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8화
[자! 즐거운 전면전의 시간입니다!]
-쾅!
악의 종주에게 부름을 받고 나타난 로키가 오른손에 쥔 궁니르를 땅에 박으며 소리치자.
-우우웅! 우웅!
궁니르의 창날 아래에 박힌, 녹색 눈동자가 번들거리는 붉은 보석.
배반의 핵에서 짙은 마기가 흘러나왔다.
그 마기에 반응하듯, 로키의 뒤에 나타난 새하얀 기둥, 비프로스트가 옅게 진동했다.
그리고.
-저벅. 저벅.
어둠 속에서 다양한 형태와 크기를 지닌 인영들과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어어.
-크으!
멸망한 세계에서 양산되는 검은 괴물들과.
-캬아아!
-크르!
판데모니움에서 서식하는 위험한 야생 마수들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화아! 화악!
검은 안개 속에서 대악마들과 악마의 군세들이 추가로 모습을 드러냈다.
[디아블로와 메피스토는 왜 없는 것이냐?]
대악마들의 가장 앞에 나타난 바알이 로키를 응시하며 물었다.
지금 나타난 악마들의 군세는 판데모니움의 모든 전력이 아니었다.
바알을 포함한 대악마 스무 명과 그 휘하의 군세들 일부가 전부였다.
[저희가 점령한 세계와 판데모니움의 모든 전력을 동시에 움직이는 건 무리입니다. 바알 님.]
로키가 바알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제아무리 비프로스트라 해도, 멸망한 세계의 군세와 판데모니움의 군세를 단번에 옮긴 순 없는 것.
[시간을 들여 문을 계속 개방하고 있으니, 곧 모두 도달할 것입니다.]
[서둘러라.]
로키의 대답에 바알이 서두르라고 독촉하듯 답하고는.
[위대한 존재께 저 성지를 점령해 바쳐라!]
-화아아!
강렬한 어둠을 내뿜음과 동시에 손으로 태룡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어어!
-크어!
가장 먼저, 멸망한 세계에서 양산되는 검은 군세가 움직였다.
태룡사의 주변은 거대한 호수가 자리한 상황.
동쪽 중앙의 거대한 다리를 통하지 않고는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지형이었다.
하지만, 검은 군세의 발걸음이 호수 위에 닿자.
-철퍽. 철푸덕! 슈르륵!
맑은 호숫물이 검고 질척이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마치, 검은 대지로 변하는 듯한 모습.
검은 늪지대처럼 변색된 물은, 검은 군세를 빠뜨리지 않고 그들을 지지하듯 단단하게 변했다.
깊고 넓은 호수가 검은 군세의 전진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는 듯한 모습.
태룡사가 검은 군세에 포위당에 사방에서 공격받는 형태로 보였다.
그때, 태룡사 주변에 흐르는 거대한 호수.
-쏴아! 콰아아아-!
중앙의 다리와 조금 떨어진 곳의 물결이 들썩이며 하늘 높이 솟구치더니.
-휘릭! 쾅! 콰콰쾅!
건물 두께만 한 검은 기둥 여덟 개가 나타나 채찍처럼 휘어지며 주변 일대를 휩쓸었다.
-쾅! 파사사-! 콰콰!
호수 위를 검은 대지로 오염시키며 나아가던 검은 군세가 육중한 공격에 휩쓸리며 짓이겨지고 터져 나갔다.
-쿠화아아!
호수 속에서 태룡사를 습격하려던 검은 군세를 휩쓸며 나타난 존재는 다름 아닌 거대한 검은 크라켄.
태룡사의 수문장이자 에인션트 크라켄인 데비였다.
“이 새끼들이 어디서 남의 집에 함부로 쳐들어와!?”
데비와 함께 연아가 데비 머리 위로 나타나 소리쳤고.
-쏴아! 콰콰! 쾅!
태룡사 입구의 다리 인근, 데비와 연아가 나타난 지점의 반대편.
그곳 호수의 물결이 크게 솟구쳐 오르며 그곳을 건너려던 검은 군세가 파도에 휩쓸렸다.
솟구친 파도 속에서 집채만 한 집게와 갑각류의 다리들이 나타나 육중한 소음을 내며 휘둘러졌고.
-쾅! 쿠콰콰!
