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7화
알레인이 막 탈출에 성공했을 때.
-화아아!
그녀 앞에 열려 있던 균열과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던 악의 종주가 빛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알레인과 그녀가 만들어 낸 균열, 악의 종주가 사라지자.
-사라라락……!
주변 일대를 뒤덮은 어두운 안개의 결계, 알레인의 결계가 눈 녹듯 녹아내리며 사라졌다.
그 결과, 본래의 이 장소였던 독 지대 협곡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바알 님!”
-샥!
현장에 홀로 남은 바알의 앞에 나베리우스가 나타났다.
동시에.
-탓. 타닷.
황급히 바알의 부름에 응답한 대악마들이 나베리우스 근처에 나타났다.
뒤늦게 나베리우스와 대악마들이 나타나자.
“이……! 놈들…… 이……!”
-쿠구! 쿠구! 쿠구구!
바알이 이를 아득바득 갈며 거친 분노를 내뿜었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어둠이 검은 전류를 튀기며 주변 일대를 짓눌렀다.
“뭐 하다 이제 오는 것이냐!!”
-쿠구구!
바알에게서 강렬한 고함이 터져 나왔고 짙은 어둠이 고함을 타고 나가 주변에 퍼졌다.
-콰콰콰-!
주변 지형이 검은 태풍에 맞은 듯, 금이 가고 휩쓸리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윽!
-……!
바알의 격렬한 분노와 살의에 모여든 대악마들이 공포 어린 침음을 흘렸고.
“……!”
나베리우스 역시 바알의 분노 서린 마기가 짓눌러 오는 것을 견디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바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가 점점 더 거칠어질 때.
-……슈우우! 콰쾅!
바알과 나베리우스 사이에, 판데모니움의 문자가 새겨진 대검이 떨어지며 지면에 꽂혔다.
동시에.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콰쾅!
떨어진 대검, 샤네의 주인인 메피스토가 한 박자 늦게 떨어지며 바알을 향해 말했다.
-촤자자작!
메피스토가 마기의 파동을 흩뿌리자, 대악마들을 짓누르던 바알의 마기가 조금 옅어졌다.
“네놈은…… 왜 이제야 오는 것이냐!”
바알이 그런 메피스토를 향해 격렬한 분노를 터트리며 소리치자.
“난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정을 모른다.”
-쿵! 스르릉.
메피스토가 바알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답하며 바닥에 꽂힌 샤네를 들어 올렸다.
분노하는 바알을 향해 적개심을 비추는 메피스토.
메피스토의 눈빛이 점점 차갑게 가라앉으려는 순간.
“아, 안개의 대악마가 우리를 배신했소!”
상황을 파악한 나베리우스가 황급히 입을 열며 전후 사정을 이야기했다.
지금 바알이 극도로 분노하는 이유.
아마도.
‘제길! 그분께서 나섰음에도…… 알레인의 탈주를 막지 못한 건가!’
배신자 알레인을 잡지 못한 듯 보였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
나베리우스의 말에 메피스토가 멍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고.
-안개의 대악마가?
-최상위 서열의 대악마가 어찌!
-도대체 무슨 이유로…… 배신을?
모여든 대악마들 역시 인상을 찌푸리며 의문을 토로했다.
“바알…… 나베리우스의 말이 정녕 사실인가?”
메피스토가 즉시 바알에게 사실을 물었다.
그러자.
“그년은…… 그년은 나를, 그분을…… 우리 전체를 기만했다.”
바알에게서 시리도록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감찰자의 권한으로…… 이곳의 기억을 내게 보여라!”
-우우웅!
나베리우스가 땅에 손을 짚으며 마기를 흩뿌리고는 권능을 발동했다.
그는 마기를 뿌려 감시하는 지역 일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세밀하게, 하나하나 정확히 파악할 순 없었다.
이곳에는 그보다도 마기가 짙은 존재인 알레인이 결계를 펼쳤던 장소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유가 무엇이냐?
나베리우스는 자신의 권능에 집중하며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증은 다 풀렸는지? 거대한 어둠의 대악마.
알레인과 바알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엿들을 수 있었다.
