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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585화 (585/726)

#585화

[혹시, 누군가에게서 불쾌한 느낌을 받은 적 없어? 꺼림칙하다거나…… 하는?]

티타니아가 처용에게 질문을 이었다.

요정의 가루에 담긴 환몽의 힘을 이용한 정신과 사고의 조작.

밤의 일족 중 하나, 몽마들이 즐겨 사용하는 어둠 속성의 환영과는 조금 다른 개념의 힘이었다.

몽마들이 어둠 계열의 환영과 현혹 등, 부정적인 감정이 담긴 정신지배 계열의 힘을 사용한다면.

요정들은 어둠이 아닌, 빛 계열의 환영, 포만, 행복 등의 착란을 일으키는 조금 긍정적인 계열의 힘을 사용했다.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듯한 능력.

다만.

[요정들을 강제로 잡아 날개를 뜯기까지 했으니, 분명 소름이 끼치거나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졌을 거야.]

티타니아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환몽의 숲에서 티타니아가 찾아낸 흔적 중 하나는 바로 요정들을 강제로 잡아간 흔적이었다.

개중에는 요정의 뜯어진 날개 조각이나 머리카락 같은 잔해도 발견했다.

본래 요정들은 긍정적인 감정들을 증폭시켜 대상의 사고를 조작하거나, 환영을 보게 만든다.

하지만, 강제로 요정들을 잡거나 죽였던 만큼, 본래 요정의 기운이 변질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요정을 잡아간 이가 좋지 않은 목적을 가졌다면, 더더욱 그 기운이 불쾌하게 변했으리라 확신했다.

“제게 불쾌함을 선사한 적이 한둘이 아니라서…… 확답을 드리지 못하겠군요.”

티타니아의 말에 처용이 곰곰이 생각하며 답했다.

지금껏 처용이 만난 모든 적들은 대부분 처용에게 있어 불쾌한 존재들이었다.

마인, 대악마, 배신자, 순혈자 등등.

이들 중, 전투 도중에 요정의 가루를 이용한 공격을 펼친 이들이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요정의 가루를 쓴 이가 있다 해도, 특정할 수 없었다.

선인의 육체를 지닌 처용은 어지간한 환각과 정신지배는 통하지 않는다.

심지어 지금은 신명까지 얻어 더욱 정신이 견고해진 상태.

신명을 얻기 전이라 해도, 처용은 정신지배에 당한 적은 없었다.

딱 하나…… 악몽의 미궁에 갇혔을 때 재현된, ‘트라우마’를 제외하고.

물론, 악몽의 미궁이 보여준 환영 또한, 스스로의 힘으로 부숴 헤쳐 나왔다.

“제가 만났던 적들 중에는 특정하기가 힘듭니다.”

지금껏 만난 적들을 쭉 생각해본 처용이 말을 잇자.

[으으……! 내가 조금 더 빨리 여길 찾아왔었더라면, 너를 만났더라면 범인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티타니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을 탓하듯 말했다.

[1년? 아니 그것도 안 된 흔적인데…….]

“정확히 제게 무슨 흔적이 있는지, 알아보실 수 있으십니까?”

처용은 단서를 좁히기 위해 티타니아에게 다시 물었다.

[네게 직접 요정의 가루를 뿌린 건 아니야. 간접적…… 아! 그래, 인간들의 말로는 향수 같아!]

티타니아가 처용에게서 느껴지는 희미한 흔적을 느끼고 분석하는 듯, 눈을 감으며 설명했다.

“향수라…… 그렇다면 더더욱 짐작하기가 힘들군요.”

처용은 티타니아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부정적인 의견을 표했다.

자신에게 위험한 향수를 뿌리고 접근한 이는 없었을뿐더러.

“독을 품은 향 중에는 냄새와 형태가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으니까요.”

설사, 적이 향수를 뿌리고 자신에게 접근했다 해도 냄새와 형태를 없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환각이나 세뇌를 거는 향 역시 ‘독’의 일종.

처용은 독마의 고유 속성인 무색무취의 독, 무형지독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까.

[단서를 찾는가 싶었는데…….]

티타니아가 실망스러움이 담긴 목소리를 읊조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티타니아, 요정들이 위험에 처한 상황인가요?]