파도에 휩쓸려 밀려난 검은 군세와 마수들을 짓이기고 휩쓸며 지나갔다.
호수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100미터 높이의 거대한 형체.
그것은 바로 카투라의 분신이었다.
심지어 하나가 아닌.
-쿠구!
-쿠구구!
두 개의 분신이 나란히 나타났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곳을 지나갈 수 없다!]
-스릉!
두 거대 괴수 사이로 해전무신이 환도를 뽑아 든 채 나타나 소리쳤다.
호수 위를 걸어 나가려는 검은 군대가 거대 괴수들에게 가로막히자.
[포르네우스, 포칼로르.]
바알이 두 대악마의 이름을 불렀다.
그 부름에.
-샥! 탓!
두 대악마가 바알의 뒤에 나타나 부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판데모니움 서열 30위 수심(水深)의 대악마 포르네우스.
청색의 거친 비늘과 아귀처럼 긴 이빨이 이리저리 튀어나온 모습의 대악마.
마치 리자드맨과 비슷한 모습에 아귀의 얼굴 가진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있는 온몸에 따개비가 가득 붙어 갑옷을 두른 듯 보이는 대악마.
익사체처럼 퉁퉁 불어 터진 머리 위에 해초가 머리카락처럼 길게 자라난 모습.
판데모니움 서열 41위 익사(溺死)의 대악마 포칼로르였다.
두 대악마 모두 판데모니움의 거친 지형 중 하나인, 검은 바다에 성역을 두어 그곳을 지배하는 이들이었다.
[권속들을 이끌고 활로를 열어라.]
바알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지자.
-탓! 촤아! 촤아아!
포르네우스와 포칼로르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고 태룡담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의 휘하에 있는 권속 악마들.
포르네우스처럼 기괴한 심해어의 얼굴에 리자드맨의 몸집을 지닌 악마들이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포칼로르의 권속 악마들인 따개비가 붙은 악령처럼 보이는 이들 역시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태룡사 주변에 흐르는 호수 밑을 장악할 생각인 듯 보였다.
-촤악! 쏴아아! 쏴아!
포르네우스와 포칼로르를 포함한 악마들이 호수 밑, 깊은 수심을 향해 쭉 나아갔다.
호수 밑바닥에 마기를 퍼트려 그들의 영역으로 만들고 점차 호수를 장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엄청 깊군, 심해에 가까울 정도로다.]
포르네우스가 상당히 깊은 호수의 수심을 느끼며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대악마들이 나름 속도를 내며 나아가고 있음에도, 도저히 바닥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해저가 없다고 전해지는 전설 속의 바다, 블루홀과 같은 모습이었다.
대악마들과 그 권속들이 호수 바닥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때.
-후우우! 화아!
주변이 확 어두워지며, 머리 위에 은은하게 보였던 수면 위의 모습이 일순간 사라졌다.
[무슨 일이지?]
[……함정이다. 호수 밑에도 결계가 있었군.]
포르네우스의 말에 답하는 포칼로르가 답하자.
[수면 밑으로 올 것을 예상하고 미리 결계를 펼쳤었다고?]
포르네우스가 주변을 자세히 살피며 말했다.
갑자기 사라진 수면 위의 모습.
마치 빛조차 들지 않는 심해 속 가장 깊은 장소에 들어선 듯한 분위기.
게다가, 주변에 짙게 퍼진 묵직하고 고요한 기운.
상당한 신격을 지닌 존재가 만든 결계였다.
포르네우스와 포칼로르가 주변을 경계하며 말할 때.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다. 네놈들이 나의 권역에 제 발로 들어온 것이지.]
-쿠우우!
묵직한 울음소리와 더불어, 심해 공간 전체를 진동시키는 목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쿠구구구구!
칠흑처럼 어두웠던 발밑 심해 속에서 무언가가 점점 가까워지는 듯 보였다.
마치, 심해의 밑바닥이 스스로 움직여 다가오는 듯한 모습.
그리고.
-쩌저적! 지잉! 지이잉!
심해의 지면에 지진이 일어난 듯, 일부분이 길게 갈라지며 보랏빛으로 빛나는 눈동자들이 드러났다.