나베리우스가 조금 전 일어났었던 상황을 파악하자.
“안개의 대악마 알레인이…… ‘니알라 – 크타니드’였다고?”
그의 입에서 충격적인 감정이 일렁이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베리우스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읊조리자.
“니알라…… 몽환의 진짜 주인? 꿈의 종주를 말하는 것인가!?”
메피스토가 당황스러움이 섞인 경악을 드러내며 나베리우스에게 되물었다.
-태초의 마수였다고? 안개의 대악마가?
-말도 안 되는……!
몇몇 대악마들 역시 당황스러움을 드러내며 쑥덕이듯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예언자와 내통하던 진짜 흑막은…… 알레인이었다?”
나베리우스가 또 다른 사실을 알아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알레인이 혼자서 판데모니움을 탈출했다.
바알조차도, 다른 삼천마들도, 악의 종주도 쉽게 뚫을 수 없는 시스템의 장벽을 뚫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게다가.
-이번엔, 네놈이 졌어.
바알과 악의 종주를 가로막은 이는 다름 아닌 한처용.
예언자 다음으로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인간들의 이례귤러였다.
그리고 처용이 ‘예언자’와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널리 알려진 바.
세계 헌터 회의에서도 그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공표했었다.
알레인은 스스로 판데모니움을 빠져나갈 수 없다.
처용 역시 혼자서는 판데모니움과 연결되는 통로를 만들어 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오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예언자의 진짜 목표는…… 알레인을 이곳에서 탈출시키는 것이었다?”
작금 일어난 모든 상황은, ‘예언자’가 계획한 것이라는 뜻이었다.
진짜 흑막의 정체가 예언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나베리우스는 기가 막힌 듯 읊조렸다.
그때.
“네 녀석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가?”
나베리우스의 근처에서 디아블로의 목소리가 울리더니.
-콰쾅! 쩌저저적!
새까만 불꽃이 길게 찢어지듯 퍼지며 공간이 갈라졌다.
이윽고.
“드디어, 이 망할 결계를 부쉈군.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저벅.
어깨에 도끼를 짊어진 디아블로가 나타났다.
동시에.
“베놈 스파이럴!”
-콰아아아!
그 뒤로 진짜 모습을 개방한 안드로말리우스가 손아귀에 마기를 뭉쳐 누군가를 공격하는 모습이 드러났다.
안드로말리우스에게 공격당한 이는 다름 아닌.
“캬아아-!”
그와 비슷한 덩치를 지닌, 검푸른 깃털이 길게 자라난 검은 새 형태의 대악마였다.
“……안드레알푸스!?”
나베리우스가 안드로말리우스와 싸우는 대악마를 보며 놀란 듯 소리쳤다.
그때.
“갈갈이 찢어주마. 배신자! 베놈 하이브!”
-촤라라라락!
안드로말리우스가 강렬한 독을 머금은 검보랏빛의 독사들을 소환해 안드레알푸스를 휘감았다.
이윽고.
-촤자자작! 촤작!
독사들이 안드레알푸스를 마구잡이로 뜯어내며 치명상을 입혔다.
“어차피 네놈들은 실패했다. 후후후……!”
-투둑! 화아아……!
치명상을 당한 안드레알푸스가 조소를 흘리고는 검푸른 깃털을 흩뿌리며 쓰러져 사그라졌다.
“호오? 안드레알푸스를 이겼다고?”
디아블로가 뒤를 돌아보고는 놀랍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자.
“으…… 운이 좋았을 뿐이오.”
안드로말리우스가 숨을 한 번 몰아쉬며 답했다.
디아블로와 안드로말리우스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안드로말리우스!”
-쿠구구! 화아아!
바알이 분노가 일렁이는 목소리로 안드로말리우스이 이름을 부르며 마기를 내뿜었다.
짙은 어둠이 손톱을 치켜세운 손들로 변하며 안드로말리우스에게 향할 때.
“어허,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쾅! 화르륵!
디아블로가 안드로말리우스에게 향하던 어둠의 손아귀들을 도끼로 후려쳐 없애 버렸다.
“네놈이야말로 무슨 짓이냐.”
