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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573화 (573/726)

#573화

태양신을 무사히 구출하고 여래와 보살이 태룡사로 돌아온 시점.

처용이 에스라 대륙의 상황을 확인하려 게이트를 열고 돌아갔을 때.

[……아무래도, 이번 일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아테나는 올림포스로 곧장 돌아가지 않고 태무신과 스사노오 등, 주신급 신격들을 향해 말했다.

당장 올림포스로 돌아가 봐야, 마땅한 대책도 세울 수 없는 상황.

이럴 때는 이번 일을 대대적으로 알리고 함께 논의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헤르메스-.]

생각을 마친 아테나가 헤르메스를 부르려는 순간.

-미안해! 지금은-!

아테나의 머릿속으로 헤르메스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평소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주 보이는 헤르메스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진심 어린 다급한 목소리.

[무슨 일이야?]

아테나가 심상치 않은 헤르메스의 목소리에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아테나! 카두케우스(Caduceus)의 소환을 승인해줘!

헤르메스에게서 다짜고짜 부탁이 들려왔다.

카두케우스(Caduceus).

전령신 헤르메스가 다루는 그의 신물인 케리케이온의 또 다른 이름.

정확히는 케리케이온 안에 내재된 권능 중 가장 강력한 권능, 아니, 권한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올림포스의 주신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쓸 수 있는, 케리케이온을 다루는 전령신만의 권한.

주신인 아테나조차도 일주일에 단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비상시에 사용해야 할 권한을.

-설명할 시간이 없어! 긴급한 상황이야!

헤르메스가 당장 사용해 달라며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마치, 누군가에게 목숨을 위협당하는 듯, 격식이나 분위기를 따질 법한 상황이 아닌 듯 보였다.

[올림포스 주신의 권한으로, 카두케우스의 소환을 허가한다.]

헤르메스는 아테나가 가장 신뢰하는 성좌 중 하나.

아테나는 그런 헤르메스의 다급한 요청을 즉시 수락했다.

그러자.

-전령신의 권한으로 카두케우스의 문을 개방한다!

헤르메스가 전령신의 지팡이, 케리케이온 안에 깃든 권능, 카두케우스의 권능을 발동했다.

-파지직! 화아아!

아테나의 앞에 빛무리와 전류가 튀며 3미터 크기의 네모난 문이 나타났다.

빛과 번개로만 만들어진 듯, 샛노랗게 빛나는 문.

[열려라.]

-파지직! 콰르릉!

아테나가 아스트라페를 소환하고는, 빛으로 이루어진 문의 중심을 향해 내질렀다.

마치, 문에 딱 들어맞는 열쇠를 꽂듯, 아스트라페의 창날이 빛의 문 중앙에 박혀 들었고.

-파지직! 철컥!

열쇠 구멍에 맞는 열쇠가 들어간 듯한, 장치가 서로 맞물리는 소리가 울렸다.

-쿠구구!

굳게 닫힌 빛의 문이 반으로 갈라지며 좌우로 열리기 시작했다.

아테나가 아스트라페를 뒤로 빼내며 조금 물러난 순간.

[어서 이쪽으로-!]

-후우욱!

좌·우로 열린 빛과 벼락의 문, 카두케우스 속에서 헤르메스가 다급한 표정과 외침을 내지르며 튀어나왔다.

마치, 문 속으로 다급히 몸을 던지며 뛰쳐나온 듯한 모습.

그리고.

[크윽!? 헤임달! 정신을 놓지 마라!]

-철크럭. 저벅-!

아스가르드 소속 신속의 신, 티르가 절뚝거리는 발걸음으로 누군가를 부축한 채, 걸어 나왔다.

[으…….]

티르에게 부축되어 늘어진 채, 가까스로 정신을 유지하는 듯 보이는 이.

피 칠갑이 된 헤임달이 한쪽 눈만 반쯤 뜬 채, 희미한 침음을 흘렸다.

