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3화
처용이 하늘 위로 사라진 순간.
-탓! 샤샥!
드래곤들을 포함한 다수의 사람들이 사방으로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그리고 남은 소수의 사람들 중 하나.
“예고합니다.”
윤아가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웅. 스르르!
맑은 청색의 신성력이 윤아의 두 손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휘몰아치는 태풍과 벼락을 버금은 빗줄기가 몰아칠 예정입니다.”
-슥.
윤아가 일기예고를 말하며 합장한 두 손을 조심스럽게 펼치자.
-우웅. 스르륵.
두 손에 모여들던 맑은 청색의 신성력이 하늘 위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쿠구구! 쿠구! 화아아!
윤아의 신성력에 반응한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웠고 점점 바람이 거칠게 불기 시작했다.
거기에 강한 추위가 지속되는 북극의 환경까지 더해져, 눈바람까지 섞여들었다.
매섭고 시린 강추위를 머금은 칼바람과 당장이라도 벼락과 빗줄기를 내리칠 듯한 하늘.
“하하…….”
그 모습을 본 루비아가 헛웃음을 흘리고는.
“웨더 컨트롤(Weather Control)…… 이거 8서클 마법인데…….”
마탑 주변의 날씨를 조작해 기상이변을 일으키는 어린 여성.
윤아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기가 막히다는 듯 읊조렸다.
웨더 컨트롤(Weather Control).
일정 지역의 날씨를 원하는 대로 조작하는 대마법이었다.
대마법사로 인정받는 7서클의 마법사도 혼자서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마법.
적어도 7서클 마법사 넷 이상, 혹은 8서클에 도달한 마법사만이, 날씨를 조작할 수 있었다.
하늘 위의 기상과 공기, 주변의 기후환경을 지배하는 마법은 하나의 마법만으로는 불가능했으니까.
여러 개의 마법을 동시에 발현해야만, 날씨를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웨더 컨트롤은 여러 개의 마법을 동시에 조율하며 발현하는 대마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대마법 중에서도 최상위의 대마법을.
“아무리 신의 신관이라지만, 고작 스무 살의 인간이…….”
어린 인간이 홀로 발현한다는 것이, 대마법사인 루비아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삼촌이나, 처용 오빠 같은 분들에 비하면 아직 미숙한걸요.”
윤아가 부끄러운 듯한 목소리로 겸손하게 말하자.
“네가 미숙한 거면, 저 마탑의 마법사들은 원숭이나 다름없겠네.”
루비아는 더 기가 막히다는 듯, 헛웃음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그래, 하늘성의 주인이나 그 녀석에 비하면, 네가 미숙한 게 틀린 말은 아니네.”
윤아가 언급한 두 존재, 커맨더와 처용을 생각하자 어느 정도 납득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네 덕분에, 저놈들을 더 악랄하게 괴롭힐 방법이 생각났어.”
-스스스.
루비아가 봉인해 두었던 자신의 기운을 풀어헤치며 말을 이었다.
눈가 주변에 비늘이 자라났고 두 눈이 세로로 갈라지며 황금빛을 띠었다.
-우우웅! 우웅! 스르륵!
8서클의 힘을 개방한 루비아의 주변으로 원형의 마법진들이 떠올랐고.
“마나 드레인 스톰(Mana Drain Storm)!”
-화아아!
윤아가 만들어 내는 기상이변 속에 마나를 흘려보내며 마법을 발동했다.
“……폭풍을 조율하면서, 적들에게 집중적으로 유도할게요.”
눈을 감고 잠시 집중한 윤아가 루비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일기예고로 만들어 낸 기상이변 속에 루비아가 섞어 놓은 대마법.
그 마법이 어떤 마법인지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이걸 단번에 알아보면서, 미숙은 무슨-.”
루비아는 다시 한번 기가 막히다는 듯 윤아를 향해 읊조리고는.
-탁! 스륵.
처용에게서 전해 받은 아티팩트.
갤럭시 오브 스태프를 쥐며 마탑을 향해 날아올랐다.
“복수에 성공하시길 바랄게요. 언니.”