바알은 자신을 방해한 디아블로를 보며 인상을 확 일그러뜨리고는.
“독 지대 협곡에서 문제가 벌어졌다. 이 사태의 책임은 맹독의 대악마에게 있다.”
-스스스.
짙은 어둠을 스멀스멀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알레인은 독 지대 협곡에서 탈주했다.
그렇다면, 이곳의 주인인 안드로말리우스에게 책임이 있었다.
“하, 알레인을 이쪽으로 보낸 건 네 녀석이 아니었던가? 바알.”
디아블로가 안드로말리우스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바알을 보며 조소를 흘렸다.
그러자.
“……왜 안드로말리우스를 감싸 주는 것이냐?”
바알이 의문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디아블로는 다른 대악마를 감싸 줄 만한 성향을 지닌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싸움과 전투 외에는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는 악마였으니까.
“크흐흐.”
디아블로가 바알의 물음에 옅은 웃음을 흘려 보이자.
“그러고 보니, 당신은 알레인이 수상했었다는 듯 말했었지요.”
나베리우스가 기억났다는 듯, 말했다.
안개의 대악마, 알레인이 본모습을 드러내기 전.
-내가 짐작한 사실이 맞았다는 뜻이겠지.
디아블로는 알레인이 의심스러웠다는 듯한 말을 흘렸었다.
나베리우스의 말에 메피스토 역시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반응을 보였다.
“알레인이 배신할 것을 의심하고 있었다? 네 녀석이?”
메피스토가 진지한 목소리로 디아블로를 향해 묻자.
“그럼 내가 그저 단순히 인간들에게 흥미가 있다 하여 이곳에 드나든 줄 알았나?”
디아블로가 씨익 웃어 보이며 당당한 목소리로 답했다.
주기적으로 인간들에게 강제로 소환되어 맞고 돌아오는 맹독의 대악마.
디아블로는 안드로말리우스와 맞서 싸우는 인간들을 항상 흥미롭게 관찰했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감에 확신을 갖고 알레인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말을 잇던 디아블로가 자신의 뒤에 있는 이를 잠시 눈짓하고는.
“그년을 의심한 건, 여기 맹독의 대악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나보다도 먼저 의심하고 있었더군?”
안드로말리우스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러자.
-맹독의 대악마가?
-안개의 대악마를 의심하고 있었다?
대악마들이 의문을 드러냈다.
“네가 직접 말해보아라.”
바알이 안드로말리우스를 노려보며 물었다.
“알레인을 의심하고 있었다고?”
“사, 사실이오. 거대한 어둠의 대악마여…….”
바알의 눈을 마주 보지 않고 피한 안드로말리우스가 주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답했다.
“무슨 근거로?”
다시 바알의 질문이 이어졌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알레인을 의심한 것인가?
말석의 대악마가 무슨 능력으로?
바알의 목소리에는 의문이 일렁임과 동시에.
-스스스.
안드로말리우스를 당장이라도 죽일 듯, 살의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마치, 디아블로처럼 그저 감이라던가, 혹은 별것 아닌 이유라던가 하면, 죽이겠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런 흉흉한 분위기에 안드로말리우스가 침착함을 되찾으려는 듯 침을 삼키고는.
“내, 냄새요.”
무슨 근거로 알레인을 의심했는지를 이야기했다.
“냄새?”
나베리우스가 의문 어린 목소리로 되묻자.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바질리아 종족은 코가 좋소.”
안드로말리우스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코를 가리키며 말했다.
“감찰자 공께서 보여주었던 안드레알푸스의 깃털, 그 깃털과 같은 냄새가…… 알레인에게도 났었소.”
안드레알푸스의 배신이 알려졌을 때, 나베리우스가 안드레알푸스의 깃털을 주워 악의 제전으로 가져왔었다.
그때, 안드로말리우스는 그 깃털의 냄새를 자세히 맡아 기억했었고.
-……!
그 당시 기억했었던 냄새가, 알레인에게서도 똑같이 났었다.
때문에, 알레인과 안드레알푸스의 관계를 의심한 것이었다.