그 뒤를 이어.

[크윽!]

[윽-!]

아스가르드의 성좌들과 신군들.

하늘색으로 빛나는 날개를 지닌, 아스가르드의 정예 신군, 발키리들까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성좌들과 신군들 대부분이 핏자국과 흉터가 가득했고 발키리들 역시 날개가 꺾이고 잘려 나가 있었다.

모두, 척 봐도 가볍지 않은 부상을 입은 모습.

그들은 절뚝거리면서도 다급한 발걸음으로 헤르메스를 따라 카두케우스 밖으로 나왔다.

[큭! 토르! 당장…… 나와야 한다!]

헤임달을 부축해 나온 티르가 아직 카두케우스 안에서 나오지 않은 한 명.

밖에서 홀로 문을 지키고 있을 토르를 향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티르의 말에 토르가 답을 하지 않자.

[인도해라! 케리케이온!]

-탁! 우우웅!

헤르메스가 손에 쥔 케리케이온으로 땅을 찍으며 신력을 내뿜었다.

-화아아!

그에 반응하듯, 카두케우스가 짧게 발광하며 빛을 내뿜었고.

-피이이! 후욱!

카두케우스 속에서 토르가 빛무리에 휩싸인 채, 튀어나왔다.

[크…… 모두 무사히 나온 것인가?]

가슴과 팔에 무수한 상처가 새겨져 피를 흘리고 있는 토르가 힘겹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고개를 돌려 드러난 토르의 오른쪽 눈가에는 날카롭고 깊은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보였지만, 가까스로 버티는 듯한 모습.

그리고.

[호오? 이건 또 무엇인가?]

-파츠츠츳!

카두케우스 안에서 검붉은 실루엣이 보이더니,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제로 카두케우스 안으로 진입하려는 듯, 강렬한 번개를 튀기며 드러나는 모습.

-쿵! 파지직!

카두케우스를 넘어오지는 못했지만, 가까이 다가오는 덕에 그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무한한…… 공포의 대악마!]

-스륵. 탓.

토르가 카두케우스 너머로 보이는 우람한 덩치의 대악마, 디아블로를 쏘아보며 무기를 들어 올렸다.

그때.

[카두케우스를 폐문(閉門)한다!]

-탁! 파아아!

헤르메스가 케리케이온을 들고 바닥을 찍으며 카두케우스를 향해 신력을 내뿜었다.

-끼이이-!

카두케우스의 문이 강제로 닫히려는 듯, 빛의 문이 좌·우로 닫히며 줄어들자.

[어딜-!]

-쾅! 파지지직!

디아블로가 양팔을 벌려 닫히려는 카두케우스의 문을 강제로 붙들었다.

닫히는 자동문을 붙잡아 힘으로 열려는 듯한 모습.

[이-!]

헤르메스가 경악한 표정으로 케리케이온의 힘을 더했고.

[그럴 리는 없겠지만…….]

-파지직!

아테나가 아스트라페를 쥐고 전투를 준비하는 등 다른 신격들이 전투를 준비하듯 대비했다.

그때.

[힘 낭비하지 마시오. 그걸 강제로 붙든다 한들, 안으로 들어갈 순 없을 테니.]

-스르륵.

디아블로의 뒤로 검녹색의 실루엣이 다가오더니, 머리 위로 큰 뿔이 자라난 로키가 나타나 말했다.

[이번에 살아남은 건…… 축하한다고 말해 주지. 형님.]

로키가 작은 미소를 짓고는 가장 앞에 있는 토르를 바라보며 말하자.

[로, 로……키!]

토르가 분노가 일렁이는 듯, 낮게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 모습을 짧고 차분한 눈빛으로 잠시 응시한 로키는.

[……다음에 보자고.]

고개를 휙 돌려 버리며 뒤돌아 사라졌다.

[……아스가르드는 너무나도 싱거웠구나.]

