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6화
처용과 대신들을 제외한 모두가 나가고 약 20여 분이 지나자.
-우웅. 스르륵.
황금빛 결계 속에서 무표정의 아테나가 모습을 드러내며 걸어 나왔다.
아테나는 왼손을 뒤로 쭉 뻗은 채 결계 밖으로 나왔고.
-철컥.
뒤로 뻗은 그녀의 왼손이 결계 밖으로 나왔을 땐 사슬의 끝이 쥐어져 있었다.
그 사슬이 이어진 곳은 결계 안.
-저벅. 촤라락.
아테나가 점점 앞으로 걸어 나오자 그녀가 쥔 사슬과 연결된 무언가도 같이 딸려 나왔다.
그녀가 사슬로 묶어 끌고 나오는 것은 다름 아닌.
[크어…….]
결계 속에 아테나와 함께 있었던 제우스였다.
[헤르메스. ‘성운의 탈주범’을 성역으로 압송한다.]
널브러진 제우스를 질질 끌고 나온 아테나가 헤르메스를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자.
[……주신의 뜻대로.]
헤르메스가 아테나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동시에.
[애타게 기다리고 계실 ‘어머니들’께도 이 소식을 전해 놓지요.]
짧고 깊은 한숨을 내쉬고 제우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헤르메스의 말에 쓰러진 제우스가 움찔거리는 반응을 보였고.
[우리 성운의 문제를 해결한 다음, 다시 찾아오겠다.]
그런 제우스를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본 아테나가 처용을 향해 말했다.
“알겠습니다.”
[항상…… 고맙구나.]
처용이 대답하자, 아테나가 항상 고맙다는 말을 잇고는.
-철크럭.
제우스를 그대로 끌고 가며 올림포스로 돌아갔다.
이번 일을 돕기 위해 나선 헤르메스와 티케 역시 아테나를 따라나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비 수련장을 나가고 소수만이 남았을 때.
[……이럴 때가 아니지, 바알과 순혈자들이 위험한 계획을 진행하고 있어.]
니알라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입을 열었다.
바알과 옥황상제, 다른 순혈자들이 상당히 과감하고 위험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말.
“……자세히 말해 주십시오.”
그 말에 처용의 눈빛이 진지해지며 니알라를 향해 물었다.
[곧 두 성운에 위험한 일이 닥칠 거야. 그리고…….]
처용의 물음에 니알라의 말이 이어졌다.
요약하자면, 두 거대 성운에 곧 위험한 일이 생긴다는 것.
판데모니움의 악마들이 대대적인 전면전을 준비한다는 것이었다.
“음…… 두 성운을 몰락시킬 계획이다? 어디입니까?”
처용이 니알라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한 후, 니알라에게 질문하자.
[미안…… 정확한 계획을 알고 있는 건 바알을 포함한 삼천마들 뿐이야.]
니알라가 정확한 계획은 알지 못한다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바알은 나베리우스에게조차 순혈자들과 계획한 일을 알리지 않았어.]
악의 종주가 지켜보는 순혈 의회에 참석할 수 있는 대악마는 삼천마가 유일했다.
그들은 그 순혈 의회 안에서 무슨 말들이 오갔는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디아블로…… 그 녀석도 말할 수 없다고 했으니, 무언가 제약이 있는 것 같아.]
니알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잇자.
“디아블로…….”
처용이 할 말이 많다는 듯, 디아블로의 이름을 읊조리며 날 선 눈빛으로 니알라를 응시했다.
밤의 성채에서 벌어진 격렬한 전투.
처용을 상대로 시간을 벌기 위해 나타났었던 집행자와 디아블로.
그 당시 니알라는.
-도와주는 건 이번뿐입니다. 무한한 공포의 대악마.
집행자와 디아블로를 추적하려던 처용을 방해했었다.
그리고.
“제가 디아블로와 싸우는 동안, 시간의 괴리가 일어났었습니다.”
처용이 의심되는 부분을 한 가지 짚어 말하며 질문을 이었다.
