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8화
47년이라는 정확한 숫자가 언급되었을 때는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47년이라는 명확한 숫자에서 ‘수십 년’으로 메시지가 바뀌었다.
그 ‘수십 년’이라는 메시지를 보며 딱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처용에게 있어 ‘수십 년’이라는 말은, 딱 한 가지 경우밖에 없었으니까.
‘이 녀석은 내가 종말을 겪고 과거로 되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태초룡, 유리아는 처용이 ‘시간을 되돌아온 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용은 흔들리는 눈빛을 바로잡으며 침착함을 되찾고는.
“종말이 도래한 미래를…… 알고 있는 건가?”
유리아를 바라보며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끄덕.
처용의 질문에 유리아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알고 있다는 뜻.
“하…….”
유리아의 대답을 들은 처용이 이마를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로 인해 태어났으니, 내 기억을 받기라도 한 건가?’
작금의 상황을 예측하며,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왜 47년이냐?”
문득 떠오른 의문으로 인해, 감았던 눈을 뜨며 유리아에게 물었다.
수십 년이라는 말에는 회귀 전 일들을 곧장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47년이라는 명확한 숫자에는 떠오르는 바가 없었다.
회귀 전에는 처용이 각성한 후, 대략 10년이 흘렀을 때, 지구가 멸망했다.
그 후, 20여 년이 더 흘렀을 때 온 우주가 멸망했고 저항군의 마지막 생존자인 처용이 사망했다.
그리고 시간이 돌아온 지금은 대략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지구 멸망과 우주 멸망, 지금의 시간을 합치면 대략 30년이 훌쩍 넘는 세월.
그러나 유리아가 말한 47년에 맞추기에는 10년 정도의 시간이 부족했다.
이 10년의 오차가 무엇인지…… 도저히 떠오르는 바가 없었다.
“47년 전에 나를 처음 봤다고? 도대체 그게 언제야?”
생각을 거듭한 처용이 답답함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유리아에게 물었다.
도저히 47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 상황.
이럴 때는 그 답을 알고 있는 유리아에게 묻는 것이 빨랐다.
아니나 다를까.
“삑. 삑.”
유리아가 짧은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울음소리를 내었고.
[유리아는 ‘계승자가 처음 각성했을 때’라고 대답합니다.]
시스템 창을 띄우며 처용의 말에 대답했다.
“……내가 각성하여 시스템과 연결되었을 때?”
유리아의 답을 확인한 처용이 의문을 읊조렸다.
조금 전, 스스로가 각성했을 때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처용이 계산한 시간상, 10년이라는 큰 시간의 오차가 있었다.
그런데, 유리아는 처용이 처음 각성했을 때가 47년 전이라고 답한 상황.
처용이 생각과 의문을 이을 때.
“삑. 삐익.”
[유리아는 그때부터 항상 곁에서 계승자를 지켜봤었다고 대답합니다.]
유리아가 처용의 읊조림에 대답하듯 말을 이었다.
“네가…… 시스템이야?”
잠시 생각한 처용이 유리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저 궁금증을 담아 떠보는 듯한 질문이었다.
그런 처용의 질문에.
“삑!”
[유리아는 스스로가 시스템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유리아가 높은 톤의 목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삑삑!”
[유리아는 ‘유리아’라고 대답합니다.]
무언가 불만이 일렁이는 듯한 목소리와 반응.
그런 유리아의 반응을 본 처용은.
“아니면, 시스템에 기록된 내 정보를 네가 보고 있었다던가…… 뭐 그런 건가?”
조금 전에 했었던 질문을 조금 바꾸어 다시 질문했다.
“삐이익.”
[유리아가 비슷하다고 대답합니다.]
유리아가 고개를 기울이며 읊조리는 듯한 울음소리로 답했다.
“도대체, 뭐가 뭔지…….”
처용은 그런 유리아의 반응을 보며 아직 잘 모르겠다는 듯, 의문을 담아 읊조렸다.
황룡은 유리아가 계승자에 의해 태어난 존재라고 말했었다.
또 태초신의 자리가 오랜 시간 공석이 되어 우주가 태어나도록 종용했다고도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시스템을 조작하는 능력을 발휘하여 처용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태초신, 시스템, 계승자, 우주의 법칙 등등…….
유리아와 연관된 것들은 하나하나가 단순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나와 연결된 시스템에서 태어난 자아…… 같은 건가?”
생각을 거듭하던 처용이 고개를 기울이며 읊조리자.
