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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544화 (544/726)

#544화

악의 종주가 내뻗은 파멸의 손길이 황금빛 균열에 닿았고.

-콰콰! 콰콰콰-!

거대한 소음이 울려 퍼지며 지면이 크게 흔들렸다.

강렬한 에너지가 충돌한 영향인지, 깨져 나간 신력의 파편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퍼져 나갔다.

크게 확 일어난 먼지가 빠르게 착 가라앉은 순간.

-화아아! 파앗!

태룡사와 판데모니움이 서로 연결된 황금빛 균열에서 금빛에 휩싸인 무언가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스르르륵.

이윽고. 황금빛에 휩싸인 형체가 점점 벗겨졌고.

[드디어!]

-탓.

알레인이 환호 어린 미소를 지으며 나타나 지면에 내려앉았다.

[그리도 거슬렸던 시스템의 기운이, 정말 눈물 나도록 반갑게 느껴지는군.]

-탓!

알레인의 뒤에 이어 낡은 로브를 뒤집어쓴 제우스 역시 안도 어린 목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신들이 지상에서 함부로 활개 치지 못하도록 제약을 거는 시스템의 기운.

제우스는 자신을 감싸는 시스템의 기운을 느끼며 반가움을 드러냈다.

“후, 성공인가?”

처용은 황금빛 균열 앞에 나타난 알레인을 보며 안도를 표했다.

그때.

-쾅! 콰콰쾅! 쿠구!

알레인이 튀어나온 균열 속에서 강렬한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처용이 균열을 바라보자.

-까가가-! 까각!

길게 삐죽 솟아난 날카로운 이빨들이 균열에 달라붙어 벽을 긁고 있었다.

판데모니움과 연결된 균열에 달라붙어 벽을 긁는 존재.

-우우웅!

그 주변에 흐르는, 보기만 해도 불길함이 확 느껴지는 검고 칙칙한 오오라.

“……미안하지만, 이 문은 ‘초대장’이 없으면 들어올 수 없다.”

처용이 판데모니움과 연결된 균열 너머로 보이는 존재, 악의 종주를 보며 읊조리듯 말했다.

본격적으로 태룡사와 판데모니움을 연결하는 문이 열리기 전, 알레인에게 은밀하게 전달된 물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검붉은 색의 편지.

그것은 단순히 알레인에게 계획이 준비되었다고 소식을 전하는 것만이 역할의 전부가 아니었다.

바로 판데모니움과 태룡사를 잇는 통로를 드나들 수 있는 초대장이기도 했다.

즉, 초대장이 없는 자, 처용에게 허락을 받지 못한 자는 통로를 드나들 수 없었다.

[……과연, 그렇군.]

-쿠구구!

균열 너머, 통로를 갉아내던 이빨들이 움직임을 멈추고는 낮은 목소리를 흘렸다.

동시에.

-후우우욱!

날카로운 이빨들이 모조리 사라지며 균열 전체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스르륵.

어둠 속에서 검붉은 빛과 검푸른 빛으로 일렁이는 어두운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고.

-쩌저저적! 지잉!

그 어두운 육체 곳곳이 칼에 베인 듯, 여러 갈래로 찢어지며, 그 틈 사이로 붉은 눈동자들이 드러났다.

형용할 수 없는 기괴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내자.

-으…….

-저게 무슨.

멀리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질색하며 침음을 흘렸다.

그들이 질색하는 이유는 악의 종주가 보인 기괴한 형체도 이유가 있었지만.

-사아아……!

균열 너머로 넘실넘실 흘러오는 불길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그 기운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전의를 꺾게 만드는 기운.

심지어,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모두 평범한 이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길…….”

“똑바로 보기가 힘들군.”

[모두, 섣불리 행동하지 마라.]

헌터, 성좌 할 것 없이 모두가 긴장감을 드러냈다.

사람들이 긴장감을 드러내며 악의 종주를 경계할 때.

[야드의 안배로 만들어진 차기 태초신의 성지인가?]

균열 속, 악의 종주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스륵. 파지지지직!

