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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552화 (552/726)

#552화

에스라 대륙에 검은 문이 열리자.

-캬아아아!

-크아아!

중앙 대륙, 아스터 제국에서부터 ‘검은 괴물’들이 퍼져 나가 인근 일대를 휩쓸었다.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검은 괴물들이 해일처럼 퍼져 나간 결과.

단 사흘 만에, 에스라 대륙의 국가 절반이 사라졌다.

재앙의 검은 파도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국가들은 다름 아닌 아나샤에게 협력을 약속한 왕들의 국가였다.

그들은 아나샤에게 협력을 약속받은 순간, 길드의 헌터들에게 지원을 받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면에, 아나샤의 제안을 끝까지 거절하고 아스터 제국에 충성한 이들.

그들은 아스터 제국에 끝까지 충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은 괴물들의 습격을 받았다.

-도, 도와주시오. 제발!

뒤늦게 아나샤와 아라한 왕국, 지구에서 넘어온 길드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갔습니다. 지구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나샤는 그들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렇게 검은 문이 열리고 사흘이 지난 시점.

살아남은 왕국들은 길드들과 함께 힘을 합쳐 방어선을 형성하고 검은 괴물들을 막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왕국들과 세력들의 중심이 되는 곳은 다름 아닌 아라한 왕국.

그곳에는 지금.

-크아아!

-캬아!

다른 나라나 길드들보다도 더욱 거센 공격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검은 괴물들의 공세에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는 다른 나라들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에실록스.”

-촤라라락!

아라한 왕국 북동쪽 해안 인근 방어선.

직접 방어 지휘에 나선 아나샤가 정령의 이름을 부르며 강철의 힘을 끌어올렸다.

-철컥! 철크럭!

강철 갑옷들이 아나샤의 몸을 감싸며 견고한 철갑 기사의 모습을 형성했다.

아나샤를 감싸며 나타난 골렘의 크기는 대략 7미터.

이전과 크게 차이가 없었지만, 더 날렵하고 유려한 기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강철 골렘으로 변한 아냐사가 두껍고 긴 타원형의 방패를 전방에 세웠고.

-철컥!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의 랜스를 방패 옆에 밀착시키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랜스의 중앙은 날카로운 형태가 아닌, 마치 대포처럼 중앙이 뻥 뚫려있는 모습.

그 아래에 부착된 날카로운 창날.

마치, 포구 아래에 날카로운 총검을 부착한 대포와 같은 모습이었다.

아나샤가 전투 준비를 갖춘 순간.

-에른!

-메르릭!

-쩌저저적! 철컥!

그녀 옆에 나열해 있던 왕실 기사들이 정령의 이름을 부르며 철갑 기사의 형태로 변했다.

전원 아나샤처럼 강철의 정령과 계약한 이들이었다.

각각의 개성이 드러내듯, 철갑 기사들의 크기와 형태가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그들이 지닌 무기 하나만큼은 모두 동일했다.

-철컥! 철컥!

철갑 기사들이 아나샤의 옆에 밀착하며 방패를 세우고 전방에 랜스를 겨누었다.

하나의 강철 벽이 된 듯, 철갑 기사들이 방어 대형을 갖출 때.

-캬아아!

-크아!

검은 괴물들이 철갑 기사들을 향해 물밀듯이 들이치며 달려들었다.

괴물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본 아나샤는.

“발포 준비!”

옆에 선, 왕실 기사들을 향해 명령하듯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키잉! 위이이-!

아나샤가 치켜든 랜스의 포구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옆에 선 왕실 기사들 역시 환한 빛을 내뿜으며 랜스에 마나를 모았다.

이윽고 검은 괴물들이 아나샤와 왕실 기사들의 진형에 근접한 순간.

“발포하라!”

아나샤가 강하게 소리치며 명령을 내렸다.

-위이잉! 콰콰콰-!

랜스의 끝, 포구에 일렁이던 마나가 전방을 향해 부채꼴을 그리며 강렬한 폭발을 터트렸고.

-콰콰! 콰콰쾅!