심해의 밑바닥처럼 보였던 거대한 무언가는 다름 아닌, 살아 있는 생명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생명체가 보랏빛 눈동자를 치켜뜨며 모습을 드러내자.
[카…… 카투라 – 크타니드.]
수심의 대악마, 포르네우스가 침음을 흘리며 읊조렸다.
행성에 버금갈 정도로 거대한 생명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한 것.
[이, 이렇게 무식할 정도로 크다고는……!]
익사의 대악마 포칼로드 역시 떨리는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대악마인 그들조차 자신들이 사는 세계와 맞먹는 크기의 괴수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제아무리 검은 바다를 지배하는 대악마들이라 해도.
바다에서는 상위 서열의 대악마도 이길 수 있다 자신하는 그들조차도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게다가.
[판데모니움에서 나름 물장구 좀 쳐 본 놈들 같은데-.]
-후우우!
카투라가 보랏빛 안광을 빛내며, 싸늘하게 말하자, 심해 속에서 휘몰아치는 기류가 더욱 무거워졌다.
마치, 심해 속에서 가해지는 물의 압력이 점점 배가 되는 듯한 모습.
[과연 네놈들이 ‘나의 심해’ 속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태초의 마수.
태초신이 최초의 우주를 만들 때부터 탄생해 지금껏 살아온 존재.
신들보다도, 대악마들보다도 오랜 세월을 살아온 고대의 존재가 내재된 힘을 개방하자.
-쿠구! 쿠우우우!
심해의 압력이 점점 더 무거워지며 주변 일대를 강하게 짓눌렀다.
-캬아아!
-크…… 으윽!
포르네우스와 포칼로르의 권속들 중 일부는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이들까지 나타났다.
싸우기는커녕, 그대로 두면 압사당해 죽을 듯한 모습.
그나마 그들 중에서도 나름 강한 권속들만이 카투라가 가하는 심해의 압력 속에서 버티고 있었다.
[저것을 잡아 죽여 그분께 바치리라!]
-차카캉!
카투라의 압력을 버티던 수심의 대악마, 포르네우스가 손아귀에 창을 소환하며 소리쳤다.
네 개의 톱날 작살 날이 사각형을 그리며 나열되어있는 창.
마치, 바다에서 거대한 물고기를 잡기 위한 용도로 쓸 듯한 투창이었다.
-쿠구구! 쏴아아!
포르네우스가 작살을 움켜쥐고는, 지느러미가 나 있는 꼬리를 강하게 휘어 치며 앞으로 쇄도했다.
마기를 내뿜어 카투라가 가하는 압력을 견디고 앞으로 돌진하는 모습.
[나는 수심의 대악마! 물이 네년만의 권역인 줄 아느냐!]
-쏴아! 차카캉!
포르네우스가 마기를 휘감은 창날을 앞세워 돌진하자.
-쏴아! 쏴아아!
그의 권속 악마들 중 일부가 포르네우스를 돕기 위해 투창을 치켜들며 카투라를 향해 돌진해 나갔다.
[어리석긴.]
-쿠구! 쩌저저적!
그 모습을 본 카투라가 여덟 개의 눈이 달린 거대한 머리의 입을 크게 벌렸다.
-위이이잉!
이미 기운을 모으고 있었던 듯, 입안에서 새하얀 섬광이 시야를 흐리듯, 빛을 발광했다.
갑작스러운 빛에 포르네우스가 눈가를 찌푸렸고.
[이-!]
-촤아! 샤아악!
다급하게 꼬리지느러미를 강하게 올려 쳐 돌진 방향을 틀었다.
괴수의 입안에서 모인 에너지를 뚫고 나갈 수 없다고 판단한 것.
포르네우스가 재빠른 판단으로 돌진 방향을 틀어버린 순간.
-!!
카투라의 입안에서 모여든 새하얀 섬광, 종말의 백야가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갔다.
[크으-!]
직감적으로 돌진 방향을 틀어 비켜선 포르네우스가 침음을 흘리며 더 물러났다.
미리 카투라의 공격을 눈치채고 돌진 방향을 틀었음에도.
-치이이-!
그의 오른팔과 오른쪽 허벅지 비늘이 불에 그을린 듯, 손상되었다.
공격을 피했음에도, 그 여파에 데미지를 입은 것.
