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5화
황룡의 말에 경악한 이는 처용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신격들 역시 경악 어린 눈빛을 드러냈다.
[새로운…… 태초신?]
[저 작은 것이?]
카투라와 크루마가 처용의 옆구리에 붙어 늘어져 있는 작은 용을 보며 읊조렸다.
[사라진 태초신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이 우주가 태어나도록 종용한 존재.]
황룡이 태초룡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 과정에서, 계승자와 엮여 더욱 복잡한 운명을 짊어지고 태어난 존재.]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처용이 황룡의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나는 내게 일부분 남아있는 태초신의 기억과 시선으로 저 아이를 관찰한 결과를 말했을 뿐이다.]
황룡은 그런 처용의 반응이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눈으로 보이는 태초룡이 어떤 존재인지는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태초룡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는 황룡조차 정확히 전부 알아낼 순 없었다.
다만, 중요한 건.
[저 아이에게 깃들어 있던 에테르가, 나를 다시 태어나게 만들어 주었다.]
태초룡이 소멸한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었다.
“소멸한 신은 태초신도 되살릴 수 없는 것으로 압니다.”
처용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태초신이라 해도 소멸한 존재를 다시 되살릴 순 없었다.
[불가능하다고 말했었지.]
여래 역시 처용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그가 신계에 피바람을 일으켰고 태초신이 중재에 나섰을 때.
-신들에게 희생당한 모든 이들을 되살려 준다면, 이 싸움을 멈추겠다.
태초신을 향해 적대적인 목소리로 여래가 요구한 말이었다.
그런 여래의 요구에.
-미안하구나.
태초신은 자신이라 해도 이미 소멸하거나 죽은 이는 온전히 되살리긴 어렵다 말했었다.
[태초신이라 해도, 소멸한 이를 되살릴 순 없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여래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자.
[나는 소멸한 천찰의 대신이 되살아난 게 아니다.]
황룡이 그런 여래와 처용의 말에 동의하며 말을 이었다.
[태초의 힘으로 천찰의 기억과 신명을 수계 받아 새로 태어난 존재이지.]
“아직 전부 이해하긴 어렵지만…… 알겠습니다.”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 다시 한번 이야기하는 황룡의 말에 처용이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답했다.
황룡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태어났는지는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
“다시 태어난 태초신이라니…….”
바로 태초룡이라는 존재에 대해서였다.
황룡에 말에 의하면, 태초룡은 새로 태어난 태초신.
“이 녀석이 차후 완전한 태초신이 되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즉, 추후에는 완전한 태초신이 되어 우주의 절대적인 존재로 거듭난다는 소리였다.
처용은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황룡에게 물었고.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겠지.]
황룡은 그 질문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처용은 황룡의 대답을 듣자마자 작게 인상을 찌푸리고는.
“제가 선택한 자가 태초신으로 임명되는 게 아닙니까?”
자신의 클래스, 계승자에 대해 생각하며 황룡에게 물었다.
계승자가 지목한 자가 차기 태초신으로 임명된다.
이것이 계승자가 지닌 권한이었다.
그런데, 계승자의 선택 없이 새로운 태초신이 태어난 상황.
처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계승자의 ‘선택’은 차기 태초신을 지목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황룡이 낮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계승자의 선택은 태초신의 지목이 전부가 아니다.
그 말에 처용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 없는 의문을 드러낸 순간.
-쿠구구!
세계 전체가 옅게 울리며 작게 진동했다.
[희미하게 남은 태초신의 권한이라도 이 이상은 천기누설(天機漏洩)이 되는가?]
황룡이 하늘 위로 고개를 들어 올리며 읊조리듯 말했다.
아니, 하늘을 넘어 그 위를 바라보는 듯한 모습.
하늘 위를 잠시 노려보던 황룡은 이내 눈을 감으며 고개를 다시 내리고는.
[관철의 시선을 받은 계승자의 눈에는 저 아이가 태초룡으로 보일 것이다.]
처용과 태초룡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보입니다.”
인상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한 처용은 황룡의 말에 그렇다고 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방금 ‘계승자의 선택’이 무슨 말인지를 묻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겠지…….’
아무래도 이 이상은 말할 수 없는 듯 보였다.
때문에, 들을 수 없는 대답에 집착하지 않고 넘어가기로 한 것이었다.
[이 아이를 지칭하는 정확한 명칭은…….]
황룡은 그런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처용의 태도에 미소를 짓고는 태초룡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우웅!
태초룡을 응시하는 황룡의 눈빛이 순간 금빛으로 일렁였고.
[바로 ‘창세룡(創世龍)’이다.]
황룡의 입이 열리며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를 이야기했다.
[창세(創世), 이것이 이 아이에게 부여된 운명이자, 신명이다.]
[세계를 구축하는 자…….]
