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569화 (569/726)

#569화

헬리오폴리스 성역과 아라한 왕국이 맹렬한 공격을 받고 있을 때.

“피해가 커지기 전에, 서둘러 가야 합니다.”

-우우웅.

게이트웨이를 타고 나타난 성자가 뒤이어 나오는 이들을 향해 말했다.

성자와 빛의 교단은 에스라 대륙에 펼쳐진 방어 전선의 후방과 보급, 회복을 맡은 이들이었다.

후방을 지키며 전방의 전선이 밀릴 위험에 처한 지역을 돕고 전사들의 부상을 회복시키는 것.

전장의 보급대와 구급대의 역할을 맡은 것이 바로 성자와 빛의 교단이었다.

지금 아라한 왕국이 맹렬한 공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에, 성자가 직접 지원에 나선 상황이었다.

성자와 함께 가장 먼저 출발한 선발대는 모두 교단의 소수 정예들.

고레벨인 성수의 기사 스무 명과 성역의 사제 열 명.

그리고.

“아라한 왕국은 잘 버티고 있을 겁니다.”

한때 성수의 기사였던 헌터이자, ‘해전군주’라는 이명으로 잘 알려진 처용의 누이.

연화가 성자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성자는 헌터들 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인물.

그런 성자를 아스터 교단의 성녀라는 존재가 노리고 있었다.

성자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그를 노리는 적을 그냥 간과할 수는 없는 노릇.

각 길드장들이 짧게 논의한 결과.

-누군가가 성자와 동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같은 생각입니다.

단독으로 행동할 수 헌터 중 실력이 뛰어난 이가 성자와 동행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대표적으로 백호와 진호를 비롯한 스피릿 팀의 헌터들 몇몇이 지목을 받았다.

그리고 지목을 받은 후보 중 하나.

-제가 하죠.

길드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S급 헌터.

모두가 인정할 정도로 두말할 것 없는 전투 능력을 지닌 헌터.

연화가 성자와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본인도 이에 동의했다.

“연아도 있으니, 잘 대처하고 있을 겁니다.”

아라한 왕국에 있는 이들을 믿는 연화의 말에.

“그래도, 위험한 상황이니 서두르죠.”

성자는 그래도 불안하다는 듯, 말했다.

아라한 왕국에 상당한 전력이 체류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악신들과 타천사들이 직접 강림했다니……!’

지금 아라한 왕국은 다른 지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맹렬한 공격을 받고 있었다.

아무리 그곳에 강자들이 다수 있다고 해도, 위험한 상황은 맞았다.

“다음 영지로 가면, 아라한 왕국 수도로 바로 갈 수 있을 겁니다.”

성자가 앞으로 나아가며 말했다.

지금 게이트웨이를 타고 나타난 곳은 아라한 왕국과 인접해 있는 왕국 외곽의 영지였다.

이곳과 가까운 아라한 왕국의 영지로 이동하여 게이트웨이를 탄다면, 바로 아라한 왕국 수도로 갈 수 있었다.

영지와 영지 사이를 이동하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광휘의 발걸음.”

-탓! 화아아!

성자가 빛으로 변하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광휘의 발걸음.”

“광휘의 발걸음.”

-탓. 화아아!

성수의 기사들과 성역의 사제들 역시 성자와 같은 스킬을 사용하며 빛으로 사라졌다.

-쏴아아! 샥!

다리에 파도를 휘감은 연화 역시 그 자리에서 사라지며 앞서 나간 성자를 뒤따랐다.

영지와 영지 사이에 거리가 있어도 헌터들에게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평범한 인간을 넘어선 이들.

평범한 영지민들 입장에서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라도, 헌터들은 빠르게 오갈 수 있었다.

게다가, 성자를 포함한 헌터들과 연화는 헌터들 중에서도 유독 강한 이들.

서둘러 이동하면, 순식간에 영지와 영지 사이를 오갈 수 있었다.

그렇게 성자와 연화, 헌터들이 아라한 왕국의 영지로 이동하려던 순간.

“이런!”

-화아아! 샥!

빛무리로 변해 앞서 나가던 성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탓. 타탓.

그를 뒤따르던 교단의 정예 헌터들과 연화 역시 발걸음을 멈추었고.

“적이다!”

“성자님을 보호하라!”

성자의 곁으로 성역의 사제와 성기사들이 모여들며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스릉.

