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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549화 (549/726)

#549화

“제게 그 괴물의 본체를 추적할 수단이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없애 버릴 것입니다.”

처용이 왼쪽 손목에 착용된 아티팩트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게서 받았던 아티팩트인 마나 레이더.

그 안에는 아스터 교단의 성녀, 라사벨의 데이터가 분석이 끝난 채 저장되어 있었다.

“……당장 그 괴물을 처치하러 가기가 곤란하군요.”

잠시 생각에 잠긴 성자가 처용의 말에 답하듯 입을 열었다.

처용은 후환과 위험 요소라면 확실하게 제거하고 정리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적을 추적한 수단도 있고 무력도 충분함에도 당장 행동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 괴물을 없애고 싶죠.”

처용 역시 당장이라도 라사벨을 처치하러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라사벨의 본체가 위치한 장소는 아마도 아스터 제국의 성지 중심부, 황궁이나 대신전일 것입니다.”

당장은 라사벨을 처치하기엔, 시기가 좋지 않았다.

라사벨의 본체가 있는 장소로 추정되는 곳은 아스터 제국의 중심부.

즉, 적진의 한 가운데였다.

아무리 처용이라고 해도, 적진의 심장부를 향해 일직선으로 뚫고 들어가기엔 무리였다.

때문에.

“원래 계획은 길드들과 총공세를 펼치면서 제가 위험한 놈들을 따로 없애 버릴 생각이었는데…….”

처용은 에스라 대륙에 길드들이 자리 잡는 대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길드의 헌터들이 대규모로 공격을 개시하면, 그 틈에 처용이 아스터 교단의 신관들과 라사벨을 처치한다.

이것이 본래 생각하던 계획이었다.

그러나.

“놈들이 ‘검은 문’을 여는 바람에 계획이 더 꼬여 버렸습니다.”

아스터 교단이 검은 문을 열고 멸망한 세계에서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적들의 세력이 더욱 강해진 상황.

길드들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적진으로 총공세를 펼치기가 까다로워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가능하면, 저희 측의 큰 손해 없이 이기려 했는데…….”

압도적인 전력 차로 단번에 밀어붙여 큰 피해 없이 에스라 대륙 정벌하려 했었다.

그 계획이 꼬여 버린 것이었다.

처용이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읊조리자.

“전쟁에 있어, 흘리는 피 없이 이기기란 어려운 법입니다.”

성자가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거대한 악의 무리와의 싸움에서 우리 세계를 지키기 위한 싸움입니다. 희생은…… 불가피하겠죠.”

“그 희생을 최소화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처용이 성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한다는 듯 말을 잇자.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성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길드들이 에스라 대륙에 온 이유는 전 세계를 집어삼키려는 악신들을 저지하기 위함이었다.

세계와 우주의 명운이 걸린 거대한 전쟁.

“에스라 대륙에 온 헌터들은 모두 싸울 각오가 된 자들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 전쟁에 자원한 헌터들은 모두 나름대로 강한 각오를 다지고 온 이들이었다.

성자가 나름의 각오를 다지듯 말을 잇고는.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역천군주.”

잠시 고민하듯 침묵한 후 처용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괜찮으신 겁니까?”

“……?”

두려운 무언가를 본 듯, 성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잇자, 처용이 의문을 표했다.

질문의 취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

하지만.

-스르륵.

푸른 빛이 일렁이는 성자의 눈동자 속에.

-화아!

강렬하고 짧게 일렁이는 붉은 빛을 마주한 순간.

“……!”

처용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성자가 무엇을 보았는지.

그가 왜 지금 두려움을 드러내는 듯 보였는지.

“……하하.”

처용이 이해가 되었다는 듯, 헛웃음을 흘려 보였다.

그러자.

-호오? 내 존재를 느꼈다고?

처용의 내면에서 중성적인 목소리가 울렸고.

-스스스.