미륵이 황룡의 말에 이마를 부여잡으며 읊조리듯 입을 열었다.
[정녕, 그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작은 것이 추후 태초신이 되겠군.]
[이제 갓 태어나 제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기에, 창세의 신명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지.]
황룡이 미륵의 말에 답하듯 말을 이었다.
[태초신의 자리가 오랜 시간 공석이 된 결과 이 아이가 나타난 것인가?]
“삐이…….”
이어지는 황룡의 목소리에 태초룡이 조금 정신을 차린 듯, 작은 목소리를 내었다.
마치, 주변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들으며 그 말에 반응하는 듯한 모습.
동시에, 아직 기운을 차리지 못한 듯, 옅고 짧은 숨을 내쉬며 지친 듯한 모습도 보이고 있었다.
그런 태초룡의 모습을 황룡이 지긋이 바라보고는.
[나라는 존재가 계승자에게 도움이 되기에, 무리를 하여 나를 태어나도록 만든 것인가?]
태초룡을 향해 질문하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끄덕.
황룡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태초룡의 고개가 작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본 황룡이 작게 웃음을 흘리고는.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그 무거운 짐을 나눠서 받드는 것 정도이겠군.]
-우우웅.
손에 든 태초의 심장, 여의주로 금빛의 파동을 퍼트리며 말했다.
그러자.
-우웅. 파아아……!
태초룡에게서 짙은 기운이 짧게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흩어지며 사라졌다.
“……무엇을 한 겁니까?”
처용이 한결 편해진 표정을 짓고 있는 태초룡을 바라보며 황룡에게 물었다.
황룡이 태초룡에게 좋지 않은 짓을 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무엇을 한 것인지는 몰랐기에 질문한 것이었다.
[그 아이를 짓누르는 무거운 업과 운명을, 내가 대신 짊어진 것이라네.]
처용의 질문에 황룡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말해주었다.
[이제 갓 태어난 어린아이가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가혹한 짐이니까.]
[……권능의 반동을 대신 짊어진 건가?]
상황을 관찰하던 미륵이 황룡의 말에 답하듯 물었다.
미륵의 눈에 보이던 광경은 황룡이 태초룡에게서 무언가를 가져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태초룡이 가진 힘이나 권능을 가져간 것은 아니었다.
황룡이 태초룡에게서 거둬 간 것은 다름 아닌.
[그렇다네, 그 작은 몸으로 창세의 힘을 견디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
아직 어린 태초룡이 제힘을 발휘한 결과로 인해 발생하는 반작용과 리스크였다.
‘태초신의 힘을 수계 받아 다시 태어난 천찰의 대신, 그렇다면……?’
작금의 상황을 지켜보며 생각한 처용이 황룡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황룡은 태초신의 힘을 수계 받아 다시 태어난 천찰의 대신.
그렇다면, 태초신의 권능을 쓸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 태초신의 힘으로-.”
생각을 마친 처용이 황룡을 바라보며 말했다.
태초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면, 악의 종주가 일으키는 종말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다네. 계승자여.]
황룡은 처용이 묻고자 하는 말을 다 듣지도 않고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처용이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지 바로 알아챘으니까.
[나는 태초신이 아니다. 그리고 계승자의 바람은, 태초신이 되살아난다 해도 이룰 수 없다.]
“……그렇군요.”
황룡의 말에 처용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었다.
계승자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들을 때, 스스로가 태초신의 자격이 있음에도 처용은 거부했었다.
스스로가 태초신의 의무를 제대로 수행할 자신이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태초신이 된다 해도 작금의 사태를 곧장 해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이유가 컸다.
황룡에게 물은 것은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물은 것이었었다.
[내가 태초신의 힘과 기억을 수계받았다 해도, 그 절대적인 권한을 모두 발휘할 순 없다.]
“당신은 태초신이 아니라고 했으니까요.”
처용이 황룡의 말에 작은 실망감을 담아 말했다.
그러자.
[대신, 태초신이 구축해 놓은 시스템의 방벽에 내가 힘을 더 보탤 수 있겠구나.]
황룡이 처용을 향해 작은 미소를 보이고는.
[시스템의 힘을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조금 조정하는 것. 그것이 당장 내가 계승자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구나.]
스스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이야기했다.
“시스템의 방벽을 견고하게 만든다는 건 이해했습니다.”
처용이 황룡의 말에 의문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시스템의 방벽에 힘을 보탤 수 있다는 황룡의 말.
즉, 다른 성운들이 시스템의 방벽을 관리하는 것처럼, 황룡 역시 그에 힘을 더해주겠다는 뜻이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시스템의 방벽이 더 단단해진다는 의미였다.
지금은 악신들이 수시로 시스템의 방벽을 긁어내며 무너뜨리고 있는 상황.
이런 상황 속에서 황룡이 시스템의 방벽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 줄 능력이 있다면, 이는 큰 도움이었다.