아나샤의 옆에 있던 철갑 기사들도 랜스에 모인 마나를 터트리며 포격을 개시했다.

-캬아! 크아아!

-켁!

철갑 기사들을 향해 가장 앞서 돌진해 오는 검은 괴물들이 폭발에 휘말리며 폭사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쿠구! 쿠콰콰!

랜스에서 발사된 마나의 포격이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전방을 초토화시켰다.

습격해 오던 검은 괴물들의 절반 이상이 포격에 휘말리며 처치되었을 때.

“전진하라!”

-쿵! 쿵!

아나샤가 앞으로 한 발 걸어 나가며 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에 따라, 왕실 기사들도 육중한 발걸음을 울리며 나아갔다.

랜스를 앞세운 철갑 기사들이 하나의 성벽이 된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

-푸욱! 촤악-!

포격의 여파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검은 괴물들이, 철갑 기사들이 내지르는 랜스의 칼날에 무참히 처치되었다.

간혹 정신을 차리고 반격하는 괴물들도 있었지만.

-까강! 까가강!

견고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철갑 기사들의 방패와 갑옷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이윽고.

-푹! 촤악! 콰쾅!

살아 움직이는 성벽처럼 밀고 나가는 철갑 기사들의 찌르기와 포격에 괴물들이 빠르게 정리되었다.

주변의 모든 괴물들이 처치되자.

“모두 처치했습니다. 여왕님.”

아나샤가 영주였을 시절부터 그녀를 따르던 기사, 이젠 왕실 기사가 된 이가 아나샤에게 다가와 보고를 올렸다.

그 말에 아나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두 고생했다. 주변을 정리하고 경계를 계속한다!”

-촤라라……!

강철 갑옷을 해제하며 왕실 기사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그때.

“우리가 도와주지 않아도 되었군.”

“그거 봐요. 제가 문제없다고 했죠?”

-샥! 타탓!

아나샤의 주변으로 백호와 연아 등 헌터들이 나타났다.

그들 역시, 주변 인근을 습격해 온 검은 괴물들을 처치하고 온 길이었다.

아니, 그들은 이미 주변 정리를 마치고 돌아와 아나샤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건랜스 나이트(Gunlance Knight)라? 멋있는데?”

연아가 아직 철갑 기사 형태를 해제하지 않고 주변을 정리하는 왕실 기사들을 보며 말했다.

그들이 조금 전 전투에서 사용하던 무기.

랜스와 대포가 합쳐진 듯한 형태인, 건랜스(Gunlance).

그것은 랜스에 성벽을 방어하는 마도포의 대포가 합쳐져 만들어진 무기였다.

그녀의 정령이자 강철의 정령왕, 에실록스가 ‘기계 장치’의 지식을 습득한 결과였다.

그 덕분에, 아나샤가 형성한 철갑 골렘의 성능이 대폭 상향되었다.

밋밋한 형태의 강철 골렘이었던 과거와는 다르게, 형태가 더욱 또렷해지고 구조가 탄탄해졌다.

게다가, 기계 장치의 힘까지 더해져, 새로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 새로운 능력 중 하나가 바로 조금 전 사용한 무구인 건랜스.

본래, 성벽을 방어하는 마도포는 그 크기와 구조, 포격의 반동 때문에 들고 다닐 수 없는 무기였다.

말 그대로, 거점을 방어하기 위한 용도로 설계된 무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욱 강해진 아나샤의 강철 골렘은 그 마도포의 반동과 무게를 견딜 수 있었다.

그녀처럼 강철의 정령의 힘을 내려받은 왕실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강철의 정령왕 에실록스가 성장한 결과, 휘하 정령들도 같이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대포를 장착한 성벽과 다름없은 존재가 된 것이었다.

왕실 기사들이 철갑 기사로 변해 자리를 잡으면, 그 지역이 ‘성벽’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

말 그대로 무궁무진한 전략적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전력들이었다.

“각 기사단과 영지에 바로 파견을 보내도 손색없겠습니다.”

