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9화
루나가 소룡과의 대련에서 이겨 수련탑의 인정을 받고 하루가 지난 시점.
태룡사에 세워진 수련탑에 작은 변화가 생겨났다.
“……그게 아니라고?”
태룡시에 찾아와 수련탑을 이용 중인 헌터 하나가 자신과 대련 중인 금강역사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그가 수련탑에서 수련 중인 기술은 축지(縮地).
땅을 접어 달리듯, 발을 강하고 빠르게 굴러 짧은 거리를 순식간에 이동하는 보법이었다.
수련탑의 금강역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기술 중 하나이자, 헌터들이 가장 배우길 갈망하는 보법 중 하나였다.
헌터들에게는 그 어떤 이동 스킬보다도 효율적이라 평가되는 스킬이었으니까.
다만 문제가 있다면, 이 기술만큼은 숙련도를 올리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
태룡시가 개방되고 수련탑이 장기간 활성화되었음에도, 축지를 익힌 헌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지금 대련 중인 헌터 역시, 그 축지를 익히기 위해 수련탑에서 살다시피 하는 이.
처음 수련탑이 개방되었을 때부터 축지를 수련했음에도, 그의 숙련도는 이제 고작 30%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뭐지?”
재차 눈앞의 금강역사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그러자.
-탁. 탁.
헌터와 맞서고 있는 금강역사가 발끝을 들어 땅을 가볍게 두 번 두들겨 보였다.
“발을 잘 보라고?”
그 모습을 본 헌터의 입에서 의문이 이어진 순간.
-탓. 샤아악!
금강역사가 발을 빠르게 구르며 헌터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순식간에 상대와 거리를 좁히는 기술, 축지를 직접 보여준 것이었다.
“크흡!”
-타-앙!
정면에서 들어오는 금강역사의 공격에 헌터가 왼손의 둥근 방패를 들어 방어했다.
가볍게 내지른 공격임에도 방패를 타고 팔에 묵직한 타격이 느껴졌다.
그 공격에 헌터가 잠시 경직되었을 때.
-탓! 탓! 파아악!
금강역사가 빠르게 한 번 물러나더니, 오른쪽으로 순식간에 나타나 헌터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미처 대처하지 못한 연속 공격에.
“어윽!”
옆구리를 얻어맞은 헌터가 옆으로 구르며 뒤로 밀려났다.
재빨리 낙법을 취하고 자세를 일으켜 다음 공격에 대비했지만.
-슥. 탁.
금강역사는 더 공격하지 않고 발끝을 한 번 두들겨 보였다.
그 모습을 본 헌터가 눈빛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는.
-툭. 슥!
뒤로 뺀 왼발 발목에 힘을 줌과 동시에.
-타탓!
살짝 뗐다가 발목을 빠르게 꺾어 스프링을 튕기듯 땅을 박찼다.
방금, 금강역사의 공격을 받으면서까지 발을 집중해 관찰한 것을 따라 한 것.
이전에는 그저 발에 마나를 휘감아 힘을 주어 강하게 박차기만 했었다.
다리에 무리만 가고 제대로 된 속도가 나오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탓! 샤악!
몸은 가벼우면서도 빠른 속도로 돌진해 나갔다.
“하압!”
-샤악!
헌터가 속도에 힘을 실어 오른손에 들린 다소 길이가 짧은 장검, 쇼트 소드(Short Sword)를 휘둘렀다.
-샥!
금강역사가 빠르게 땅을 박차 거리를 벌리자.
-탓!
헌터는 방금의 감각을 잊지 않고 다리를 가볍게 움직여 금강역사를 추적했다.
금강역사의 뒤를 잡은 헌터가 쇼트 소드를 내지르려는 순간.
-샥!
뒷모습을 보이던 금강역사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슥! 타앗!
헌터의 뒤에 나타나 정권을 내질렀다.
“아악!”
-투둑! 촤아아-!
등을 얻어맞은 헌터가 바닥을 구르며 나자빠졌다.
헌터가 낙법을 취하며 다시 몸을 일으킨 순간.
