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화
처용이 갑작스럽게 전장에 나타나고 아데인을 반으로 갈라 버리자.
“……한처용 헌터?”
아데인과 대치하고 있던 라진이 의문과 놀람이 섞인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윽고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적들을 밀어붙여라! 놈들의 대장이 처치되었다!”
적들과 사투를 벌이를 헌터들을 향해 소리쳤다.
라진 조차도 상대하기 성가시던 적을 처용이 단번에 처치한 상황.
그런 적의 지휘관이 쓰러졌으니, 작금의 상황이 해결되었다 생각했다.
그러나.
“이놈은 죽은 게 아니야.”
처용이 차가운 눈빛으로 바닥에 쓰러진 아데인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끄어어-얽……!”
헌터들과 맞서 싸우던 아스터 교단의 성기사 하나가 눈을 뒤집으며 괴성을 지르더니.
-화르륵! 화륵!
전신이 불타오르며 화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화르륵!
처용의 앞에 반으로 갈라져 쓰러진 아데인의 시체 역시 불타올랐고.
-슈화아아! 화악!
바닥에 쓰러져 죽은 아데인의 시체가, 방금 화염에 휩싸인 성기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크으윽! 용서할 수 없다!”
-화아악!
괴성을 지르며 불타오르던 성기사.
그를 감싼 화염이 걷어지고 멀쩡한 모습의 아데인이 나타났다.
멀쩡하던 성기사와 죽은 아데인이 서로 뒤바뀐 듯한 모습.
“이게 무슨?”
아데인으로 변하기 전, 성기사와 맞서 싸우던 헌터가 당황 어린 침음을 흘렸고.
-콰아아! 스르릉!
되살아난 아데인이 그런 헌터를 향해 검에 화염을 휘감아 앞으로 크게 휘둘렀다.
-화륵! 콰콰콰!
“크흐윽!”
성기사와 맞서 싸우던 파라오 길드의 정예 헌터 하나가 고통 어린 신음을 내뱉으며 뒤로 밀려났다.
방어 스킬을 사용하며 막긴 했지만, 공격을 전부 상쇄하지 못하고 부상을 입은 모습.
“죽음으로 참회하라!”
아데인이 뒤로 밀려나 쓰러진 헌터를 마무리하듯, 검을 내리치려는 때.
“화류태극권-.”
-샥!
아데인의 앞으로 처용이 왼손바닥을 겨눈 채 나타났고.
“염화 반탄장.”
-화륵! 파아-!
손바닥에 화염을 휘감아 돌진해오는 아데인을 향해 뻗었다.
-까강! 콰쾅!
태양열이 휘감긴 아데인의 검과 타오르는 처용이 손바닥이 서로 충돌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검과 맨손의 대결.
일반적인 경우라면, 단단하고 날카로운 검이 우세했으나.
-슈우-! 쿠구궁!
“크으윽!?”
폭발에 튕겨 나가 뒤로 나자빠진 건, 검을 내지른 아데인이였다.
반면에, 처용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
“괴물 같은-!”
아데인이 인상을 확 일그러뜨리며 일어서려는 순간.
“그걸 이제 알았어?”
-파지직. 스릉!
처용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아데인 앞에 나타나 역천의 절을 치켜들고는.
-사각! 촤아-!
사선으로 칼날을 휘둘러 아데인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견고한 성기사 갑옷이 목 부근을 보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촥! 후두둑! 둑!
견고한 갑옷이 단번에 잘려 나가며, 몸통과 떨어진 머리가 바닥을 뒹굴었다.
그 순간.
-화르륵! 화륵!
머리가 잘린 아데인의 시체가 다시금 불타올랐고.
-후욱!
아데인이 아닌, 다른 성기사가 머리가 잘려 나간 모습으로 변했다.
동시에.
-화르르륵!
“크으윽!”
헌터들과 맞서 싸우고 있던 성기사 하나가 불타오르더니, 아데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인상을 확 일그러뜨린 아데인이 태양열을 내뿜으며 검을 치켜든 순간.
-산개!
-모두 물러난다!
아데인과 근접해 있던 헌터들이 일사불란하게 뒤로 물러나며 진형을 새로 갖추었다.
