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2화
판데모니움 악의 제전.
“아스모데우스가 소멸했다라?”
-탁. 탁.
바알이 눈을 감고는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툭 툭 두들기며 말하자.
“예, 혹시 몰라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바알의 옆에, 반쯤 무릎을 꿇고 부복한 나베리우스가 보고를 올리듯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주 오랜 시간, 아스모데우스가 공을 들였던 밤의 성채 장악 계획.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밤의 성채라는 강력한 성지를 얻을 수 있었었다.
뿐만 아니라, 아스모데우스가 몽환의 신명까지 완성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더욱더 강력한 대악마가 되어 바알의 힘이 되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와중, ‘강력한 변수’, 처용이 난입했다.
그 탓에, 아주 수월하게 진행되던 계획이 순식간에 꼬여 버리기 시작했다.
분노한 바알은 이 일을 실패하게 만든 원흉인 마르크를 처형하려 했지만.
-계승자가 개입한 것인가?
잠들어 있던 악의 종주가 눈을 뜨며 이번 일에 관심을 보였고 마르크에게 힘을 주었다.
게다가 디아블로에 이어 또 다른 삼천마, 메피스토까지 이번 계획에 가세했다.
그 결과, 아스모데우스가 밤의 성채를 거의 장악하기까지 이르렀다.
바알은 아스모데우스가 밤의 성채를 거의 다 장악하자, 계획이 성공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성공할 줄 알았던 계획은 대차게 엎어졌고 이번 일을 주도한 32위 대악마는 소멸했다.
나베리우스는 혹시 아스모데우스가 살아 있나 싶어 따로 그녀의 흔적을 추적했었다.
아스모데우스가 쉽게 소멸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번 일을 주도했다가 실패한 그녀는 바알의 처분을 피하기 힘든 상황.
바알의 분노를 회피하기 위해, 소멸한 척 숨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나베리우스가 면밀하게 아스모데우스의 행방을 알아본 결과.
“아스모데우스는 확실하게 소멸했습니다.”
32위의 상위 대악마, 색욕악신 아스모데우스가 확실하게 소멸한 것을 확인했다.
나베리우스의 보고에.
“허…….”
바알이 작은 허탈감과 분노가 일렁이는 웃음을 흘렸다.
처용을 저지하기 위해 나섰던 디아블로와 그 신관인 집행자.
혈선을 저지하기 위해 직접 나섰던 메피스토.
무려 삼천마 중 둘이나 이번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 직접 나섰었다.
아니, 바알 역시 마르크에게 힘을 내려줬으니, 삼천마 전부가 이번 일에 공을 들였다 봐도 무방했다.
바알은 이번 계획만큼은 성공하리라 확신했었고 성공 직전까지 도달했었다.
그런데…… 결과는 실패로 다가왔다.
또다시 계획의 실패를 맞이한 바알이 낮은 웃음소리를 흘리자.
“…….”
“…….”
대악마들이 그런 바알의 눈치를 보며 침묵했다.
불편한 분위기가 악의 제전을 휘감을 때.
“참으로 우리들의 꼴이 우습게 되었어.”
낮고 진지한 목소리가 침묵을 깨며 울렸다.
낮은 분노를 흘리던 바알의 눈이 돌아갔고.
“우리가 인간에게 이리도 휘둘릴 줄은 생각조차 못 했는데 말이야.”
바알과 눈이 마주친 메피스토가 말을 이었다.
“메피스토…….”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메피스토의 말에 바알이 작게 인상을 쓰자.
“이번 계획이 무산된 건 안타깝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이후의 실패를 막을 수 있다. 바알.”
메피스토가 진지한 분위기로 말을 이었다.
그는 이번 일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다른 누군가에게 물을 생각이 없었다.
굳이 책임을 묻는다 해도, 이번 계획의 주동자인 아스모데우스는 이미 소멸해 버린 상황.
책임을 물을 대상도 없을뿐더러, 그 누구도 타인에게 책임을 물을 자격도 없다 생각했다.
그 이유는 삼천마 모두가.
“직접 마주해 보니 더 잘 알겠더군, 한처용은 위험한 인간이다. 아니, 위험한 존재다.”
처용에게 당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이 정도의 힘을 보인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메피스토가 자신의 가슴께를 쓸며 말을 이었다.
처용의 태극천체일도에 의해, 가슴이 크게 베이며 화신체가 처치당했었다.
그 공격의 영향이 아직 감각적인 느낌으로 남아있었다.
