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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576화 (576/726)

#576화

처용이 여래의 봉인을 풀기 위해 그를 만나러 가기 전.

-우우웅. 탁.

에스라 대륙과 연결된 태룡사의 게이트 속에서 연화와 연아가 나타났다.

현재 에스라 대륙은, 아스터 제국이 한바탕 공격을 퍼부은 뒤 잠시 소강상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총공세에 가까울 정도로 맹공격을 퍼부은 아스터 교단이, 그에 대한 재정비를 갖추는 것 같았다.

연화와 연아는 그 틈을 타, 잠시 돌아온 것이었다.

연화의 경우는, 해전무신의 부름을 받았기에.

연아는 아공간 속에 여러 소모품을 채워 넣기 위해서였다.

그간, 에스라 대륙에 장기간 체류하며 아공간 속에 저장해두었던 다양한 물건들을 상당히 소모했으니까.

이번 기회에 여러 쓸만한 것들을 챙겨 앞으로의 일을 대비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거대 성운의 몰락이라니…….”

연화가 해전무신에게서 전해 들었던 말을 작게 읊조렸다.

자신의 성좌, 해전무신에게서 전해 들은 신계의 소식.

무려 거대 성운인 헬리오폴리스와 아스가라드가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문제는, 단순한 습격 정도로 그친 게 아니라, 거의 멸망 직전에 달했다는 것.

아니, 주신이 살해된 아스가르드는 멸망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화는 해전무신의 부름을 받고 온 김에, 신계에서 일어난 상황을 더 자세히 물어볼 생각이었다.

“신계에서도 에스라 대륙 못지않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거겠지.”

연아 역시 신계의 일이 궁금하면서도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상, 에스라 대륙뿐만 아니라, 신계에서도 격한 싸움이 일어난 상황.

우주의 명운이 걸린 이 전쟁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우리가 이겨도, 신들이 무너지면 끝장 아니야?”

연아가 좋지 않은 신계의 소식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잇자.

“그러니까. 여기서 안주하지 말고 더 나아가야겠지.”

-우우웅.

연화와 연아의 뒤를 이어, 게이트 안에서 루나가 나타나며 말했다.

“우리가 신들의 전쟁에 개입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신들의 전쟁에…… 우리가 개입한다라.”

루나의 말에 연화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의 스스로가 해전무신과 나란히 서서 신계의 싸움에 참여할 수 있는가?

연화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할 결과,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넌 왜 태룡사로 온 거야?”

연아가 자신들을 뒤따라온 루나를 보며 궁금한 듯 묻자.

“방금 말한 대로, 더 나아가기 위해서.”

루나가 진지한 목소리로 답하듯 말했다.

굳은 각오가 어린 그 목소리에는, 옅은 투지도 일렁이고 있었다.

그런 루나의 대답에, 연화와 연아가 눈치챘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든 틈을 타, 루나가 잠시 태룡사로 돌아온 이유.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이번엔, ‘소룡’을 이길 수 있겠어?”

그녀가 오랫동안 이기지 못한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였다.

연아가 루나에게 묻듯 말하자.

“이번엔, 반드시.”

루나가 작은 미소를 담아 자신감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그럼 태룡사 상단의 수련탑부터 가자.”

잠시 눈을 감고 집중하던 연화가 루나와 연아를 향해 말했다.

“지금 해전무신님께서 황룡 님과 있으시다고 하시네?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셔.”

본래, 해전무신을 만나러 온 연화였지만, 해전무신이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한 상황이었다.

“이번엔 루나가 이기는 걸 봐야지.”

연아 역시, 자신의 볼일을 잠시 미루기로 결정하며 말했다.

루나가 앞장서 태룡사의 상단으로 향했고 연화와 연아가 뒤따랐다.

성지, 태룡사에 세워진 수련탑은 총 두 개.

하나는 태룡사 하단, 신도시인 태룡시에 세워져 도시를 방문하는 헌터들에게 열렬히 이용되고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태룡사 상단부, 허락을 받은 이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장소에 세워져 있었다.

주로 스피릿 팀의 일원들과 태민을 포함한 협회 고위 임원들이 허락받은 이에 해당되었다.

그리고 태룡사 상단의 수련탑에는, 하단의 수련탑에 없는 금강역사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가장 강한 금강역사인 소룡과 반야가 이에 해당되는 이들이었다.

-끼이이!

태룡사 상단에 세워진 수련탑의 대문이 열리고 루나와 연화, 연아가 들어섰다.

탑 안에는, 오늘 비번인 소수의 스피릿 팀의 일원들.

한국의 정예 헌터들 중 일부가 개인적인 훈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탑 내부에서 수련을 하던 이들 중 하나.

“어…… 저분이 왜?”

연아와 옆에 있는 둘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가 한 명 있었다.

무려 반야와 대치하고 있는 수련탑의 수련자.

[흐으읍!]

-탓! 타탓!