헌터들이 빠르게 물러나 새로 방어 진형을 갖추자마자.
“솔라 버스트!”
-위잉! 콰콰콰-!
라진이 헌터들이 물러난 자리 앞에 태양열을 집중시켜 폭발시켰다.
적의 능력과 작금의 상황을 파악하고 발 빠르게 대처한, 경험이 많은 정예 헌터들 다운 행동력이었다.
“거슬린다!”
-스릉! 파아아……!
아데인은 라진이 일으킨 태양열의 폭발을 향해 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그러자 폭발로 인한 열기가 반으로 갈라지며 모두 사라졌다.
‘기운이 더 강해졌다?’
그 모습을 본 라진이 옅게 인상을 찌푸리며 속으로 읊조렸다.
방금 아데인이 내뿜은 기운이 조금 전보다도 더욱 강해져 있었으니까.
라진이 긴장감을 드러내며 대비할 때.
-샥!
아데인의 앞에 다시 처용이 나타났다.
동시에.
“빙결부 – 만년빙검.”
-촤락. 차라랑!
빙결부 네 장을 허공에 흩뿌려, 얼음이 뭉쳐져 만들어진 네 개의 장검을 소환했다.
이윽고.
“낙화.”
-쐐에엑! 푸부북!
날카롭게 벼려진 얼음의 장검들이 아데인을 향해 쇄도하며 그의 복부와 어깨를 꿰뚫었다.
“크아아-!”
얼음 검에 꿰뚫린 아데인이 고통을 내질렀고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쳤다.
-화르르륵!
태양열을 끌어올리며 얼음 검을 녹여 버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쩌저저적! 치이이……!
오히려, 얼음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만년빙(萬年氷)의 기운이 태양열을 꺼뜨리며 아데인을 잠식해 나갔다.
“내가 반드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파로크의 원수를 갚을 것이다!”
-우드드! 화륵!
아데인이 태양열을 점점 더 끌어 올리고는 처용을 향해 핏발 선 눈으로 소리치며 발버둥 쳤다.
“누구냐? 그놈은.”
처용이 아데인의 말에 의문과 비웃음을 보이며 묻자.
“제2 성기사단장이다! 네놈이 저주를 새기고 수도에 날려 버린!”
아데인이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그 말에.
“……아아.”
처용이 무언가 떠오른 듯, 읊조렸고.
“내가 친히 편지지로 써준 그 버러지?”
곧 아데인이 말한 이가 누구인지 알아채며 말을 이었다.
에스라 대륙에 도달한 처용이 막 아나샤와 만나고 참회와 회개의 심판을 막았을 때.
아나샤의 영지로 아스터 제국의 군대가 들이닥쳤었다.
물론, 그들은 처용이 만들어 낸 자연의 재앙, 오제룡의 연회를 버티지 못하고 전멸했었다.
군대를 이끄는 지휘관, 오러 마스터에 오른 성기사 하나가 성검을 들고 처용에게 달려들었지만.
-이 성검 불량품인 것 같은데?
처용은 아스터가 하사한 성검을 단번에 부수고 그 성기사를 때려눕혔다.
동시에, 그의 몸에 ‘메시지’를 새겨 아스터 제국 수도로 날려 보냈었다.
그렇게 아스터 제국의 수도로 날아갔던 마지막 생존자.
그가 아데인이 말한 제2성기사단장이었다.
“네놈들이 받들어 모시는 그 쓰레기들이, 내가 보낸 선물을 좋아해 주던가?”
처용이 그 당시를 떠올리며 말하자.
“네놈의 잔인한 술수에! 파로크가 죽었다!”
아데인이 분노를 내질렀다.
당시, 처용에게 메신저로 활용되었던 제2성기사단장 파로크.
그는 심각한 부상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했다.
처용이 아데인의 분노에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는.
“아주 훌륭하게 순교한 성기사로군? 이 마신을 위해 메신저의 역할을 해주고 뒤졌으니까. 흐흐.”
그 타오르는 분노에 부채질을 하듯, 도발을 일삼았다.
“이이-!”
-화륵! 화르르륵!
아데인이 끓어오르는 분노에 태양의 기운을 끌어 올리며 발버둥 쳤다.