메피스토는 그 감각을 되새기며, 다시금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본래의 힘을 잃은 지금의 혈선이 그 정도라면, 전성기 때는 도대체 어느 정도였단 말인가?”
블러드 쉬르 속에서 마주쳤었던, 한때 인간이었던 존재.
다수의 악신들에 이어 삼천마들까지 패퇴시킨 처용의 성좌.
혈선이라는 악명으로 유명한 신격, 여래를 떠올리며 말했다.
삼천마가 진심 어린 전력을 발휘하면, 그 상대가 대신급 성좌라 해도 우습게 상대할 수 있었다.
한 성운을 지배하는 주신조차도 삼천마를 이길 수 없었다.
올림포스의 주신인 아테나조차도 메피스토를 상대로 힘에 밀렸으니까.
그러나 여래는 다른 신격들과는 달랐다.
“신계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다는 소문은 허황된 거짓이 아닌 것 같더군.”
“이 우주에 태어나서는 아니 되었을 하계종이다.”
메피스토의 말에 옥황상제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리고.
“설마, 당신이 혈선에게 질 것이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끝없는 증오의 대악마.”
나베리우스가 메피스토를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에라도 혈선이 삼천마보다도 강한 존재라면?
속으로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문제였다.
삼천마의 전력을 논하는 나베리우스의 말에 메피스토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힘의 격차는 내가 우위다. 하지만 승패는 장담할 수 없다.”
나름 진지하게 자신과 여래의 전력을 가늠해보며 답했다.
메피스토는 단순히 힘과 힘의 총량으로 따졌을 때, 삼천마가 그 어떤 신보다 우위라 판단했다.
이는 대신급 성좌인 여래 역시 마찬가지였다.
힘의 총량만을 따졌을 때는 분명 삼천마가 우위였다.
그러나 단순히 힘이 강하다 하여 모든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닌 법이었다.
예시로, 처용 역시 마찬가지였다.
완전한 화신체로 강림한 안드로말리우스와 이에 맞선 처용.
힘의 총량만을 따졌을 때는 진짜 모습을 개방한 안드로말리우스가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전투의 결과는 안드로말리우스의 패배.
힘이 강한 자가 싸움에서 유리한 것은 맞지만, 무조건 승리하는 법은 아니었다.
“끝없는 증오의 대악마께서 그리 평가하실 정도라…….”
나베리우스가 메피스토의 말에 침음을 흘리며 읊조렸다.
마음 같아서는 메피스토의 말에 반박하고 싶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메피스토는 그저 허투루 말하는 자가 아니었으니까.
“이번엔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을 처지가 아니다.”
-화륵.
나베리우스와 메피스토의 말에 디아블로가 입을 열었다.
“삼천마 모두가 나섰음에도, 이번 일이 실패했으니까.”
“디아블로…….”
실패를 언급하는 디아블로의 말에 바알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때.
-스스스.
악의 제전 중앙에 검은 안개가 피어나며 뭉쳐 들었고.
“……초대를 받고 왔건만, 이거 분위기가 손님 맞을 분위기는 아닌 것 같은데?”
-화아아!
검은 안개를 헤치며 나타난 녹색 로브를 입은 남자.
로키가 뒤집어쓴 로브 아래로 드러난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보아하니, 밤의 성채를 장악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은 모양이야?”
정곡을 찌르는 로키의 말에 바알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다른 대악마들 역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건방 떨지 마라, 애송이.”
가벼운 분위기를 보이는 로키의 말에 옥황상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위압감을 담아 말했다.
그러자.
“이봐 늙다리, 당신은 나한테 고마워해야지.”
그런 옥황상제의 말에 로키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이번 일을 잘만 성공한다면, 네가 원하는 것을 무려 ‘세 가지’나 얻을 수 있다고. 내 말 틀려?”
로키가 엄지와 검지, 중지를 핀 손가락을 흔들며 ‘세 가지’라는 말을 강조하자.
“……크흠.”
옥황상제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침음을 흘렸다.
로키의 태도가 몹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차마 그 말에 반박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크크, 왜? 이렇게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실패할 것 같아? 쫄리면 빠지시던가.”
“네놈이야말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어지는 로키의 도발 어린 말에 옥황상제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야 네놈 역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옥황상제는 로키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함께 할 텐가? 늙다리.
로키가 협력을 요청하며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직접 말해 주었었다.