다른 헌터들보다도 큰 체격과 근육이 돋보이는 강인한 인상의 남자, 아니 성좌.

토르가 양손에 쥔 전투 도끼를 교차하듯 반야를 향해 내지르고 있었다.

-샤아-!

힘이 실린 도끼날이 묵직하게 바람을 가르며 반야를 향해 쇄도하자.

-탓. 타앙!

반야가 오른손 손바닥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 치며 토르가 내지른 도끼날을 쳐냈다.

-탕! 까강!

공격을 받아쳐 튕겨내는 반탄장의 힘에 의해, 토르의 도끼가 뒤로 크게 튕겨 나갔다.

[흡!]

-휘릭. 탁!

토르는 손아귀에서 벗어날 뻔한 도끼를 한 바퀴 돌려 고쳐 잡으며 뒤로 한 발 물러났다.

동시에, 다시 앞으로 쇄도하며 반야를 향해 공격을 내질렀다.

어떻게든 반야의 빈틈을 노려 공격을 잇는 모습.

본래라면, 제아무리 반야라 해도, 성좌인 토르의 공격을 쉽게 받아치기란 불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토르에게선, 그가 평소 내뿜던 천둥의 신력이 일절 없었다.

신력도 마나도 쓰지 않고, 육체만을 움직여 반야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가 손에 쥔 전투 도끼도, 라트요른이 아닌, 협회에서 헌터들에게 지급하는 양산형 전투 도끼였다.

신력은 일절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전투기술만으로 반야와 대련하고 있었다.

이윽고.

-우웅. 파아아!

반야와 토르의 대련 시간이 끝났는지, 둘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결계가 사라졌다.

[대단한 전투기술이군,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토르가 포권을 취하며 물러나는 반야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상대를 이기지 못한 것에 대한 분함은 일절 없는 모습이었다.

“왜…… 천둥의 신께서 여기에 계시는 겁니까?”

연화가 토르에게 다가가며 많은 의미가 함축된 궁금증을 담아 물었다.

그러자.

[해전무신의 신관인가? 오랜만이구나.]

토르가 연화를 알아보며 미소를 짓고는.

[나는 아스가르드의 성좌가 아닌, ‘전사’로 돌아가기로 했으니까.]

진지한 목소리로 연화의 질문에 답해 주었다.

로키의 배신과 대악마들의 습격으로 인해 무너진 아스가르드.

하지만, 아스가르드가 무너졌다고 해도.

-아스가르드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내가 그리 만들 것이다.

토르는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아스가르드를 재건할 수 있다고 다짐하며 말했었다.

작금의 수련은 그 다짐을 실현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바로, 처음 전투 교육을 받았을 때처럼, 초심으로 돌아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점검하는 것이었다.

지금껏 성좌로서 누리던 모든 영광과 권력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토르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빠르게 마음을 다잡게 된 계기는.

-아스가르드는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토르라는 기반이 남아있으니까요.

처용의 진심 어린 위로와 조언 때문이었다.

-무너지지 않은 그 탄탄한 기반 위로, 더 단단하고 유연한 새로운 탑을 쌓을 수도 있습니다.

무너지지 않고 주저앉지만 않는다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처용의 말.

그 말 한마디가, 토르에게는 당장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악신들과 맞서 싸우는 같은 전사로서, 잘 부탁한다.]

토르가 연화에게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며 말하자.

“영광입니다. 토르 님.”

연화가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고는 토르가 내민 손을 맞잡으며 답했다.

토르와 연화가 대화를 나눌 때.

-탓.

“이번만큼은-.”

루나가 소룡의 앞에 서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번만큼은, 내가 너를 이길 거야.”

-스스스!

혈기의 기운을 스멀스멀 내뿜으며 루나가 투지 어린 목소리로 말을 잇자.

-탓.

소룡이 앞으로 두 걸음 걸어 나와 루나를 마주했다.

-우웅! 피이이!

루나와 소룡을 중심으로 결계가 형성되며 대련장이 펼쳐졌고.

-우우웅!

소룡에게서 강렬한 강기가 스멀스멀 뿜어져 나왔다.

짙은 혈기의 기운을 내뿜는 루나를 보고 그에 맞게 대련 수준을 맞춘 것이었다.

그때.

-후우우!

루나와 소룡을 중심으로 펼쳐진 반투명한 결계의 기운이 확 짙어졌다.

“으음?”

지금껏 없었던 처음 보는 현상에, 루나가 의문을 읊조린 순간.

“……많이 성장했구나. 서방(西方)의 어린 요괴여.”

소룡의 입이 들썩이듯 열리며, 굵고 힘 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말을!?”

루나가 놀란 듯한 목소리로 의문을 내뱉었다.

눈앞의 금강역사들은 모두 수련탑이라는 특수한 공간 속에서 운용되는 골렘들.

그들은 수련탑의 시스템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일 뿐인 존재들이었다.

말 그대로 수행자들의 수련을 돕기 위한 장치와 같은 이들.