“왜 그것을 미리 말하지 않은 것이냐!”
나베리우스가 안드로말리우스를 향해 추궁하듯 묻자.
“마, 말석의 대악마가 8위의 대악마가 수상하다고 말하면, 그 누가 믿어준단 말이오!”
안드로말리우스가 나름 억울하다는 듯한 감정을 담아 호소하듯 말했다.
“나 역시 고민에 고민만을 거듭하다가, 디아블로 공이 내 고민을 눈치채고 나를 도와준 것이었소.”
“그런데, 알레인이 수상하다는 증거를 찾기도 전에, 본색을 드러내 버렸군.”
안드로말리우스의 말에 디아블로가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알레인을 잡을 것을 기대하고 함정에 빠진 나베리우스도 탈출시켜 주었건만…….”
이어지는 디아블로의 말에 나베리우스가 분하다는 듯, 이를 갈며 고개를 숙였다.
함정에 빠진 나베리우스를 구해 준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내가 그리 도와주었는데도, 눈앞에서 알레인을 놓친 건가? 바알.”
디아블로가 바알을 향해 추궁하듯 물었다.
안드로말리우스는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디아블로 역시 알레인을 잡기 위해 나름 노력을 기울였다.
덕분에 알레인이 탈출하기도 전에, 바알이 이 사실을 알아채고 직접 이곳에 찾아왔다.
그런데 알레인을 놓쳤다?
“이거, 맹독의 대악마에게 책임을 추궁할 만한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
과연 이것이 안드로말리우스의 책임인가?
디아블로가 바알을 향해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하자.
“크흐으음……!”
바알의 이마에 핏줄이 서며 분노가 드러났다.
디아블로는 최근 분노를 드러내는 일이 많은 바알을 보며 재밌다는 듯, 속으로 웃어 보이고는.
“더는 놈들에게 당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야 한다. 그 계획을 당장 실행하지.”
바알과 메피스토를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자.
“서둘러 진행할 만한 계획이 아니다.”
메피스토가 작은 우려를 드러냈다.
디아블로가 언급한 계획은 순혈자들과 협력하는 아주 중요한 계획.
함부로, 즉흥적으로 진행할 만한 계획이 아니었다.
하지만.
“저쪽으로 넘어간 알레인이 모조리 불어버릴 텐데? 우리가 무슨 계획을 세웠는지도?”
디아블로가 왜 서둘러야 하는지를 말했다.
방금 최상위 서열의 대악마가 배신을 저지르는 일이 발생했으니까.
“……그년은 순혈 의회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모른다.”
분노를 곱씹던 바알이 들끓는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며 말했다.
그러자.
“그리 당해 놓고도 아직도 모르는가? 놈들을 얕보지 마라.”
디아블로가 답답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고.
“그렇군, 알레인이 악의 제전에서 오갔던 말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놈들이 눈치챌 가능성이 있다.”
메피스토도 디아블로의 말에 동의하듯 말을 이었다.
두 삼천마의 의견에.
“……나 역시 당장이라도 놈들을 쳐부수고 싶다. 허나-.”
바알 역시 심정으로는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최고 결정권을 지닌 이는 자신도, 앞에 있는 두 삼천마도 아니었으니까.
그때.
-당장 실행해도 좋다.
바알에게서 악의 종주가 보낸 메시지가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위대한 존재이시여.”
악의 종주의 허락이 떨어지자 바알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러자.
“천교, 옥황상제에게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바알 님.”
조용히 대화를 듣던 나베리우스가 바알을 향해 말했다.
그는 삼천마들과 천교의 주신, 순혈자들이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중요한 계획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굳이 깊이 알 필요는 없다.
필요할 때, 바알이 지시하면 그 지시사항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이 말도 같이 전해라.”
나베리우스의 말에 바알이 추가 지시를 내리듯 입을 열었다.
“헬리오폴리스를 쓸어 버리는 일에는, 내가 직접 나설 것이라고!”
바알이 나베리우스에게 명령을 전달하고는.
-콰콰쾅! 후우욱!
마치, 화풀이를 하듯, 분노 서린 마기를 거칠게 퍼트리며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