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559화 (559/726)

#559화

마탑이 무너지고 이틀이 지났을 무렵.

에스라 대륙의 각 지역에 자리를 잡은 길드들.

그 길드들의 대표들이 게이트웨이를 통해 아라한 왕국에 모여들었다.

에스라 대륙에 발생한 새로운 이변과 앞으로의 향후 방침을 위해서였다.

각 길드들의 길드장들, 대표 헌터들이 아라한 왕궁 뒤에 있는 대강당으로 모였고.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아나샤가 헌터들을 향해 입을 엶과 동시에 눈을 돌려 옆을 응시했다.

-우웅.

시선을 받은 멜리제와 몇몇 마법사들이 수정구에 마나를 부여하며 아티팩트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피이이…….

아스터 제국에 솟구친 검은 문 중 하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만, 그 모습이 처음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많이 작아졌군요. 쏟아져 나오는 괴물들도 확연히 줄어들었고.”

제시카가 처음에 비해 그 크기가 많이 작아진 검은 문을 보며 말했다.

에스라 대륙에 나타나 검은 재앙을 쏟아내던 두 개의 검은 문.

그 두 개의 문 중 하나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시골 영지의 성문보다도 작은 크기로 변했다.

본래, 검은 문의 크기는 높이만 20미터에 도달할 정도로 거대한 문이었다.

크고 넓은 문을 통해, 멸망한 세계에서 양산된 검은 괴물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었다.

그 문이 이젠 3미터 크기로 확 줄어들어 버린 상황.

이는 검은 문에 에너지를 보태고 있던 마탑, 그 마탑과 검은 문을 연결하는 선이 끊어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마탑의 주인.

“저 검은 문으로 향하던 마탑의 에너지 공급 선을 내가 끊어 버렸으니까.”

루비아가 검은 문을 향해 에너지를 보내는 마탑의 공급선을 완전히 끊어 버렸다.

다만.

“공급되는 에너지를 끊었으니, 저 문이 사라져야 하는데…….”

새로운 마탑의 주인, 루비아가 의문을 읊조리며 말을 이었다.

공급되는 에너지가 사라진 이상, 이제 검은 문을 유지할 에너지는 없었다.

그렇다면, 마탑이 유지하던 검은 문은 완전히 사라져야 했다.

그러나 검은 문은 크기만 줄어들었을 뿐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아스터 제국이 그동안 갈취한 생명 에너지를 불어넣어 검은 문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처용이 루비아의 의문에 답하듯, 입을 열었다.

“기껏 열어 놓은 검은 문을 포기할 순 없을 테니까.”

“질긴 놈들이…….”

루비아가 처용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마탑을 손아귀에 넣자마자, 아스터 교단에 온갖 마법 폭격을 퍼붓고 싶었다.

고맙게도, 제르멜이 마탑에 마나를 가득 충전해 놓았던 상황.

그 방대한 에너지를 모두 공격 마법으로 사용하여 아스터 제국의 수도를 폭발시켜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마탑을 손에 넣은 8서클의 대마법사라 해도, 당장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신의 힘으로 만들어진 방벽이라니…… 그런 것까지 만들 능력이 있었나?”

지금 아스터 제국의 수도 인근에, 하늘 높이 솟구쳐오른 백색의 벽으로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루비아가 짜증 어린 목소리로 아스터 제국 외곽에 솟구친 방벽을 생각하며 말했다.

당연히 아스터 제국을 보호하는 반투명한 백색의 방벽에 공격을 퍼부어 봤었다.

심지어 평범한 공격 마법을 발현한 것도 아니었다.

무려 마탑의 방대한 마나를 얻은 8서클의 대마법사가 발휘하는 공격.

하나하나가 메테오에 버금가는, 8서클의 강력한 마법들.

그 수십 가지의 마법들을 쉴 틈 없이 쏟아내었다.

그러나 방벽에 금만 조금 갔을 뿐, 부서지지는 않았다.