악의 종주가 태룡사로 넘어오려는 듯,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가 뻗은 손은 손가락 한 마디 정도를 빠져나오고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내가 말했지? 초대장이 없는 네놈은 이곳에 넘어올 수 없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입가에 흐른 피를 털어내고는 미소를 담아 말했다.

“크흐흐, 네가 졌다. 조크 – 크타니드.”

비웃음을 머금은 처용의 도발 어린 목소리가 이어지자.

[……훌륭하구나.]

-파지직! 스륵.

악의 종주가 뻗었던 손을 뒤로 조금 빼내며 목소리를 내었다.

처용의 도발에 분노하는 등의 감정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확실히, 전대 계승자들보다도 네가 더 뛰어나구나.]

-쩌저적.

검은 육체를 길게 찢으며 나타난 눈동자들이 가늘게 휘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즐거운 듯, 흥미로운 듯한 감정이 일렁이는 모습.

악의 종주가 미소를 보이자, 되려 그를 도발한 처용이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처용의 모습을 본 악의 종주가 조금 더 짙은 미소를 보이고는.

[허나, 그렇다 하여 달라지는 것은 없다.]

-쿵! 쿠궁! 파지지직!

양손을 균열로 뻗으며 짙은 파멸의 힘을 내뿜었다.

-파직! 파직! 쩌저저적!

파멸의 힘이 균열로 집중되자, 놀랍게도 균열이 조금씩 찢어지기 시작했다.

악의 종주는 제힘으로 균열을 찢어 이곳으로 넘어올 생각인 듯 보였다.

“이런, 미친놈이-!”

-스르릉!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인상을 거칠게 일그러뜨리고는 역천의 절을 뽑아 들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은 있었다.

눈앞에서 제 먹이를 놓친 악의 종주가 강제로 균열을 찢어 넘어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럴 리는 없다고 판단하긴 했었지만.

[이 기회에, 끝장을 보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군.]

-파지지직! 파직! 쩌적!

악의 종주는 그런 처용의 예상을 부숴 버리듯, 강제로 균열을 찢어 넘어오려 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돌발상황에, 이 자리에 모인 헌터들, 신격들이 모두 긴장하며 전투를 준비했다.

[제길! 다른 성운에 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

헤르메스가 케리케이온을 움켜쥐며 소리치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그는 전령의 신, 신물인 케리케이온의 힘과 권능을 이용하며 다른 성운에 급하게 전갈을 보낼 수 있었다.

케리케이온 위로 환한 빛이 떠오르며 권능이 발동되려는 순간.

[허락할 수 없다.]

-화아아아!

천장에 황금빛이 신력이 퍼지며 황금빛 구름 들이 생겨났다.

동시에.

-쿠구구구!

구름 너머로 황룡이 머리를 내밀며 나타났다.

-지이잉.

황룡의 눈동자가 금빛으로 빛나며 은은한 빛의 파동을 퍼트렸고 그 파동이 균열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스르르륵. 파앙!

균열을 찢고 넘어오려는 악의 종주가 황금빛 기운에 밀려났고.

-쩌저적! 스륵.

그가 찢어 낸 균열의 틈을 빠르게 수복하기 시작했다.

[……야드?]

악의 종주가 균열 너머로 보이는 황룡을 바라보며 의문을 드러냈다.

[나는 야드가 아니네, 오히려 그대가 야드에 더 가깝겠지.]

황룡은 자신에게 의문을 드러내는 악의 종주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 말에 악의 종주의 육체 곳곳에 드러난 눈들이 가늘어졌다.

뚫어질 듯, 황룡을 응시하는 붉은 눈동자들에 이어 황룡 역시 악의 종주를 마주 응시했다.

마치,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며 정체를 파악하는 듯한 모습.

이윽고.

[……인정하지. 이번엔 네가 이겼구나.]

-스르륵.

균열 속에서 안광을 내뿜는 붉은 눈동자들이 일제히 처용을 응시하며 목소리를 내었다.

동시에, 더는 균열을 찢어내고 나오려 하지 않으려는 듯,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 지랄을 해 놓고 순순히 물러난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속으로 의문을 드러냈다.