연화 역시 환도를 뽑아 들고 주변을 경계하듯 전투 태세에 돌입했다.

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전투 준비에 돌입한 이유.

-후우우……!

바로, 주변에 들어찬 ‘안개’ 때문이었다.

“우리가 이곳을 지나쳐 갈 걸 미리 알고 기다린 것 같군요.”

연화가 주변에 펼쳐진 안개를 노려보며 말하자.

“전혀 감지하지 못했는데……!”

성자가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서둘러 이동하면서도 주변을 경계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적이 미리 파둔 함정 속에 들어설 때까지, 전혀 위협을 눈치채지 못했다.

게다가, 눈앞에 드러난, 핏빛 기류가 옅게 일렁이는 하얀 안개.

이 안개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라사벨……!”

성자가 눈앞의 안개를 만들어 낸 적의 이름을 읊조리자.

“아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자님.”

-스르르.

안개 속에서 핏빛 눈동자가 번뜩이더니, 라사벨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기다리고 있던 인연을 만난 듯 한껏 상기된 듯한 표정.

성자는 그 집착 어린 라사벨의 표정이 거북하다는 듯, 작게 인상을 찌푸리고는.

“진정 나를 생각한다면, 막지 말고 비키십시오.”

진지한 목소리로 길을 비키라고 말했다.

지금은 위험에 처한 아라한 왕국을 도우러 가야 하는 상황.

지금 라사벨에게 발목을 붙잡혀 시간을 끌리는 건 좋지 않았다.

그런 성자의 말에.

“그 이단국은 곧 이 대륙과 신들을 위한 제물이 될 겁니다.”

라사벨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곧 사라져 없어질 잡것들에게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성자.”

“……전투를 준비하십시오.”

라사벨의 대답에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은 성자가, 주변에 모여든 헌터들을 향해 말했다.

“서둘러 ‘적’을 처치하고 아라한 왕국을 도우러 갑니다.”

성자가 라사벨을 ‘적’이라 단호하게 말하며 기세를 끌어올리자.

“그 간악한 변종에게 세뇌된 성자님을 제가 해방시켜 드리겠습니다.”

라사벨이 진심으로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리고.

-크으으……!

-으어……!

짙은 안개 속에서 병사들과 기사들, 마법사들이 비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방어에 집중하십시오. 제가 안개를 걷어내겠습니다.”

-스스스.

성자가 짙은 신성력을 스멀스멀 내뿜으며 헌터들을 향해 명령했다.

이전 라사벨과 마주쳤을 때도, 그녀가 주변에 펼친 안개를 걷어냈었으니까.

성자가 밝게 빛나는 새하얀 신성력을 내뿜자.

“정말 아름다운 빛입니다. 나에게 어울리는……!”

라사벨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짙은 집착 어린 미소를 드러냈다.

그리고.

-파지직. 파직.

그녀의 이마 부근에 검붉은 전류가 튀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불길함이 한껏 느껴지는 검붉은 기운이 그 존재감을 내뿜으며 넘실거렸고.

-쩌저적! 지잉!

라사벨의 이마가 길게 찢어지며, 핏빛의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후우우!

주변에 펼쳐진 안개가 더욱 짙어졌고.

-크으으!

-캬아!

안개 속에서 나타난 기사와 마법사들에게 핏빛 힘줄이 돋아나며 괴성을 질렀다.

“악의 종주…… 그 사악한 존재에게 축복을 받았군.”

성자가 이전보다도 강하고 사악한 기운을 내뿜는 라사벨을 향해 인상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지금 라사벨이 내뿜는 빛의 기운에 섞인 불길하고도 사악한 기운.

성자는 그 기운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진실의 마나로 꿰뚫어 보았다.

안 그래도, 괴물처럼 느껴지는 라사벨이 더욱 뒤틀리고 이질적인 존재로 느껴졌다.

“왜 창조주에게 맞서는 겁니까? 모두 그 변종에게 속고 있는 겁니다.”

라사벨이 자신을 향해 혐오를 숨기지 않는 성자에게 호소하듯 말하자.

“……모두 방어에 집중하십시오. 제가 길을 열어보겠습니다.”

성자는 더 라사벨의 말을 듣지 않고 전투에 집중하듯, 헌터들을 향해 명령했다.

처음 라사벨과 마주쳤었을 때.