보살이 티타니아를 바라보며 사정을 묻자.

[이미 반 이상의 아이들이 사라졌어, 내가 조치를 취해 놓긴 했지만, 안심이 되지 않아.]

티타니아가 작금 요정들이 어떤 상황인지를 이야기했다.

누군가가 주기적으로 환몽의 숲에 침입하여 요정들을 납치한 정황을 밝혀냈다.

그러나 그 범인을 찾지 못한 상황.

게다가 요정들을 잡아간 범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고 티타니아의 눈을 피해 계속 요정들을 잡아갔다.

벌써 환몽의 숲에 거주하던 요정들이 반 이상이 사라져 버린 상황.

게다가.

[얼마 전에는 나까지 노려졌었어.]

이젠 요정들에 이어 티타니아까지 노려지는 상황이었다.

물론, 티타니아가 쉽게 당할 정도로 만만한 신격은 아니었다.

그녀 역시 세계수와 같은 존재, 수많은 세월을 살아온 신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티타니아 혼자서 해결하기엔 어려운 상황이었다.

“요정 여왕 모르게 요정들을 잡아갈 정도면, 무시할 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처용이 티타니아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요정 여왕 모르게 요정들을 잡아가고 티타니아까지 노릴 수 있는 존재.

심지어 티타니아까지 노리면서 제 정치를 감추는 존재가 적이었다.

‘도대체…… 누구지?’

처용이 생각에 잠기며 속으로 읊조렸다.

요정들을 노릴만한 적들, 요정들을 잡아 이득을 취할 만한 악신.

요정의 가루를 이용해 자신을 노리기도 했었던 존재.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들은 몇몇 있었지만, 누구인지 특정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나와 마주쳤던 인간…… 아니 그걸 인간이라고 해야 하나?]

티타니아가 자신을 노렸던 적을 떠올리며 읊조리듯 말했다.

“인간이요?”

인간이라는 말에 처용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고.

[너와 비슷한 느낌을 지닌 인간, 아주 오랜 시간 수련한 인간? 이라고 해야 하나? 인간을 벗어난 인간?]

티타니아가 자신이 적을 보고 느낀 점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그 말에 처용이 의문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아! 보여 주면 되겠네, 나랑 마주친 그 녀석을! 얼굴을 가리고 있긴 했지만…….]

티타니아가 처용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환몽의 기억.]

-샤라라. 화아!

반짝이는 가루들이 티타니아의 날개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와 처용에게 향했다.

-스르르……!

주변의 환경이 점차 바뀌며 형광빛이 반짝이는 어두운 숲이 펼쳐졌고.

-화아아!

숲속에서 또 다른 티타니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보이는 환경은 티타니아가 펼친 환몽의 기억.

요정의 능력, 환몽의 힘을 활용해 자신의 기억을 재현하는 티타니아의 권능이었다.

환영 속에서 나타난 티타니아는 자신이 뛰쳐나온 숲 방향을 바라보며 인상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감히 나를 노리다니! 너 누구야!?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담아 소리치는 환영 속 티타니아.

그리고.

-저벅.

숲속에서 검은 복면을 쓴 이가 오른손에 한 자루 검을 쥔 채 걸어 나왔다.

-악감정은 없다. 마물이여.

검은 복면의 사내가 잔잔한 목소리를 흘리고는.

-스르릉. 우웅.

칼날에 선명한 강기를 형성하며 발도 자세를 취했다.

처용이 그 모습을 본 순간.

“뭐!?”

-으드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주먹을 쥐며 소리쳤다.

저도 모르게 경악을 내뱉은 듯한 모습.

[뭐, 뭐야? 무슨 일인데?]

제 기억을 재현하여 환영을 만들어 낸 티타니아가 갑작스러운 처용의 행동에 당황한 듯 물었다.

“…….”

처용은 티타니아의 질문을 듣지 못한 듯, 환영 속에서 나타난 복면의 남자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스릉. 사아악-!

강기가 서린 칼날이 부드럽게 가로로 그어지자, 세상이 둘러 나누어진 듯, 얇은 선이 그어졌다.

-촤자자자-!