아나샤가 조금 전 전투를 상기하며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방금 전투는 훈련을 끝낸 왕실 기사들, 강철의 정령들에게 선택을 받은 기사들의 실전 훈련이었다.

그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보다도, 용님께서는 여전히 다른 지역들을 돕고 있는 겁니까?”

아나샤가 처용의 안부를 물으며 말을 이었다.

검은 문이 열리고 괴물들이 쏟아져 나올 때.

-우선, 피해를 최소화해야겠다.

처용은 에스라 대륙에 자리한 동맹들의 진영을 차례대로 이동해 다녔었다.

아직 제대로 방어를 갖추지 못한 동맹들을 돕기 위함이었다.

“아니, ‘검은 문의 원인’ 중 하나를 해결하러 간다던데?”

연아가 아나샤의 말에 답하듯 말했다.

-수비만 하면 재미없지.

하루 전, 연아가 처용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처용은 그동안 에스라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며, 동맹들을 도우면서 정보를 모았었다.

그리고 검은 문을 유지하는 원인 중 하나를 찾아냈다.

처용은 그 원인을 알아낸 즉시, 반나절 만에 준비를 마치고 북쪽으로 향한 상태였다.

“북쪽…… 이라면?”

아나샤가 연아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며 읊조리고는.

“혹시?”

이내, 처용이 어디로 갔는지.

검은 문을 유지해주는 세력이 어디인지 눈치챈 듯 말을 이었다.

그런 아나샤의 반응에.

“어, ‘마탑’을 쓸어 버리러 간다고 하더라고.”

연아가 처용이 어디로 향했는지, 정답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어제부터 루비아가 보이지 않았군요.”

아나샤가 연아의 말에 납득이 된다는 듯, 루비아를 언급하며 말했다.

그녀 역시 루비아가 어떤 사정을 가지고 있는지.

마탑이 루비아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그녀의 가족이…… 마탑과 악신들에게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용님과 함께 마탑으로 갔군요.”

아나샤는 루비아가 처용을 따라나섰음을 알아챘다.

안타깝고 복잡한 사정을 가진 루비아가 조금 걱정되기는 했지만, 처용이 함께라니 안심이었다.

게다가.

“드래곤들도 같이 갔으니까.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연아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을 이었다.

***

에스라 대륙의 최북단.

작년 겨울에 내린 눈조차 제대로 녹지 않았을 정도로 춥고 새하얀 지역.

-탁.

처용이 빙하 절벽 끝을 밟고 정면을 바라보며 나타났다.

눈앞에는 북극해의 얼어붙은 빙하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에스라 대륙의 오지 중 하나로 알려진 끝없는 빙하지대.

같은 오지인 남쪽 대사막보다도 더욱 척박하다고 알려진 장소였다.

이곳에서 적응하여 살아가던 야생 몬스터조차도,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모두 멸종했으니까.

하지만.

“흐음.”

처용은 뼛속까지 얼려 버릴 정도로 시린 공기를 편안하게 들이쉬며 주변을 살폈다.

절벽 너머, 빙하밖에 보이지 않는 광활한 설원을 쭉 둘러보고는.

“……저쪽이군.”

정면에서 살짝 오른쪽을 날카롭게 쏘아보며 읊조렸다.

그러자.

“도대체, 무슨 수로 마탑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거야?”

-스르륵.

처용의 뒤, 공간이 일렁이며 루비아가 나타나 말했다.

“그 선술인가 뭔가 하는 기묘한 마법도 이해가 다 안 가는데, 이제는 너라는 존재도 이해가 안 가.”

루비아가 처용의 능력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말을 잇자.

“내가 생각해 봐도, 나 스스로가 좀 신기한 인간이긴 해.”

처용이 실없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

“마탑의 결계 해제는?”

루비아를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손가락만 튕기면, 해제야.”

처용의 물음에 루비아가 오른손가락을 당장이라도 튕기려는 듯 엄지와 중지를 맞대며 들어 올렸다.

그 말에 처용이 고개를 끄덕일 때.

