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3화
오시리스가 순혈 의회의 정보를 가져온 지 사흘이 지난 시점.
-우우웅.
성지, 태룡사의 중턱, 태룡시와 조금 떨어진 장소.
한국 헌터 협회 지부 앞에 게이트가 열리고는.
“여, 백호 형. 별일 없었지?”
-탁. 타탓.
진호를 포함한 스피릿 팀의 헌터들이 게이트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앞에 있던 진호가 손을 들어 보이며 인사하듯 말하자.
“그건 내가 물어야지. 별일 없었냐?”
협회 지부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백호가, 진호의 인사를 받으며 답했다.
백호의 뒤에 있던 헌터들도 게이트에서 나온 이들을 반기며 안부를 묻는 분위기를 보였다.
태룡사에 세워진 한국 헌터 협회 지부.
협회 지부 정문 근처에는 둥근 아치형의 기둥 세 개가 나열된 시설이 자리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커맨더가 독자적으로 발명한 게이트였다.
에스라 대륙, 아라한 왕국의 수도와 태룡사의 협회 지부를 연결하는 게이트.
정확히 말하자면, 처용의 도움을 받아 양측의 세계를 연결하는 데 성공한 게이트였다.
처용이나, 커맨더가 수동으로 열어주는 게이트가 아니었다.
태룡사에서 협회가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 반영구적인 게이트였다.
에스라 대륙의 게이트웨이가 조금 더 발전된 형태라고도 할 수 있는 시설이었다.
그리고 그 시설의 주 활용처는, 정예 헌터들의 빠른 이동을 위한 것이었다.
작금의 경우는 바로 교대 근무.
신관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강한 헌터 1, 2위인 진호와 백호.
그 둘을 중심으로 각각 스피릿 팀의 정예 헌터들을 나눠 교대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진호를 포함한 이들이 에스라 대륙에 향한다면, 백호를 포함한 다른 이들은 지구의 일을 맡는다.
전력이 한곳에 집중되거나 분산되지 않도록 적절하게 나눈 것이었다.
“형 있을 때, 크게 한 번 몰아친 이후로는, 이상하게 조용해.”
진호가 백호의 안부 인사에 진지한 목소리로 답하듯 말했다.
진호와 스피릿 팀의 헌터들은, 약 이틀 동안 에스라 대륙에서 아나샤를 도왔었다.
그들의 주 역할은 주기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검은 괴물들을 처치하는 것.
진호가 에스라 대륙에 있을 때는, 그것 외엔 크게 특별한 일이 없었다.
백호가 있었을 때처럼, 에스라 성운이 총공세에 가까울 정도로 공격해오지는 않았었다.
“마치, 무언가를 준비하려는 것처럼 말이야?”
진호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을 잇자.
“여기서나 거기서나, 긴장을 놓으면 안 되겠군.”
백호가 진지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진호의 말에 답하듯 말했다.
동시에.
‘어쩌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진호를 향해 전음을 보내며 은밀하게 이야기했다.
스피릿 팀의 헌터들 중에서도 진호와 백호, 현아 같은 최상위 헌터들에게만 처용이 은밀하게 전한 소식.
-어쩌면, 지구가 놈들의 다음 공격 지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지구가 노려질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이었다.
‘아니면, 신계와 아라한 왕국이 동시에 공격받을 때와 같을 수도 있겠지.’
그런 백호의 전음에, 진호가 이전의 사건을 언급하며 전음으로 답했다.
굳이 한 지점만 공격받는다는 가정은 없었다.
악신들이 신계의 성운과 아라한 왕국을 동시에 공격했던 것처럼, 지구와 아라한 왕국을 동시에 공격할 수도 있었다.
“그럼 교대하자고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잘 이겨 내라.”
백호가 진호의 옆을 스치며 건투를 빈다는 듯 오른손 주먹을 들어 보이자.
“형도, 적들이 개수작을 부리든 뭘 하든, 다 아작을 내 버리라고.”
