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3화
밤의 성채 별궁.
뱀파이어들의 반역 진압을 도운 헌터들은 잠시 휴식을 가질 겸 모두 별궁에 머물렀다.
처용 역시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가지기로 하며, 별궁에 머물고 있었다.
지금껏 숱하게, 생각보다 오랜 시간 전투를 반복했으니까.
게다가 바로 최근에는 삼천마 둘을 연속으로 만나기도 했었다.
발록으로 변한 집행자와 그를 통해 화신체로 강림한 디아블로.
블러드 쉬르 안에 직접 강림한 메피스토.
게다가 마지막에는 본신으로 강림한 아스모데우스까지.
이어지는 격렬한 싸움을 처용이 승리로 이끌긴 했지만, 태극천체일도를 무려 두 번이나 사용했다.
아무리 잘 지치지 않는 처용이라 해도, 이번에는 쉬는 시간을 가지기로 판단했다.
그리고.
“음…….”
별궁의 중앙, 천장이 뚫려 있는 드넓은 로비 한 가운데.
물이 졸졸 흐르는 분수대 앞.
그곳에 세워진 나무 의자에 앉은 처용이 앞을 바라보며 침음을 흘렸다.
지금 처용의 앞, 테이블 위에는.
“삑?”
마치, 병아리 같은 맑고 짧은 목소리를 내는 생명체가 처용을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은색과 금색으로 일렁이는 비늘을 빛내는 60cm 정도 크기의 생명체.
드래곤이라기엔 전체적으로 날렵하고 길쭉한 체형.
동양의 용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용에게는 없는 드래곤의 날개와 몸에 비해 튼튼한 다리가 보였다.
마치, 드래곤과 용의 특징이 적절히 섞인 듯한 모습.
그런 작은 생명체의 눈 주변에는, 마치 눈화장을 한 듯 검은 비늘이 돋아나 있었고.
-지잉.
그런 눈가의 검은 비늘 아래에 자리한 두 눈은, 푸른색과 붉은색의 안광이 빛나고 있었다.
“흐음.”
처용이 눈앞의 생명체를 관찰하듯,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기울이자.
“삐익?”
마주 보는 생명체가 짧은 울음소리를 내며 처용의 고개를 따라 고개를 기울였다.
-스륵.
이번엔 처용이 반대로 고개를 기울이자.
“삑.”
-슥.
마주 보는 생명체가 그런 처용을 따라 고개를 반대로 기울였다.
처용은 눈앞의 생명체가 자신을 따라 고개를 기울이든 말든.
“이게 도대체 뭘까…….”
눈앞의 알 수 없는 생명체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었다.
동양의 용과 드래곤이 합쳐진 듯한 외형의 작은 생명체.
이 생명체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통찰의 눈을 사용해 관찰해보기도 했지만.
[■■ - 크타니드]
[칭호 : 제네시스 드래곤(Genesis Dragon), 태초룡(太初龍).]
[특징 : 계승자에 의해 탄생한 ■■…….]
[태초의 에너지, 에테르가 ■■…….]
[■■…….]
통찰의 눈으로 보이는 정보를 확인하자, 오히려 머리만 더 복잡해졌다.
관철안의 힘까지 최대치로 끌어올려 관찰해봤지만, 이 이상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문구는 다름 아닌 ‘크타니드’라는 이름.
처용이 아는 ‘크타니드’는 많지 않았다.
태초신인 야드 – 크타니드.
그리고 그의 첫 번째 자식들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
카투라와 크루마 같은 태초의 마수들.
마지막으로 악의 종주, 조크 – 크타니드.
그 크타니드라는 이름 때문인지, 두 번째로 처용의 눈에 딱 들어오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태초룡(太初龍)이라는 문구.
‘크타니드, 태초의 신수와 태초신에게 붙은 이름이 생긴 이유와 관련이 있는 건가?’
그 문구를 본 처용은, 눈앞의 생명체가 ‘태초의 마수’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왜 눈앞의 생명체에게 ‘크타니드’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도 나름 납득이 되었다.
그리고 통찰의 눈에 전부 보이지는 않았지만.
“계승자에 의해 탄생했다?”
그 아래 보이는 문구 역시 신경이 쓰였다.
바로 눈앞의 생명체, 태초룡이 계승자에 의해 태어났다는 문구였다.
“그러니까…… 나로 인해서 네가 태어났다고?”
처용이 눈앞의 작은 생명체, 태초룡을 향해 묻자.
“삑.”
놀랍게도 태초룡이 처용의 말을 알아들은 듯,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울음소리를 내었다.
“하하…….”
그 모습을 본 처용이 황당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동시에.
‘지금 보고 계십니까?’
작금의 상황을 같이 지켜보고 있을 이들, 여래와 미륵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보고 있다. 제자야.]
처용의 말에 곧장 여래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것 참, 황당한 노릇이구나.]
마찬가지로 처용을 통해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미륵이 황당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드래곤은 아니다. 그렇다고 용도 아니다. 이건 마치…….]
