이는 검은 미라의 손이 안개에 닿자, 검은 안개가 모조리 흩어졌고.

-으아.

-아아아……!

검은 안개에 붙잡혀 있던 영혼들의 표정이 편안하게 바뀌며 사라져 갔다.

염라에게 붙잡혀 있던 지옥의 영혼들을 아누비스가 다시 본래 있던 자리로 돌려보낸 것이었다.

아누비스와 염라, 둘 다 같은 저승의 대신급 성좌임에도, 아누비스가 우위를 점한 모습.

“……그렇군. 천찰의 대신.”

자리를 피한 염라가 아누비스에게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금빛 기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새로운 관리자가 수를 써 준 것인가?”

아누비스에게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금빛의 기운은 다름 아닌 황룡의 힘이었다.

염라는 아누비스, 하데스와 같은 저승의 대신급 신, 쉽게 처치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이 때문에, 황룡이 관리자의 권한을 이용해 도움을 준 것.

지금 아누비스에게서 흘러나오는 금빛의 힘은 태초의 심장 속에 깃들어 있던 태초의 힘이었다.

“배신자인 네놈을 처단하겠다.”

-우우웅!

아누비스가 신력을 끌어 올리며 입을 열고는.

“순혈 의회 일원인 네놈을 처치하면! 그 사악한 존재도 더 검은 별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니!”

염라의 진짜 정체를 언급하며 소리쳤다.

저승의 대신급 성좌인 염라.

그는 단순한 순혈자가 아닌, 순혈 의회의 일원이었다.

아누비스가 염라의 정체를 단정 지을 수 있었던 이유는.

-순혈 의회의 일원 중 하나는 저승의 신격이다.

순혈 의회의 일원이자 콘슈로 제 정체를 위장해 스파이 역할을 했던 오시리스.

그가 정보를 전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오시리스가 순혈 의회의 일원들을 알아내 그들의 정체를 간접적으로 알리자.

-누군지 알겠군.

아테나와 헤르메스는 오시리스가 말한 ‘저승의 신격’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악의 종주를 돕기 위해 저승에서 수상한 짓을 벌였던 신은 단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네놈들의 추잡한 계획은 모두 실패할 것이다!”

염라를 몰아붙인 아누비스가 강하게 소리치듯 말하자.

“……크크크.”

돌연, 염라가 입꼬리를 들어 올리더니.

“하하하하!”

큰 웃음을 내질렀다.

“내가 순혈 의회 일원이라고?”

“이제와서 발뺌인가?”

자신이 순혈 의회 일원이냐는 염라의 물음에 아누비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예언자…… 그 건방진 하계종도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었구나.”

염라가 오른손으로 자신의 웃는 얼굴을 반쯤 가리며 읊조리듯 말했다.

“나는 순혈 의회 일원이라는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지 못했다.”

스스로가 순혈자는 맞지만, 순혈 의회 일원은 아니라는 염라의 말.

“나는 ‘그녀’의 손발을 대신해 움직이는 대리자일 뿐이니라. 하하하!”

“헛소리를-!”

아누비스가 염라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고는 신력을 끌어 올리며 그를 공격하려 했다.

지금 염라가 하는 말이 모두 헛소리라 생각했으니까.

그간 염라가 저질러 온 짓들이 있었고 그 증거와 오시리스가 전해 준 정보까지.

모든 정황이 염라가 악의 종주를 돕는 순혈 의회 일원이라 말하고 있었다.

-우드드!

아누비스가 금빛이 일렁이는 검은 미라의 손을 움직여 염라를 공격하려 할 때.

-우웅.

지팡이를 쥐고 있는 아누비스의 오른손 위로 작은 날개 모양의 장식이 나타났다.

헤르메스가 그의 신물인 케리케이온으로 만들어 준 연락 수단이었다.

작은 날개 장식이 나타나자.

-미, 미안하네…….

아누비스의 머릿속으로 하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잘못 파악했다네, 염라가 순혈자는 맞지만-.

‘무슨 소리지!? 자네 괜찮은가?’

들려오는 하데스의 말에 아누비스가 심각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지금 하데스의 목소리는…… 마치, 심각한 부상을 당해 죽어 가는 듯했으니까.

