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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551화 (551/726)

#551화

더 이상 태양의 순교를 사용할 수 없는 아데인을 처용이 처치했지만.

-파사삭.

그가 지푸라기 인형으로 변해 버렸다.

아데인을 처치하지 못해 그가 도망쳤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아데인이 도망치도록 도운 존재는 바로 아르테미스와 그녀의 신관인 제니퍼였다.

제니퍼의 스킬인 사냥 군주의 더미.

그 스킬의 원형인 아르테미스의 권능, 달그림자 꼭두각시.

본래 달그림자 꼭두각시의 능력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본체와 똑같은 공격력을 발휘하는 자신의 더미를 만드는 능력.

대신 내구도가 형편없이 낮아, 한 번의 공격을 제대로 허용하면 더미가 파괴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방어력이 낮은 건 아르테미스의 입장에서 리스크가 아니었다.

그녀는 원거리에서 적을 암살하는 저격수였으니까.

두 번째는 일정 거리 내에 있는 달그림자 꼭두각시와 본체의 위치를 바꾸는 능력이었다.

위험한 상황을 탈출하기엔 제격인 능력.

그녀를 상대하는 적의 입장에서, 상당히 까다로운 권능이었다.

문제는 그런 아르테미스가 악신으로 각성하며, 권능이 강화되었다는 점이었다.

본래 달그림자 꼭두각시는 권능의 주인인 아르테미스만 사용할 수 있는 권능.

그러나 악신이 된 그녀는 달그림자 꼭두각시를 아군에게도 쓸 수 있게 되었다.

회귀 전, 항상 적들이 처용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도록, 만들었던 권능.

결국, 끝까지 추적하여 아르테미스를 사살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희생이 발생했었다.

그런 까다로운 권능이 다시 눈앞에서 재현된 상황.

아르테미스와 제니퍼를 죽여야 하는 처용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짜증이 날 법한 상황이었지만.

‘그때처럼 당하기만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처용은 속으로 짜증이 아닌, 각오와 기대를 품었다.

동시에.

-스르르.

방금 지푸라기 인형으로 변한 아데인에게서 포확한 힘.

팔괘축기 안에 저장된 달그림자 꼭두각시의 힘을 손아귀에 뭉쳐 보았다.

온전한 힘이라기보단, 흔적에 가까울 정도로 미세한 에너지였지만.

-스륵.

처용은 손아귀에 뭉쳐진 짙푸른 기운을 짧게 살펴보고는.

‘……가능하다.’

속으로 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시에.

‘기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지금…….’

고개를 돌리고 먼 방향을 바라보며 살기 어린 눈빛으로 읊조렸다.

아데인이 사냥 군주의 더미가 되며 사라졌고 이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렇다면, 이 인근에 제니퍼가 있다는 의미였다.

아마도, 아데인이 당하고 그를 구출한 순간, 도망치고 있을 것이다.

처용은 이대로 도주한 아데인과 그를 돕는 제니퍼를 곧장 추적할까 하다가.

-휙.

이내, 단념한 듯 고개를 돌렸다.

처용은 사냥을 포기한 게 아니었다.

일부러 추적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후에 있을 ‘확실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을 선택했다.

제니퍼라는 사냥감은 집요하게 추적한다고 해서 잡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단 한 번의 확실한 기회를 노려야 했다.

그 한 번의 기회를 위해, 지금은 물러나고 일부러 놓쳐 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적들이 방심한 틈을 노려, 놈들을 확실하게 처치할 수 있을 테니까.

처용이 이후의 계획을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다짐을 이을 때.

“도망친 것입니까?”

헌터들에게 주변 정리를 명령한 라진이 처용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모든 성기사와 사제들을 처치하고 적들의 대장을 처치했다.

하지만, 머리가 잘려 처치된 줄 알았던 적이 분노를 내뱉고는 지푸라기 인형으로 변했다.

상황을 관찰한 라진은 적이 도망쳤다고 판단했다.

그런 라진의 판단을 긍정하듯.

“악신을 따르는 놈들이라 그런지, 바퀴벌레가 따로 없군요.”

처용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그리고.

“200레벨은 넘기셨죠?”

라진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그 말을 들은 라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그나마 다행이군요.”

처용이 안도감 어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혹시 몰라서 그걸 쓰진 않았습니다만…… 필요가 있는 겁니까?”

라진이 처용에게 궁금한 듯 물었다.

이전, 처용과 여래가 태양신 라의 성역을 방문하고 라의 비밀이 밝혀졌을 때.

-제발, 악신들을 상대로 태평하게 생각하지 마라. 이건 경고다.

처용은 태양신의 안전이 순혈자들에게 위협당할 것을 경고했었다.

동시에.

-나는 태양신이 위험에 처하면 그녀를 구할 수 없어, 하지만······ 너는 할 수 있다. 라진.

자신은 태양신을 구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라진은 위기에 처한 태양신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방법은 다름 아닌, 200레벨을 돌파하는 것.

라진은 그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레벨을 올리는 것에 필사적으로 집중했다.

다행히 레벨을 빠르게 올릴 기회가 많이 찾아왔다.