심지어 방벽에 금이 간 부분조차도, 순식간에 복구되었다.

루비아는 마탑의 마나를 모두 소모하는 한이 있더라도, 공격을 계속해볼 생각이었지만.

-공격이 아닌 ‘공략’을 해야 한다.

처용이 소모전을 계속하려는 루비아를 말렸다.

애초에 아라한 왕국에 주요 인사들이 모인 이유가 바로 아스터 제국의 ‘공략’ 때문이었다.

현재 상황은, 적들이 검은 군대와 소수의 성기사들만 밖으로 보내 소모전만 유도하고 있었다.

그 외에는 그들을 보호하는 방벽 밖으로 나오지 않으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다행히, 놈들의 공세가 확 줄어드는 바람에, 길드와 각 왕국들의 방어선이 견고해졌습니다.”

-지이잉.

커맨더가 강당 중앙에 거대한 홀로그램 지도를 띄우며 말했다.

지도 중앙 위측에 붉게 표시된, 아스터 제국의 영토.

그 아래로 둥글게 감싸듯 길게 이어진 푸른색의 진형.

길드와 왕국들이 형성한 방어선의 지도가 한눈에 보였다.

“아무리 검은 문 하나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해도, 갑자기 방어적으로 나온 게 이상하긴 합니다.”

홀로그램 지도를 본 커맨더가 적색으로 표시된 지역, 아스터 제국을 바라보며 개인적인 의견을 말했다.

그 말에.

“저도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시카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고.

“놈들의 신관은 죽지 않는 능력도 있을 텐데…….”

“그 허수아비로 변하면서 사라지는 능력, 맞죠?”

태양의 신관, 라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한 말에 커맨더가 기억난다는 듯 물었다.

몇몇 길드장들과 커맨더의 말을 시작으로.

-다 잡았었는데, 눈앞에서 지푸라기 인형으로 변했지…….

-비웃으면서 튀더군요. 짜증 나게…….

다른 헌터들 역시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말을 이었다.

길드들과 왕국들을 습격한 검은 괴물들.

간혹 그 괴물들과 함께 아스터 교단의 성기사와 사제들도 공격을 가해왔었다.

그들을 이끄는 지휘관은 다름 아닌 아스터 교단의 신관들이었다.

다행인 점은, 길드들과 왕국들이 적의 습격을 훌륭하게 막아 내었다는 것이었다.

쳐들어온 적들을 역으로 쳐부순 것.

그러나.

“악신의 신관을 잡아내거나 처치하기 직전의 상황이 발생하면, 알 수 없는 능력으로 도망치더군요.”

성자가 자신이 마주한 적들, 악신들의 신관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적들을 상대로 맞서 싸워 이기긴 했지만, 적들의 핵심 전력을 처치하지 못하는 상황.

길드들과 헌터들에게 있어 답답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죽지 않는 능력, 이제 두 번 다시는 못 쓸 겁니다.”

처용이 작은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영원히 못 쓰게 만들어 놨으니까.”

“으음…… 마탑을 정리할 때 뭔가 조치를 취한 건가?”

커맨더가 처용의 말에 궁금한 듯 물었다.

그 말에 처용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시카, 선물입니다.”

-우웅.

올림포스 길드장, 제시카를 바라보며 선물이라고 말하고는 손아귀에 빛을 모아 퍼트렸다.

팔괘의 진법이 처용의 손아귀에서 펼쳐졌고.

-스르륵. 콰쾅!

처용이 손을 앞으로 뻗자, 팔괘의 진법 안에서 육중한 얼음이 나타나 강당 중앙에 떨어졌다.

높이 3미터 정도 크기의 얼음 직육면체.

마치, 누군가를 가두는 감옥처럼, 두꺼운 얼음과 얼음 사이로 창살이 박힌 조형물이었다.