붉은 신력이 옅게 흘러나와 넘실거렸다.

성자가 그 신력을 느꼈는지,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개수작 부리지 말고 지금처럼 자던 잠이나 쳐 자라.”

-탁!

처용이 한쪽 발로 땅을 밟으며 낮게 읊조리자.

-스륵.

옅게 흘러나오던 붉은 신력의 기세가 확 가라앉았다.

“방금 그 기운은…… 설마?”

성자가 조금 전 느꼈던 붉은 기운을 상기하며 읊조렸다.

이전 세계 헌터 회의에서 모습을 드러냈었던 악신들의 정점.

두 번이나 마주했었던 삼천마들보다 더더욱 불길한 기운을 흩뿌리던 존재.

악의 종주, 조크 – 크타니드.

방금 처용에게서 흘러나오던 붉은 기운은 그 악의 종주가 흩뿌리던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아주 위험한 녀석을 제가 데리고 있지요.”

처용은 성자에게 딱히 숨기거나 하는 기색 없이 말했다.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고, 위험한 존재를 자신이 묶어두고 있다 정도.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닙니다.”

“신경을……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처용의 말에 성자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이라고는 보기 힘든 압도적인 강함.

무려 태초신의 임명권을 가진 계승자의 권한.

처용은 성좌들조차도 알지 못하는 비밀을 많이 지닌 존재였다.

그런 그가 거대한 악의 기운을 짊어지는 비밀이 있다고 하여, 이제 와 크게 놀랄 이유는 없었다.

그래도.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돕겠습니다.”

성자는 처용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홀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면, 여럿이서 감당하면 되었다.

때문에, 처용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기꺼이 도우리라 생각했다.

그간 처용에게 받은 것 또한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처용은 그런 성자의 고마운 말에 작은 미소를 짓고는.

“그나저나, ‘진짜 성녀’도 이곳에 옵니까?”

성자에게 성녀의 행적을 물었다.

처용이 말한 진짜 성녀는 다름 아닌 성자의 여동생, 호네아를 의미했다.

성자 처용의 말을 알아듣고는.

“안 그래도, 이곳에 오겠다고 하더군요.”

우려가 담긴 목소리로 답했다.

방금 아주 위험한 상대와 마주했던 상황.

성자는 자신의 여동생이 이곳에 오는 게 조금 꺼려졌다.

그런 성자의 우려에.

“와야 합니다.”

처용은 단호한 목소리로 성녀, 호네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장, 검은 대지를 완벽하게 정화할 수 있는 헌터는 저와 성녀뿐이니까요.”

악신들이 세계를 점령하기 위해 퍼트리는 오염인 검은 대지.

그 검은 대지를 완벽하게 정화할 수 있는 존재는 처용과 성녀가 유일했다.

지금 아스터 제국 수도에 검은 문이 개방된 상황.

이제, 그곳을 타고 검은 대지가 번질 것이고 에스라 대륙을 잠식할 것이라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성녀는, 아니, ‘호네아 헌터’는 강한 사람입니다.”

처용이 호네아가 필요하다고 말한 이유.

회귀 전과는 다르게 그녀 자체가 ‘강력한 전력’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강인하게 만들어 주었죠.”

성자가 처용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성자의 목소리에는 아직 꺼림칙한 느낌이 남아 있는 듯 보였다.

아스터 교단의 성녀가 자신에게 집착을 보였으면, 호네아에게도 집착을 드러낼 테니까.

처용은 그런 성자의 우려를 이해하고는.

“이건, 제 예상인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가짜 성녀는 우리의 진짜 성녀를 절대로 이기지 못할 겁니다.”

아스터 교단의 성녀, 라사벨은 빛의 교단의 성녀 호네아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처용이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전 처용이 성녀가 반만 타락하는 것을 잠시 도울 때.

-걱정하지 마시고 ‘전력’으로 내재된 기운을 터트려 보십시오.

