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화
뱀파이어들의 세계, 밤의 성채에서 일어난 뱀파이어 간의 내전.
회귀 전에는 아스모데우스의 계략에 의해 군주가 쓰러지고 마르크가 군주가 되었을 전쟁.
하지만, 처용이 이 전쟁에 개입하여 미래를 바꾸었다.
뱀파이어들은 악신들의 노예 병사가 되는 운명을 피했다.
아니, 처용이 뱀파이어들에게 드리운 어두운 운명을 부숴 버렸다.
게다가, 밤의 성채를 집어삼키려던 진짜 흑막.
판데모니움 32위의 대악마.
색욕악신 아스모데우스가 소멸했다.
이번 내전의 결과를 ‘진정한 승리’라고 말할 만한 크나큰 성과였다.
그리고 아스모데우스에 이어 그 신관인 릴까지 처치했다.
물론, 처음부터 그를 노리고 있던 스텔라가 처치하긴 했지만, 놈을 처치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도망친 모든 마인들을 전부 추적하여 잡아내지는 못했다.
릴을 처치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외 다른 S급 마인들은 모두 도망쳐 버렸으니까.
그러나 이 정도만 해도, 이번 전쟁은 성공적인 승리였다.
무엇보다도 스텔라가 마지막으로 전해 주었던 엘리스의 메시지.
“조만간, 세계급 게이트가 또 나타날 것 같습니다.”
도망친 마인들에 대한 추적이 끝나고 밤의 성채로 돌아온 처용이 입을 열자.
“세계급 게이트가 또 열릴 거라고?”
커맨더가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처용을 향해 물었다.
“에스라 대륙처럼, 지구와는 다른 세계가 나타난다는 거지?”
“또 어떤 파란만장한 세계가 나타날 것인지…….”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진호와 백호 역시, 작은 걱정을 내비치며 말했다.
첫 번째로 나타난 세계급 게이트, 에스라 대륙.
지구의 헌터들은 이 세계급 게이트를 두고 새로운 세계와 문명이라며 긍정적인 관심을 내비쳤었다.
그러나,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헌터, 역천군주의 정찰 결과.
-에스라 대륙은, 마인들이 점령한 세계다.
새로운 세계와 문명을 마주하고 그들과 교류하리라는 환상은 처참하게 부서졌다.
에스라 대륙은 마인들에게 협력하는 잔혹한 광신도 세력, 아스터 교단이 점령한 세계였다.
게다가 그들은 지구를 침공하기 위한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세계급 게이트의 등장은 문명과 문명의 무역 교류가 아닌.
세계와 세계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 전쟁 준비가 한창인 상황에 또 다른 세계급 게이트가 나타날 조짐이 있다?
당연히 한숨부터 나오고 걱정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확실한 거야?”
커맨더가 처용에게 한 번 더 확인하듯 묻자.
“……예언자가 전달해 준 정보였습니다.”
잠시 생각한 처용이 해당 정보의 출처를 이야기했다.
그러자.
“예언자라면, 태초의 그릇인가 뭔가로 미래를 보는 사람?”
“에스라 대륙에 있었어?”
연화와 연아가 놀라움을 드러내며 처용에게 물었고 다른 헌터들 역시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
“이곳에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의 소식을 알고 있는 것 같아.”
“……하긴, 미래를 보는 사람이라고 했으니까.”
처용의 말에 연아가 납득한 듯 답했다.
이전 세계 헌터 회의에서 그 존재가 노출되었었던 예언자.
처용은 말할 수 없는 부분을 제외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공개적으로 오픈해 버렸었다.
그로 인해 예언자가 어떤 능력을 지녔고 왜 악신들이 집착하며 추적하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래, 예언 능력이지…….”
처용이 예언이라는 말을 읊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예언자, 엘리스에 대한 생각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밤의 성채에서의 전쟁 결과를 예상했었던 존재.
-어차피 네놈이 이기는 싸움이다.