당장이라도 눈앞에서 친우의 죽음을 비웃는 마신을 처치하고 싶었다.
그러나.
-쩌저적! 쩌적!
아무리 발버둥 쳐도, 처용이 만들어 낸 얼음의 검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아데인이 이를 갈며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칠 때.
“솔라 - 익스터미나튜스!”
-……휘이이이!
라진이 오른손을 하늘 위로 뻗어 올리고는 하늘 위에서 태양 포격을 떨어뜨렸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태양열의 덩어리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콰콰콰! 콰쾅!
-크아악!
-크억!
아데인과 함께 이곳을 습격한, 성기사와 사제들이 뭉쳐 있는 장소였다.
지상을 폭격하며 맹렬하게 터져 나간 태양열 덩어리들이 헌터들에게도 튀었지만.
-스르륵. 스륵.
헌터들에게는 전혀 피해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태양열이 그들에게 스며들며 상처를 치료하고 버프를 주었다.
라진이 성기사들과 사제들의 진영에 태양 포격을 가하며 크게 휩쓸자.
-지금이다!
-뒤에서 알짱대는 사제들부터 처치해!
기회를 잡은 헌터들이 무너진 성기사들의 진영을 뚫어내었다.
태양 포격에 이은 헌터들의 총공세에 성기사와 사제들이 하나둘, 빠르게 쓰러져가자.
“이 비열한!”
그 모습을 본 아데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그러자.
“악의 종주한테 권능을 내려받은 새끼가 비열은 무슨.”
-스릉.
처용이 아데인의 턱 아래로 역천의 절의 칼끝을 겨누며 말했다.
그리고.
“내가 ‘태양의 순교’가 지닌 능력을 모를 줄 알았나?”
아데인이 보인 능력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듯, 그 권능의 이름을 읊조리며 말을 이었다.
“……그, 그걸-!”
아데인이 처용의 입에서 흘러나온 권능의 이름을 듣고 당황했다.
권능의 능력이 무엇인지 눈치챈 것도 아닌, 권능의 이름을 정확하게 언급했다.
심지어, 아데인은 태양신에게 이 권능을 하사받고 이번에 처음 전투에 참여한 것이었다.
즉, 이 권능을 선보이는 것은 이번 전투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마신이 그 권능의 능력만이 아닌, 이름까지 정확하게 알아챘다.
그러자.
[감히! 그분께 하사받은 권능을 함부로 떠벌리다니!]
아데인의 입에서 아폴론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신관을 통해 작금의 상황을 지켜보던 아폴론.
그 역시 처용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을 듣고 크게 당황했다.
동시에.
[예언자! 이 간악한 하계종이!]
어떻게 처용이 그 권능을 알고 있는지 눈치챘다는 듯 소리쳤다.
아데인에게 강림한 아폴론의 목소리가 크게 울리자.
“오랜만이다? ‘하급’ 태양신.”
처용의 입에서 도발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해전무신 님에 이어 아테나 님한테도 줘터지더니, 기껏 받아온 권능이 고작 그거냐 이 새끼야?”
[이! 이……!!]
이어지는 처용의 도발에 아폴론이 이를 아득바득 갈며 격한 분노를 드러냈다.
조금 전의 아데인처럼, 당장이라고 처용을 죽일 기세.
그러나 신관에게 성좌가 강림했음에도.
“하급신은 하급신이야, 고작 얼음 하나 부수지 못하다니.”
[……!]
아데인의 육체를 거의 다 뒤덮은 얼음을 도저히 깨부술 수가 없었다.
처용의 도발은 계속되었고 아데인과 아폴론은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그 도발을 계속 듣고만 있어야 했다.
일부러 아폴론과 아데인의 속을 박박 긁으면서도, 눈앞에 있는 적을 끝장내지 않는 모습.
처용은 마치 이 순간을 즐기려는 듯, 혹은 무언가 의도를 숨긴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솔라 버스트!”
-위이이! 콰콰콰-!
라진이 얼마 남지 않은 성기사들을 향해 태양열이 압축된 구체를 날리며 폭발을 일으켰다.
-커허억!
-으……!
아스터 교단 측의 모든 성기사와 사제들이 처치된 순간.
“한처용 헌터.”