“또 다른 태초의 신수를 마주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차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말꼬리를 흐리는 미륵의 말에 처용이 말을 이었다.
[그래, 최초의 생명체들, 태초의 신수에 가까워 보이는구나.]
미륵이 처용의 설명에 동의하듯 말하고는.
[그것을 데려오거라, 내 한번 직접 봐야겠으니.]
처용에게 태초룡을 데려와 보라고 말했다.
“네, 제가 직접 데려가죠.”
그런 미륵의 말에 처용이 대답했을 때.
“미륵님이 이 녀석을 보내달래?”
연아가 처용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동시에, 처용 앞에 있는 작은 생명체, 태초룡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삑.”
태초룡은 가까이 다가와 자신을 관찰하는 연아의 시선을 마주 보며 짧은 울음소리를 내었다.
딱히 경계하지는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 그래서 잠시 성역에 좀 갔다 와야겠다.”
처용이 연아의 말에 답하듯 말하자.
“이 녀석만 태룡전으로 보내면 되지 않아?”
연아가 궁금한 듯 물었다.
비크라와 어린 드래곤들을 보냈을 때처럼, 게이트 속으로 태초룡을 보내면 될 것 같았으니까.
“봐.”
처용은 그런 연아의 질문에 곧장 태룡전의 열쇠로 작은 게이트를 열고는.
-탁. 우웅.
눈앞에 있는 태초룡을 들어 게이트 속으로 집어넣었다.
연아의 말대로 태초룡을 태룡전 안으로 보내 버린 것.
그러나 태초룡이 게이트 속으로 사라진 순간.
“삑.”
처용의 바로 옆에서 태초룡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에 연아와 처용의 시선이 울음소리가 들린 방향, 처용의 오른쪽으로 향했고.
“삐익?”
처용의 어깨 옆에 부유하고 있는 태초룡의 모습이 보였다.
-스르륵. 탁.
가볍게 날개를 펼쳐 부유한 태초룡이 다시 원래 있던 자리, 처용의 앞에 내려앉았다.
분명히 처용이 태초룡을 잡아 게이트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런데, 처용의 곁에 다시 나타난 상황.
“방금, 게이트 속으로 들어간 거 아니었어!?”
작금의 상황을 본 연아가 의문을 품으며 읊조리고는.
“……이거, 네가 갖고 있던 태초의 조각하고 비슷한 현상인데.”
이내,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경우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 태초의 조각이 깃들어 태어난 녀석이긴 하지.”
“아, 그랬었지.”
처용의 말에 연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연아는 눈앞의 작은 생명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대략 이야기를 들었다.
사정을 알고 있던 류마가 왜 드래곤의 알이 루나에게서 나왔는지를 이야기했고.
연화와 연아 등은 그녀들의 성좌인 해전무신과 카투라에게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루나는?”
처용이 연아에게 루나에 대해서 묻자.
“아주 잘 자던데? 큰 이상은 없어 보였고.”
방금 루나를 보고 온 연아가 처용의 말에 답했다.
“다행이네, 지금까지 힘들었을 테니 이참에 편히 쉬어두는 게 좋겠지.”
그런 연아의 말에 처용이 답하듯 말을 잇고는.
“무슨 일이 있으면, 즉각 내게 말해, 난 이 녀석이랑 성역에 좀 갔다 올 테니까.”
-탁. 우우웅.
자리에서 일어서며 태룡전의 열쇠로 게이트를 열었다.
동시에.
-탁.
“삑?”
눈앞에 있는 태초룡을 왼손으로 집어 들었다.
처용이 태초룡의 허리 부분을 잡고 옆구리에 대자.
-탓.
태초룡이 앙증맞은 손으로 처용의 옷깃을 붙잡았다.
마치, 같이 어디론가 간다는 것을 자각한 듯한 모습.
“루나가 깨어나면 내가 말해줄게.”
“부탁한다.”
연아의 말에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답하고는.
-화아아!
태룡전으로 향하기 위해, 게이트 안으로 들어섰다.
***
처용이 태초룡과 함께 게이트 속으로 들어서자.
“……뭐?”
눈앞에 드러난 광경에 침음을 흘렸다.
분명, 처용은 태룡전과 이어지는 게이트를 열고 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왜 여기에?”
눈앞에 드러난 광경은 성역, 태룡전이 아닌 성지, 태룡사 중턱 부근이었다.
그것도 태룡사가 성지가 되기 전부터 자리했었던 전각.
사찰의 가장 큰 전각인 대웅전 앞이었다.
지금은 성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공용 신전으로 활용되는 장소였다.
처용의 어머니가 주로 관리하는 전각.
황당한 눈빛으로 눈앞의 전각, 대웅전을 바라본 처용이 침음을 흘릴 때.
“삑삑.”
-툭. 툭.
어느새 처용의 손에서 빠져나온 태초룡이 처용의 옷깃을 잡아끌며 울음소리를 내었다.
“네가 날 여기로 데려온 거냐?”
처용이 태초룡을 향해 묻자.
“삑.”