-시간이 없군. 내 성역은 점령되었고 적들이 타르타로스의 문을 열어 죄수들과 함께 날뛰고 있네.

하데스는 아누비스의 말에 답하지 않고 전해야 할 말을 계속했다.

저승의 성역 중 하나인 하데스의 성역이 적들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

올림포스에서 관리하는 저승의 감옥, 타르타로스가 악신들에게 점령되어 죄수들이 풀려났다는 것.

그리고.

-진짜 순혈 의회 일원은…… 나의 정인(情人)일세.

염라가 아닌, 진짜 순혈 의회 일원이었던 저승의 신격이 누구인지를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아누비스의 인상을 확 일그러졌고.

-아테나에게 미안하다고 전-.

말을 다 잇지 못한 하데스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통신이 끊어졌다.

‘하데스!’

아누비스가 끊어진 헤르메스의 통신기를 향해 소리쳤지만, 들려오는 대답이 없었다.

“크, 크흐흐. 보아하니 하데스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보군?”

염라는 작금의 상황을 눈치챈 듯 비웃음이 일렁이는 미소를 흘렸다.

“젠…… 장!”

아누비스가 침음을 흘리며 비웃음을 흘리는 염라를 노려보았다.

동시에, 하데스가 전한 말들을 생각하며 작금의 상황을 파악했다.

저승에서 하데스만큼이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신격.

하데스의 성역을 단번에 점령할 능력이 있는 존재.

저승의 감옥인 타르타로스에 간섭하여 죄수들을 풀어 줄 수 있는 자.

마지막으로 하데스를 방심시켜 그를 위험에 빠뜨리게 만들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페르세포네……!”

침착하게 하데스의 말을 생각하고 판단한 아누비스가 진짜 순혈 의회 일원의 정체를 언급하며 읊조리자.

“아주 총명한 여인이지. 하하하!”

염라가 큰 웃음을 내지르며 말했다.

“타르타로스에 수감된 그 애송이들을 풀어 주고 하데스의 눈까지 훌륭하게 가렸으니까.”

타르타로스 감옥에 수감 되었던 아레스와 아폴론.

그 둘을 풀어 주기 위해 나타난 아르테미스와 그녀를 도와준 정체불명의 검은 존재.

타르타로스의 입구를 열어 아레스와 아폴론을 탈옥시킨 이는 다름 아닌 페르세포네였다.

게다가, 저승의 이변을 조사하려는 하데스를 은밀하게 방해하며 그의 조사를 지연시켰다.

하데스의 움직임을 미리 염라에게 알렸기에, 그동안 염라의 수상한 행보가 걸리지 않았던 것이었다.

“제길!”

-우우웅!

상황을 파악한 아누비스가 신력을 강하게 끌어 올리며 침음을 흘렸다.

빨리 염라를 처치하고 하데스의 성역에서 터진 사고를 수습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새로운 관리자의 힘을 받았다 하여, 나를 단번에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나?”

그런 아누비스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 염라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분의 힘을…… 태초의 힘을 부여받았노라!”

-콰아아아!

염라가 내뿜는 검은 안개에 붉은 기류가 섞이기 시작했다.

-크아아!

-으아! 으아악!

검은 안개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영혼들이 목이 찢어질 듯 비명을 내질렀고.

-우드드! 우득!

머리와 팔에 뿔과 칼날이 돋아나는 등 변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람 뼈의 형상에서, 마치 악마와 괴수의 뼈로 변하는 듯한 모습.

-쿠구!

검붉게 변한 안개와 금빛 기류가 일렁이는 미라의 팔이 재차 충돌했고.

-콰콰콰-! 콰쾅!

강렬한 신력의 폭발과 함께 염라와 아누비스가 동시에 물러났다.

어느 한쪽도 우위를 점하지 못한, 대등한 힘 싸움이 벌어진 듯한 모습.

아누비스는 다시 신력을 끌어 올리며 염라에게 공격을 가함과 동시에.

‘헤르메스! 문제가 발생했다!’

헤르메스가 전해 준 통신기를 이용해, 다른 이들에게 작금의 상황을 빠르게 전파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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