그들을 처치한 라진이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라진의 눈빛을 마주한 처용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네놈 신관 대신 죽어 줄, 충성스러운 광신도들이 다 뒤져 버렸네?”
도발하듯 옅게 짓던 미소가 짙어지며 아폴론을 향해 말했다.
처용은 괜히 아데인을 살려 둔 것이 아니었다.
악의 종주에게 세례를 받고 악신으로 재탄생한 아폴론이 새로 깨우친 권능.
바로 ‘태양의 순교’ 때문이었다.
이 권능은, 자신이 사망에 이를 정도로 큰 피해를 받은 경우.
신성력을 하사받은 근처의 신도를 대신 희생시켜 자신을 살리는 권능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죽을 위기에 처한 자신과 멀쩡한 신도의 운명을 서로 뒤바꾸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아데인이 반으로 갈라져 죽은 듯 보였을 때, 그 대신에 다른 신도가 반으로 갈라져 죽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 권능이 강점은, 죽음을 피하고 신도들을 희생시킬수록, 자신의 힘이 강해진다는 점이었다.
라진과 호각이었던 그가 순간적으로 라진의 스킬을 압도했었던 이유였다.
처용은 처음부터 ‘태양의 순교’가 지닌 권능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회귀 전, 악신 아폴론의 신관이었던 헤리스가 사용하던 권능이었으니까.
아데인을 처음 처치했을 때도, 그가 태양의 순교를 사용해 죽음을 회피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때문에, 그 이후엔 아데인을 집중 마크하며 그를 제압한 것이었다
게다가, 라진이 눈치 좋게 아데인의 능력을 파악하고 성기사와 사제들을 빠르게 정리했다.
이제, 아데인 혼자만이 남은 상황.
권능의 제물이 될 신도들은 아무도 없었다.
-사각!
처용은 망설임 없이 아데인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투둑!
몸통과 분리된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고 이전처럼 몸이 불타오르거나 하는 현상은 없었다.
이제 완벽하게 죽은 듯 보였다.
그러나.
[우리가 단 하나의 보험만을 준비했다고 생각했느냐!]
잘려 나간 아데인의 머리에서 아폴론의 목소리가 울렸다.
태양의 순교가 발동하지 않았음에도, 죽지 않은 모습.
[네놈을…… 반드시-!]
분노를 읊조리는 아폴론의 말이 이어질 때.
“시끄러워, 이 버러지 새끼야.”
-사각!
아데인의 머리를 응시하며 짧게 침묵한 처용이 그 머리를 세로로 갈라 버리며 아폴론의 말을 끊었다.
그러자.
-파사사사……!
잘려나간 아데인의 머리와 머리를 잃은 몸통이 지푸라기 인형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월식 - 그림자 꼭두각시.’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작금의 상황을 미리 예상했다는 듯, 속으로 읊조렸다.
악신이 된 아폴론이 회귀 전 주력으로 사용하던 권능을 깨우쳤다?
그렇다면, 아폴론과 같이 올림포스를 배신한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라는 의미였다.
아니, 사실은 아레스가 ‘피의 샘’을 사용했을 때, 어느 정도 눈치채기는 했었다.
그러나.
“너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아르테미스.”
처용은 지푸라기 인형으로 변하는 아데인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읊조렸다.
동시에.
“너는 지금의 내 눈앞에서…….”
-우우웅. 파사사삭.
포확을 사용해 눈앞에 있는 지푸라기 인형을 잘게 부숴 흡수했다.
그러자.
[팔괘축기에 ‘달빛과 사냥의 신성력’이 일부분 저장됩니다.]
[팔괘축기에 ‘달그림자 꼭두각시’가 일부분 저장됩니다.]
팔괘축기 안에 아르테미스의 신력이 일부분 저장되었다.
아르테미스의 신관, 제니퍼가 아데인을 살리기 위해 건 보험.
그 보험을 걸기 위해 사용된 소량의 신력.
그 적디적은 양의 신력을 강탈한 것에 불과했지만.
“내 눈앞에서 ‘달그림자 꼭두각시’를 보여선 아니 되었어.”
처용은 그 적은 양의 신력을 손아귀로 강하게 쥐며 살기 어린 목소리로 읊조렸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