-탁!
진호가 오른손 주먹을 들어 백호의 주먹과 맞부딪치며 답했다.
서로를 향해 격려가 지나가고 백호는 에스라 대륙, 아라한 왕국으로, 진호는 태룡사로 돌아왔다.
“자자, 각자 일정대로 움직이자고.”
진호가 왼손에 채워진 라이센스를 잠시 바라보고는, 뒤에 있는 헌터들을 향해 말했다.
그 말에 헌터들이 각각 라이센스에 기록된 개인 일정들을 확인하며 흩어지고.
-샥.
진호는 곧장 태룡사 상단을 향해 땅을 박차 뛰었다.
태룡담과 가장 가까운 장소.
거대한 세계수의 뿌리가 드러난 지역 위에 지어진, 가장 전망이 좋은 정자로 향했다.
발 빠르게 달려간 진호가 정자에 가까이 다가간 순간.
-우우웅.
마치, 게이트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주변의 환경이 일렁이며 짧게 암전되었다.
시야가 곧장 밝아지자.
“세계 헌터 회의장?”
진호가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며 읊조렸다.
그가 이동된 장소는 다름 아닌 세계 헌터 회의가 개최되었던 장소, 운룡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운룡전 중앙에 원형으로 빙 둘러진 좌석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운룡전에 대규모로 모이는 것이 아닌, 소규모 회담장을 개최한 듯한 모습.
“빨리 오셨군요. 이진호 헌터.”
미리 운룡전 안에 초대받아 자리해 있던 태민이 진호를 보며 말하자.
“바로 와야죠. 그런 연락을 받았는데.”
진호가 조금 전, 라이센스를 통해 태민에게서 온 메시지를 언급하며 답했다.
-빠르면 내일, 악신들이 지구에 침공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계수 앞의 정자로 와 주십시오.
조금 전, 에스라 대륙에서 지구로 막 귀환하자마자 태민에게 받은 메시지였다.
진호는 그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즉시 달려온 것이었다.
태민과 진호가 이야기를 나눌 때.
-화아아!
“먼저 와 있었네요?”
빛이 번쩍이며 현아가 나타나 태민에게 인사를 건넸고.
-화아! 파아아!
연화를 포함한 소수의 헌터들이 빛과 함께 나타났다.
뒤이어.
-화아! 화아아!
해전무신과 청룡 등의 신격들도 차례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형의 모습을 취한 세계수와 하이 엘프 테시아.
태초의 마수인 카투라와 크루마, 얼마 전에 판데모니움을 빠져나온 니알라.
아테나와 그녀의 뒤를 따르는 행운의 여신 니케.
신계의 성운을 잃고 잠시 태룡전에 머물고 있는 라와 토르 등의 신격들.
여래를 포함한 세 명의 대신들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모두 오셨군요.”
-우웅.
황금빛 게이트가 열리며 처용과 아타가 나타났다.
운룡전 중앙에 모인 이들을 둘러본 처용이 입을 열고는.
“급하게, 은밀하게 대비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곧장, 왜 사람들을 불러 모았는지, 그 본론을 이야기했다.
[무언가 조짐이 있었느냐?]
아테나가 처용이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는지 눈치챘다는 듯, 진지한 목소리로 묻자.
“네.”
처용이 아테나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콘슈에게서 지령이 내려왔다고 합니다.’
전음으로 어떤 조짐이 있었는지를 알려주었다.
콘슈는 올림포스의 성역, 본래 그가 있던 곳으로 은밀하게 되돌아간 상태였다.
그곳에서 조용히 침묵하던 중.
-탁.
길을 지나가던 올림포스의 신군 하나가 멍한 표정을 짓더니, 콘슈에게 쪽지를 하나 넘겼다.
그 쪽지 겉면에는 순혈자를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었고.
-형제들이 일을 마칠 때까지, 대기하라.