완전히 개방된 역천군주의 성지와 그곳에서 처용이 준비한 대악마 사냥.

이어서 월드 헌터 토너먼트에서 다수의 S급 헌터들과 함께 처용과 대결을 펼친 것도 한몫했다.

심지어 그 당시에는 제시카 덕분에 가까스로 승리를 거머쥐기까지 했다.

라진은 주어진 기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그 덕에 200레벨을 빠르게 돌파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0레벨을 달성한 순간.

“왜 신관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졌는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

라진은 처용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막 200레벨을 돌파했을 때.

[축하합니다.]

축하한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고.

[성좌를 위해 노력한 대가로 단 한 번-.]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을 얻었다.

라진은 이 스킬을 확인한 순간, 처용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것이었음을 알아챘다.

동시에, 의문도 들었었다.

-이게, 뭐지?

의도를 알 수 없는 시스템이 내려 준 스킬.

이 스킬은 모든 헌터가 200레벨을 달성했을 때 주어진 스킬이 아니었다.

200레벨을 달성한, 영국을 대표하는 헌터.

-예? 저는 그런 건 얻지 못했습니다.

아서에게 조심히 물었을 때, 그는 라진과 같은 스킬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었다.

조사 결과, 일반적인 헌터들은 라진이 얻은 자격을 받지 못했다.

반면에.

-아, 저도 조금 의문이었습니다.

200레벨을 먼저 달성했었던 제시카도 라진과 같은 스킬을 얻었었다.

즉, S급 헌터, 성좌를 모시는 신관만이 받는 일종의 ‘자격’이자 ‘권한’이었다.

라진이 처용에게 의문을 표하자.

“제가 말하기 전까지, 절대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시에.

‘그게, 당신의 성좌를 살릴 방법이 맞습니다.’

전음으로 라진이 말한 것이, 라를 살릴 방법이 맞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라진은 처용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금까지는 마신의 두려움 때문에 나오지 않던 적들이 공세를 보인다라…… 이상하군요.”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헌터들과 북쪽 너머를 응시하며 말했다.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 들었던 정보.

처용이 이 세계에서 화려하게 날뛴 덕분에, 겁먹은 적들이 그들의 영역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정보였다.

때문에, 각 길드들은 적들이 주춤한 찰나 서둘러 일부 지역을 장악하려 움직였다.

그러나, 길드들이 거의 다 자리를 잡으려는 순간, 아스터 제국의 무리가 공격을 가해왔다.

“놈들이 공세를 보일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처용은 라진의 의문에 대략 대답하고는.

“아마도 곧, 길드장들이 소집될 겁니다.”

-파지직!

곧 그로 인해 길드장들이 모일 것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벌써 두 개의 길드가 습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한 줄기 벼락이 되어 하늘을 달리던 처용이 속으로 읊조리며 생각했다.

라진의 말대로, 아스터 제국은 처용의 무력 때문에 함부로 병력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처용은 아스터 교단이 제집에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이용해 길드들이 빠르게 자리 잡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아스터 교단이 제국의 영역 밖으로 나와 길드들을 공격했다.

아마도, 악신들이 점령한 두 세계에서 상당한 전력을 지원받는 듯 보였다.

지금 에스라 대륙에서 일어나는 싸움은 처용 개인의 싸움이 아니었다.

지구와 악신들에게 점령된 세계의 전쟁, ‘세계와 세계 간의 전쟁’이었다.

아무리 처용 개인의 무력이 천외천(天外天)이라 해도, 혼자서 전쟁 전체를 조율하기엔 힘들었다.

하지만.

‘피해를 최소화하고 작금의 상황을 파악한다.’

처용은 조금 전, 성자가 했었던 말을 떠올리고는.

-파지지직!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달려 나가는 발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

아스터 제국의 수도 대신전.

이곳에는 아스터 교단을 대표하는 대주교들과 신의 신관들이 모여 있었다.

길고 넓은 단상에 앉아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모습.

그리고 가장 상석이라고 할 수 있는 곳, 단상의 끝에는.

“…….”

아스터 교단의 성녀, 라사벨이 신관들과 대주교들에게 등을 돌린 채 서서 눈을 감고 있었다.

라사벨이 침묵을 유지하기 때문인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

“성녀님, 그 변종이 나타났습니다.”

-덜컥! 저벅.

참회의 신관, 베드라가 대신전 정문을 열고 앞장서며 말했다.

그런 그의 뒤로 두 명의 인영이 뒤따라 나타났다.

한 명은 아스터 교단의 제1성기사단장이자, 태양신 아폴론의 신관인 아데인.

다른 한 명은, 뒤집어쓴 로브 안에서 벽안을 빛내는 금발의 여성.

아르테미스의 신관인 제니퍼였다.

-저벅.

막 나타난 베드라와 아데인, 제니퍼가 라사벨과 가까운 자리로 걸어가자.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아데인.”

라사벨이 감았던 눈을 뜨고 핏빛 눈동자를 차갑게 빛내며 입을 열었다.

“제니퍼 양 덕분에, 살았습니다.”

아데인이 라사벨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 변종과 마주친 것입니까?”