당장이라도 끝장을 보려는 듯했던 악의 종주가 순순히 물러났으니까.

처용이 의문 어린 표정이 드러나는 것을 숨기며, 낮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악의 종주를 응시했다.

[곧 네놈과 직접 마주할 날을 기다리겠다. 계승자.]

악의 종주는 적대감 어린 처용의 눈빛에 미소로 답하는 듯, 눈동자를 휘어 보이며 답했다.

알 수 없는 의미가 담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치이이-! 파아아!

판데모니움과 연결된 균열이 점점 좁아지며 이내 완전히 닫혔다.

균열이 사라지고 악의 종주가 내뿜던 파멸의 기운마저 완전히 사라지자.

“……후!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처용이 안도감 어린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작전 종료를 선언했다.

-으어……!

-저 기운은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군.

-긴장감이 쫙 풀리네.

그 말에, 다른 사람들 역시 안도를 내비치듯 입을 열었다.

성좌들조차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존재.

악의 종주를 마주하고 그 기운에 압도되었던 영향이었다.

[고생 많았다. 제자야. 괜찮으냐?]

여래가 옆에 있던 처용을 보며 입을 열자.

“괜찮습니다. 무리한 것 빼고는 크게 다치지 않았으니까요.”

처용이 눈을 감고 깊게 심호흡하며 답했다.

여래의 말대로 무리를 하긴 했지만, 크게 다치지 않았고 잠깐 쉬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었다.

세계수에게서 계승 받은 재생력, 크루마의 백염 등, 재생력을 높여주는 힘들 덕분이었다.

처용은 육체의 재생력을 끌어 올리며 심호흡을 하고는.

“스승님은…… 괜찮으신 겁니까?”

여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확히는 조금씩 떨리고 있는 여래의 오른손을 응시했다.

그나마도 심하게 떨려 오는 손을 여래가 진정시키며 바로잡으려는 모습으로 보였다.

[좀 쉬면 괜찮을 거다.]

여래는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처용의 말에 답했다.

[이젠, 내 신명이 아닌 힘을 사용한 대가로, 부작용이 있었을 뿐이다.]

[태초신과의 계약을 깬 건 아니고…… 미리 저장하여 보관해두었던 힘이었나?]

이어지는 여래의 말에 미륵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치, 여래가 어떻게 역천의 힘을 사용했는지 대충 눈치챘다는 듯한 모습.

그런 미륵의 물음에.

[역천의 신명을 봉인하기 전에, 따로 저장해 두었던 힘입니다.]

여래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미륵은 여래를 향해 할 말이 많다는 듯, 입을 몇 번 들썩이고는.

[……하아, 그것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급적이면 사용하지 말게나.]

진지한 목소리로 여래를 향해 조언하듯 말했다.

여래는 태초신과의 조약을 어기고 역천의 힘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초신과의 조약은 깰 수 없다.

여래는 태초신에게 받은 대가가 있었으니까.

신법이라는 신명과 수련탑에 있는 금강역사들이 그 증거였다.

여래 스스로 태초신에게 받은 대가를 버리지 않는 한, 조약은 절대로 깨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괜찮은 꼼수로 보이지만, 완벽하게 안전하다고는 볼 수 없네.]

미륵은 여래가 저장해 둔 역천의 힘을 사용하는 것을 우려했다.

[자칫 잘못하면, 자네도 다치고 자네가 기껏 구한 영혼들도 잘못될 수 있어.]

이번엔, 여래가 제 신명에 맞지 않는 힘을 사용한 대가로 부작용을 겪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이후에는 혹시 몰랐다.

자칫 잘못하면 여래가 겨우 구해낸 영혼들이 모두 사라질 가능성도 있었다.

“저 역시…… 지금은 미륵님과 같은 생각이긴 합니다. 스승님.”

방금 미륵과 여래의 대화로 상황을 파악한 처용이 입을 열었다.

그 역시 미륵처럼 혹시 모를 최악의 사태를 생각하며 우려를 드러냈다.

