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3화
아테나가 전한 소식은 작금의 상황에 있어 반가운 희소식이었다.
바로.
[올림포스에 숨어있던 순혈 의회 일원을 붙잡았다.]
올림포스 내부에 숨어 암약하던 순혈 의회 일원을 붙잡았다는 소식이었다.
이전, 처용이 올림포스 측에 넘겨주었던 미끼.
아르테미스의 신관인 제니퍼 로스차일드를 이용한 함정이었다.
다름 아닌, 올림포스 내부에 숨어 있던 배신자를 노린 함정.
올림포스 내부의 배신자는 태룡사에서 벌어진 전쟁을 틈타, 제니퍼를 처리하려 했었다.
정확히 처용의 예상대로 움직였던 것이었다.
이 때문에 아테나와 헤르메스가 공들여 준비한 함정이 빛을 발휘했고 배신자를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정도면 저희가 이겼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처용이 생각보다 좋은 결과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적들에게 기습 공격을 받았음에도, 큰 피해 없이 잘 방어해 낸 상황.
추가로 숨어 있던 배신자들까지 잡아내었다.
게다가, 그저 단순한 배신자가 아닌, 개 중 세 명은 순혈 의회 일원.
적들에게 있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중 천사 둘은 즉결 처분되어 소멸했고 올림포스에 숨어 있던 이는 붙잡힌 상황.
작금의 결과는 가히 대승리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제, 에덴이 허무하게 멸망할 가능성은 사라진 셈인가?’
처용이 작금의 결과를 생각하며 속으로 읊조렸다.
회귀 전, 메타트론이 허무하게 소멸하고 에덴이 빠르게 무너져 멸망한 이유.
바로, 다섯 하늘 중 하나, 적지 않은 수의 대천사, 천사들이 배신자였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처용조차도 악마들을 극도로 혐오하는 천사 중 배신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일개 천사가 아닌 다섯 하늘 중 하나, 가브리엘이 배신자였다.
회귀 전에는, 가브리엘과 대천사들이 메타트론의 소멸을 돕고 에덴을 멸망시키는 데 일조한 듯 보였다.
“우선 주변을 정리하고 이번 사태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하시죠.”
생각을 마친 처용이 의견을 이야기하듯 말하자, 대다수의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상자들부터 중앙 병원으로 보내!”
“각 길드의 피해는 어느 정도-.”
진호를 포함한 스피릿 팀의 헌터들이 다른 헌터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며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태룡사에서 일어난 성지쟁탈전.
비프로스트를 이용한 악마들과 악신들의 침공이 끝나고 약 4시간이 지났을 무렵.
-응급의학과는 초기 진단 마치고 빨리 각 과에 넘겨!
-당장 수술 준비해!
가장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장소는 바로 태룡사의 중앙 병원이었다.
이종국 원장이 운영하는 병원.
거대한 전쟁이 있었던 만큼, 헌터들과 성좌들 중에서도 부상이 적지 않은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은, 헌터들 중에서 사망자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성좌들과 가장 뛰어난 헌터 집단인 스피릿 팀이 최전방에 섰기 때문이었다.
추가로 성지를 지키는 아타의 개미들 역시, 헌터들 앞에 서며 방패를 자처했다.
그렇기에 헌터들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나마 발생한 사망자들도, 마지막에 방어선을 뚫고 난입한 악마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었다.
병원에 몰려든 부상자들 역시 그 마지막 공격에 의해 큰 부상을 입은 이들이 대다수였다.
-저벅.
처용이 이종국의 병원 내부 복도를 걸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새하얀 복도를 쭉 걸어 나간 처용이 복도 끝에 도달했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러자 여덟 개의 침상이 구비된 넓고 하얀 방이 드러났다.
중앙에 새겨진 마법진과 각 침상 옆에는 여러 의료 기기들이 나열된 모습.
처용이 방 안으로 들어서자.
“여, 왔어?”
병실 문과 가장 가까운 침상에 앉아 있던 헌터.
진호가 처용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오른손을 들어 보이며 반가움을 드러냈다.
그런 진호를 시작으로 병상에 있던 몇몇 헌터들이 처용에게 반가움을 표했다.
지금 처용이 들어선 병동의 병실은 헌터 협회 직원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VIP 병동의 병실이었다.
이곳에는 태룡사를 지키기 위해 싸운 스피릿 팀의 헌터들이 입원해 있는 장소였다.
“아야야……!”
처용에게 반가움을 표한 진호가 들었던 오른팔에 통증을 느낀 듯,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고통을 흘리자.
“움직이지 마십시오. 아직 금 간 뼈가 붙지 않았으니.”