[축지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축지의 숙련도가 크게 오른 것을 시스템으로 확인했다.
동시에.
-…….
금강역사가 헌터를 향해 작은 미소를 보였다.
마치, 잘했다고 무언으로 전하는 듯한 모습.
“……감사합니다.”
헌터가 자신에게 가르침을 준 금강역사를 향해 감사를 전하고는 다시 다리에 감각을 집중했다.
수련탑의 금강역사들이 보이는 변화.
이러한 변화를 발견한 이들은 한 명만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고?
-팔이 아니라 어깨에 힘을-.
수련탑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헌터들이 모두 발견한 변화였다.
본래, 금강역사들은 수련탑의 시스템대로만 움직이는 이들.
그런 그들이 배움을 청하는 헌터들에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마치,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주는 듯한 모습.
-괜찮은 겁니까?
수련탑의 변화를 보고받은 태민이 혹시 문제가 발생할까 싶어, 처용에게 의견을 구했지만.
“성지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기능이 생긴 것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해 드리죠.”
처용은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하고 태민에게 걱정하지 말라 답했다.
사실, 헌터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긍정적인 변화였다.
그저, 반복적인 동작을 보고 배우는 것보단, 전문가가 지적해 주고 지도해 주는 것이 나았으니까.
‘회귀 전에는 나를 포함한 소수만이 수련탑을 이용했었으니…… 이러한 변화가 없었던 건가?’
라이센스에서 울린 태민의 연락에 답한 처용이 잠시 생각에 잠기며 속으로 읊조렸다.
금강역사들의 자아가 깨어난 현상.
이 또한 회귀 전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이러한 변화가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서약자와 나…… 아니, 수련탑을 찾아오는 모든 이들 덕분이라고 했어.
회귀 전과는 다르게, 수련탑에 많은 ‘수행자’들이 찾아왔기 때문인 것 같았다.
루나에게 전해 들은, 소룡이 했었던 말을 토대로 생각해 볼 때, 생각한 바가 맞다고 판단했다.
수련탑에 대한 변수는 긍정적이면 긍정적이었지, 부정적인 부분은 일절 없어 보였다.
처용은 수련탑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고 앞을 바라봤다.
지금 있는 장소는 바로 성지, 태룡사의 정상에 차오른 거대한 못.
세계수의 앞, 성역인 태룡전과 직통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는 장소.
태룡담에 와 있었다.
그곳에는 다른 신격도 아닌, 황룡이 강림해 있었고.
“그…… 제가 감당하기가 힘듭니다.”
황룡의 앞에는 연화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곤란해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복이를 현무로 만들겠다니요?”
황룡에게서 받은 제안 때문이었다.
연화가 태룡사에 잠시 돌아온 이유는 바로 해전무신이 호출했기 때문.
해전무신이 연화를 부른 이유는 바로 황룡의 제안 때문이었다.
바로 연화의 파트너이자 주력함인 복이에게.
[끊어진 우사(雨師)의 수계를 다시 잇고 싶기 때문이다.]
우사(雨師), 즉 현무가 될 자격을 주겠다는 것.
황룡의 말이 울리자.
“청룡 님을 제외한 다른 신수는 명백이 끊어진 것 아니었습니까?”
작금의 상황을 지켜보던 처용이 황룡을 향해 궁금한 듯 물었다.
한반도의 신수는 청룡, 운사(雲師)를 제외하고는 모두 천교에게 살해당했다.
그 명맥 또한 끊어진 상황이었다.
[사신수(四愼獸)는 모두 나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다. 끊어진 수계를 내가 다시 이을 수 있다.]
황룡은 신수들의 시초인 자신이 부활했으니, 끊어진 신수의 명맥을 이을 수 있다 설명했다.
[그리고 네가 희생당한 아이들의 흔적을 찾아 준 덕분도 있으니라.]
“……내단 조각 말이군요.”
이어지는 황룡의 말에 처용이 기억난다는 듯 읊조리며 답했다.
천교의 성지를 뒤집어엎어 버리고 그들의 비밀 실험 시설에서 찾아낸 잔혹한 흔적.
