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575화 (575/726)

#575화

헬리오폴리스와 아스가르드 성운이 악신들에게 공격을 받은 지 하루도 되지 않아.

-연결은 끝났다. 이제 원하면 언제든 각 성역을 오갈 수 있다.

미륵에게서 각 성운의 성역과 태룡전의 연결이 끝났다는 말이 들려왔다.

이제 각 성운의 주신들과 황룡을 포함한 태룡전의 대신들이 허가하면, 양측의 성역을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언제 어디서 어디에 적들이 들이닥친다 해도, 빠르게 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 조용한데.”

처용이 긴장감 어린 목소리로 작게 읊조렸다.

헬리오폴리스와 아스가르드가 습격을 당한 지 벌써 이틀이 지났다.

처용은 악신들이 하루도 되지 않아 신계에 다시 나타날 것이라 예상했었다.

로키가 대악마가 되었고 궁니르와 비프로스트의 권한을 손에 쥔 상황.

그 비프로스트와 성운 내부에 숨은 순혈자들이 협력하여 같은 공격을 또 감행할 가능성이 높았다.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공격할지 알고 있음에도 막을 수 없는 공격.

적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즉시 다른 성운으로 추가 공격을 감행하리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벌써 이틀이 되어가는데도, 악마들은 신계에도, 지상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목적이지? 무엇을 노리는 거냐?’

처용이 악신들의 의도를 파악하듯, 생각을 이으며 속으로 읊조렸다.

미리 막는 것이 불가능한 공격 방법을 쥐고 있음에도, 사용하지 않는다?

악신들이 공격을 멈춘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기에, 처용은 지금 태룡사 안에서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에스라 대륙으로 향해 아스터 교단을 쓸어 버리거나.

‘동방도 빨리 없애 버려야 하는데…….’

악신들이 지상에 구축한 세력.

에스라 대륙의 동방 제국도 하루빨리 없애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악신들이 비프로스트를 타고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

적들의 움직임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처용은 지금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 시간을 활용해 멸천의 권능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스승님, 태초신이 스승님께 건 봉인을 제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멸천의 권능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처용이 여래를 찾아가 말했다.

태초신이 여래에게 ‘신법’의 신명을 짊어지게 만든 대가로 건 역천의 봉인.

그 봉인을 살펴보며 풀 수 있는지 가늠해 볼 생각이었다.

[그래.]

여래는 처용의 말에 흔쾌히 수락하고는.

[아마…… 지금은 불가능할 테지만.]

부정적인 의견을 숨기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처용은 여래의 부정적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래에게 걸린 봉인은 무려 태초신이 건 봉인이었다.

쉽게 풀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이번 기회로 봉인을 풀 단서를 얻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스스스.

처용이 조심스럽게 신력을 끌어 올리며 여래를 향해 손을 뻗고는.

-지잉.

눈에 신력을 집중하며 통찰의 눈을 발동했다.

멸천의 권능과 통찰의 눈을 동시에 발현하자.

-!

처용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래를 중심으로 보이는 형형색색의 기운들.

가장 먼저, 황금빛으로 빛나는 기운과 창공처럼 푸른 기운이 눈에 들어왔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기운은 다름 아닌 ‘신법의 신명’.

푸른빛으로 빛나는 기운은 여래가 지닌 선인으로서의 신력이었다.

가장 거대한 두 기운을 확인한 처용은.

‘……저것인가?’

황금빛 기운, ‘신법의 신명’에 휩싸여 웅크린 듯 응축된 핏빛의 기운.

역천의 신명을 확인하며 속으로 읊조렸다.

마치, 황금빛의 금고 안에 압축되어 꼼짝달싹 못 하게 갇힌 듯한 모습.

태초신이 여래에게 건 봉인.

신법의 신명을 이용해 역천의 신명을 봉인한 모습이었다.

‘파천으로 부수는 건…… 불가능하군.’

신법의 신명을 살펴본 처용이 속으로 읊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권능을 파괴하는 권능인 파천의 권능으로도, 신법의 봉인을 부수는 건 불가능했다.

이는 처용이 격이 신법보다 낮은 이유도 있었지만.

‘신법의 봉인만을 부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여래에게서 보이는 다양한 기운 속에서, 신법만 골라 부수는 것도 불가능했다.

게다가 그 신법이 지금 여래의 신명이자, 존재의 근원.

때문에, 신법을 강제로 부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파천으로 신법의 봉인을 부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상황.

이제, 인과율을 조작하는 권능, 역천으로 신법의 봉인을 풀 수 있는지 확인할 차례였다.

-우우웅.

처용이 조심스럽게 역천의 권능을 일으키며 신력을 움직였다.

봉인이란, 정교하게 만들어진 감옥이자 금고와 같았다.

즉, 잠금장치를 풀 수 있는 열쇠, 봉인을 풀 방법은 반드시 있다는 뜻이었다.