-저 멍청이들은 모르겠지! 이 싸움은 애초에 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바로 디아블로였다.
그는 ‘애초에 자신들이 졌다’라는 말을 언급하며 이 싸움의 패배를 확신하듯 말했었다.
디아블로가 예언하듯 했던 말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무엇보다도.
-도와주는 건 이번뿐입니다. 무한한 공포의 대악마.
그런 디아블로를 도우러 나섰던 존재.
‘도대체 왜?’
판데모니움 서열 9위, 안개의 대악마 알레인.
아니, 제 정체를 숨기고 있는 태초의 마수, 니알라 – 크타니드.
처용이 니알라의 의도를 생각해 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도대체 왜? 그녀는 어째서 디아블로를 도운 것일까?
도저히 그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예상할만한 가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그녀가 디아블로에게 제 정체를 들켜 협박을 당하나 싶었지만.
‘그럴 리가 없지.’
처용은 고개를 저으며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만약, 디아블로가 니알라의 정체를 알아차렸다고 가정해 봐도, 과연 그가 단순히 협박만 할까?
무한한 공포의 대악마 디아블로가?
처용이 개인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판단했다.
무언가 또 다른 이유가 없는 이상은…….
지금으로서는 생각을 거듭해 봐도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니알라가 제 형제들을 배신하고 악의 종주를 도울 리가 없다는 것.
무엇보다도.
‘엘리스를 믿을 수밖에.’
예언자, 엘리스가 섀도우 헌터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엘리스가 있는 이상, 어느 정도의 돌발 상황은 그녀가 대처해 주리라 생각했다.
처용은 디아블로와 니알라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고는.
“곧장 다른 세계가 나타나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도 에스라 대륙처럼…….”
예언자가 예고한 새로운 세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자.
“게이트가 나타나고 적어도 한, 두 달은 기다려야 연결되겠구나.”
커맨더가 처용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채며 답하듯 말했다.
“다른 세계가 나타나기 전에, 이곳에서의 일을 마무리하는 게 좋겠죠.”
처용이 커맨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길드들이 자리 잡는 대로, 그 광신도 놈들을 몰아내야겠어.”
“나 역시, 같은 생각이네.”
커맨더와 백호를 포함한 헌터들이 처용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밤의 성채의 입구를 동쪽에도 하나 만들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긴 자락의 붉은 드레스를 흩날리며 다가오는 여성.
어린 티가 완전히 사라진 루나가 처용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이전과 비슷한, 차가우면서 무표정한 분위기를 내면서도 확 달라진 인상.
그런 변해 버린 루나의 모습에.
“우리 루나가 누님이 되어 버렸어…….”
연아가 가까이 다가온 루나를 올려다보며 얼떨떨한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했다.
아직도 확 변해 버린 루나의 모습이 눈에 적응되지 않은 듯 보였다.
루나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연아를 잠시 바라보고는.
“이젠, 내가 내려다보게 됐네?”
높아진 자신의 시야에 신기해하며 말했다.
아무 악의가 담겨 있지 않은 잔잔한 목소리였지만.
“뭔가 기분이 나쁜데?”
연아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루나의 시선에 미소 아닌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악의가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무언가 기분이 좋지 않은 듯한 모습.
“이제는 올려다보지 않아도 되고.”
연아에게서 시선을 돌린 루나가 이번엔 처용을 마주 보며 말했다.
본래 루나는 작은 신장 때문에 항상 처용을 올려다봤었다.
지금은 육체가 크게 성장한 덕분에 처용과 시선을 나란히 마주할 수 있었다.
처용은 신기한 듯 자신을 바라보는 루나를 향해 어깨를 으쓱이고는.
“입구를 더 만들 수 있는 건가?”
방금 전, 루나가 했던 질문에 대해 언급하며 물었다.
“이제는 내가 ‘밤의 마신’이 되었으니까.”