그런 수동적인 골렘 중 하나인 소룡이.

“수행자가 뛰어난 성과를 보이니, 아라한의 사범(師範)으로서 기쁠 따름이다.”

옅은 미소를 보이기까지 하는 등, 감정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작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루나가 진지한 목소리로 소룡에게 의문을 담아 묻자.

“계승자와 그대 덕분이지.”

소룡이 처용과 눈앞에 있는 루나 덕분이라고 답했다.

루나가 그런 소룡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 작게 인상을 찌푸릴 때.

“어린 요괴여, 이젠 본 사범을 넘어설 수 있겠느냐?”

소룡이 진지한 목소리로 루나의 목적을 언급하며 물었다.

무려, 백 번이 훌쩍 넘어가며 패배를 거듭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근성 있게 도전해오는 수련자.

“이번이 이백하고 일곱 번째 도전이니라.”

소룡이 그런 루나에게 ‘패배한 횟수’를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말하자.

“내 말 잘 들어. 소룡.”

그런 소룡의 말을 도발로 받아들인 루나가 짙은 투지가 일렁이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계승자와 피의 서약을 나눈 여인이자, 밤의 일족들을 이끄는 밤의 마신.”

-우우웅! 쿠구구!

핏빛의 혈기가 루나에게서 휘몰아치며 강렬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블라디미르 로 루나리스, 오늘 너를 쓰러뜨릴 내 이름이다.”

-슈화아아아!

소룡에게 자신의 이름을 전한 루나가 주변에 퍼진 핏빛의 혈기를 다시 끌어모았다.

거센 기세로 뿜어져 나오는 혈기가 루나의 가슴께로 모여들었고.

“혈옥 – 혈계해제(血界解除).”

-콰아아-!

압축된 혈기가 터지듯, 거센 핏빛의 폭발이 일어나며 붉은 기둥이 솟구쳤다.

-파아아…!

시야를 가리던 핏빛 기둥이 사그라지고, 잠시 혈기에 가려졌던 루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길게 자라나 흩날리는 검은 머리와 중간중간 붉은 빛을 빛내는 브릿지.

어린 여성의 티가 확 사라진 성인 여성의 미형 얼굴.

검은 깃털이 자라난 세 쌍의 날개.

“이번만큼은, 내가 이길 거다.”

루나가 지닌 본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형태.

완전한 밤의 마신으로 변한 루나가 소룡을 향해 자신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만큼은, 소룡을 상대로 반드시 이기리라 확신한 모습.

지금 그녀가 지닌 힘은, 마지막으로 소룡과 싸울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초월(超越).”

소룡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울린 순간.

-쿠구구! 콰아-!

루나에게서 뻗어 나오는 혈기를 밀어낼 정도로 강렬한 강기가 소룡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화아아!

소룡이 환한 빛에 휩싸이며 발광했다.

발광하던 빛은 짧게 몇 번 점멸하고는 이내 사라져갔고.

-스스스!

빛에 휩싸여 잠시 가려졌던 소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골렘처럼 짙은 회색빛만이 전부였던 소룡.

그런 그에게, 점점 색(色)이 입혀지기 시작하며 골렘이 아닌,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아라한 수련탑의 첫 번째 사범. 소룡.”

-우드득.

소룡이 두 손의 주먹을 강하게 쥐고는 루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라한의 길을 걷는 수행자 ‘루나’여. 본 사범이 그대의 성과를 시험하겠노라.”

-탓. 타탓!

오른손 주먹을 루나에게 겨눈 소룡이 강한 목소리로 말을 잇자.

“제대로 시험하는 게 좋을 거야.”

-쿠우우! 쏴아아아!

루나가 강렬할 혈기를 내뿜어 주변 일대를 혈옥으로 바꾸며 말했다.

이윽고.

“블러드 드래곤.”

-슈르륵! 크롸아아아!

혈옥의 힘을 끌어모은 루나가 거대한 핏빛의 드래곤을 불러낸 순간.

“절권-!”

-쿵! 우우웅!

소룡이 두 다리의 간격을 벌리고 오른손 주먹을 뒤로 빼 강하게 쥐며 강기를 압축했다.

“붕권(崩拳)!”

-탓! 쐐에에-!

소룡이 루나를 향해 돌진하며 강기가 압축된 주먹을 앞으로 내뻗었다.

소룡의 주먹에 일렁이는 강기가 푸른 빛을 흩뿌리며 쇄도했고.

-캬아아!

이내 루나가 혈옥으로 형성한 핏빛의 드래곤이 입을 크게 벌리며 쇄도해오는 소룡에게 맞섰다.

혈기가 응축된 핏빛의 드래곤과 강기가 환하게 타오르는 소룡의 주먹이 서로 충돌한 순간.

-콰아아-!!

핏빛과 푸른빛이 좌우로 갈라져 폭발하며 육중한 충격음이 주변으로 크게 울려 퍼졌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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