빗맞았음에도 대악마가 데미지를 입은 상황.
당연히.
-파사사……!
그를 따라 카투라를 향해 돌진했던 권속 악마들.
카투라가 내뿜은 종말의 백야를 피하지 못한 이들은, 새까만 가루가 된 채 사그라졌다.
[직격당하면 끝장이군.]
그 모습을 본 포칼로르가 포르네우스를 향해 다가오며 침음을 흘렸고.
[……제길, 거대한 어둠께서 성지를 파괴하실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우웅. 스스스!
포르네우스가 팔과 다리에 마기를 둘러 상처를 재생시키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거대한 어둠의 대악마도 이번만큼은 쉽지 않을 거야.]
자신을 상대로 시간을 벌려는 대악마들을 본 카투라가 비웃음을 흘리고는.
[그 전에, 조크 – 크타니드의 졸개들인 네놈들을 모조리 찢어 주마.]
-우웅! 쿠구구!
강렬한 신력의 파동을 흩뿌리며 싸늘하게 말했다.
***
바알의 명령을 받고 태룡사의 호수를 장악하기 위해 나선 두 대악마.
포르네우스와 포칼로르, 그들의 권속들이 호수를 장악하기 위해 움직였을 때.
-저벅.
바알이 눈앞에 보이는 다리를 향해 발걸음을 뻗으며 나아갔다.
다른 두 삼천마와 대악마들, 천교, 검은 별들이 도착하기 전에, 나서려는 듯한 모습.
하지만.
-탁.
바알의 발이 태룡사로 향하는 다리 위에 닿은 순간.
-화아아.
돌연, 바알 주변에 어둠이 솟구치며 그를 휘감았다.
그가 다루는 어둠이 아닌, 다른 상위 신격의 격을 지닌 다른 이의 어둠.
[어딜!]
바알이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을 다른 공간으로 보내려는 힘에 저항하려 했지만.
[소용없어.]
차가운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주변 일대가 별빛으로 반짝이는 우주와 같은 공간이 펼쳐졌다.
[오랜만이야. 바알.]
-탓.
우주와 같은 공간으로 이동된 바알의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전장에서 바알을 격리시켜 끌어들인 이는 다름 아닌, 전 안개의 대악마.
태초의 마수 중 하나인 니알라 크타니드였다.
[네년!]
-우웅! 콰아아아!
바알이 니알라의 얼굴을 보고는 인상을 확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그녀가 펼친 결계 공간을 부술 목적인지 강렬한 어둠을 내뿜으며 주변을 크게 휩쓸었다.
그러나.
-쿵! 쿠구!
바알의 강력한 어둠에도, 공간이 흔들리기만 할 뿐, 금조차 가지 않았다.
[소용없다고 했잖아. 여기는 단순히 내 힘으로만 만들어진 결계가 아니거든?]
옅은 긴장감을 보였던 니알라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우주 공간 속 반짝이는 별빛들 사이로 보이는 금빛의 기류.
황금빛 은하가 은은하게 흐르는 듯한 모습.
그녀가 바알을 상대로 시간을 벌기 위해 구축한 이 공간은, 홀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태룡전의 새로운 관리자인 황룡의 도움을 받아 만든 것이었다.
[나를 상대로 시간을 번다라? 그렇다 하여-.]
-콰아아아!
니알라의 의도를 파악한 바알이 더 강렬한 어둠을 내뿜고는.
[네놈들이 얼마나 버틸 것 같으냐!]
-화아! 콰드드득!
검은 뼈로 이루어진 열 개의 팔을 소환하며 소리쳤다.
[그분께서 직접 나선 이상, 나약한 인간들과 신격 놈들은 모두 파멸하리라!]
[……내가 이곳에 오면서 많이 놀랐거든 바알?]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뿜는 바알을 본 니알라가 기세를 끌어 올리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성지에 있는 이들의 전력을 무시했다간, 큰코다칠 거야.]
니알라의 말이 끝난 순간.
-후우우-!
바알이 만들어 낸 열 개의 거대한 검은 팔들이 니알라를 향해 쇄도했고.
-콰콰콰!
니알라에게서 피어난, 별빛이 반짝이고 금빛의 기류가 일렁이는 어둠이 그녀를 보호하듯 감쌌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