아이기스에 봉인된 메두사를 해방시켰을 때처럼, 신법의 봉인 역시 풀 방법이 존재했다.

처용이 역천의 권능, 인과율을 조작하는 힘으로 신법의 봉인을 조심스럽게 살핀 결과.

“찾았다……!”

놀랍게도 신법의 봉인을 풀 방법을 알아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여래에게 신법의 봉인을 건 존재.

태초신은 어떻게 하면 신법의 봉인이 풀리는지를 숨겨놓지 않았다.

결계와 봉인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것.

봉인을 푸는 방법을 전혀 숨겨놓지 않은 것이었다.

처용은 신법의 봉인을 풀 방법을 찾은 것에 미소를 지었지만.

“이건……!”

이내, 미소가 사라지고 인상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여래는 그런 처용의 반응을 보고는.

[태초신이 건 봉인을 푸는 방법은, 나 또한 알고 있었다.]

처용이 왜 그러한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한다는 듯, 말을 이었다.

여래는 태초신이 건 신법의 봉인을 풀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초신이 처음 봉인을 걸었을 때부터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법의 봉인을 풀 방법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고 있음에도…… 신법의 봉인을 해제할 수가 없었지.]

그 봉인을 해제할 순 없었다.

“신법에 어울리는 신격이 나타나 신법을 짊어져야 한다?”

처용이 신법의 봉인 속에서 알아낸 봉인을 푸는 방법을 읊조렸다.

여래 대신 신법의 신명을 짊어질 신격이 나타나 신법의 신명을 짊어지는 것.

이것이 여래의 봉인을 푸는 방법이었다.

처용이 여래의 봉인을 푸는 방법을 읊조리며 인상을 찌푸릴 때.

[당장 신법의 봉인을 해제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계승자.]

-화아아!

태룡전의 중앙에 황룡이 나타나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처용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황룡을 잠시 바라보며 생각하듯 침묵하고는.

“황룡 님이 신법의 신명을 가져갈 순 없습니까?”

황룡을 향해 물었다.

되살아난 천찰의 대신, 태초신의 권한을 일부분 지닌 드높은 신격.

그라면, 신법의 이름을 짊어질 자격이 되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그러나.

[신법은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황룡이 고개를 저으며 자신은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신법에 어울릴 법한 다른 분들이…….”

처용이 신법이라는 신명을 짊어질 수 있는 몇몇 신격들을 생각하며 읊조렸다.

대표적으로는 신법의 존엄을 잠시 맡아 신법재판장의 권한을 발휘할 수 있는 미륵.

그런 미륵과 보살을 포함한 태룡전의 다른 신격들을 떠올렸다.

그때.

[계승자가 생각하는 다른 이들 역시, 신법의 인정을 받지 못했느니라.]

황룡은 그런 처용의 생각을 파악한 듯,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러자.

“……천존이라는 늙은이도 신법에 어울리는 놈이 아니었습니다.”

처용이 황룡의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천교의 전 주신이자 태초신에게서 신법의 이름을 부여받은 선천적 신격.

카투라가 보여 준 과거에서 본 천존은, 옥황상제만큼이나 오만하고 치졸하고 욕망이 가득한 신격이었다.

그런 옥황상제에 버금가는, 처용의 입장에서는 ‘최악’이라고 할 법한 신격이.

“그런 개 같은 늙은이보다, 여기에 계신 분들의 격이 떨어진다? 그건 내가 인정 못 합니다.”

태룡전에 거주하는 신격들보다 격이 높다?

처용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그 격의 기준을 정하는 게 우주의 법칙이면…… 그딴 법칙, 내 손으로 파괴해 버릴 겁니다.”

처용의 입에서 분노가 일렁이는 과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있어도 하등 도움이 안 되는 법칙 따위 차라리 없애 버리는 것이 나았으니까.

우주의 법칙을 없애 버리겠다는 처용의 말에.

[그대의 말은 틀리지 않았도다. 계승자여.]

황룡은 오히려 그런 처용의 말에 긍정하듯, 말을 이었다.

[천존은 신법을 악용했지, 그는 애초에 신법에 어울리는 자가 아니었다.]

태초신은 천존을 믿고 신법의 신명을 맡겨 우주의 법칙을 조율하도록 했다.

하지만, 천존은 그런 태초신의 믿음을 저버리고 제게 주어진 권한을 악용했다.

그 결과, 신계가 멸망 직전에 도래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신법 재판의 결과를 바꿀 순 있다.

결국, 태초신이 나서서, 여래와 거래를 하는 것으로 그 일을 수습했다.

[……그래서, 성운들은 신법을 몰수당하는 처벌을 받은 것이다.]

황룡이 눈을 감고 희미한 태초신의 기억을 다시 되새기며 말을 이었다.

우주의 법칙을 조율하는 강력한 권한이자 신들의 특권이었던 신법재판소.

신들이 제게 주어진 권한을 악용한 결과.

-너희들은 신법재판소를 남용했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주어졌던 가장 막강한 권한 중 하나를 몰수당했다.