두꺼운 나무들이 그 일 검에 모조리 잘려 나가며 허공으로 떠올랐고.

-이익!

복면의 사내가 내지른 발도를 피한 티타니아가 신력과 가루를 흩뿌리며 땅에 양손을 뻗었다.

-감히 내 숲을!

티타니아의 신력이 땅에 스며들고 요정의 가루가 주변에 퍼지자.

-쿠구! 촤자자자자!

잘려 나갔던 나무들의 단면에서 새로운 줄기가 뻗어 나가더니, 복면의 사내를 향해 쇄도했다.

-스릉! 촤작! 촤자작!

복면의 사내가 다가오는 넝쿨과 뿌리들을 단번에 베며 없애 버릴 때.

-쿠구구! 쿠구!

티타니아의 신력을 받은 땅거죽이 크게 들썩이며 높게 솟구쳤다.

-크아아!

숲을 이루는 땅과 바위, 나무들이 이리저리 얽혀 만들어진 듯한 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길이만 따져도 백 미터에 달할 법한 크기의 도마뱀 괴수들.

게다가.

-쿠구구! 캬아! 크아아!

땅거죽이 뒤집히며 나타난 괴수는 하나가 아닌, 수십 마리였다.

마치, 이 숲 전체가 복면의 사내를 적대하는 듯한 모습.

-마물들의 주인이라…… 만만치 않군.

복면의 사내는 그 모습을 침착하게 둘러보고는.

-큰 소란은 자제해달라 했으니, 어쩔 수 없군.

-탓!

도망치려는 듯, 다리를 뒤로 구르며 물러났다.

-거기서!

그런 복면의 사내를, 티타니아가 소리치며 추적했고.

-캬아아! 크아!

괴수들이 도망치는 복면의 사내를 향해, 두꺼운 팔을 크게 휘두르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사각! 촤아아!

복면의 사내가 추적해오는 괴수들을 단칼에 베어 버리며 도망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화아아……!

티타니아가 보여주는 환영이 끝났다.

환영이 끝났음에도.

“왜…… 왜……!”

처용은 환영 속 복면의 사내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며 읊조렸다.

-우우웅!

감정의 동요를 드러내듯, 짙은 신력까지 스멀스멀 내뿜고 있었다.

티타니아가 보여준 환영 속에서 나타난 복면의 사내.

그의 검날에 일렁이는 선명한 강기.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검술 자세.

복면 안에서 울린, 처용에게 있어 아주 익숙한 목소리까지.

그 복면의 사내는.

‘왜…… 왜, 환몽의 숲을 공격한 거냐…….’

처용에게 있어 아주 특별한 인연이었던 존재 중 하나였다.

회귀 전, 저항군들에게 있어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고도 불렸던 검술의 달인.

‘검성!’

다름 아닌, ‘검성(劍聖)’이었다.

무림에 있어야 할 검성이 왜 환몽에 숲에 나타났는가?

무슨 이유로 요정들을, 티타니아를 노렸는가?

-큰 소란은 자제해달라 했으니, 어쩔 수 없군.

환영 속 검성이 읊조린 말.

처용이 볼 때, 그는 누군가의 부탁으로 움직인 듯 보였다.

그렇다면, 검성을 움직이도록 할 만한 존재는 누가 있는가?

‘……설마.’

생각을 거듭한 처용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아직 무림과 연결된 세계급 게이트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무림의 상황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

어쩌면, 상상하기 싫은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계승자, 그는…….]

처용과 마찬가지로 환영을 본 보살이 처용을 바라보며 말을 흐렸다.

처용이 전한 미래의 지식과 정보.

그 속에서 봤었던 처용의 가장 믿음직한 동료 중 하나.

보살 역시 검성을 알아보았기에, 처용의 동요 어린 심정을 공감했다.

[뭔데? 누군지 알아? 누군데!]

처용과 보살의 모습을 번갈아 본 티타니아가 궁금한 듯 물었다.

[미안해요. 티타니아. 내가 모든 걸 말한 순 없지만…… 저자는 당신을 공격할 만한 이가 아닌데…….]

보살이 차마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곤란하다는 듯, 티타니아의 질문에 말을 흐리며 답했다.

그리고.