하지만.
“시스템의 힘을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조정한다고요?”
시스템을 조작하여 아군에게 유리하도록 조정한다.
이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스템의 조작.
인과율의 조작이라는 권능을 깨우친 처용도 상상은 해 보았었던 부분이었다.
당연히 역천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 한 번 시도해 봤었지만.
“시스템은 인과율의 권능으로도 조작이 불가능했습니다.”
처용은 시스템을 역천의 권능으로 조작하는 데 실패했다.
아니, 권능 자체가 통하지 않았다는 말이 정확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권능을 사용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 처용의 말에.
[시스템의 조작은 태초신이라 해도 불가능하다.]
황룡은 그 말이 맞다며 긍정하고는.
[나는 내게 작게나마 남은 태초신의 권한으로 작은 조정을 할 뿐이다.]
다시 한번, 시스템에 ‘작은 조정’을 할 것이라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흠, 이러한 방식으로…….]
-화아아.
황룡은 말이 아닌, 직접 보여주기로 하며 은은하게 신력을 내뿜었다.
-우웅! 우우웅!
여의주에서 환한 황금빛이 점멸하며 주변에 퍼진 황룡의 신력과 공명하듯 작은 떨림을 토했다.
그 순간.
[성지, 태룡사에 하늘의 가호가 내려집니다.]
처용의 눈앞에 시스템이 나타났다.
[태룡사에 거주 중인 헌터들의 모든 스테이터드가 영구적으로 10 증가합니다.]
[노말 등급의 방어 스킬 두 가지가 랜덤으로 주어집니다.]
[이후 성지에 방문하는 모든 헌터들에게도 적용됩니다.]
[단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축복입니다.]
“이건?”
처용이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창을 하나하나 관찰하며 읊조렸다.
이윽고 처용의 시선이 두 번째 문구, 방어 스킬이 주어졌다는 말에 닿자.
[패시브 스킬 ‘싱그러운 회복’이 생성됩니다.]
[패시브 스킬 ‘단단한 피부’가 생성됩니다.]
노말 등급의 방어 스킬 두 가지가 생성되었다는 문구가 나타났다.
물론, 지금의 처용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잡동사니 스킬에 불과했지만.
‘상시 적용되는 회복과 방어 스킬, 유용하군.’
처용은 이를 유용하다고 판단했다.
자기 자신에게 유용하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바로 다른 헌터들.
최상위 헌터들이 아닌, B급 이하의 헌터들에게 유용하다는 말이었다.
헌터들에게 있어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구간은 고레벨 구간이 아니었다.
백호나 진호 등의 최상위 헌터들은 어지간해선 죽지 않는다.
제 몸 하나 지킬 무력도 충분하고 경험도 풍부한 이들.
그들은 스스로를 무모하게 죽음으로 던지는 이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 경험이 부족한 신참 헌터들과 이제 막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중급 헌터들.
각성자가 되었다는 기대감과 빠르게 성장하고 싶다는 무모한 도전정신을 가진 이들.
그들이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헌터들에게는 지금 주어진 스킬로 인해 위기를 이겨내고 목숨을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즉, 모든 헌터들의 생존력이 올라가고 사망률이 낮아지게 될 것이라는 뜻.
그리고 황룡의 축복으로 인해 태룡사의 인지도가 더 올라가게 되었다.
지금 퍼진 황룡의 축복은 ‘태룡사에 방문해야 한다’라는 조건이 있었으니까.
이제 모든 헌터들은 태룡사에 반드시 한 번은 방문해야 할 명분이 생긴 셈이었다.
“많은 도움이 되겠군요.”
시스템 창을 살펴본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아직 끝이 아니네.]
황룡이 작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답했다.
그 목소리에 처용이 황룡을 바라본 순간.
[마기의 힘이 전체적으로 약화됩니다.]
[마기 스테이터스가 영구적으로 5 감소합니다.]
[마기 스테이터스를 지닌 존재의 모든 스테이터스가 3 감소합니다.]
추가적으로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하하, 마인 놈들은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겠군요.”
[계승자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
이어지는 시스템 창을 본 처용이 웃음을 흘리자, 황룡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때.
[빛의 신이 강림을 요청합니다.]
성지의 관리자, 처용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문구가 떠올랐다.
다름 아닌 빛의 신, 야훼가 이곳에 강림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무슨?”
처용이 시스템의 말에 응답하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리자.
[빛의 신이 강제로 강림을 시도합니다.]
-쿠구! 쿠구구!
다시 한번 시스템 창이 울리며 하늘이 두 번 크게 요동쳤다.
이윽고.
-파아아아!
운신전 위로 새하얀 빛의 기둥이 내리쳤다.
동시에.
[……!]
-스스스.
빛의 기둥 속에서 야훼가 황룡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걸어 나왔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