쪽지를 받는 순간, 콘슈의 머릿속으로 순혈 의장, 옥황상제의 지령이 떠올랐다.
이러한 일이 불과 하루 전, 어제 일어난 일이었다.
콘슈가 받은 지령은, 수상한 모습은 보이지 말고 그 자리에서 대기할 것.
올림포스 성운 내에서 감시당하고 있는 콘슈는 크게 도움이 될 상황이 아니기에, 대기하라고 한 것 같았다.
지령을 확인한 콘슈는 곧장 헤르메스를 통해 이 사실을 처용과 라에게 알렸다.
악신들이 어떤 계획을 선택했는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곧인가?’
처용은 콘슈에게 날아온 대기 지령으로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조금 있으면 악신들의 계획이 실행될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콘슈에게 대기 지령이 떨어진 이유.
그 이유가 곧 악신들이 행동을 개시한다는 징조로 보였다.
“이곳에 있는 분들만큼은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서로를 믿어야 합니다.”
처용이 운룡전 중앙에 모여든 이들을 응시하며 말을 잇자.
“순혈자나 순혈 신도가 이곳을 노리고 있군요.”
태민이 진지한 눈빛을 빛내고는 안경을 들어 올려 고쳐 쓰며 말을 이었다.
처용이 왜 ‘신뢰’와 ‘믿음’이라는 말을 언급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한 듯한 모습.
“맞습니다. 순혈자들이 이곳을 노릴 겁니다. 정확히는 태룡전이지만요.”
처용은 태민의 짐작 어린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악신들이 보일 법한 모든 공격 수단을 염두에 두고 대비책을 갖춰야 합니다.”
아직, 악신들이 두 가지 선택지 중 무엇을 선택했는지, 어떤 방법으로 계획을 실행할 것인지를 알아내지 못했다.
때문에, 가장 믿을 수 있는 이들을 불러 모아 은밀하게 대책을 마련해보려 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아마도…… 악신 놈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내일일 가능성이 큽니다.”
처용은 악신들이 언제 모습을 드러내는지 짐작한 듯, 반쯤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그렇군! 각 성운의 성역과 이곳이 완전히 연결되는 것이!]
아테나가 처용이 왜 내일이라고 말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챈 듯, 목소리를 높였다.
황룡의 도움으로 인해, 각 성운의 성역과 태룡전을 연결하는 것.
헬리오폴리스나 아스가르드처럼, 악신들에게 습격받는 성운이 발생한 경우를 대비한 대비책이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각 성운의 성역과 태룡전이 완전히 직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태룡전과 연결된 특별한 성지.
신이 본신으로 강림할 수 있는 태룡사를 통해 오가는 것이었다.
즉, 태룡전은 각 성운과 성운의 다리를 놔 주는 역할만 할 뿐, 각 성운과 연결된 중심지는 성지인 태룡사였다.
최근, 태룡사와 각 성운과의 연결이 견고해지며 게이트를 여는 데 성공했고.
[내일, 각 성운의 대표들이 그 연결을 통해 이 성지에 방문하기로 되어 있지요?]
내일, 각 성운의 대표들이 태룡사에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미륵이 내일 무슨 일이 예정되어 있는지를 이야기하자.
[놈들이 이곳 중심지에 미리 침입할 수도 있겠군.]
토르가 분노 어린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했다.
동시에, 걱정을 내비쳤다.
적들이 아군의 진영 한가운데로 잠입한다는 것은,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도, 내일 태룡사에 방문하는 각 성운의 대표들 중 누가 순혈자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일정을 미뤄야 하는 것 아니오?]
토르가 걱정을 담아 말하자.
[그럴 필요는 없소.]
오시리스가 그런 토르를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답하듯 입을 열었다.
[이미 대비책은 마련되어 있으니까.]
[오히려, 적들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지.]
이어지는 오시리스의 말에 미륵이 자신감 어린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마치, 일부러 적들이 나타나 주기를 바라는 듯한 모습.
[대비책이 있다면, 안심이오.]