옥황상제는 로키의 말에 그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았고 그것을 간절히 원한다는 것도 이해했다.
그런 로키의 계획이 자신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것 또한 납득했다.
그랬기에, 로키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와 협력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나도 그것을 자~알 알기에, 너와 협력하는 것이지.”
다소 차분해진 옥황상제의 목소리와 분위기에, 로키가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로키 역시 옥황상제와 협력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옥황상제는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집착 어린 모습을 보이며 그 일에 공을 들이는 자였다.
로키는 그런 옥황상제의 성향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로 한 것.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서로의 이해관계를 납득하고 서로의 목적을 위해 이번엔 손을 잡았다.
“이번만큼은 실패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옥황상제와 로키의 분위기를 살핀 바알이 입을 열었다.
바알 역시 로키가 벌이려는 일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 일 역시 앞으로의 큰 계획에 있어 중요한 일.
어찌 보면, 이번 밤의 성채를 장악하는 계획보다도 더욱 중요한 계획이었다.
실패하면 안 된다는 경각심과 경고 어린 바알의 말에 다른 대악마들 역시 동의하는 듯한 분위기를 보였다.
더 실패하는 것은 그들 역시 원하지 않았으니까.
“이보슈 대악마 나으리들? 이번 일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당신들은 크게 상관이 없지, 잃을 게 없으니까.”
그런 악마들의 분위기에 로키가 주변을 크게 둘러보며 가벼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실패하면…… 뭐, 이 늙다리만 한 번 더 쪽팔리게 되는 거지.”
“네놈.”
이어지는 로키의 가벼운 도발에 옥황상제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두 성운의 몰락’은 시작에 불과해, 당신들에게 중요한 건, 그 이후지, 안 그래?”
로키는 그런 옥황상제를 무시하고는 주변의 대악마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가벼운 태도와 목소리였지만, 그 내용은 사뭇 진지했다.
로키의 계획은 무려, 두 성운을 몰락시킬 수 있는 기회.
혹은 몰락에 가깝게 만들 수 있는 계획이었다.
“시작이 잘못되면 이후는 없다. 알겠느냐?”
바알이 로키의 가벼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무거운 목소리로 경고하듯 말했다.
“맞는 말이야. 거대한 어둠, 나는 내 일을 100% 성공시킬 자신이 있어.”
로키는 그런 바알의 경고 어린 목소리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럼, 나는 성공했다고 가정하면, 다음은 당신들 차례야 그러니…….”
자신을 노려보는 바알을 똑바로 마주 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놈들과 ‘전면전’을 치를 준비는 된 건가?”
나는 성공할 자신이 있다.
아니, 자신의 계획의 절반은 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옥황상제가 성공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실패한다 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이번 일이 잘되든 안 되든, 자신의 ‘진짜 목적’이 중요한 법이었으니까.
즉,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이라 봐도 무방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다음에 벌어질 일.
그 일은, 전적으로 악마들이 얼마나 활약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로키의 말이 울리자.
“악마에게 싸울 준비가 되었냐고 묻는 건가? 애송이. 크크크.”
-화륵.
뜨거운 불길이 일렁임과 동시에, 디아블로의 목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 그러니…… 네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좋을 거다.”
투지가 가득 일렁이는 디아블로의 목소리에.
“무한한 공포의 진심 어린 격려, 내 자~알 새겨듣지.”
로키가 미소를 지으며 디아블로의 말에 답했다.
그리고.
“아 맞다. 32위 대악마가 뒤져서 그 자리가 비었다며?”
-우우웅.
손아귀에 신력을 피워 보이며 다른 대악마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그의 손에 피어난 신력 속에는.
-사아아……!
불길할 정도로 짙은 마기가 섞여 일렁이고 있었다.
“곧 여러분들과 동지가 될 것 같으니, 내 미리 잘 부탁한다고 인사하지.”
-파아아!
마지막 말을 전한 로키가 검은 마기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로키가 사라지자.
‘위험해…….’
작금의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던 알레인이 속으로 침음을 흘렸다.
로키의 계획은 위험했다.
그는 단순히 두 개의 성운만이 초토화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잘못되면, 이번 일로 모두가 끝장날 가능성도 있다.’
알레인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속으로 불안감을 삼켰다.
동시에,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디아블로와 시선이 마주쳤다.
알레인을 짧게 응시한 디아블로는.
“참으로, 앞으로의 일이 기대되고 기다려지는구나.”
앞으로의 일이 너무나도 기대된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