그중 하나는 바로 청룡과 같은 신격의 신수들이 살해된 흔적이었다.
[네 친구가 당장 변하는 것이 아니니라. 변할 수 있는 자격을 쥐는 것이지.]
황룡이 연화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너 역시 자격이 있어야, 네 친구가 진정한 신수로 승천할 수 있을 것이다.]
비단 복이만이 아닌, 연화에게도 자격이 있어야 한다는 황룡의 말에.
“복이만이 아니라…… 저도?”
연화가 태룡담 위를 유영하고 있는 복이를 바라보며 의문을 표했다.
[그렇다. 자격이 있다면, 네 친구는 우사로 승천할 것이고 너는 현무의 유일한 기수(騎手)가 될 것이다.]
“…….”
이어지는 황룡의 말에 연화가 고민하는 듯 잠시 침묵했다.
사실 거절할 이유는 크게 없었다.
오히려 황룡의 제안을 수락하는 것이 연화에게도, 복이에게도 이득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걱정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지금 복이의 자아가 사라진다거나…….”
지금껏 함께 싸우며 정든 자신의 파트너가 다른 존재로 변해 버린다는 불안감이었다.
지금의 청룡도, 본래는 한반도의 왕이었던 존재.
그런 그가 선대 청룡의 선택을 받고 수계를 이어받으며 이번 대의 청룡이 된 것이었다.
그녀는 독도에서 처용과 해전무신을 도와 청룡을 지키는 싸움을 함께 했었다.
청룡의 수계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 중 하나.
신수들의 수계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건 아니었지만, 선대의 힘과 기억이 덧씌워진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복이가 자신을 잊고 다른 존재로 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럴 리는 없다.]
황룡은 연화의 불안감을 알아채고는 고개를 저으며 강하게 부정했다.
[신수의 수계는 선대의 지식과 지혜, 능력을 이어받는 것, 자아를 장악하는 개념이 아니다.]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다. 문무 님도 스스로를 잊은 것이 아니었으니까.]
해전무신이 황룡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연화는 자신의 성좌이자 한반도의 영웅이었던 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
태룡담 위를 느긋하게 유영하던 복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우우.
복이 역시 연화의 시선을 마주하며 낮은 울음소리를 내었다.
마치, 소리 없는 연화의 물음에 답한 듯한 모습.
“수계를 받겠습니다.”
파트너와 의견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마친 연화가 황룡을 향해 답했다.
[네 친구가 태산처럼 웅장하게 자라나기를 기원하마.]
연화의 대답을 들은 황룡이 손에 쥔 여의주, 태초의 심장을 들어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우우웅.
태초의 심장에서 황금빛의 파동이 퍼져 나왔고.
-우우.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복이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울음소리를 내었다.
-스르르륵.
태초의 심장에서 퍼지는 황금빛 파동이, 복이와 연화를 감싸고는, 둘에게 점차 스며들었다.
이윽고 태초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이 모두 사라지자.
“……끝난 겁니까?”
연화가 의문을 읊조리며 황룡에게 물었다.
무언가…… 강렬한 기운이 스며들어오는 걸 느끼긴 했지만.
“변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막상 수계가 끝나고 나니, 눈에 띄는 변화는 없어 보였다.
아마도.
“제가 자격이 없어서-.”
조금 전, 황룡이 했었던 말.
자신에게 자격이 없기에, 눈에 띄는 변화가 없는 것 같았다.
연화가 자신에게 실망한 듯한 목소리를 이을 때.
[스스로에게 자격이 없다 단정 짓지는 말거라.]
황룡이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 순간.
-……쿠구구구!
복이의 몸이 거세게 흔들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지진이 들이닥친 듯, 거세게 진동함과 동시에.
-쩌저적! 쿠구! 쿠콰콰!
복이의 등껍질이 갈라지고 깨지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작은 동산과 같은 크기인 복이기에, 마치 돌산이 무너지는 듯한 모습.
“복아! 무슨 일이야!?”
연화가 점점 무너지는 복이를 보며 당황스러움을 드러낼 때.