처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이 어떤 존재로 진화했는지 언급하며 말했다.
루나는 최초의 뱀파이어, 블라디미르와 가장 가까운 존재로 진화했다.
게다가 아스모데우스가 빼앗아 갔던 밤의 성채의 영향력까지 흡수한 상황.
그녀는 밤의 성채 내에서는 전지전능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즉, 밤의 성채로 통하는 게이트 역시 체페슈보다 더 자유롭게 만들고 닫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좋은 생각이야.”
처용이 루나의 의견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루나가 이야기하는 동쪽은 아라한 왕국을 의미했다.
그곳에 입구를 두겠다는 것은, 밤의 성채를 아라한 왕국 쪽에 합류시키겠다는 의미였다.
루나가 처용의 대답에 미소를 짓고는.
-저벅.
근처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는 체페슈에게 다가갔다.
“네가…… 밤의 일족 모두를 구했구나.”
체페슈가 다가온 루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눈앞에서 루나를 마주하자, 거대한 격이 피부로, 감각으로 느껴졌다.
군주보다도 더욱 높은 격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 확 전해질 정도였다.
루나는 이제 ‘밤의 마신’이 된 존재.
군주보다도 높은 격을 지닌 존재가 되었기에, 체페슈가 조심스러움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루나는 그런 체페슈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스스스. 슈화아아!
루나에게서 핏빛의 혈기가 뿜어져 나와 휘몰아쳤고.
-슈르르륵.
체페슈에게 향하며 그에게 스며들었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체페슈는.
“이, 이건?”
이내 몸에서 차오르는 혈기를 느끼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루나가 전해 준 혈기는 단순한 혈기가 아니었다.
그가 마르크에게, 아스모데우스에게 강탈당했던 군주로서의 권리.
밤의 성채의 영향력이었다.
“어째서?”
체페슈가 의문을 표하며 루나에게 묻자.
“밤의 마신으로서 책임을 다하겠지만, 일족을 힘으로 지배할 생각은 없습니다.”
루나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밤의 성채에 신으로 군림하며 일족들을 지배할 생각이 없었다.
현 군주인 체페슈보다도 일족들을 더 잘 다스릴 자신도 없었다.
아스모데우스처럼 신으로 추앙받을 생각 또한 없었다.
밤의 성채를 다스리는 권리는 본래 군주인 체페슈의 것.
루나는 아스모데우스에게서 빼앗은 그 권리를 본래 주인에게 돌려준 것뿐이었다.
게다가 체페슈에게 권리를 돌려준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루나는 밤의 성채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밤의 마신.
그녀가 새로 깨우친 힘과 권능은, 체페슈가 지닌 군주의 권한보다도 우위였다.
아스모데우스에게서 되찾은 권리를 체페슈에게 돌려준다 해도, 루나에게는 문제가 없었다.
체페슈에게 영향력을 돌려주고 이야기를 마친 루나가 고개를 돌리고는.
“마르크가 죽었으니, 우리의 서약이 끝난 것이기도 해.”
처용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가…….”
처용이 루나와 처음 만나 맺었던 피의 서약을 떠올리며 읊조렸다.
서로가 적대하지 않을 것.
먼저 공격받지 않는 이상 다른 인간을 공격하지 않을 것.
마르크와 마인들을 죽이는 것에 협력해줄 것.
마르크가 죽었으니, 사실상 루나와 맺은 피의 서약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조건이 갖춰졌으니, 해지 또한 가능했다.
하지만.
“서약의 조건이긴 했지만, 나는…… 아니 우리 일족은 너무나도 넘치는 대가를 받았어.”
루나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본래는, 밤의 성채에 반역을 일으킨 마르크를 죽이는 것만이 서약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처용은 마르크뿐만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진짜 흑막.
대악마인 아스모데우스까지 처치해 버리고 밤의 성채를 대악마의 마수에서 완전히 해방시켰다.
밤의 일족들이 처용에게 받은 은혜와 도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때문에.
