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화
처용에 이어 헌터들, 커맨더의 안드로이드들까지 성채의 재건을 도왔다.
그 결과, 완전히 부서졌던 밤의 성채가 겉모습만큼은 거의 완벽하게 복구되었다.
가장 훼손이 심했던 부분은 밤의 성채의 중앙 부분.
그 외의 구석진 지역이나 별궁 등은 무사했기에, 비교적 빨리 복구가 끝났다.
“1시간도 안 걸렸네.”
처용이 완벽하게 복구된 밤의 성채의 겉모습을 보며 읊조렸다.
아직, 내부 정리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성채를 새로 짓는 것에 비해 그리 큰일이 아니었다.
밤의 성채에서의 뒷수습이 거의 마무리되자, 처용이 루나를 찾았다.
이후 에스라 대륙에서의 상황과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해 봐야 하니까.
그러나.
“……?”
루나를 바라본 처용의 시선이 조금 일그러졌다.
막 밤의 성채 재건을 끝낸 루나의 안색이 어두워 보였으니까.
처용이 의문을 품을 때.
“으……!”
루나가 희미하게 통증을 호소하며 침음을 흘렸다.
동시에.
-툭.
가슴을 부여잡고 반쯤 주저앉았다.
“……!”
그런 루나를 지켜보고 있던 처용이 가장 먼저 이변을 알아차리고는 재빨리 루나에게 다가왔다.
동시에.
-스스…….
“……에테르?”
루나에게서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짙은 기운, ‘에테르’를 알아보며 읊조렸다.
처용이 쓰러진 루나에게 다가오자.
“뭐야?”
커맨더를 포함한 헌터들이 다가왔고.
“루나리스?”
“무슨 일입니까!”
체페슈와 류마를 포함한 이들 역시 놀란 듯한 모습을 보이며 다가왔다.
“모두 물러나! 섣불리 접근하지-!”
처용이 다가오는 이들을 향해 일단은 물러서라며 소리쳤다.
지금 루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다름 아닌 에테르.
이 기운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루나가 어떤 이변을 보일지도 알 수 없는 상황.
처용이 다급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저지함과 동시에, 이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했다.
그 순간.
-촤아! 푸화아아아!
루나에게서 뿜어져 나온 혈기가 주변을 둥글게 감싸며 휘몰아쳤다.
그 혈기에 가장 가까이 있던 처용이 휘말렸고.
-파아아……!
바닥에 쓰러진 루나만이 남은 채, 혈기에 휩싸인 처용이 사라졌다.
***
“혈옥?”
갑작스럽게 루나의 심상 세계, 혈옥 속으로 끌려 온 처용이 주변을 둘러보며 읊조렸다.
처음 루나의 혈기가 자신을 뒤덮을 때, 저항할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우웅.
혈기 속에 묻어 있는 작은 파동.
드래곤의 알이 부르는 소리에, 저항하지 않고 혈옥 속에 빨려 들어왔다.
혈기 속에 일렁이는 드래곤의 의지.
그 의지는 마치, 자신을 도와달라는 듯한 목소리로 들렸다.
혈옥을 둘러보던 처용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향하자.
“아 진짜!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툭! 툭!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몽마.
타라샤가 눈앞에 있는 드래곤의 알을 향해 당황스러움을 드러내며 소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눈앞에 있는 드래곤의 알도 눈에 들어왔다.
‘3미터는 훌쩍 넘겠군.’
루나의 혈옥 속에서 점점 크기를 키워나가며 성장하던 알은 3미터 크기가 훌쩍 넘어간 상태였다.
알이 많이 커진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우웅! 우우웅!
마치, 폭탄이 터지기 직전인 것처럼, 알이 거세게 진동하며 파동을 흩뿌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뭐냐?”
처용이 타라샤에게 다가가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를 묻자.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저거 좀 어떻게 해 봐!”
타랴사는 오히려 처용보고 이 상황을 어떻게 좀 해 보라는 듯, 소리쳤다.
지금껏 루나의 혈옥 안에서 알을 돌봐 온 타라샤.
알을 돌봤다고는 하지만, 크게 어려운 일은 없었다.
그저 알에 문제는 생기지는 않는지 감시하고.
-우웅.
종종 알에서 투덜거리는 듯한 울림이 들리면 몽마의 가루를 뿌려 덮어 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돌봐온 알은 점점 커지는 것 외에 별다른 이변은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루나의 진화와 함께 알이 갑자기 훅 자라났고.
“손쓸 새도 없이 커지더니, 지금 이러고 있다고!”
이내, 거센 파동을 흩뿌리며 떨리기 시작했다.
처용은 타라샤가 횡설수설하며 소리치는 말을 들으며 알을 올려다봤다.
그때.
-쿠구구구!
알이 더 거세게 진동하더니, 혈옥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혈옥이 거세게 흔들렸고.
-우웅! 우우웅-!
알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동 역시 더 짙어졌다.
“어, 어, 어떻게 해!? 다, 당장 폭발할 것만 같다고!”
타라샤가 크게 당황한 듯, 머리를 부여잡으며 안절부절못하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벅.