윤아가 루비아를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루비아가 마탑을 습격하려는 처용에게 함께 가자고 닦달했는지.
마탑의 마법사들을 척살하는데 유독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는지.
그녀가 가진 개인적인 사정을 어느 정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고맙다.”
진심이 담긴 윤아의 격려에 루비아가 작은 미소를 짓고는 마탑을 향해 속력을 높였다.
하늘 위로 어느 정도 높이 날아오른 순간.
-위잉. 위잉. 스르륵!
루비아의 주변으로 여덟 개의 마법진이 떠올라 서로 이어 붙으며 고리처럼 회전했다.
“제르멜, 네놈도 네놈을 따르는 마탑 놈들도 모조리 지옥에 처박아 주마.”
전투를 준비한 루비아가 마탑을 차갑게 노려보며 읊조렸다.
***
마탑.
에스라 대륙의 마법사들을 관리하는 거대한 기관이자 단체.
세력의 크기와 힘으로만 따지면 아스터 교단 못지않을 정도로 강성한 단체였다.
게다가 아스터 교단과 마탑은 서로를 견제하는 것이 아닌, 협력하는 이들.
때문에, 그 어떤 이들이라고 해도, 아스터 교단과 마탑의 뜻을 거스를 순 없었다.
게다가 마탑의 본거지는 아스터 교단의 대신전과는 다르게, 철저하게 숨겨져 있었다.
마탑 주변에 펼쳐진 결계와 방어 수단만 해도 수백 가지.
얼핏 보면, 아스터 교단의 대신전보다도 침범하기가 쉽지 않은 장소가 바로 마탑이었다.
그러나.
-차라라……!
마탑을 숨겨 주고 보호해 주던 가장 강력한 결계들이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매서운 추위에서 마탑을 보호해주던 결계가 사라지자, 극한의 추위가 마탑을 덮쳤다.
-뭐야!? 결계가 사라졌어?
-야! 결계 시스템 점검해! 무슨 오류가 일어난 거야?
-결계탑에 있는 새끼들, 일 똑바로 안 하냐!?
마법사들은 처음 결계가 해제되었을 때는, 그저 단순한 결계 시설에 문제가 발생했으리라 생각했다.
이곳은 마법사들의 본거지인 마탑.
대마법사들과 수많은 마법사들이 거주하는 장소.
게다가 마탑 문지기를 통하지 않고서는 이곳에 발조차 들일 수 없었다.
극소수의 대마법사들과 마탑의 장로들을 제외하고는 자유로운 출입조차 불가능했다.
그런 마탑의 결계를 부수고 누군가가 공격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계가 해제되어 눈발이 휘날리는 하늘 위.
-화아아!
그 위로 거대한 형체들, 드래곤들이 본모습을 드러내며 나타났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드래곤들로 인해 마법사들이 멍한 표정을 지을 때.
-위이잉! 콰아아-!!
입에 힘을 모으고 있던 드래곤들이 마탑을 향해 브레스를 내뿜었다.
-콰콰! 콰콰쾅! 쿠콰콰-!
속성의 힘이 가득 응축된 브레스들이 마탑의 시설들을 거침없이 부수었고.
-으아아!
-무슨 일이-!?
갑작스러운 드래곤들의 테러에 마법사들이 혼비백산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드래곤들이 브레스로 마탑을 폭격한 지 10초 정도 지나자.
“이게 무슨 짓이냐!”
“어째서 드래곤들이!?”
-샥! 샤샤샥!
마탑 안에 체류 중이던 전투 마법사들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소리쳤다.
-우웅! 우우웅!
그들이 마나를 내뿜으며 공격 마법을 사용하려는 순간.
-휘이이!
점점 거칠어지는 눈바람 속에서 한 줄기의 새하얀 바람이 휘몰아쳐 마법사들을 훑고 지나갔다.
그러자.
-파아아! 파아아……!
마법사들에게 모여들던 마나들이 한순간에 사그라졌다.
아니, 사그라진 것이 아니라.
-휘이이! 휘이! 사라락!
주변에서 불어닥치는 새하얀 바람이 마법사들의 마나를 강탈해갔다.