발록으로 변한 집행자와 그에게 강림한 디아블로.
둘은 불타는 투기장 속에서 처용을 상대로 한 시간 반 동안이나 전투를 이었다.
그러나 불타는 투기장이 해제되고 밖으로 나가자.
-저 새까만 화염 속에 하루 반나절 동안 있었다고!
연아가 밖의 시간이 하루 반나절이나 지났다고 말했었다.
디아블로와 싸운 건 한 시간가량.
반면에 밖에서 흐른 시간은 무려 한나절이었다.
24배에 달하는 시간의 괴리.
처용이 알기로 디아블로는 이러한 권능을 발현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현장에 있던 이들 중 하나가 디아블로를 도왔다는 의미였다.
나태의 대악마 벨페고르, 색욕악신 아스모데우스 등 상위 서열의 대악마들도 불가능했다.
현장에 있던 이들 중 처용이 잘 모르는 권능을 지닌 상위 서열의 대악마.
이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은 단 하나뿐이었다.
“왜 그러신 겁니까?”
처용이 니알라를 향해 묻자.
[디아블로가…… 내 정체를 눈치챘었어.]
니알라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그 말에 처용이 재차 의문을 드러내며 되물었고.
[삼천마가 네 정체를 파악했다고?]
같이 이야기를 듣던 카투라 역시 의문을 드러냈다.
“협박…… 아니, 디아블로의 성격 상, 단순히 협박만 할 리가 없을 텐데…….”
처용이 이어지는 의문을 읊조렸다.
디아블로가 제 정체를 숨기고 있던 니알라의 진짜 정체를 알아챘다.
정황상, 그 정보를 이용해 니알라가 자신을 돕도록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전투광이 단순 협박만 한다고? 그럴 리가 없어…….”
그 누구보다도 전투를 갈망하는 삼천마, 디아블로가 단순히 니알라의 정체를 파악하고 협박만 했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었다.
처용이 디아블로의 의도를 알 수 없다는 듯 읊조리자.
[자신을 도와준다면, 내가 판데모니움을 빠져나가는 데 일조하겠다고 말하더라.]
니알라는 디아블로가 자신에게 전했었던 말들을 언급하며 말을 이었다.
동시에.
[놈은 네게 카투라에 이어 크루마가 합류했음을 알아챘음에도 그 사실을 숨겼어.]
디아블로가 보였던 의문스러운 행동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디아블로가 무슨 의도로 나를 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으음…….”
이어지는 니알라의 말에 처용이 침음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네놈 역시 불완전하다! 크타니드!
중국에서 나타난 디아블로가 사라지기 직전 내뱉었던 말이었다.
마치, 판데모니움을 정복한 악의 종주에게 크나큰 불만을 가진 듯한 모습.
‘……설마?’
처용의 머릿속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처용이 떠올린 가능성은 디아블로의 배신.
그러나 회귀 전, 디아블로는 악의 종주가 벌이는 전쟁의 선봉으로 서서 싸우던 존재였다.
그런 그가 무슨 변심이 생겼다고 배신을 생각할까?
솔직히 말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처용이 디아블로의 알 수 없는 의도를 생각하며 고민할 때.
[당장은, 디아블로를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을 거야.]
니알라가 입을 열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놈이 무슨 짓을 하던, 뭘 조치할 방법은 없어. 그리고…… 당장 더 중요한 일이 있잖아?]
“……놈들의 계획.”
니알라의 말에 처용이 디아블로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며 말했다.
당장 중요한 본론은 디아블로의 알 수 없는 의도와 행동이 아니었다.
판데모니움의 악마들과 순혈자들이 무슨 짓을 벌이는지가 더 중요했다.
“순혈자들과 삼천마들만이 계획한 게 무엇일까…….”
[순혈 의회 안에서 계획된 일이라면, 말할 수 없는 게 맞다.]
생각을 거듭하며 읊조리는 처용의 말에 미륵이 순혈 의회의 규칙을 언급하며 말했고.