감옥의 용도가 맞다는 듯, 그 안에는 웅크린 자세로 주저앉아 있는 누군가가 갇혀 있었다.

얼음 속에 갇혀 웅크린 채, 공포 어린 표정으로 덜덜 떨고 있는 여성.

처용이 얼음 감옥을 소환하자, 모두의 시선이 감옥 안에 갇힌 이를 향했다.

동시에 갇힌 이의 얼굴을 확인했고.

“……제, 제니퍼!?”

-덜컹!

제시카가 거칠게 자리를 박차 일어나며 놀란 듯 소리쳤다.

제니퍼 로스차일드.

제시카와 같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일원.

그녀의 사촌 동생이자, 서로 적대 관계인 존재.

올림포스를 배신한 악신, 아르테미스의 신관.

이곳에서 마주할 줄은 생각도 못 한 인물이었다.

제시카는 제니퍼를 바라보며 놀람을 표하면서도.

“허수아비로 변하는 능력…… 그렇군요. 그건 제니퍼의 스킬이었군요.”

누가 아스터 교단의 신관들을 죽지 않도록 만들었는지 알아챘다.

동시에.

“제니퍼가 잡혔으니, 이제 악신들의 신관들은 불사가 아니로군요.”

조금 전, 처용이 했었던 말이 이해가 된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 녀석을 살려 둔, 이유라도 있었던 거야?”

커맨더가 처용에게 궁금한 듯 물었다.

처용은 적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고 후환을 남기지 않는 편이었다.

아군에게 확실한 위협으로 다가오는 존재라면, 더더욱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을 선호했다.

심지어 그 대상이 배신자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처용이 다른 이도 아니고 배신자에 악신의 신관이었던 이를 살려서 데려왔다?

그것이 조금 의문이었다.

“이 녀석을 그냥 죽이면, 아르테미스가 새로운 신관을 뽑겠죠?”

“아아, 이해했어.”

처용이 그 이유를 간단하게 언급하자, 커맨더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헌터들 역시 납득이 되었다는 듯, 분위기를 보였다.

그리고.

“뭐, 아르테미스의 신관 자격을 제가 쥐고 봉인한 이상, 이제는 죽여도 상관없을지도?”

처용이 얼음 감옥에 갇힌 제니퍼를 싸늘하게 노려보며 읊조리자.

“나, 날 살려…… 주, 준다며…… 신명을 걸고 약속을…… 했는데-.”

웅크린 채 주변을 살피던 제니퍼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처용은 자신의 신명을 걸고 제니퍼를 죽이지 않겠다 약속했었다.

제니퍼는 처용이 그 약속을 어기려는 듯한 분위기가 보였기에, 따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래서, 나는 안 죽였잖아?”

처용은 뭐가 문제냐는 듯 말했다.

분명, 신명을 걸고 약속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멸천의 신명을 걸고 ‘나’는 널 죽이지 않겠다.

그것은 처용 자신이 제니퍼를 죽이지 않겠다는 것이었지, 제니퍼를 영원히 보호해 주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즉, 처용만 제니퍼를 죽일 수 없을 뿐, 다른 이들이 죽는 것은 약속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게, 계약 내용을 잘 듣고 도장을 찍었어야지.”

“그, 그…… 그런 사기를……!”

싸늘한 미소를 짓는 처용의 말에 제니퍼가 인상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당장이라도 처용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며 따지고 싶었지만.

“나, 난 죽고 싶지 않아…….”

자칫 처용의 심기를 거슬렸다간,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이를 이용해 자신을 죽일 수도 있었다.

불만이 있든, 사기를 당했든, 자신은 지금 적진 한복판에 잡혀 온 상황.

그저 더 나대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었다.

“뭐, 제시카한테 가기 싫으면, 나랑 더 있는 거고.”

처용이 제니퍼를 향해 싸늘한 미소를 보이며 읊조리듯 말을 잇자.

“아, 아니야. 갈래. 갈 거야……!”