처용이 알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동을 정면으로 뚫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짙은 압박감과 중력이 느껴졌지만, 강제로 뚫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똑바로 말을 해라.”
거대한 알 앞에 다가간 처용이 알을 올려다보며 묻자.
-후우우! 스륵.
알 주변에 휘몰아치는 짙은 기운, 에테르가 처용에게 향하며 일렁였다.
그러자.
-스륵.
처용이 알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스스로가 알을 향해 손을 뻗은 것이 아닌, 에테르에 이끌리듯, 손이 절로 뻗어 나갔다.
처용은 제 의사와 다르게 손이 움직여 알을 향해 뻗어 나감에도 저항하지 않았다.
지금 알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도움이 필요하다’였으니까.
이윽고.
-탁.
처용의 손이 알에 닿은 순간.
-스르륵. 화아아!
알 주변에 휘몰아치는 에테르가 처용의 손에 휘감기며 스며들었다.
그리고.
[신수의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뭐?”
갑작스럽게 맺어진 신수의 계약에 처용이 당황스러움을 드러냈다.
반강제적으로 맺어진 신수의 계약 덕분에.
-우웅. 우우웅.
알에서 울려 퍼지는 떨림 속에 담긴 의지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 의지를 읽은 처용은 신수의 계약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당장 급한 것은 눈앞에 있는 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으니까.
-탁! 스르륵.
처용은 왼손을 알에 대며 양손을 알 겉면에 밀착시키고는.
-스르륵.
알 겉면에 신력을 흘려보내며 둥글게 감쌌다.
“사람 그만 피곤하게 만들고-.”
-우득.
처용이 양손에 악력을 가하며 힘을 주었다.
그러자.
-우드드.
혈옥 속에 아랫부분이 박혀 있던 알이 위로 조금 떠올랐다.
“이제, 그만 여기서 나와라.”
처용이 힘을 더 강하게 주고 뒤로 한 발 물러나며 점점 알을 밖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으드득!
무겁고 육중한 크기의 알이 처용에게 끌려 나오듯, 점점 밖으로 딸려 나왔다.
-쿠구!
혈옥에 박힌 알이 완전히 뽑혀 나왔고 위로 들린 순간.
-슈화아아아!
주변에 넘실거리던 에테르와 혈기가 처용과 알, 그리고.
“아아아악-!”
에테르에 짓눌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타라샤를 휘감았다.
***
루나가 갑작스럽게 쓰러지고 처용이 루나의 혈옥 속에 빨려 들어간 지 10분 정도 되었을 때.
“하아, 지켜보는 것 외에는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네.”
연아가 답답한 침음을 흘리며 읊조렸다.
“섣불리 건드리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으니까.”
그런 연아의 말에 연화가 동의한다는 듯 말을 이으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연화와 연아 사이에는.
“으…… 으으…….”
-우우웅.
힘겨운 침음을 흘리는 루나가 혈기에 휘감긴 채 누워 있었다.
언제 무슨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몰랐기에, 둘이 루나 주변에 서서 대비를 갖추고 있었다.
주변, 조금 떨어진 곳에 모여든 다른 사람들 역시 불안한 눈빛을 띠었다.
특히.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니……!”
체페슈를 포함한 뱀파이어들이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용님께서 혈옥 속에 직접 들어가셨으니, 곧 해결하실 것입니다.”
그나마 류마를 포함해 처용과 루나를 따르는 이들은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처용을 믿고 기다리기로 한 것.
그래도, 겉으로는 침착함을 보였지만.
‘부디, 별일 없으시길…….’
당혹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모두가 지켜보며 잠시 기다릴 때.
-쿠구!
루나의 주변에 휘감긴 혈기가 한 번 크게 진동하며 울림을 토해냈다.
“……!”
“…….”
-우우웅.
연화와 연아가 즉시 신성력을 주변에 둘러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
그 순간.
“아아악!”
-푸화아아!
루나가 비명을 지르며 상체를 일으킴과 동시에, 혈기가 주변을 휘감으며 요동쳤다.
그리고.
-촤아아!
요동치며 솟구친 혈기가 갈라지며 그 틈 속에서 처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탓. 쿵!
거대한 알을, 한 손으로 들어 짊어진 처용이 갈라진 혈기의 틈 속에서 뛰어나왔고.
-쏴아아! 쿵!
“으갹!”
뒤이어 타라샤가 데굴데굴 굴러 나오며 처용의 뒤에 떨어졌다.
“야, 그게 도대체 뭐……!”
연아가 처용이 한 손으로 들고 있는 거대한 알과 처용을 번갈아 보며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연화를 포함한 다른 이들 역시 연아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모두가 처용을 보며 의문을 드러낼 때.
“타라샤 공녀, 루나 님의 혈옥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처용의 뒤에 떨어진 타라샤를 향해 류마가 다가가며 물었다.
류마는 루나와 처용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뱀파이어.
그는 루나가 드래곤의 알을 품고 있고 타라샤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알을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타라샤 공녀? 네가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체페슈가 타라샤를 알아보고는 적대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같은 밤의 일족인 몽마들은 모두 대악마, 아스모데우스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들.