갑작스럽게 마나를 강탈당하자 마법사들이 휘청거렸고.
-키잉! 콰콰콰!
드래곤들이 터트리는 속성의 폭발에 휘말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드래곤들을 막기 위해 나타난 수십의 마법사들 중 절반 이상이 순식간에 죽어 나가자.
“안티 매직 실드!”
“프로택션 필드!”
-파아아! 피잉!
다른 마법사들보다도 압도적으로 강렬한 기운을 내뿜는 마법사들.
마탑의 대마법사들이 나타나 방어 마법을 펼치며 나타났고.
“폭풍 속에 마나를 강탈하는 무언가가 있다!”
“모두 주변을 경계해라!”
-샥! 샤샥!
대마법사들을 따라나선 마탑의 정예 마법사들이 나타나 마법사들을 지휘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드래곤!”
방어 마법을 펼치며 나타난 대마법사 중 하나가 가장 앞에 있는 황금빛의 드래곤, 비크라를 향해 소리쳤다.
[이유는 네놈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우웅!
비크라가 드래곤 포스를 끌어 올리며 적대감을 드러내자.
“중립의 법칙을 어긴 대가로 우리들의 실험체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만들어주마.”
마탑의 대마법사가 얼굴을 가린 로브 아래로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동시에.
“마신에게 복종한 드래곤들!”
“일족의 원수를 갚을 것이다!”
-탓! 타탓!
열 명의 검을 든 남녀가 마탑 안에서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스스스!
그들이 투명한 기운을 내뿜자.
-스르륵……!
마탑의 마법사들을 압박하던 드래곤들의 기운이 점점 약해졌다.
열 명의 성인 남녀, 그들은 마탑이 보호하던 마지막 남은 드래곤 슬레이어들이었다.
“법칙의 힘 앞에서는 목줄 채워진 짐승에 불과하구나, 네놈들 전부 붙잡아 주마.”
[어디, 네놈들의 생각대로 될까?]
마탑의 대마법사가 흘린 비웃음에 비크라가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 순간.
-……슈우우우!
하늘 위에서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누군가가 지상으로 유성처럼 떨어져 내렸고.
-슈우! 콰콰쾅! 콰지직!
손톱이 기괴하게 자라난 우락부락한 팔로 드래곤 슬레이어 두 명을 짓이기며 지상에 나타났다.
-후욱!
드래곤 슬레이어 두 명을 죽이며 나타난, 거친 입김을 뿜어대는 거대한 덩치의 누군가.
머리를 제외한 육체의 피부가 검게 물들어 있는 모습.
-까가각! 까각!
전투를 준비하려는 듯, 육체 곳곳에 자라나는 기괴하고 두꺼운 뼈들.
마치, 생체 실험으로 인해 탄생한 병기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얼굴을 제외한 육체가 괴물이라고 봐도 무방한 모습.
그리고.
“지, 지젤…… 님?”
“법칙의 왕이시여……?”
드래곤 슬레이어들은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덩치의 남자.
육체에 비해 멀쩡한 그의 얼굴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풀어헤친 머리와 공허한 눈빛을 내비치는, 머리만 멀쩡한 모습인 괴물.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드래곤 슬레이어들의 수장인 지젤이었다.
“도…… 도망…… 쳐라……!”
지젤이 썩은 살점이 덕지덕지 붙은 이빨을 드러내며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었고.
-쿠드득! 콰지직!
방금 자신이 죽인 드래곤 슬레이어의 시체를 입으로 가져가 뜯어 먹었다.
“도, 도망…… 도망……!”
-와지직! 와지직! 콰직!
자신이 죽인 동족의 살점과 뼈를 씹으며 도망가라고 말하는 지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입을 달달 떨며 멍한 표정을 지을 때.
-쩌저적! 콰지지직!
지젤의 왼팔에서 뼈의 칼날이 자라나 멍 때리고 있는 드래곤 슬레이어 하나를 꿰뚫었다.
공격당한 드래곤 슬레이어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즉사했고.
-슈르륵! 콰지직!