토르는 오시리스와 미륵의 대답에 안도를 드러내고는.
[나 전사 토르는, 악신들이 이곳을 침범할 때, 가장 앞장서 싸울 것이오.]
분노 어린 투지를 드러내며 다짐하듯 말했다.
그 말에.
[간악한 자들이 이 신성한 성역을 넘보다니, 용납할 수 없소.]
[이곳이 파괴되는 일을 절대로 없을 것이오.]
해전무신과 청룡을 포함한 다른 신격들도 전투를 준비하듯, 투지 가득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비상사태를 대비하겠습니다. 한처용 헌터.”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태민이 처용을 향해 말했다.
빠르면 내일, 태룡사가 악신들에게 습격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
피해를 줄이려면, 준비를 미리 단단히 갖출 필요가 있었다.
“의심을 사지 않고 전투를 준비하려면…… 단체로 훈련하는 척이라도 해야겠어.”
진호가 태민의 말에 동의하듯, 진지한 목소리로 제 의견을 이야기했다.
태민과 진호의 말에 다른 헌터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등, 동의하는 모습을 보일 때.
“미끼를 놓은 함정은, 준비가 되었습니까?”
처용이 아테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헤르메스와 내가 심혈을 기울였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아테나가 처용의 질문을 바로 이해하며 답했다.
처용이 말한 미끼를 놓은 함정.
그것은 다름 아닌, 얼마 전 아테나에게 넘겼던 아르테미스의 신관, 제니퍼를 의미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니퍼를 이용해 순혈자들을 낚기 위한 함정이었다.
지금, 아테나의 뒤에 헤르메스가 아닌, 니케가 자리한 이유.
지금 헤르메스는 처용이 언급한 함정을 준비하고 점검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좋습니다.”
아테나의 대답에 처용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아마 놈들이 태룡전을 바로 노릴 순 없을 겁니다. 그러니…….”
운룡전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며 악신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추측한 바를 이야기했다.
동시에, 그 추측을 토대로 어떻게 반격을 준비하면 좋을지도 언급했다.
***
푸른색의 작은 화로가 타오르는 석실.
넓지 않은 석실 가운데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 중이던 긴 금발 머리의 소녀.
“……드디어.”
올림포스 소속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신관이자, 제시카의 친척.
헬레나 로스차일드가 감았던 눈을 뜨며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가 고귀하신 분들을 위해,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었군요.”
조금 전, 자신의 성좌이자 선택받은 고귀한 존재에게서 내려온 명령.
헬레나가 그 명령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감히 하계종 주제에 신력을 얻은 제시카를 제 손으로 처단하고 싶지만…….”
기대감 어린 표정을 싹 지우고 살기와 증오 어린 목소리를 이었다.
감히 과분하게도, 고귀한 신들만이 거머쥐어야 할 신력을 개화한 인간.
헬레나는 자신의 친척이자, 올림포스 주신의 신관, 제시카를 향해 진심 어린 증오를 보였다.
마치, 눈앞에 있다면, 당장이라도 죽일 듯한 모습.
하지만.
“고귀하신 분들의 위대한 계획을 실현하는 게 우선이겠죠?”
이내, 방금 받은 아주 중요한 명령을 다시 상기하며 증오와 분노를 가라앉혔다.
동시에.
-슥. 화르륵.
타오르는 화로 속에 양손을 집어넣었다.
-화륵. 탁.
화로의 불길은 헬레나의 손을 태우지 않았고 이내 헬레나의 손에 무언가가 잡혔다.
헬레나가 화로의 불길 밖으로 손을 빼내자.
-스르륵.
붉은 핏방울 문양, 순혈자를 상징하는 문양이 음각된 상자가 헬레나의 손에 잡힌 채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건…… 고귀한 분들을 위해.”
헬레나가 상자 위로 음각된 순혈자의 문양을 손으로 쓰다듬듯 만지며 기대감 어린 미소를 보였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