“지구에는 등가교환이라는 말이 있지, 나는 받은 은혜를 저버리는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루나는 처용과의 서약을 여기서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서약의 조항을 추가하고 이 서약이 이어지기를 바라.”
“어떤 조건을 붙이게?”
처용이 루나의 말을 듣고는 조건을 묻자.
“우리 일족을 구해준 것처럼, 이번엔 우리가 너를 돕겠어.”
작은 미소를 지은 루나가 말을 이었다.
처용이 밤의 일족들에게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고 도운 것처럼.
이번엔, 루나가 처용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저도, 용님과 끝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
“저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받은 은혜를 저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루나의 말에 류마와 세피아를 포함한 뱀파이어들.
지금껏 처용과 함께 한 뱀파이어들이 진지한 목소리로 제 의사를 내비쳤다.
그들은 애초부터 처용과 끝까지 함께 하기로 다짐한 지 오래된 이들이었다.
“조건은 네 ‘목적’을 전부 이룰 때까지.”
마지막 말을 마친 루나가 처용에게 손을 내밀자.
“바라던 바야.”
처용이 미소를 보이며 루나가 내민 손을 잡았다.
피의 서약에 새로운 조건이 추가되었고 서약이 이어졌다.
이로써 어둡게 예정되었던 또 하나의 미래가 완벽하게 바뀌었다.
회귀 전, 뱀파이어들은 악신들의 노예 병사가 되어 처용과 맞서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처용이 뱀파이어들에게 마수를 뻗던 마르크와 아스모데우스를 처치했다.
그로 인해 뱀파이어들은 악신들의 노예가 되는 운명을 피했고 오히려 그들에게 맞서는 세력이 되었다.
“일단…… 입구는 옮겨 놓겠지만, 나는 바로 나가지 못할 것 같아.”
처용과의 서약이 이어진 것으로 미소를 짓던 루나가 아쉬운 듯한 목소리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밤의 성채는 거대한 전쟁이 막 끝난 상황.
서쪽, 마르크의 성채였던 장소는 거의 형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군주의 진영이었던 동쪽의 성채는 그나마 멀쩡했지만, 서쪽에 비해 멀쩡할 뿐, 거의 폐허나 다름없었다.
“성채를 이대로 방치할 순 없으니까.”
루나가 책임감 어린 목소리로 말하고는.
“성채를 수리한다.”
-우우웅.
혈기를 끌어 올리고는 성채를 향해 손을 뻗으며 칙령을 말했다.
-슈르륵. 슈화아아!
루나에게서 뻗어 나간 혈기가 지면을 타고 넓게 퍼져 나갔고.
-쿠구! 저저적!
밤의 성채를 지배하는 루나의 권능에 의해, 갈라지고 부서져 내렸던 성채가 조금씩 복구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채를 복구하는 대로 합류할게.”
그 속도가 그리 빠르지는 않았고 이 칙령을 유지하려면 루나가 밤의 성채 안에 있어야 했다.
루나의 입에서 아쉽다는 듯한 목소리가 이어지자.
“동맹이 좋은 이유가 뭔지 알아?”
조금씩 복구되고 있는 성채를 향해 처용이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서로를 도울 수 있다는 거지.”
“뭐, 몸 좀 풀면서 쉬면 되겠네.”
처용의 말에 연화와 연아가 루나를 보며 말을 잇고는 무너져가는 성채로 향했다.
“마키, 대기 중인 건축 로봇들 전부 지상으로 내려보내.”
이야기를 듣던 커맨더와 헌터들 역시 밤의 성채 복구를 돕는 것을 자처했다.
“……그래, 빨리 끝내고 같이 돌아가면 되겠네.”
루나가 기꺼이 도우러 나서는 이들을 보며 작은 미소를 흘렸다.
그 순간.
“……으!?”
갑작스럽게 통증을 느낀 루나가 미세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가슴 부근에 손을 대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