[태양신 역시 이 소식을 전하고 싶어도 함부로 전하기 힘든 상황이었을 겁니다.]
여래가 라의 상황을 짐작하며 말을 이었다.
헬리오폴리스의 주신, 태양신 라는 순혈 의장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처용에게 협력하기로 약속했었다.
최근 순혈 의회에서 판데모니움의 대악마들과 수상한 계획이 오갔다면 분명 그녀가 전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그런 태양신을 탓하려는 이는 없었다.
“함부로 움직이기는 힘들 겁니다. 자칫 잘못 걸리는 순간, 죽으니까.”
처용 역시 라의 상황이 이해가 된다는 듯 말했다.
협력을 약속한 라는 지금 ‘이중 스파이’라는 아주 위험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게다가 헬리오폴리스 내에서도 숨어 있는 순혈자들이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처용과 여래에게 소식을 전하려 했다간, 덜미를 잡힐 수 있었다.
다만.
[제가 태양신을 한 번 더 찾아가죠. 요즘 가는 게 뜸했으니, 한 번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라와 안전하게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보살이 태양신을 한 번 더 찾아가겠다고 말하자.
“조심하십시오. 놈들이 이번 일로 계획을 앞당길 수도 있습니다.”
처용은 그런 보살을 향해 작은 우려를 드러내며 답했다.
아직도, 태양신을 돕는 보살을 볼 때마다 불안한 마음이 일렁였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계승자. 이래 봬도 저 역시 대신급 신격입니다.]
그런 처용의 마음을 이해한 보살이 안심하라는 듯, 잔잔한 목소리로 답했다.
[중요한 건, 놈들이 노리는 성운이 어느 곳이냐가 문제인데…….]
미륵이 본론을 이야기하며 진지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니알라가 말해준, 순혈자들과 판데모니움의 악마들이 세운 계획.
자세한 계획 일정은 알 수 없지만, 두 성운을 노린다는 것은 알아냈다.
그렇다면 그 두 성운은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혹은.
[놈들이 노릴만한 성운이 어디일까……?]
공격하여 피해를 입히면, 순혈자들과 판데모니움에 있어서 가장 이득이 되는 성운이 어디인가?
이 두 성운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미륵이 생각에 잠시며 읊조리듯 말하자.
“……헬리오폴리스.”
잠시 생각한 처용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적어도 한 군데는 헬리오폴리스가 확실합니다.”
[흠, 헬리오폴리스라?]
이어지는 처용의 확신 어린 말에, 미륵이 침음을 흘리며 읊조렸다.
카투라와 여래 등 다른 이들 역시 침음을 흘리며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놈들이 노릴 만한 이유가 여럿 있습니다.”
그런 이들의 반응을 본 처용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가장 먼저…… 라가 마지막 태양신이기 때문입니다.”
헬리오폴리스의 주신, 태양신 라는 마지막 남은, 태양의 신명을 짊어진 신격이었다.
그런 그녀가 잘못되거나, 소멸하는 일이 발생해 버린다면.
“태양을 꺼뜨려 전 우주를 암전시키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겠죠.”
우주의 태양이 꺼진다.
태양을 짊어진 성좌들이 모두 소멸하거나, 악신이 되어 버리는 순간 발생하는 사태였다.
모든 우주에 빛이 사라지고 한 달에서 두세 달 동안 암흑이 도래한다.
회귀 전, 모든 태양신들이 소멸하고 악의 종주에게 굴복했을 때, 일어났었던 상황.
태양이 꺼지자, 전 우주에 발생한 피해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악신들이 헬리오폴리스, 라를 노리는 이유는 우주의 태양을 꺼뜨리기 위해.
이것이 처용이 헬리오폴리스를 딱 집어 말한 첫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
“옥황상제가 순혈 의장의 자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헬리오폴리스를 노골적으로 노릴 만한 순혈자.
라의 자리인 순혈 의장의 자격을 노리는 옥황상제 때문이었다.