라사벨의 왼쪽에 앉아 있던 신관.

회개의 신관인 루메오가 아데인에게 물었다.

루메오의 물음에 아데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고.

“덕분에, 제 머리가 잘려 나가는 기분을 세 번이나 경험했습니다.”

경각심과 분노가 일렁이는 목소리로 읊조리듯 답했다.

그 말에.

-신께서 하사해주신 그 강력한 권능으로도…….

-그 간악한 마신을 저지할 수 없었다니…….

대주교들이 탄식을 내뱉으며 웅성거렸다.

“어찌 그런 잔악무도한 자가 분수에 맞지 않은 힘을 가졌단 말인가!”

그런 대주교들의 반응에 동의하듯, 아데인이 주먹을 강하게 쥐며 말을 이었다.

동시에, 전장에서 마주쳤던 처용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다.

절대적인 존재에게서 세례를 받고 격이 오른 태양신.

그런 태양신 아폴론의 신관인 아데인도 새로운 힘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신의 권능에 버금가는 강력한 힘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신 죽어 줄, 충성스러운 광신도들이 다 뒤져 버렸네?

전장에서 마주친 그 검은 괴물은 아데인의 능력을 단번에 간파하며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였다.

보다 못한 태양신이 강신했음에도 그를 이길 수 없었다.

아니,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친우인 파로크의 죽음에 복수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나도 압도적으로 강하기에, 제대로 맞서 싸우기조차 불가능했다.

“그 변종은 존재 자체가 불합리하다……!”

아데인이 처용의 존재 자체가 불합리하다며 분노를 읊조리자.

“나도 궁금하다. 그 미친 새끼가 도대체 어떻게 그런 힘을 손에 넣은 건지.”

옆에 있던 제니퍼가 공감한다는 듯, 말했다.

처용을 마주한 이들의 말이 이어지자.

“그 변종과의 마찰은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성녀, 라사벨이 입을 열었다.

-맞설 수 없는 괴물은 피하고 최대한 피해를 입혀야 합니다.

-이단국을 노리던가, 우리 세계를 침범하는 이들부터 상대해야 하오!

대주교들이 라사벨의 말을 잇듯, 의견을 펼쳤다.

마신, 변종이라 불리는 처용과 맞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그를 피하면서 적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지금으로써는 가장 유용한 방법이었다.

“실버 드래곤이 이단국에 자리 잡은 이상, 천사님들을 동원한다 해도, 쉽사리 점령할 수 없습니다.”

대주교들의 의견을 듣던 회개의 신관, 루메오가 말했다.

아스터 제국에게 있어 이단국으로 공표된 아라한 왕국.

그 이단국을 쓸어 버리고 여왕인 아나샤를 처치하는 것이 아스터 교단의 우선 목표 중 하나였다.

문제는, 아라한 왕국에 ‘에인션트급 실버 드래곤’이 자리 잡아, 그곳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안 그래도 공략하기 힘들었던 아라한 왕국에, 더 처치하기 힘든 존재가 나타난 상황이었다.

“실버 드래곤…… 그 드래곤을 손에 넣으면, 내가 완전해질 텐데……!”

루메오의 말에 성녀가 집착 어린 목소리로 읊조리고는.

‘아니지…… 더 ‘완벽한 빛’을 찾았으니, 굳이 실버 드래곤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겠지.’

이내 집착 어린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속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나 침착함을 되찾은 듯 보이는 라사벨의 목소리에는.

“반드시 당신을 가질 것입니다. 나만을 위한 성자님…….”

실버 드래곤에 대한 집착보다도 더 강력한 집착이 일렁이고 있었다.

라사벨은 성자를 떠올리며 눈을 감고 상기된 얼굴로 잠시 생각하다가 눈을 떴다.

“그나마, 이단국의 북쪽과 동쪽은 방어가 허술한 듯 보였습니다.”

라사벨이 앞으로 싸워야 하는 적들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악마병들을 보내 그곳을 공략하도록 하세요.”

“동방에서 온 해적들에게도 그쪽을 공략해 달라 말하겠습니다.”

루메오가 라사벨이 내린 명령에 답하듯,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소모전이 계속될수록, 우리에게는 이득입니다. 우리에게는…… ‘무한의 군대’가 있으니까.”

라사벨의 말이 이어졌다.

에스라 성운의 신들이 준비한 안배인 검은 문.

무려 두 개나 열린 그 검은 문 안에서는 무한하게 만들어진다고 들은 병사들이 건너오고 있었다.

“무한의 군대를 적들에게 계속 보내 압박을 지속하겠습니다.”

참회의 신관인 베드라가 라사벨의 말에 답하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 변종이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수 없도록 말이죠.”

무한히 지원받는 병사들을 계속 보내는 것으로 이 세계의 침략자들을 압박하고 견제한다.

동시에, 처용이 다른 곳을 신경 쓰지 못하도록 그의 발과 시선을 잡는다.

동시에, 가장 중요한 계획을 은밀하게 실행시키고 성공시킨다.

“신들께서 계획하시는 일만 성공하신다면, 우리의 승리입니다.”

베드라가 긴장감과 고양감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기대하듯 말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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