수련탑에서 성녀가 앞뒤 안 가리고 스스로의 기운을 폭발시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 확인했었다.

그 당시 성녀가 드러냈던 능력을 보았기에 확신한 것이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성자.”

처용은 성자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고는.

-파지직.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성자는 처용이 사라진 자리를 잠시 바라보고는.

“……우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죠.”

조금 전, 처용의 말에 답하듯 말을 잇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

-파지직!

성자를 만나고 사라진 처용이 다시 나타난 장소는 빛의 교단이 세운 진영의 북서쪽 방향이었다.

다시 하늘 위에 나타난 처용이 아래를 응시하자, 헌터들이 세운 또 다른 주둔지가 눈에 보였다.

그리고 중앙의 가장 큰 막사 겉면에는 길드의 상징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타오르는 태양 가운데에 눈이 새겨져 있는 듯한 문양.

처용이 찾은 장소는 다름 아닌 파라오 길드가 세운 주둔지였다.

올림포스와 마찬가지로 전선의 최전방을 맡은 길드 중 하나.

사실 처용은 올림포스 길드를 찾아가려고 했었다.

그곳에서 제시카를 만나, 아테나와 관련된 소식을 전하고 향후 방침을 세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올림포스 길드 주둔지로 향하던 도중.

-……차캉. 쿠구구……!

감각을 거스르는 소리가 울리며 처용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처용이 감각과 시야를 넓히자, 먼 곳에서 전투가 일어났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 방향은 다름 아닌 최전선을 맡은 길드의 주둔지 중 하나.

지금 처용이 찾아온 파라오 길드의 주둔지가 있는 방향이었다.

주둔지 중앙을 보던 처용이 조금 앞을 바라보자.

-쿠구! 쿠콰콰!

-……크아아!

다수의 인영들이 서로 맞붙어 백병전을 치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격렬한 백병전이 일어나는 곳 중앙.

-화륵! 화르르륵!

등 뒤에 작렬하는 태양을 만들어 주변에 열기를 내뿜는 헌터.

태양의 신관, 라진의 모습이 보였다.

동시에.

-화아아!

전신으로 검은빛이 일렁이는 붉은 화염을 스멀스멀 내뿜는 이.

붉은 태양 문양이 그려진 견고한 백색의 성기사 갑옷을 입은 남자.

그가 상대하는 라진은, S급 헌터들 중에서도 상당한 강한 헌터임에도 불구하고.

-쿠구구! 콰아!

힘 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저 새끼는…….”

처용의 눈빛이 라진과 맞서 싸우고 있는 성기사를 응시하며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

파라오 길드가 자리를 잡고 세운 주둔지 앞.

그곳에는.

-저 침략자들을 참회시켜라!

-죽음으로 회개하거라!

파라오 길드의 주둔지를 공격하는 듯 보이는 성기사와 사제들.

-힐러와 버퍼들은 전방의 탱커들을 보조해라!

-저 미친놈들을 처치해!

그런 그들에 맞서 주둔지를 방어하는 헌터들이 맞붙어 격전을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정신없는 백병전이 일어나고 있는 전장의 중앙.

-콰아! 화르르륵!

격렬한 화염이 충돌하며 열기를 내뿜는 중앙에는 그 누구도 접근하지 않았다.

그런 중앙에서 자신과 맞서는 상대를 노려보는 헌터.

“대악마의 기운을 두른 성기사라니…… 참으로 추악하군.”

태양의 신관, 라진이 인상을 작게 찌푸리며 읊조렸다.

그러자, 라진과 대적하고 있는 성기사.

“나의 신이야말로! 순결하고 고결한 태양이다!”

아스터 교단의 제1 성기사단장, 아데인이 라진을 향해 검을 겨누며 소리쳤다.

“올림포스를 배신한 태양신이 고결하다? 지나가는 개가 웃겠군.”