[그렇군. 그놈이라면 이번 기회에…….]
미륵이 이어지는 처용의 말을 듣고 이해가 되었다는 듯, 읊조렸다.
현재 순혈 의장은 라.
그러나 그 의장의 자리는 곧 옥황상제가 차지한다.
이는 처용이 겪은 회귀 전 미래의 정보였다.
이번 두 성운의 몰락을 계획한 순혈자 중 하나는 바로 옥황상제.
그라면, 이번 기회에 라를 치워 버리고 순혈 의장직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았다.
[라를 소멸시키고 우주의 태양을 꺼뜨린다. 그리고 타이밍이 좋다면…….]
“아마도 보살님이 헬리오폴리스에 있을 때를 노릴 가능성이 높죠.”
이어지는 미륵의 말에 처용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앞서 두 목적을 달성함과 동시에, 보살을 잡을 기회를 노린다.
이것이 세 번째 이유였다.
“최악이라고 할 법한 상황만큼은 막아야 합니다.”
경각심 어린 처용의 말이 이어졌다.
헬리오폴리스 전체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태양신만큼은 살려야 했다.
동시에, 자비의 대신 또한 위험에 처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최악이라고 할 법한 이 두 가지 상황만큼은 막아야 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계승자.]
처용의 말이 끝나자, 이야기를 듣던 황룡이 처용의 말에 답하듯 말했다.
[내 존재가 태양의 신명을 대체하는 것으로, 태양이 사라지는 사태만큼은 막을 수 있다.]
황룡은 자신의 존재가 태양의 신명을 대체할 수 있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만일의 경우에는 내가 잠시 태양을 짊어지면 돼. 그러니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아.]
크루마가 걱정하지 말라며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실패한 태양, 프로토타입 드래곤.
이 두 가지는 그를 상징하는 특징이었다.
크루마는 태초의 우주가 만들어질 때, 태양을 짊어졌던 태초의 신수였다.
즉, 태양의 신격을 짊어진 성좌들이 모두 소멸하면, 황룡과 크루마가 태양을 대체할 수 있었다.
“그렇군요. 그 부분은 다행입니다.”
처용이 안도를 드러내며 말했다.
회귀 전에는 크루마도, 황룡도 없었다.
때문에, 태양의 신명을 짊어진 성좌들이 모두 소멸할 때, 대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최악의 상태가 일어나도 대처가 가능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다 해도, 이대로 구경만 할 수는 없습니다.”
처용은 태양신과 헬리오폴리스가 위험에 처하면, 그들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제자야. 놈들의 계획대로 놀아날 수는 없다.]
여래 역시 처용과 같은 의견을 펼쳤다.
“우선, 어떤 성운이 노려지는지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악신들의 계획에 대한 대처를 생각하며 말을 이을 때.
-쿠구구……!
지면이 옅게 떨리며 진동을 퍼트렸다.
그 진동이 울린 순간.
“……!”
[……!]
[……!]
처용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눈이 커졌다.
방금 울린 진동은 그저 지면이 울린 정도가 아니었다.
바로 ‘세계 전체’가 울린 것이었다.
[……차원의 벽이 크게 손상되었다. 다만…… 그곳이 지구는 아니구나.]
황룡이 눈을 지그시 감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느끼는 듯한 모습으로 읊조리며 말했다.
그 말에.
“에스라 대륙…… 설마 또 강제로 대격변을?”
처용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고는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황룡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네 추측이 맞는 것 같구나. 계승자.]
황룡이 처용의 추측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성운에 대한 대비와 조사는 우리에게 맡기거라.]
여래가 처용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할 일을 하거라. 제자야.]
[너는 혼자가 아니니라.]
이어지는 여래의 말에 미륵 역시 처용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신계에 일어날 만한 문제는 신들에게 맡겨 달라는 것.
그런 성좌들의 믿음직한 목소리에.
“알겠습니다.”
-파지직!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답하고는 서둘러 에스라 대륙으로 향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