그의 옆에 있던 의사, 이종국이 진호의 팔을 살피며 말했다.
“다들 크게 다치진 않아 보여서 다행이군요.”
처용이 자신에게 반가움을 표한 진호와 몇몇 헌터를 향해 답하듯 말했다.
무려 본신 상태의 악신, 악마들과 맞서 싸웠던 이들.
아무리 혹독한 훈련을 받은 스피릿 팀의 헌터들이라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위험한 싸움이었다.
처용은 개인적으로 이번 싸움에서 스피릿 팀의 헌터 중 사망자가 없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무사히 살아남은 헌터들에게 안부를 전한 처용이 앞으로 계속 걸어 나갔고.
-저벅.
이내, 병실 오른쪽 끝의 침상 앞에 도달했다.
처용이 병상 앞에 서자.
“아, 직접 병문안까지 와 주실 필요는 없었는데요.”
그 병상 위에 누워있던 민머리의 환자, 태민이 작은 미소를 보이며 지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용은 병상에서 반쯤 상체를 일으킨 태민을 보며 작게 인상을 찌푸리고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들었습니다.”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비전투 인원이었던 태민이 왜 병실에 입원해 있는지.
그의 상태가 왜 좋지 않아 보이는지, 처용은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정확히는 태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미친년이 쳐들어왔었다고!
타라샤가 처용을 찾아와 직접 말해 주었었다.
태룡사 상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진상을 파악한 처용은 곧장 태민을 만나러 온 것이었다.
“이건 제 잘못입니다.”
처용이 태민을 향해 사과하듯 말했다.
태룡사 상단만큼은, 절대로 적들이 침입할 수 없다고 호언장담했었다.
이 때문에 태룡사 하단 입구에 모든 전력을 집중하고 적들을 저지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적 중 하나가 전쟁을 틈타 태룡사 상단에 침입했다.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다고 내 입으로 떠들어 놓고선……!’
처용이 자신을 탓하며 속으로 읊조렸다.
태룡사 상단에 침입한 적의 정체는 다름 아닌 헬레나 로스차일드.
심지어, 그저 단순한 적이 아니라 순혈 신교의 일원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올림포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신관.
올림포스에서 준비한 함정에 걸린 순혈 의회 일원이 바로 아프로디테였다.
순혈자로부터 헬레나 받은 명령은 바로 태룡전으로 통하는 입구를 찾는 것.
그 입구에 파멸의 힘을 흩뿌려 폭발시키는 것이었다.
다름 아닌, 악의 종주가 태룡전으로 침입할 수 있게 통로를 만드는 것.
이것이 순혈자들과 악의 종주가 준비한 계획이었다.
하마터면, 적들의 계획에 당할 뻔한 것을 태민이 저지해 낸 것이었다.
추가로 처용의 어머니, 연수를 구하고 사람들을 지킨 일까지.
이 모든 게 태민의 공로였다.
하지만, 태민은 그런 헬레나를 저지하기 위해, 신물의 위험한 권능까지 사용했다.
그 대가로.
“더 이상 레벨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태민은 육체에 심한 부하가 걸렸고 고칠 수 없는 병을 대가로 받았다.
그 대가 중 하나는 바로 ‘더 이상 헌터로서 레벨업을 할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저에게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처용 님.”
태민은 자신에게 미안함을 표하는 처용에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자신이 다친 것에 대해, 처용의 잘못은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머리도 신경 쓰지 마십시오. 오히려 전 머리가 가벼워져서 좋습니다.”
태민이 스스로가 받은 또 다른 대가를 언급하며 말을 이었다.
그가 받은 또 하나의 대가는, 바로 더 이상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제 일평생을 민머리로 지내야 한다는 것.
그 외에도, 스텟이 하락하는 등의 페널티가 더 있었지만, 가장 큰 건 앞서 언급한 두 가지였다.
“오히려, 죽을 뻔한 제가 살아난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태민이 안도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할 때.
-삐익…….
태민의 병상 앞에 유리아가 나타나며 울음소리를 내었다.
마치, 더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듯한 모습.
“제게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유리아 님 덕분에 제가 살았습니다.”
태민은 병상 앞에 나타난 유리아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원래 죽었어야 할 저를, 이 정도 페널티에 그치도록 도와주지 않았습니까?”
자신의 생명력을 대가로 바쳐 헬레나를 죽이려 했던 태민.
본래라면, 그 대가대로 태민은 모든 생명력을 잃고 죽었어야 했다.
그런 태민을 살린 것이 바로 유리아.