-왜 죄 없는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겁니까. 그것도 성녀라는 자가!

라사벨을 향해 진심으로 물었었다.

왜 아스터 교단이 그토록 잔혹한 일들을 벌였는지.

인륜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짓거리를 계속하는지.

그 이유와 의도가 진심으로 궁금했기에 물은 것이었다.

그러나 성자에게 돌아온 라사벨의 대답은.

-그 가축들은 신과 신을 모시는 고귀한 이들을 위해 사용된 거랍니다.

너무나도 가관이었다.

-위대한 신을 위해 그 하찮은 생명이 사용되었으니, 머리를 조아리고 감사를 표해야 마땅하지요?

아스터 교단의 성녀라는 자에게서 직접 들은 충격적인 대답.

성자는 진실의 마나를 통해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뒤틀린 가치관에 이어 진실의 마나로 꿰뚫어 본 라사벨의 정체까지.

“당신 같은 존재는 내가 지금껏 본 악인 중 ‘최악’입니다.”

성자는 눈앞에 있는 적, 악신들에 의해 탄생한 뒤틀린 괴물을 향해 한껏 적의를 담아 읊조렸다.

-크아!

-으아아!

안개 속에서 나타난 기사들과 병사들, 마법사들이 성자를 향해 달려들었고.

“성수를 발현해라!”

“성자님을 지킨다!”

성수의 기사들이 전방에 서서 방패를 세우고 성역의 사제들이 빛을 내뿜으며 대비했다.

“들이치는 밀물.”

-쏴아아! 촤아!

연화가 성자의 뒤에서 접근해오는 기사들을 단번에 베어 버리고는.

“성자, 이 결계를 부술 수 있겠습니까?”

-탓.

뒤로 물러나 성자의 뒤에 다가오며 묻자.

“제가 적의 시선을 끌겠습니다. 해전군주께서 이 안개를 걷어 주십시오.”

성자가 자신이 생각한 바를 이야기했다.

지금, 이 안개를 단번에 부술 만한 힘을 지닌 헌터는 성자와 연화뿐.

그렇다면, 둘 중 하나가 적의 시선을 붙잡는 동안, 다른 한 명이 힘을 모아 결계를 부수는 것이 이상적이었다.

연화가 성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순간.

-화아! 탓.

성자와 연화가 서로 거리를 벌리며 멀어졌다.

성수의 기사들과 성역의 사제들과도 조금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당신은 저와 함께해야 합니다.”

라사벨이 곧장 성자의 앞에 나타나 그를 회유하듯 손을 뻗으며 말했다.

“……내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으시군요.”

-화아! 파아아-!

성자는 라사벨의 손끝에서 넘실넘실 뻗어 오는 안개를 향해 빛을 쏘아 보내며 쳐 내고는.

“나는 당신이 싫습니다.”

라사벨을 향해 눈빛을 차갑게 빛내며 입을 열었다.

지금 결계를 부수기 위해 힘을 모으는 연화를 돕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당신은 제 이상형이 아닙니다.”

적의 시선을 더 강하게 잡아둘 필요가 있었다.

눈앞의 괴물은 성자인 자신에게 ‘집착’하고 있다.

그렇다면.

“저는 보기와는 다르게 흰색보다, ‘검은색’과 ‘푸른색’을 좋아합니다.”

그 집착을 이용해 적의 시선이 자신에게만 향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연약하기보단 건장하고 강인한 여성을 선호합니다.”

성자는 최대한 눈앞의 괴물, 라사벨이 지닌 외형의 정반대되는 특징들을 자신의 취향이라며 읊었다.

아니나 다를까. 성자가 자신의 이상형에 대해 말하자.

“제가…… 제가 마신에게 세뇌된 성자님을 고쳐드리겠습니다.”

라사벨이 입꼬리를 뒤틀며 즉각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감히! 성자님의 과분한 사랑을 받다니-!!”

-콰아! 화아아!

돌연, 분노한 듯 고함을 지르며 손아귀에 안개와 빛무리를 모아 누군가에게 쏘아 보냈다.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이런?”

성자와 떨어진 곳에서 은밀히 힘을 모으던 연화였다.

검은 머리와 푸른 파도를 다루고 다른 일반적인 여성들보다 큰 키에 건장한 체격을 지닌 헌터.