라진이 그런 아데인을 보며 기가 막히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태양의 신명을 짊어진 신격을 모시는 두 신관.

그러나 그 두 성좌의 격은 같지 않았다.

라진이 따르는 성좌는 헬리오폴리스의 주신, 태양신 라.

그녀는 대신급 선천적 신격들 중,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태양을 짊어진 존재였다.

그에 반해, 올림포스의 배신자 아폴론은 전대 올림포스 태양신에게서 자리를 물려받았을 뿐이었다.

같은 태양신이라 해도, 경험도, 격도, 수준도, 하늘과 땅 차이였다.

보통 같은 신명을 지닌 성좌의 수준 차이가 심하면, 그 신관 역시 차이가 나기 마련이었다.

전 아폴론의 신관이었던 S급 헌터, 헤리스 역시 라진과 수준 차이가 심했었다.

눈앞에 있는 성기사는 아폴론이 헤리스를 버리고 새로 선택한 신관.

뒤늦게 선택받은 신관이라면, 더더욱 라진과 수준 차이가 심해야 했다.

그러나.

“성운을 배신한 네 성좌는 추악한 악신일 뿐이다. 타락한 성기사여.”

라진은 맹목적인 믿음과 광기를 드러내는 아데인을 보며 겉으로는 여유를 보이면서도.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속으로는 방심하지 않고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화르르륵!

라진의 등 뒤에는 작은 태양이 떠올라 주변에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군에게는 활기를 주는 버프를 걸고, 적들에게는 강렬한 열기로 압박을 가하며 데미지와 디버프를 주는 스킬이었다.

만약, 상대가 아폴론의 전 신관인 헤리스였다면, 감히 맞서지도 못할 위력을 지닌 스킬.

그러나.

-화아아아!

아데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칙칙한 검은빛이 일렁이는 화염이 라진의 태양열을 막아내고 있었다.

아니, 막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의 태양신께서 모시는 분은 가장 위대한 신이시다!”

-화륵! 화륵! 콰아아!

라신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태양열을 갈라내기까지 하고 있었다.

아데인이 광신적인 목소리로 라진을 향해 소리치고는.

“네놈들은 모두 이단이다!”

-스르릉! 콰아아!

라진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칙칙한 어둠이 휘감긴 태양열을 발산했다.

“태양 병풍.”

-짝! 화르륵!

아데인의 공격에 라진이 두 손을 합장하며 신성력을 모으고는 스킬을 발동했다.

라진이 신성력을 모은 두 손을 떼자.

-화륵! 파아아!

태양열로 불타오르는 신성력이 병풍처럼 넓게 펼쳐지며 방어막을 형성했다.

-콰콰! 쿠구구!

라진이 펼친 태양열의 병풍이 아데인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냈고.

-후우욱!

태양 병풍이 그대로 앞으로 돌진하며 아데인에게 쇄도했다.

“마신과 손을 잡은 네놈들은 모두 이단자들이다!”

-화륵! 촤아아!

아데인이 검을 들고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며 태양 병풍을 반으로 갈랐다.

동시에.

“마신에게 희생된 고결한 신도들의 원한을 갚을 것이다!”

-콰아아!

전신으로 강렬한 열기를 내뿜으며 소리쳤다.

그 순간.

“아 그래?”

-파지직!

아데인의 뒤로 한 줄기 벼락이 내리치더니.

“여기, 마신이 직접 왔으니, 어디 한 번 원한을 갚아 봐라.”

주변에 태양열마저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아데인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경악하며 황급히 고개를 돌린 순간.

“반갑다. 이 씨발 새끼야.”

싸늘한 미소를 짓는 처용과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쐐에에엑!

시퍼런 강기가 일렁이는 역천의 절이 아데인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아데인은 처용의 기습 공격에 바로 반응하지 못했고.

-촤아아!

결국, 역천의 절이 아데인을 가르고 지나가며 반으로 갈라 버렸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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