지젤은 자신이 죽인 동족을 앞으로 끌고 와 입을 크게 벌리고 살점을 뜯기 시작했다.
“도망……!”
다시 한번 지젤의 입에서 도망치라는 말이 흘러나온 순간.
“모, 모두 흩어져! 도망쳐라!”
드래곤 슬레이어 하나가 거칠게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고는 크게 소리쳤다.
“살아남아! 반드시 살아야 한다!”
“살아서…… 복수를 도모해야 한다!”
-탓! 타탓!
마지막 남은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서로 살아남으라고 소리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쾅!
지젤은 그런 그들의 뒤를 추적하듯 자리를 박찼다.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괴물로 변한 지젤에 의해 전장을 이탈하자.
[우리를 실험체로 잡겠다고? 잘도 네놈들의 입으로 자백을 내뱉는구나!]
-우웅! 우우웅!
비크라가 분노 어린 목소리를 내뱉었고 다른 드래곤들 역시 드래곤 포스를 내뿜으며 분노를 드러냈다.
“……모두, 드래곤들을 처치하는 데 집중한다.”
마탑의 대마법사는 드래곤들의 분노에 대꾸하지 않고 휘하 마법사들을 향해 전투를 명령했다.
모습을 드래곤은 열 마리 정도.
신에 버금가는 격을 지닌 최상위 신수들을 상대해야 했지만.
“곧 마탑의 결계가 재작동한다. 그때까지 버틴다.”
대마법사는 아무리 드래곤들이라고 해도, 마탑 전체를 상대할 순 없다고 판단했다.
이곳은 마법사들이 만들어 낸 영역.
대마법사들과 마탑의 정예들이 힘을 모아 만들어 낸 마법사들의 성지라 봐도 무방한 장소였다.
드래곤들이 무너뜨린 듯 보이는 마탑의 결계는 곧 복구된다.
그러면, 마법사들을 지키는 방어 마법이 작동하고 침입자를 요격하는 강력한 마법들이 발동할 것이다.
이미, 대마법사 둘이 마탑의 결계 복구에 힘을 박차고 있었으니까.
결계 복구까지 버티기만 한다면, 드래곤들을 처치하는 데는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샥! 샤샥!
드래곤들과 대치하던 대마법사 근처로 두 명의 대마법사가 추가로 나타났다.
결계가 복구되지도 않았는데, 결계 복구에 나선 대마법사들이 밖으로 나온 상황.
“제2마탑주! 이 배신자가 감히!”
방금 나타난 대마법사 중 하나가 하늘 위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러자.
“나를 죽이기 전까지, 마탑의 결계는 절대로 복구되지 않을 거야.”
하늘 위에 몸을 숨기고 있던 루비아가 차가운 목소리를 흘렸다.
-우우웅!
다른 7서클의 대마법사들을 압도하는 8서클의 힘을 흩뿌리는 루비아.
루비아가 작정하고 방해하는 이상, 마탑의 결계 복구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믿고 있던 수단 중 하나가 완전히 막힌 상황.
그럼에도.
“마탑주님을 기다리고 버틴다.”
대마법사들은 마지막 희망, 마탑주에게 기대를 걸며 결사 항전을 다짐했다.
그러나.
“네놈들이 믿는 제르멜 말인데…… 놈이 마신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것 같아?”
루비아가 제1마탑주, 제르멜을 믿는 대마법사들을 향해 차가운 조소를 흘렸다.
그 순간.
-콰콰콰쾅! 콰콰-!
마탑의 최상층에서 강렬한 폭발이 일어나며 탑의 일부가 부수어졌다.
가장 드높은 자만이 거주할 수 있는 마탑의 최상층.
그곳은 제1마탑주, 제르멜이 있는 장소였다.
그런 최상층에서 일어난 폭발이 일어난 상황.
“이-!”
“마신이…… 최상층에 침입했다.”
대마법사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루비아의 말과 방금 일어난 마탑 최상층의 폭발.
마신이 제1마탑주를 습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이 네놈들 제삿날이야.”
루비아가 인상을 거칠게 일그러뜨리는 대마법사들을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읊조렸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