하필이면 성자가 언급한, 라사벨과 반대되는 외형을 지닌 여성이 이 자리에 있었다.

“솟구치는 파도!”

-쏴아아!

연화는 돌연 자신에게 빛의 포격을 퍼붓는 라사벨의 공격을 막아 내고는.

“어그로(Aggro) 돌리는 솜씨가 제법입니다. 성자.”

-탓.

성자의 옆에 다가오며 무슨 상황인지 파악한 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성자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든 자신을 탓하며 연화에게 사과하자.

“성자에게서 떨어져라! 이 하등한 가축 따위가-!”

라사벨이 연화를 향한 성자의 사과에 더 자극을 받은 듯.

-쿠구구! 화아!

더 강렬한 기운을 내뿜으며 분노를 드러냈다.

예상하지 못한 돌발상황에 기존의 작전이 어그러진 상황.

성자는 이렇게 된 이상.

“제가 이 결계를-.”

연화가 적의 시선을 붙잡고 자신이 힘을 모아 이 결계를 부수는 것이 이상적이라 판단했다.

그때.

-화아아!

성자의 바로 옆에서 강렬한 빛이 피어올랐고.

-우웅! 파아아!

빛 속에서 나타난 누군가가 하얀 날개를 펼치며 성자와 연화를 향해 쏟아지는 빛을 튕겨냈다.

“……호네아?”

성자가 빛과 함께 나타난 여성.

빛의 교단의 성녀인 호네아를 보며 놀란 듯 묻자.

“혹시 몰라, ‘세인트 로드’를 사용했는데, 이걸 쓰길 잘했네요.”

빛의 교단의 성녀, 호네아가 성자를 향해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24시간에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인 ‘세인트 로드(Saint Road)’.

이 스킬은 성녀인 호네아가 성자에게 즉시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스킬이었다.

남매이자 같은 세인트(Saint)인 성자 역시 가지고 있는 스킬.

성자와 성녀인 둘이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같이 발현된 스킬이었다.

“어서 가세요. 오라버니. 아라한 왕국에는 성녀인 저보단 성자인 오라버니가 더 필요할 겁니다.”

호네아가 성자를 향해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고는.

“제가 이걸 터트리면, 오라버니와 교단의 헌터들도 위험해집니다.”

경고 어린 진지한 목소리로 강하게 말을 이었다.

성자가 호네아의 말에 인상을 찌푸릴 때.

“해일 가르기!”

-촤아아!

조용히 힘을 모으던 연화가 환도에 강렬한 파도를 휘감아 아래로 내질러 크게 베었다.

그러자.

-쩌저저적!

바닥이 연화가 내지른 파도의 검격에 의해 크게 갈라졌고.

-스스스.

갈라진 틈 너머로, 본래 그들이 가야 할 영지와 영지 사이의 숲길이 보였다.

“성녀.”

결계를 찢어낸 연화가 호네아를 바라보며 말하자.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해요?”

호네아가 자신감 어린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마치, 연화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미리 대답한 모습.

“미리 사과하겠습니다. 성자.”

-탓!

연화가 성자를 향해 사과하고는 그를 붙잡고 찢어진 결계 틈으로 뛰어들었다.

동시에.

“백익(白翼)의 손길.”

-화아아!

호네아가 백색의 천사 날개를 길게 펼쳤고 성자와 함께 온 교단의 헌터들을 향해 내뻗었다.

날개가 헌터들을 휘감으며 빛의 구체로 변했고 그 구체가 연화가 만들어낸 갈라진 틈 속으로 날아갔다.

호네아를 제외한 모두가 안개 밖을 빠져나가자.

-파아아!

갈라진 틈에 안개가 들어차며 다시 메꾸어졌다.

“아아, 과분하게도 성자님의 여동생으로 태어난 하계종이로군요?”

라사벨이 갑자기 난입한 호네아를 향해 관심 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성자가 사라졌음에도, 조급함을 보이지 않는 모습.

“당신을 참회시켜 신께 봉사하도록 만들면, 성자님께서도 제게 오시겠죠.”

자신과 같은 성녀, 호네아를 잡으면 성자 또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때.

“야.”

호네아의 입이 열리고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무겁고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스스스.

조금 전 호네아가 내뿜었던 신성한 빛의 기운과는 반대되는 기운.

짙은 어둠의 기운이 조금씩 넘실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네가 우리 애들 괴롭혔다며?”