제니퍼가 즉답했다.

누가 자신의 신병을 양도받든 간에, 처용에게 붙잡혀 있는 것보다야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알고 있는 걸 전부 말하겠어. 그러니…… 그러니 날 빨리 데려가……!”

제니퍼가 그토록 증오하던 자신의 사촌, 제시카를 향해 구원을 바라는 듯, 말을 이었다.

그 모습을 본 제시카가, 제니퍼를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가, 그토록 악의적이던 자신의 정적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당신에게 호되게 당했나 봅니다?”

제시카는 왜 제니퍼가 이토록 나약하게 변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한 듯 처용을 보며 말했다.

처용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헤르메스 님에게 가져다드리면, 가진 정보를 탈탈 털어 주시겠죠.”

어째서 제니퍼를 올림포스로 보내려 하는지 그 이유 중 하나를 이야기하며 말을 이었다.

동시에.

‘아테나 님께 이 미끼를 잘 활용하라고 전해주십시오.’

제시카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헤르메스를 통해 정보를 얻는 것은 그저 겉핥기 이유에 불과했다.

제니퍼를 올림포스에 보내려는 진짜 이유.

그것은 다름 아닌.

‘분명, 올림포스에 배신자가 남아있다.’

올림포스에 남아있는 순혈자를 낚기 위한 미끼.

이것이 제니퍼를 살려서 올림포스에 보내려는 진짜 이유였다.

“……마침, 올림포스 성운의 공동 신전이 막 개설되었습니다. 신전의 제단을 통해 길드 본부로 압송시키겠습니다.”

처용의 말과 전음을 들은 제시카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

“아테나 님과 하데스 님께서 신전으로 한번 찾아오시라고 하십니다.”

방금 아테나에게서 전해 들은 답변을 처용에게 전했다.

동시에.

-저승의 신 중 배신자로 의심되는 자를 찾았다고 하셨어.

제시카 옆에 있던 메리가 ‘전령의 귓속말’로 처용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그 말에 처용의 눈빛이 가늘어졌고.

“알았다고 전해주십시오.”

우선 제시카의 말에 답했다.

이어서.

“일단, 놈들을 보호해 주던 불사가 사라진 이상, 함부로 결계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겁니다.”

아까 다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이었다.

현재 아스터 교단은 적극적인 공세를 취할 수 없는 상황.

제니퍼가 잡힌 탓에, 그들을 보호해 주던 보험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즉, 당장 아스터 교단이 공격을 취해 올 가능성은 적었다.

하지만 이쪽 역시, 빛의 결계를 뚫을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

처용이 나서면 무언가 해결이 될 법도 했지만.

‘헬리오폴리스가 언제 습격을 받을지 모른다.’

지금 처용에게는 가장 신경 써야 하는 일이 있었다.

언제 어떻게 헬리오폴리스가 습격을 받고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는 상황.

이런 상황 속에서 아스터 교단에게 발목을 붙잡힐 수는 없었다.

차라리.

“놈들의 공격이 저조해졌으니, 방어선을 굳혀 앞으로의 싸움에 대비합시다.”

이후 벌어질 격렬한 전쟁에 대비해 여러 준비를 갖춰 놓는 것이 옳은 판단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아스터 교단의 결계를 해결할 수 있는 처용만이 아니었다.

“여신님이 이비와 나인을 통해 저 결계를 분석하고 있어, 곧 좋은 소식이 들려올 거야.”

커맨더가 처용을 향해 말했다.

그의 성좌,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이비와 나인을 통해 결계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있다는 것.

“부탁합니다.”

처용이 커맨더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기계 장치의 여신이 직접 분석에 나선다면, 분명 적들의 결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할 말을 모두 마친 처용은.

“지금 바로 가죠.”

제시카를 향해 말을 이었다.

조금 전, 아테나와 하데스가 자신을 찾는다는 제시카의 말.

그에 답하듯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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