그리고.

“제 멸천의 신명이 완벽해지는 대로, 망할 태초신이 스승님에게 건 ‘불공정한 계약’부터 부숴 버릴 겁니다.”

처용은 태초신과 여래가 맺은 조약을 ‘불공정한 계약’이라 비판하며 이를 추후 부수겠다고 말을 이었다.

태초신은 여래의 신명, 역천을 봉인하기를 원했다.

여래는 그 대가로 신들에게 무참히 학살당한 이들의 구원을 원했다.

하지만, 태초신은 여래에게 신법이라는 무거운 신명을 짊어지게 만들고 역천까지 봉인시킨 것이 비해.

여래의 소원을 제대로 이뤄주지 않았다.

수련탑에 있는 금강역사들은 금오도에서 희생된 이들 중 일부에 불과했으니까.

처용이 볼 때, 태초신은 인과율을 이용해 여래에게 사기를 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태초신 만든 인과율의 족쇄를 부수고 조작할 수 있게 되면, 스승님의 신명을 되찾을 수 있겠지요.”

처용은 추후 멸천의 힘이 완벽해지는 대로, 여래에게 걸린 제약을 부숴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태초신의 일 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스승님의 역천은, 크타니드의 파멸을 상대로 거의 대등한 힘 싸움을 벌였다.’

여래의 역천이 악의 종주가 내뿜는 파멸의 신력과 힘 싸움을 벌인 광경을 봤기 때문이었다.

과거 신법재판소에서의 모습과 신계에 퍼진 악명으로 여래의 역천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힘이 크타니드의 ‘파멸’을 저지할 정도이다?

그렇다면.

‘크타니드와의 싸움에 있어 필요하다.’

추후 있을 크타니드와의 전투에서 엄청난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

처용이 여래의 역천에 대해 이야기하며 생각할 때.

[후우, 정말로 내가 살아남았구나, 모두 네 덕분이야.]

알레인, 아니 니알라가 안도 어린 한숨을 내쉬며 처용에게 감사를 전했다.

“무사히 탈출해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처용은 그런 알레인의 말에 역천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고 작은 미소를 띠며 답했다.

그리고 눈동자를 돌려 알레인의 뒤를 응시하고는.

“올림포스 전 주신도 함께 있었을 줄은 몰랐습니다만?”

마치, 몰래 도망치려는 듯,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는 누더기 로브의 남자, 제우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처용의 목소리가 울린 순간.

[어딜 가십니까?]

-탓.

아테나가 낮고 시린 목소리를 내며 제우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런 아테나의 옆에는 복잡한 표정을 짓는 헤르메스와 티케가 함께 서 있었다.

[왜…… 왜 판데모니움에서 나오십니까?]

복잡한 감정이 일렁이는 아테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제우스를 꿰뚫어버릴 듯한 아테나의 눈빛 속에는 해명을 요구하는 듯 보였다.

아테나의 질문이 울리자.

[그…… 오랜만이구나?]

제우스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치, 이곳에서 아테나를 마주할 줄은 전혀 몰랐다는 듯한 모습.

이 불편한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제우스의 태도를 본 아테나의 표정이 차갑게 바뀌고는.

[……왜?]

복잡한 감정과 심정을 담아 다시 한번 짧게 물었다.

왜 성운을 버리고 사라졌는가?

왜 자신을 다짜고짜 주신의 자리에 앉혔는가?

흔적조차 찾지 못했던 그가 왜 판데모니움에서 나오는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등.

아테나의 입에서 흘러나온 짧은 한마디 물음에는 온갖 의미가 다 담겨 있었다.

중요한 건, 지금 아테나의 심정은 사라진 부친을 다시 마주했다는 반가움보다는.

의문과 분노 등, 차가운 감정이 들끓고 있다는 것이었다.

잔잔한 분노가 섞인 아테나의 질문이 울리자.

[……가이아 님의 예언 때문이었다.]

-스르륵.

제우스가 복잡한 감정이 일렁이는 한숨을 내쉬고는 손에 쥔 태초의 조각을 들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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