즉, 뱀파이어들과 적대 관계인 이들이었다.
그런 몽마들의 고위 가문 중 하나, 리리아 가문의 자녀가 루나의 혈옥 속에서 나타난 상황.
사정을 모르는 체페슈와 뱀파이어들이 적대 어린 분위기를 보이자.
“루나 님과 꿈의 서약을 했고 지금은 시녀가 된 상태입니다.”
류마가 체페슈를 향해 타라샤의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고.
“다시 묻겠습니다. 공녀, 이게 무슨 일입니까?”
타라샤를 향해 조금 전의 질문을 다시 던졌다.
류마를 포함한 주변의 적대적인 태도에.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야!? 이 두 녀석한테 물어야지!”
타라샤는 억울하다는 듯, 처용과 루나를 번갈아 가리키며 소리쳤다.
자신은 지극정성으로 알을 돌봐주었던 것 외에는 한 게 없었다.
그런 그녀가 홀대를 받으니 나름 억울한 심정이 들었던 것.
그런 타라샤의 외침에.
“이 녀석이 원인이다.”
-쿵!
처용이 손에 든 거대한 알을 땅에 내려놓으며 입을 열고는.
“이놈을 꺼내니, 표정이 한결 나아 보이네.”
루나의 안색을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이번엔 진짜 아파 죽는 줄 알았어.”
그 말에 루나가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안도하며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툭.
지쳐 탈진한 듯, 고개를 떨구며 일으켰던 상체를 다시 뒤로 쓰러트렸다.
“……지쳐서 탈진한 거니, 쉬면 좀 나아질 거야.”
-우우웅.
루나에게 다가와 잠시 상태를 살펴본 처용이 자비의 손길을 사용하며 말했다.
그때.
“근데, 왜 루나 몸속에 이만한 알이 있던 거야?”
연아가 처용이 꺼낸 거대한 알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내가 잘 몰라서 묻는 것이오만, 뱀파이어 종족은 난생(卵生)으로 대를 잇소?”
조인족인 차루스가 궁금한 듯,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새의 특징을 지닌 조인족들은 난생, 즉 알을 낳는 것으로 대를 이어간다.
방금 루나에게서 알이 나온 것을 모두가 목격한 상황.
알의 크기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거대한 것이 많이 이상하긴 했지만, 나름 궁금했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그럴 리가.”
“아니네.”
처용과 루나를 따르는 뱀파이어들이 차루스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루나에게서 나온 거대한 알이 궁금하긴 매한가지였다.
그때.
[……잠깐만, 이건.]
조용히 알을 관찰하던 비크라의 눈이 점점 크게 떠지며 경악이 일렁였고.
[이…… 이. 이건 드래곤의 알이지 않나!?]
루나에게서 나온 알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채며 소리쳤다.
[왜 드래곤의 알이 밤의 일족에게서 나온 것이냐!?]
황당함과 당황스러움이 가득한 비크라의 목소리에.
“이 녀석이 멋대로 루나의 혈옥 속에 깃들었으니까.”
처용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비크라의 말에 답했다.
더 오해가 커지기 전에 작금의 상황을 설명할 필요성을 느꼈지만.
“이걸 뭐 어떻게 요약해서 말해야 하나…….”
눈앞에 있는 거대한 알의 출처가 어떻게 되는지.
어쩌다가 루나의 혈옥 속에 깃들게 되었는지.
작금의 상황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등.
도저히 간단하게 추려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 처용조차도.
‘루나가 밤의 마신으로 진화할 수 있게 된 원인이 이 녀석 같은데…….’
루나에게 깃들어 있던 드래곤의 알.
태초의 조각과 에테르의 힘이 깃든 알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처용이 곤란하다는 듯, 침음을 흘리며 고민할 때.
-쩌적. 쩌저적.
알의 겉면이 점점 갈라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균열은 알 전체로 빠르게 번져나갔고.
-촤자자작-!
알의 윗부분부터 서서히 부서져 내리며 하얀 가루를 흩날렸다.
“…….”
처용이 점점 부서지는 알을 관찰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통찰의 권능을 지닌 미륵조차도 알 안에 무엇이 있는지 꿰뚫어 보지 못했다.
지금 깨어지는 알 속에서 무엇이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상황.
처용이 흥미와 긴장감을 동시에 가지며 조용히 알을 지켜봤다.
그러나.
-쩌저적! 쩌적-!
거대한 알이 절반쯤 부서졌는데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이에 처용이 의문을 표했고 거의 다 부서진 알이 밑 부분, 10%가량만 남았을 때.
-스륵.
알이 부서져 내린 영향으로 퍼진 하얀 안개 속.
그 안개 속에서 작게 꿈틀거리는 실루엣이 눈에 보였다.
-휙. 휙.
작은 생명체의 머리로 보이는 것이 무언가를 찾듯,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고.
-스륵.
이내, 생명체의 머리가 처용을 빤히 바라보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처용이 하얀 안개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생명체를 마주 바라볼 때.
-스르륵. 지잉!
점점 가라앉는 하얀 안개 속에서 붉은색과 푸른색의 안광이 드러났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