하지만, 태초룡인 유리아라고 해도, 아무 대가 없이 태민을 멀쩡한 모습으로 살릴 순 없었다.
태민이 목숨을 잃는 것 대신, 다른 대가를 바치도록 만든 것이었다.
그 결과가 작금의 상황이었다.
“계산적으로, 비전투 인원인 제가 희생해서 적들의 ‘핵심 전력’ 하나를 잡아냈습니다. 이건 이득이죠.”
태민은 오히려 자신이 크게 다치는 것으로 적의 핵심 인력을 잡아내 이득이라 말했다.
그 말에.
“이사님 역시, 저희의 ‘핵심 전력’입니다.”
처용은 태민 또한 이 성지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라는 말을 언급했다.
“꼭 전투력이 높아야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닙니다.”
“그래 맞아! 이사님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데!”
이어지는 처용의 말에 멀리서 듣고 있던 진호가 목소리를 높이며 소리쳤다.
“이사님 없으면 태룡시랑 헌터 협회가 깔끔하게 안 돌아갈 겁니다.”
“협회장님이랑 이사님 없으면, 헌터 협회 망합니다!”
다른 헌터들 역시 말을 잇듯 목소리를 높였다.
모든 이들이 태민은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 말하고 있었다.
“하하, 보람이 느껴지는군요.”
태민이 헌터들의 말에 보람찬 감정을 드러내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
“저, 처용 님.”
-저벅.
진호의 진료를 보던 이종국이 처용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무슨 일이시죠?”
처용은 환자인 태민이 아닌, 자신을 찾은 이종국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그러자.
“의학의 신님께서 저와. 처용 님을 찾으십니다. 함께 와 달라고 하시더군요.”
이종국이 처용을 찾은 이유를 이야기했다.
조금 전, 그가 사용하는 병원 진료 태블릿을 통해 온 연락이었다.
“의학의 신께서요?”
처용은 의학의 신이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잠시 의문을 표하고는.
“가죠.”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이종국의 말에 답했다.
태민의 병문안과 그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의학의 신을 만난 다음에 처리해도 되었으니까.
“지금 병원 밖에 있다고 하시더군요.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같이-.”
이종국이 병실 중앙에 설치된 마법진, 텔레포트 장치를 가리키며 말하자.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우우웅.
처용은 태룡전의 열쇠를 꺼내 들고 게이트를 열며 답했다.
처용은 성지 내부에선 어디든 오가고 이동할 수 있었다.
굳이 마법진을 통해 복잡하게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우우웅! 우웅!
태룡전의 열쇠로 연 게이트를 통해 처용과 이종국이 병원 밖으로 이동하자.
-이쪽은 치료 끝났어.
-손이 비는 힐러 클래스 헌터들은 이쪽에 도움을-!
병원 앞, 넓은 공터에는 많은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병원의 큰 치료까지는 필요 없어 보이는, 가벼운 부상을 입은 헌터들.
그런 그들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니는 힐러 클래스 헌터들과 의사, 간호사들이 보였다.
그런 그들의 중심에는.
[……다 끝났네.]
-화아아!
신력을 내뿜으며 치료의 권능을 발동하는 의학의 신이 있었다.
한 번에 많은 수의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모습.
-감사합니다. 의학의 신님.
-고맙습니다.
상처가 치유된 헌터들이 의학의 신을 향해 감사를 전하고 의학의 신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왔는가?]
치료를 마친 의학의 신이 처용과 이종국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종국이 그 말에 대답하듯 고개를 숙여 보였고.
“원장님은 몰라도, 저는 왜 찾으셨나요?”
처용은 의학의 신을 향해 본론을 물었다.
이곳 병원에 거주하는 그가 이종국만이 아닌, 자신을 찾을 만한 이유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었으니까.
[허허, 내 마지막으로 자네들의 얼굴을 좀 보고 싶었을 뿐이네.]
의학의 신이 처용의 말에 작은 웃음을 흘리며 말하자.
“마지막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종국이 의학의 신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며 의문을 표했다.
“……마지막?”
처용 역시 의문을 표하며 의학이 신이 한 말을 읊조렸다.
그리고.
‘방금, 뭐지?’
의학의 신을 응시하던 처용이 순간 눈을 찌푸리며 속으로 의문을 표했다.
지금 처용이 바라보는 의학의 신의 모습이.
-스르륵. 스륵.
찰나의 순간 오류가 일어난 홀로그램처럼 흔들려 보였기 때문이었다.
처용은 의학의 신이 했던 말을 다시 상기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설마!”
이내 무언가를 떠올린 듯, 인상이 점점 일그러지며 경악 어린 목소리를 흘렸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