태초룡이 그 말이 맞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툭. 툭.
마치, 어디론가 가자는 듯, 처용의 옷깃을 앙증맞은 손으로 쥐며 툭툭 잡아당겼다.
처용은 게이트를 조작한 듯 보이는 태초룡의 능력에 황당함과 경악을 보이고는.
“……그래, 가자.”
태초룡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한 번 가 보기로 결정했다.
지금 태초룡을 따라가면, 무언가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휙.
처용의 대답을 들은 태초룡이 옷깃을 놓고는 가볍게 날아오르며 어디론가 향했다.
그런 태초룡의 뒤를 처용이 따라갔다.
이윽고 가볍게 날아가던 태초룡이 태룡사의 중턱 윗부분.
가파른 절벽이 나열된 지형에 내려앉았다.
“……산신각?”
태초룡을 뒤따라온 처용이, 주변을 둘러보며 읊조렸다.
지금 처용과 태초룡이 내려온 장소는 다름 아닌 산신각이었다.
“삑.”
-탁. 탁.
태초룡이 산신각의 입구. 토굴을 향해 아장아장 걸어 들어갔다.
그런 태초룡의 뒤를 처용이 따라 걸어갔다.
어둠이 짙게 가라앉은 토굴 내부에 처용과 태초룡이 들어서자.
“화염부 – 호롱불.”
-탁. 화륵. 화륵. 화르륵.
처용이 화염부 한 장을 소환하고 손가락을 튕겨, 작은 불꽃을 사방에 퍼트렸다.
화염부에서 퍼져 나간 불꽃이 꺼진 촛불 심지에 붙으며 타올랐고 주변을 밝혔다.
작은 촛불들이 토굴 내부를 은은하게 밝히자.
-화아아.
짙게 가라앉았던 어둠이 물러나고 토굴 내부의 모습이 점점 눈에 들어왔다.
토굴 내부 외곽에 둥글게 둘러진 바위 단상들.
그 위에 나열된, 호랑이와 용 등 산신들의 모습이 조각된 조각상들.
그리고 토굴의 가장 안쪽 끝.
-후우우.
태룡산의 대산신이라 불리는 황룡의 조각상이 눈에 보였다.
“오랜만이네.”
처용은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산신각을 둘러보며 읊조렸다.
그때, 옆에 있던 태초룡이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그러고는 원하는 것을 찾은 듯, 정면을 응시한 채.
-탁. 탁.
작은 체구의 짧은 다리를 뻗어 앞으로 걸어갔다.
태초룡이 걸어 나가는 방향의 끝에는 다름 아닌 황룡의 조각상이 있었다.
“흐음?”
처용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태초룡과 황룡의 조각상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저벅.
태초룡의 짧을 발걸음을 따라 천천히 뒤따라 걸어갔다.
이윽고.
-탁.
황룡의 조각상 앞에 도달한 태초룡이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위를 응시했다.
뒤따라온 처용 역시 황룡의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처용이 황룡의 조각상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관찰하며 속으로 읊조렸다.
종종 이곳에 방문했을 때, 황룡의 조각상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긴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그저 평범한 조각상에 불과했다.
그런데, 태초룡은 그저 조각상에 불과한 황룡의 조각상 앞에 멈춰 섰다.
“뭘 말하고 싶은 거냐?”
처용이 도저히 알 수 없다는 듯, 답답함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태초룡을 바라보며 묻자.
-스륵. 우우웅!
태초룡이 가볍게 날아오르며 황금빛의 기운을 내뿜었다.
“……이건?”
처용이 태초룡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느끼며 놀라움을 표했다.
태초룡이 내뿜는 기운은 하나가 아니었다.
드래곤들만이 다루는 드래곤 포스.
신격의 힘이 짙게 일렁이는 신력.
그리고…… 태초의 힘인 에테르.
이 세 가지가 뒤섞여 있었다.
-우웅. 피잉!
붉은빛과 푸른빛의 오드아이를 빛낸 태초룡이 앙증맞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 손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툭.
황룡 조각상의 머리 부분이었다.
-스르륵.
태초룡에게서 일렁이는 기운이 앙증맞은 손을 타고 황룡 조각상을 향해 스며들었고.
“삐이…….”
-휘릭. 훅.
힘 빠진 소리를 낸 태초룡이 허공에서 비틀거리더니, 아래로 훅 떨어졌다.
-탁.
처용이 떨어지는 태초룡을 가볍게 받아든 순간.
-쩌적! 쩌저적!
태초룡의 기운이 스며든 황룡 조각상의 겉면이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지이잉!
황룡 조각상의 눈에서 황금빛의 안광이 피어났다.
그리고.
-쩌적! 파아아!
조각상이 완전히 부수어지며 황금빛이 주변 일대를 뒤덮기 시작했다.
토굴 내부를 가득 채울 정도로 찬란한 황금빛이 크게 퍼지더니.
-우웅! 콰아아아아!
산신각의 천장 부분을 가루처럼 부수며 하늘 위로 크게 솟구쳐 올라갔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