“……애들?”

라사벨이 분위기가 확 변한 호네아의 말에 의문을 표하고는.

“아아, 어리석게도 신의 품에 안겨 봉사할 기회를 버린 가축들을 말하는 것이로군요?”

호네아가 말한 애들이 누구인지 알아챘다는 듯, 말했다.

그 말에.

“큭.”

호네아가 입꼬리를 작게 휘며 짧은 비웃음을 흘렸다.

“감히, 성녀인 내 말을 비웃-.”

그 비웃음에 라사벨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닥쳐.”

-스스! 쿠구구구!

호네아가 라사벨의 말을 끊어 버리고는 스멀스멀 내뿜던 어둠을 강하게 폭발시켰다.

-스르륵.

본래 백색이었던 호네아의 절반이 점차 어둡게 변해가기 시작했고.

“그 혓바닥을 뽑아서 네 모가지를 감아 묶어 버리고 싶으니까.”

성스러운 성녀의 입에서는 나와서는 안 될, 험한 말이 흘러나왔다.

본래 그녀가 지닌 성격이 조금은 바뀐 듯한 모습.

게다가.

-스르르륵!

호네아를 점차 뒤덮던 어둠이 절반에 그치지 않고 그녀의 전신을 뒤덮었다.

절반만 어둠에 물들지 않고 전신이 칠흑처럼 검게 변한 모습.

확 뒤바뀐 분위기, 빛과 반대되는 어둠만이 가득한 형태.

“이런 타락한 하계종이 감히 성녀라 불리다니!”

그 모습을 본 라사벨이 끔찍한 것을 보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호네아는 그런 라사벨의 말에 오히려 작은 미소를 흘리고는.

“타락? 그거 생각보다 나쁘지 않더라고.”

-우우웅!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둠을 끌어모으며 말했다.

“타락한 덕분에…… 오라버니에게 찝쩍대는 벌레를 내 손으로 짓밟아 버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호네아가 미소를 보이며 말을 잇고는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았다.

조금 전, 연화를 향해 최대한 멀리 떨어지라는 말.

경고를 담아 그 말을 건넨 이유가 있었다.

완전한 어둠의 형태로 발현하는 올 딜리트(All Delete).

이건, 아군과 적을 가리지 않고 주변 일대를 초토화시켰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같은 편이 있을 땐, 절대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처용조차도 혀를 내두르며 진심 어린 경고를 했을 정도였으니까.

“올 딜리트(All Delete)-.”

본래, 올 딜리트는 강렬한 빛을 퍼트려 주변의 모든 ‘마’를 삭제해버리는 힘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빛 한점 없는 완전한 ‘어둠’의 형태를 띤 상황.

그런 상태에서 발현하는 올 딜리트는 어둠을 삭제하는 빛을 터트리는 것이 아닌.

“다크니스 풀 리버레이션(Darkness

Full Liberation).”

그와 반대로 강렬한 어둠을 퍼트려 주변의 모든 것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이었다.

-후우우! 콰아아!

호네아에게서 빛 한점 보이지 않는 어둠이 나선으로 휘몰아치며 거칠게 뻗어 나가자.

-캬아아!

-크아!

주변에 빼곡히 들어찬 기사와 병사들, 마법사들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며 사그라졌고.

-파사사사사!

짙은 안개 또한 순식간에 영역을 넓혀가는 어둠 속에 삼켜졌다.

“이-!”

주변의 모든 것을 삼키는 어둠에 차마 대항하지 못한 라사벨이 짧은 침음을 흘렸고.

-콰아아아!!

이내 어둠 속에 완전히 삼켜지며 사그라졌다.

강렬하게 폭발한 어둠은 라사벨이 만들어 낸 안개의 결계를 완전히 부순 것에 그치지 않고.

-콰아! 콰화아아!

본래 그녀들이 있던 지역, 숲길 전체에 검은 폭탄이 떨어진 듯, 어둠이 크게 폭발했다.

빛 한점 없는 검은 기둥이 하늘을 꿰뚫으며 드높게 솟구쳤고 그 크기가 점점 넓어지며 확대되었다.

그리고 어둠이 폭발한 곳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

“저기에 휘말렸으면…… 나라도 위험했겠어.”

성자와 교단의 헌터들과 함께 멀리 대피한 연화가 검은 기둥을 멍하게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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