-쿠구! 쿠구구구-!
깨진 복이의 등껍질 위로 새로운 등껍질들이 하나둘 솟구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오래된 허물을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피하는 듯 보였다.
오래된 껍질이 무너지고 새로운 껍질이 자라나며 솟구침과 동시에.
-쿠구구! 쩌적!
복이의 덩치가 점점 커지며 불어나기 시작했다.
본래 크루저 터틀로 진화했을 당시 복이의 크기는 대략 30미터.
그러나 탈피를 거치며 점점 커져 가는 복이의 크기가 기존의 두 배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쩌저저적! 콰아-!
복이가 옛 허물을 완전히 벗어 버린 순간.
-우우우!
묵직한 울음소리를 내며 크게 포효했다.
늑대거북과 같았던 본래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크기가 두 배는 더 커진 상태.
“이야, 이렇게 점점 커지다간, 진짜 움직이는 요새가 되겠어.”
처용이 이전보다도 강해진 복이를 보며 미소를 담아 읊조렸다.
겉모습은 크기 외엔 큰 변화가 없어 보여도.
[현귀(玄龜) - 복(福)]
통찰의 눈으로는 복이가 얼마나 변했는지 눈에 보였다.
“현귀라…… 현무가 되기 이전의 준 신수 상태인가?”
처용이 복이를 통찰의 눈으로 관찰하며 입을 열자.
[이 정도만 해도 놀라운 결과이니라. 바로 변했다는 것은, 이미 신수의 자격이 충분했다는 의미이니까.]
황룡이 처용의 말에 답하듯 말했다.
“하…… 그냥 눈에 띄어서 데려온 거북이 한 마리가, 현무가 된다라…….”
처용이 연아의 파트너, 복이를 처음 만나 태룡전에 데려왔을 때를 떠올리며 읊조렸다.
본래 복이는 던전 생태계의 순환을 돕는 청소부.
그저 강한 몬스터들에게 있어 먹이에 불과한 존재였다.
그런 약하디약한 거북이가, 처용을 만났고 처용이 막 신수의 권능을 얻었을 때.
-스톤 터틀이 무리에 합류하기를 원합니다.
우두머리 신수의 자격을 쥔 처용에게 선택받아 그의 무리가 되었었다.
신수의 자격을 얻고 처음 무리로 받아들인 존재.
복이는 처용에게 있어서도 조금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인연이었다.
그 당시에는 거의 변덕이라고 할 수 있는 처용의 행동이, 지금 현무의 부활이라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축하해, 다른 신수도 아니고 현무의 파트너가 되겠어.”
“어…… 그래, 고마워.”
처용이 연화를 향해 축하를 전하자, 멍하니 크기가 확 커진 복이를 바라보던 연화가 답했다.
그리고.
“축하해주는 것치곤 표정이 좋지 않은데?”
처용의 분위기를 살피듯,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축하를 건네는 처용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마치 적의 습격을 대비하듯, 차갑고 진지한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처용의 주변에는, 보이지 않는 적을 찾듯 은은하고 은밀한 기세가 흐르고 있었다.
“다른 건 아니고…….”
처용은 연화의 질문에, 저도 모르게 퍼트리고 있던 기감을 거두며 입을 열었다.
“너무 조용하니까.”
너무 조용한 것이 이상하다는, 다소 의미를 알 수 없는 대답에도.
“……그건, 나도 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어.”
연화는 처용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챘다는 듯, 말했다.
처용이 에스라 대륙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
언제 신계가 또 습격받을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적들은 언제든 신계를 다시 습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악신들은 아스가르드의 습격을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불길할 정도로 고요하다. 마치, 무슨 일이 터질 것처럼…….’
처용이 악신들을 떠올리며 속으로 읊조렸다.
주변은 평온하고 아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처용의 감에는 주변의 평온함 속에 보이지 않는 위협이 도사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암살자가 기회를 노리는 듯한 느낌.
“곧 나타날 수도 있겠네.”
처용은 머지않아, 악신들이 모습을 드러내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