“티타니아 님, 저자가 또 나타난 적이 있습니까?”

처용이 동요 어린 심정을 가라앉히며 침착하게 물었다.

[저 때 이후론, 환몽의 숲에 나타난 적이 없었어.]

티타니아가 한 번 마찰을 일으킨 이후로는 없었다고 답하자.

“……우선, 요정들부터 안전한 곳으로 거처를 옮기시죠.”

잠시 생각을 이으며 침묵한 처용이 티타니아를 향해 말했다.

당장, 검성을 만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따지고 물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검성에 대한 건, 추후 무림 세계가 나타났을 때, 그를 직접 찾아가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적들에게 노려지는 요정들에 대한 조치가 먼저라 생각했다.

“저자에 대해서 짐작되는 바가 있습니다. 그러니…… 기다려 주시죠.”

처용은 검성에 대해 전부 말하지 못하고 자신이 추후 정확하게 알아본다고 말을 이었다.

[엘그드라실과 내가 도와줄게요. 티타니아.]

보살 역시, 요정들에게 직면한 문제로 주제를 돌리듯 티타니아를 도와주겠다며 말했다.

[……그래, 내가 했어야 할 부탁을 먼저 들어주기도 했으니까.]

티타니아는 자신을 습격한 이의 정체를 더 묻지 않고.

[칫, 올리버가 내 계약자만 되었어도…….]

불만 어린 목소리를 읊조리며 말을 이었다.

아서의 이름을 읊조리는 티타니아의 말에.

[전대 신관의 유산을 물려받았음에도, 그대와 파장이 맞지 않나 보군요.]

보살이 티타니아의 전대 신관을 언급하며 말했다.

[인간 중에는, 우리 요정의 자연력과 파장이 맞는 이가 드무니까.]

티타니아가 작은 한숨을 쉬며 보살의 말에 답했다.

과거, 요정 여왕인 티타니아의 계약자였던 위대한 왕이 있었다.

그런, 요정 여왕의 축복을 받은 위대한 왕의 유산이 잠든 곳.

그곳이 ‘아서왕의 시련’이라는 S급 던전으로 변모되어 나타났다.

단 한 명만 입장할 수 있다는 까다로운 조건 덕에, S급 헌터들도 클리어하기가 어려웠던 던전.

그런 던전을 지금의 아서, 올리버 프렌시브가 클리어하는 데 성공했다.

그 보상으로 받은 건 다름 아닌, 전대 티타니아의 신관이 남긴 그의 모든 유산이었다.

아서가 다른 A급 헌터들보다도 눈에 띄게 강했던 이유도 그 유산 덕이었다.

하지만, 뛰어난 헌터인 아서조차도 티타니아와는 파장이 맞지 않았는지, 그녀의 신관이 될 수는 없었다.

[엘그드라실이 먼저 차지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그대를 독점하는 거였는데…….]

티타니아가 보살을 흘끗 응시하며 아쉽다는 듯 말하자.

“자연의 기운이 강한 인간…….”

[마침, 저랑 같은 생각을 했군요. 계승자.]

처용과 보살이 서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린 듯한 모습.

요정은 이종족이자 신수이기도 한 존재.

드래곤과 유사한 형태의 종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요정들의 계약자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맑은 자연의 기운을 타고나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있었다.

그 대상이 요정 여왕이라면, 더욱 까다로우리라.

인간 중에서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룬티르 일족.”

처용의 휘하에 들어온 이들.

태초신이 선천적 선인인 보살을 본떠 만들었다는 인간들.

태생적으로 자연의 기운을 풍만하게 타고난 룬티르 일족.

카란디아나 청이 같은 아이들이라면, 요정들과 파장이 맞을 가능성이 높았다.

처용은 당장이라도 티타니아와 룬티르 일족들을 서로 만나게 해주고 싶었지만.

“시간이 되었군요.”

지금은 그러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마침.

-우웅.

태룡사 전체에 옅은 금빛 파동이 퍼지며 황룡의 부름이 울리고 있었다.

[이 일은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어 봐야겠습니다.]

보살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고.

“가시죠.”

-탓.

처용이 태룡산의 위, 운룡전을 바라보고는 앞장서 나아갔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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