“삑삑.”
[유리아가 거의 비슷하다고 대답합니다.]
유리아가 전보다도 고개를 더 크게 끄덕이며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잠시 생각에 잠기며 침묵했다.
이윽고 생각을 빠르게 정리하고는.
“멸망한 시간대에서 흐른 시간과 지금 시간대에서 흐른 시간을 합쳐도 3~40년 정도다.”
침착한 목소리로 유리아에게 질문했다.
조금 전, 들었었던 의문에 대한 질문이었다.
“47년이라기에는 조금 부족해, 오차가 있는 시간은 도대체 뭐지?”
바로 회귀 전과 지금의 시간대를 모두 합쳐도 47년은 되지 않는다는 것.
처용이 의문을 담아 묻자.
“삐익…….”
[유리아는 계승자의 질문에…….]
유리아가 말꼬리를 흐리는 듯한, 길고 작은 울음소리를 내었다.
마치, 작은 구슬픔이 담겨 있는 듯한 목소리.
잠시 말꼬리를 흐리며 말을 끊었던 유리아는.
“삑.”
[계승자가 ‘시간의 중심축’이 되어 고통받았던 시간이라고 답합니다.]
이내 처용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건넸다.
“……!”
유리아의 대답에 처용의 눈이 커졌다.
동시에, 어째서 비어 버린 시간이 존재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회귀 전, 마지막 생존자인 처용이 사망하고 온 우주에 멸망이 도래했다.
그리고 처용이 이동한 장소는 자기 자신조차도 인지할 수 없는 어둠 속.
마치, 모든 별이 사라진 우주 공간과 같은 곳이었다.
-아직 한 줄기 희망이 남아있다.
그 공간에서 여래의 목소리가 들렸고.
-미안하구나.
미안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영겁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자신이 죽는 모습부터 시작해, 시간이 되돌아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지도 알 수 없는 고통이 끝났을 무렵.
새로운 시간과 미래가 시작되었다.
“그 시간이…… 그렇게 길었었구나.”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 속.
그 안에서 고통을 받음과 동시에 시간이 되돌아가는 광경을 목격한 기억을 떠올린 처용은.
“왜 47년인지 이제야 이해가 되네.”
어째서 유리아가 47년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처용의 각성을 기점으로, 회귀 전과 지금의 시간대를 모두 합치면 대략 37년 정도.
그렇다면 나머지 10년은?
그것은 다름 아닌, 처용을 중심으로 우주의 시간이 되돌아갔던 시간이었다.
처용이 이해했다는 듯, 읊조리자.
“삐이…….”
[유리아는 그 오랜 과정을 지켜봐 왔었다고 말합니다.]
[도와주고 싶었지만, 도울 수 없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유리아가 슬픈 목소리로 작게 울며 메시지를 전했다.
“……그래?”
처용이 구슬픈 목소리를 내는 유리아를 보며 잠시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 유리아가 하는 말은 ‘진심’이었다.
신수의 계약으로 인해 유리아의 진심이 전해지고 있었으니까.
다만, 유리아의 대답으로 인해 모든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 복잡한 심정과 의문이 이어졌다.
처용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 속에 잠겨 생각을 거듭하다가.
“……멸망한 이전 시간대에서-.”
낮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유리아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여래가 말한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아무것도 없는 멸망한 공간에서 여래가 어떻게 처용에게 말을 전한 것인가?
회귀 전 여래는…… 무슨 수로 시간을 돌린 것인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처용은, 한 가지 가능성이 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스승님에게 ‘협력한 자’가 누구냐?”
처용이 낮게 가라앉은 눈빛을 띠며 유리아에게 물었다.
여래가 혼자서 시간의 축을 되돌렸다?
그것은 절대 불가능했다.
시간이 과거로 되돌아가고 다시 마주한 여래 역시 불가능하다고 답했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대신급 성좌조차도 불가능하다 말했다.
그리고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태초신조차도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시간을 되돌릴 만한 능력을 지닌 존재는 누구인가?”
태초신보다도 더 강력한,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
여래는 그러한 존재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가설이 유력했다.
동시에, 처용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몇몇 기억들이 있었다.
바로, 엘리스 덕분에 제약이 풀린 미륵이 전해주었었던 말들이었다.
우주의 무한한 순환과 재탄생.
동시에 그와 관련된 존재들.
“프로토, 아니면 순환의 포식자인가?”
처용이 미륵이 했었던 말들을 떠올리며 유리아에게 묻자.