카두케우스의 문을 붙들고 있던 디아블로가 토르를 향해 짧은 비웃음을 던지며 문에 손을 뗐다.

-끼이-이! 쿠구궁!

디아블로가 손을 놓자 카두케우스의 문이 빠르게 닫혔다.

카두케우스를 유지하던 빛과 번개가 바람을 타고 흩어지며 완전히 사그라지자.

[으아~! 진짜 죽는 줄 알았네!]

-탁.

헤르메스가 그 자리에서 주저앉으며 안도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헤르메스.]

아테나가 헤르메스를 향해 작금의 상황을 물었다.

헤르메스가 이렇게 진심 어린 질색을 보이는 건, 아테나도 몇 번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장난이 아니었다고! 삼천마 둘에 이어 대악마들이 미친 듯이 추적해오는데-!]

아테나의 물음에 헤르메스가 벌떡 일어나더니, 손짓을 섞어 가며 작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삼천마라고?]

아테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헤르메스의 말에 읊조리듯 답했다.

헤르메스는 헤임달과 토르를 만나기 위해 아스가르드로 갔었다.

그런 그가 카두케우스의 문을 다급하게 열었고 심각한 부상을 입은 토르와 헤임달 등을 이끌고 나왔다.

게다가,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겨우 살아남은 듯 보이는 다른 아스가르드의 성좌들과 신군들까지.

[아스가르드가 대악마들에게 습격을 당한 건가?]

빠르게 작금의 상황과 생각을 정리한 아테나가 헤르메스에게 묻자.

[습격을 당한 정도가 아니야! 이미…… 아스가르드는……!]

헤르메스가 인상을 찌푸리고는 토르를 눈짓하며 말을 흐렸다.

그런 헤르메스의 말에, 아테나가 최악의 상황을 떠올릴 때.

[천찰, 의학의 신을 불러 주십시오.]

-우우웅.

부상자들을 빠르게 살펴본 보살이 급하다는 듯 말했다.

조금 전부터, 자비의 손길을 이용해 부상자들을 치료해 보고 있었지만.

[으어……!]

가장 심각한 부상을 입은 헤임달과 몇몇은 보살의 권능에도 치료가 진전되고 있지 않았다.

-화아아!

황룡이 눈을 감으며 황금빛을 짧게 내뿜었고.

[부상자는-.]

보살 옆에 빛무리가 뭉치며 의학의 신이 나타났다.

황룡이 작금의 상황도 같이 전했는지, 의학의 신은 나타나자마자 쓰러진 이들부터 살폈다.

[……강력한 마기가 신격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빠르게 부상자들을 진단한 의학의 신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고.

[난 괜찮으니…… 다른 이들부터……!]

-툭. 차라랑! 차캉!

토르가 무릎을 꿇고 양손에 쥐던 묠니르와 라트요른을 떨구며 읊조리듯 말했다.

정신력으로 지금껏 버티던 몸이 한계를 맞아 쓰러지려는 모습.

[제자야-.]

작금의 상황을 지켜본 여래가, 조금 전 에스라 대륙으로 향한 처용에게 전음을 보냈다.

***

태룡사 중턱, 드래곤 시티와 조금 떨어진 장소에 세워진 의료전과 현대식 대형 병원 건축물.

이종국 병원장이 운영, 관리하는 병원 앞 정자.

그곳에 응급처치를 받은 듯, 전신에 붕대와 거즈를 붙이고 왼팔에 깁스를 한 토르가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다.

그 주변으로 태룡사에 머무르고 있던 신격들이 모여 있었고.

[……이렇게 된 거였소.]

토르가 그들을 향해 이야기하듯, 말을 마쳤다.

아스가르드에 무슨 일이 발생했었는지,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등.

조금 전, 겪었던 일들을 상세히 이야기했다.

[아스가르드가…….]