“우리 일족들도 준비가 끝났다. 계승자.”

-스륵.

루비아의 옆으로 금발 머리의 소년, 폴리모프를 한 비크라가 나타나며 말했다.

동시에.

-스륵. 스르륵.

그런 비크라의 뒤로, 가네리아와 마티네아 나타났고.

-우우웅!

그녀들보다 어른으로 보이는 인상의 사람들이 다수 나타났다.

모두 머리 위에 뿔과 등 뒤에 날개, 피부 곳곳에 비늘이 돋아난 이들.

그들은 모두 이번에 처용을 돕기 위해 나선 드래곤들이었다.

비크라를 포함한 웜급 이하의 드래곤 열넷.

이들은 스스로 이번 싸움에 자원했다기보다는.

-네가 일족들을 이끌고 계승자를 돕거라. 비크라.

바하무트가 비크라에게 이번 일을 일임하며 내린 명령으로 인해 함께하게 된 이들이었다.

아스터 교단이 지상에서 시스템의 방벽을 부수고 멸망한 세계와 이어지는 게이트를 연 상황.

지상에 거대한 이변이 발생했기에, 드래곤들이 개입할 명분은 충분했다.

드래곤들까지 가세한 이상, 마탑의 정리는 손쉬워 보였으나.

“저 결계 안에서 법칙의 집행자들이 느껴진다.”

비크라가 인상을 확 일그러뜨리며 말을 이었다.

마탑을 숨겨주고 있는 결계 안쪽.

그 안에서는 드래곤들에게 있어 가장 기피시되는 존재.

드래곤 슬레이어들의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녀석들일 거다.”

처용이 대충 예상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곳에 오기 전.

-우우웅.

왼쪽 손목에 착용된 마나 레이더를 사용해 봤으니까.

처용이 행한 징벌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마지막 드래곤 슬레이어들.

그들을 마탑이 보호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로 인해 드래곤들의 힘이 제약되고 방해를 받을 점이라는 것.

하지만.

“놈들은 걱정하지 마, 마지막 남은 버러지들을 지옥에 처박아 줄 청소부를 불렀으니까.”

처용은 걱정 따윈 없다는 듯, 자신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드래곤 슬레이어들을 대처할 수단은 많았고 방법 또한 여럿 구비해 두었으니까.

그 말에 비크라가 고개를 끄덕일 때.

“우리도 전투 준비 끝났어요.”

-샥!

레드 드래곤, 마티네아 옆으로 현아가 나타나며 말했고.

“신호 주시면, 바로 시작할게요.”

루비아의 옆으로 윤아가 나타나며 말을 이었다.

뒤이어.

-탓. 타탓.

가벼운 느낌의 경량 슈트를 입은 수십 명의 헌터들과 이종족들이 추가로 나타났다.

현아와 윤아, 정훈과 하이 엘프 테시아를 포함한 스피릿 팀의 정예들.

그리고 각 길드에서 이번 일에 자원한 고레벨의 소수 정예 헌터들이었다.

“함께 해서 영광입니다. 역천군주.”

이번에 처용을 돕기 위해 자원한, 길드 헌터들을 대표하는 고레벨의 헌터.

월드 헌터 토너먼트 3위이자 ‘아서’라는 이명으로 유명한 헌터.

올리버 프렌시브가 처용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도움에 감사합니다.”

아서의 인사에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답하고는.

“슬슬 시작한다.”

루비아를 향해 말했다.

작전을 시작한다는 처용의 말이 떨어지자.

“마탑주의 권한으로, 마탑의 모든 경계 마법을 해제한다!”

-탁!

루비아가 손가락을 강하게 튕기며 말했다.

그러자.

-파사사사!

드넓은 설원과 빙하뿐이던 장소가 깨진 유리처럼 무너졌고.

-쿠구구구!

하늘 위로 드높게 솟구친 거대한 건축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숨겨져 있던 마탑이 모습을 드러내자.

“작전 개시, 각자 위치로!”

-파지직!

처용이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강하게 말하고는 하늘을 향해 달려 나갔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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