“삐, 삐이…….”
[유리아는…… 대답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유리아가 곤란한 듯한 침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모른다가 아닌, 대답할 수 없다라는 답변을 내놓은 것.
[유리아가 미안하다고 전합니다.]
동시에, 대답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감정을 전했다.
그럼에도 유리아는.
“삐이…… 삐, 삐삑!”
[유리아가 계승자의 질문에…….]
[유리아가 다른 방법을…….]
[대답을 우회할 방안을…….]
어떻게든 처용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애쓰듯, 반복적인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됐다. 그거면 충분하다.”
끙끙거리는 유리아의 행동을 만류하듯 말했다.
왜냐하면.
-파직. 파직.
지금 침음을 흘리는 유리아의 겉으로 옅은 전류가 피어나는 것이 보였으니까.
아마도, 처용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다소 무리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방금 유리아의 행동으로 인해, 어느 정도 짐작한 바가 있었으니까.
“하아……!”
처용이 길고 굵은 한숨을 내쉬며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몇 분 침묵의 시간을 가지며 생각을 정리한 처용은.
“너는…… 나의 편인가?”
유리아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을 이야기했다.
눈앞의 작고 신비한 생명체가 자신에게 호의적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신수의 계약을 통해 감정과 진실함이 전해져 오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확실하게 확인하고자 명확하게 질문을 던졌다.
다소 차갑게 일렁이는 처용의 목소리가 울렸음에도.
“삑삑!”
-툭. 툭.
[유리아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계승자의 편이라 대답합니다.]
유리아가 짧고 아담한 팔로 가슴을 두 번 두드리며 강하게 울었다.
강한 믿음이 일렁이는 울음소리와 시스템 메시지, 그 감정이 신수의 격으로 전해져 오자.
“하…… 나한테서 태어난 녀석을 의심해서 뭐 하자는 거냐?”
처용이 실소를 지으며 읊조렸다.
마치, 자신 스스로를 책망하는 듯, 따지는 듯한 말투.
다소 복잡한 과정이 있었지만, 유리아는 처용과 루나의 자식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처용을 위한 호의를 서슴없이 보여줬다.
“계약을 맺은 신수를 의심하다니, 나도 멍청하군.”
“삐익.”
스스로를 책망하는 듯한 처용의 말에 유리아가 밝은 울음소리를 내었다.
처용의 읊조림에 괜찮다고 대답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삐이~임.”
유리아가 살짝 비틀거리며 길게 하품을 섞어 울음소리를 내었다.
마치, 잠이 쏟아져 졸린 듯한 모습.
그런 유리아의 행동과 울음에 이어.
[유리아가 이제 졸리니 자야 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계승자와 오래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천찰의 대신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처용의 앞에 유리아의 메시지가 연달아 울렸다.
다급하게 연달아 보낸 듯한 메시지를 본 처용은.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 또한, 네 힘을 사용해야 하는 건가?”
유리아가 왜 피곤해하는지 알아채며 물었다.
“삐익.”
그런 처용의 말이 맞다는 듯, 유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울었다.
‘능력에 대한 반동과 리스크를 가져갔다고 했었지.’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속으로 읊조리며 생각했다.
유리아는 시스템 메시지를 사용하여 처용과 대화했다.
아마도 제게 주어진 권능을 활용한 듯 보였다.
이렇게 처용의 질문에 모두 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황룡의 조치 덕분이었다.
유리아 역시 천찰의 대신 덕분이라고 말해주기도 했으니, 이는 사실이었다.
“그래, 내 말에 대답해 줘서 고맙다. 유리아.”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유리아에게 감사를 전했다.
“삑.”
유리아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처용을 향해 기분 좋은 미소와 울음소리를 내고는.
-스르륵.
몸이 점점 투명해지며 사라졌다.
‘스스로의 존재를 감추고 잠이 든 건가?’
처용이 사라진 유리아의 자리를 바라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시야에도 사라지고 감각으로도 유리아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완벽하게 사라진 듯했다.
하지만, 처용과 연결된 신수의 격으로 ‘존재한다’라는 감각이 느껴졌다.
아마도 잠들어 있는 동안,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보였다.
“나도 내 할 일들을 해야겠지.”
유리아가 잠든 것을 확인한 처용이 자리를 박차 일어서고는 보물전을 나가며 읊조렸다.
아직 모든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지만, 이 의문에만 매달릴 시간과 여유는 없었으니까.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