동시에, 그 권한을 되찾을 기회도 마련되었다.

[그 처벌의 기간은, 신법이라는 신명을 짊어질 자격을 지닌 자가 나타날 때까지지.]

바로, 신법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고귀한 자가, 선천적 신격들 중에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정리하자면, 태초신은 여래와의 거래를 이용해, 선천적 신격들에게도 나름의 처벌을 내린 것.

“그러니까. 신법에 어울리는 자격을 지닌 신격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황룡의 말을 들은 처용이 지금껏 얻은 정보와 생각을 정리하며 말하자.

[내가 신법의 신명을 내려놓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여래가 처용의 말을 잇듯 대답했다.

그리고.

[조건은 또 있다. 신법에 어울릴 법한 신격이 나타나도, 내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점.]

신법의 봉인이 풀릴 조건은 또 있었다.

바로, 신법을 짊어지고 있는 여래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

[이 역시…… 쉽게 풀 수 없는 문제지.]

그 조건을 이야기한 여래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잠금장치는 두 개뿐인데…… 두 개 다 푸는 방법이 거지 같군요.”

처용이 신법의 봉인을 풀 수 있는 두 가지 조건을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첫 번째 조건인, 신법을 짊어질 수 있는 고귀한 신격의 등장.

여래가 신법의 신명을 짊어진 지 벌써 수천 년이었다.

그 길고도 긴 세월 동안, 선천적 신격들 중 신법을 짊어질 만한 존재는 나타나지 않았다.

새로 태어난 2세대 성좌들 중에서도 마땅한 자가 없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설령, 신법을 짊어질 자격을 지닌 고귀한 자가 나타난다고 가정해도 문제였다.

선천적 신격들에게 깊은 원한의 과거를 지닌 여래가 과연 그들을 쉽게 인정할까?

이것은 신법을 짊어질 자격과는 또 별개였다.

정리하자면, 신법에 어울리면서도 여래에게도 인정을 받는 고귀한 신격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

이것이 여래에게 걸린 신법의 봉인을 푸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봉인을 푸는 방법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풀 수 없는 상황.

“에라이 씨-!”

상황을 파악한 처용이 입 밖으로 욕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씹어 삼켰다.

당장, 파천을 이용해 신법의 봉인을 강제로 부수는 건 불가능하다.

신법의 봉인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알았음에도, 당장 봉인을 푸는 건 불가능했다.

“하…… 젠장.”

처용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자.

[낙담할 필요는 없다. 제자야.]

여래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격이 있는 자가 나타난다면, 신법을 양도하면 되는 것이고 아니면 내가 계속 짊어지면 되는 것이니라.]

운명처럼 고귀한 자격을 지닌 자가 나타나고 그가 여래의 인정도 받는다면.

새로운 신법의 대신이 탄생하고 여래는 오래된 속박에서 벗어난다.

여래는 오랜 시간 신법이라는 무거운 신명을 짊어진 자로서, 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선천적 신격들에게 신법을 맡겨도 되는지는 아직 못 미덥구나.]

“저 역시 같은 생각이 들어서 문제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을 이야기하는 여래의 말에 처용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처용 역시 오만한 선천적 신격들과 성운에게 신법을 다시 맡기는 게 영 미덥지 않았다.

금오도의 사태처럼,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같은 재앙을 불러일으키리라 생각했다.

다만.

‘신법에 어울릴 만한 신격이라…….’

모든 선천적 신격들이 오만하고 어리석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회귀 전, 그토록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성좌로서의 고귀함을 잃지 않고 싸운 이들이 있었으니까.

그런 몇몇의 선천적 신격들이 처용의 머릿속에 후보로 떠올랐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아테나.’

계승자인 처용이 차기 태초신 후보로 지목했던 선천적 신격.

가장 신뢰하는 선천적 신격 중 하나인 아테나였다.

그 외에, 미륵을 포함한 몇몇의 선천적 신격들이 떠올랐지만.

“하아.”

처용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고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어차피 선택은 자신이 아닌, ‘신법’의 신명이 선택하는 것이었으니까.

“이건…… 어쩔 도리가 없군요.”

여래의 봉인을 풀고 싶었던 처용이, 아쉽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아쉬워도 안 되는 것은, 안 될 뿐.

당장 안 되는 일에 매달리는 것보단,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투자하는 편이 나았다.

마음을 다잡은 처용이 태룡사로 돌아가려는 순간.

[수련탑의 수행자 중 한 명이, ‘아라한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처용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다름 아닌, 수련탑과 관계된 내용.

“아라한의 인정? 벌써?”

처용이 시스템 메시지의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읊조렸다.

그리고.

[아라한의 인정을 받은 수행자는 ‘블라디미르 로 루나리스’입니다.]

이어지는 시스템 메시지에 ‘수행자’의 이름, 루나가 언급되자.

“하하.”

처용이 무슨 상황인지 파악했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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