아테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토르는 아스가르드에서 발생한 일을 알리기 위해, 응급처치만 받고 아는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덕분에, 헤르메스에게서 들었던 단편적인 이야기 말고 더 자세히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문제는.

[아스가르드의 주신이…… 살해되었다니.]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한 정도가 아니라, 최악이라는 점이었다.

무려 거대 성운이 복구 불가능한 피해를 입었고 주신까지 살해된 상황이었다.

헬리오폴리스의 일만으로도 심각할 지경인데, 더 심각한 피해를 입은 아스가르드까지.

[언제든 적에게 멸망 당할 수 있는 위협을 받는 것인가?]

아테나가 눈을 감고는 옅게 찌푸린 표정을 지으며 읊조렸다.

단 하루 만에 거대 성운 둘이 엄청난 피해를 입은 상황.

올림포스를 포함한 다른 성운 역시, 당장 직면할 수 있는 문제였다.

[……도와주어서 고맙소. 올림포스 주신. 이 일은 절대로 잊지 않겠소.]

이야기를 마친 토르가 아테나에게 감사를 전했다.

토르와 헤임달을 포함한 소수 정예들이 대악마들에게 맹추격을 받았던 이유.

그들은 악마들의 습격을 피해 달아났던 아스가르드의 신민들을 위해 시간을 번 것이었다.

다행이라고 할 부분은, 디아블로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악마들이 토르를 추격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아스가르드의 신민들도 무사히 도망쳤고 시간을 번 이들도 헤르메스의 도움 덕에 도망칠 수 있었다.

무사히 도망친 아스가르드의 신민들은 지금 헤르메스의 인도하에 올림포스의 영역에서 보호를 받고 있었다.

다만.

[잊지 않는다고 하여 내가 올림포스에 뭘 해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지만…….]

토르가 실소와 허망함이 섞인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자신을 탓하는 자책감과 무력감이 느껴지는 힘 없는 목소리.

한순간에 성운과 가족, 동료들을 잃고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짙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런 말 마십시오. 천둥의 신.]

아테나가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토르의 말에 답했다.

더 뭐라 위로를 전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비프로스트…… 그걸 이용해서 헬리오폴리스를 습격한 건가?”

토르의 증언과 아스가르드에 일어난 일을 정리한 처용이 읊조리듯 말했다.

[로키의 말이 정녕 사실이라면, 헬리오폴리스의 습격을 조력한 이는…… 아버지다.]

처용의 읊조림에, 토르가 눈을 감으며 대답하듯 입을 열었다.

-이 멍청한 늙은이는! 제 욕망을 위해 신계를 배신하고 성운을 팔아먹었다!

토르가 로키에게서 직접 들었던 말.

로키는 대악마를 상대로 분투하는 토르를 향해 공격을 퍼부으며.

-계승자와 황룡을 죽이면, 자신이 우주의 유일신이 되리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더군! 멍청하기 짝이 없지!

분노와 광기를 담아, 자신이 살해한 오딘을 조롱하듯,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로키는 오딘이야말로 신계를 배신한 배반자이며, 자신은 그 배반자에게 심판을 내린 고귀한 자라고 소리쳤다.

[내 생각이지만…… 아마 로키의 말이 거의 맞을 거다.]

토르가 로키에게서 들었던 말들을 이야기하며 말을 이었다.

아니라고 믿고 싶고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로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어…….]

마주하는 상대의 진심을 파악할 수 있는 감각을 지닌 토르.

그런 토르에게 울리는 로키의 광기와 분노 어린 외침은 모두 ‘진실’이라고 느껴졌다.

토르가 힘없이 고개를 떨구며, 말을 마치자.

‘……로키가 순혈자였고 대악마가 되어, 오딘을 직접 죽였다고?’

처용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깊은 한숨을 속으로 삼키며 생각했다.

동시에.

‘회귀 전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회귀 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상황에, 인상을 찌푸리며 속으로 읊조렸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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