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9화
황금빛으로 빛나는 태극천체일도가 아스모데우스를 내려치자.
-쩌저적!
검고 질척이는 절단면이 드러나며 아스모데우스가 반으로 갈라졌다.
[아……!]
태극천체일도에 베인 아스모데우스의 입에서 경각심 어린 침음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단순히 반으로 갈라졌다 하여 소멸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아스모데우스는 온갖 저주와 부정적인 사념, 악념이 모여 구성된 존재.
아스모데우스는 하나의 개체라기보단, 집합체(集合體)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했다.
본신이 타격을 입는다 해도, 곧장 복구할 수 있었다.
근원에 심각한 타격을 입어 죽을 위기에 처한다 해도, 신체를 나눠 도망칠 수 있었다.
물론, 힘과 격이 영구적으로 소모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죽는 것 보 단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법.
때문에, 아스모데우스는 밤의 성채를 무너뜨려 어둠 속에 수장시켜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처용의 공격에 베인 순간.
-파사사……!
절단면에 황금빛의 기운이 일렁이며 아스모데우스의 신체를 분해하고 있었다.
[이, 이런!]
아스모데우스가 심상치 않은 공격에 당했음을 자각하고 몸을 분해하여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넌 도망칠 수 없어.”
-파사사사……!
처용이 손에 쥔 태극천체일도를 해제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태극천체일도가 분해되자 황금빛의 가루가 일렁이며 퍼져 나갔고.
-파아아!
아스모데우스를 휘감기 시작했다.
그 결과.
-파사삭! 파삭!
황금빛의 가루들이 아스모데우스에게 달라붙어 그녀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태극천체일도에 네 근원을 베인 이상…… 넌 끝이다.”
[아, 아아아아-!]
처용의 말에 아스모데우스가 반으로 갈라진 신체를 비틀비틀 움직이며 비명을 질렀다.
몸을 가루로 분해하여 도망치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마기를 끌어 올려 자신의 신체를 갉아 먹는 황금빛의 기운을 몰아내려고 해 봤지만.
-파사사……! 파사삭!
마기는 끌어모으는 즉시 분해되고 점점 무너지는 신체로 인해 남은 마기까지 사그라지고 있었다.
신은 화신체가 아닌 본신이 치명상을 입으면 죽는다.
아스모데우스는 이곳에 본신으로 강림했고 그 본신에 치명상을 입었다.
이대로 본신의 신체가 완전히 분해되어 사그라진다면?
영원히 소멸한다.
[이대로!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푸화아아아!
아스모데우스가 비명을 내지르고는 반으로 갈라진 신체를 폭발시켰다.
질척거리는 어둠이 주변에 크게 퍼졌고.
-쏴아! 파아아!
마치 도망치려는 듯,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천 년, 아니, 만 년이 걸려서라도-!]
최후의 수단을 사용한 아스모데우스가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
아스모데우스라는 대악마의 근원.
그녀는 제 스스로 그 근원을 완전히 부숴 사방으로 퍼트렸다.
간단하게 말해서, 제 손으로 자신의 신격을 망가뜨려 잘게 쪼개 퍼트린 것이었다.
한 번 깨진 근원, 망가진 신격은 되돌릴 수 없다.
지닌 힘이 깨진 근원의 수만큼 잘게 쪼개져 하락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조각이라도 살아남아 이곳을 빠져나간다면, 재기를 노려볼 수 있었다.
그 기간이 몇천 년, 혹은 몇만 년에 달할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반드시 살아남아 오늘의 원한을 절대로 잊지 않고 돌아오리라 다짐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아스모데우스의 조각은 거의 수천 조각.
하나하나 잡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때.
“칙령 선포.”
루나의 잔잔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쿠구구!
그녀의 말에 반응하듯, 밤의 성채 전체가 옅게 진동했다.
“아스모데우스의 탈출을 불허한다.”
루나의 입에서 ‘칙령’이 흘러나온 순간.
-쿠구!
사방으로 도망치듯 뻗어 나가던 아스모데우스의 파편들이 제 자리에 딱 멈추었다.
그리고.
“내 앞에 조아려라.”
이어지는 루나의 목소리에.
-꾸륵! 쏴아아!
꿈틀거리던 아스모데우스의 파편들이 루나의 앞으로 모조리 끌려왔다.
“제 손으로 신격까지 쪼갰으니, ‘내 칙령’에 반항조차 못 하네?”
[끄어! 으어어……!]
-꾸륵. 꾸르륵.
루나의 말에 강제로 끌려온 아스모데우스가 괴성을 토해 내며 꿈틀거렸다.
이젠, 제대로 형체조차 갖추지 못한 검은 덩어리에 불과한 모습.
그마저도 제대로 뭉치지 못하고.
-슈륵…… 추르륵……!
검은 덩어리의 외곽 부분이 떨어져 나가며 사그라지고 있었다.
아직, 처용에게 당한 태극천체일도의 영향이 남아있었으니까.
“네놈이 빼앗아 간 것을 모조리 내놓아라.”
루나가 질척거리는 검은 덩어리, 아스모데우스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하자.
-스르륵. 슈화아아!
검은 덩어리에서 검붉은 기운들이 스멀스멀 흘러나와 루나에게로 향했다.
아스모데우스가 강탈한 밤의 성체의 영향력들이었다.
이제는 신격까지 쪼개지고 제 형체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푸화아아!
아스모데우스는 그나마 가지고 있던 모든 영향력을 루나에게 빼앗겼다.
아니, 밤의 성채의 영향력과 몽환의 힘은 본래 밤의 일족들의 것.
본래 주인에게 되돌아갔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었다.
지닌 힘을 거의 모두 잃자.
-후두두……!
허공에 뭉쳐 질척거리는 아스모데우스가 일제히 바닥에 떨어지며 흙더미처럼 퍼졌다.
[나…… 나는…… 아직!]
그럼에도 아스모데우스는 살아남으려 발버둥 쳤다.
-슈르륵.
바닥에 떨어진 흙더미에서 검은 손 하나가 뻗어 나오며 허우적거렸다.
처용은 비참하게 발버둥 치는 아스모데우스를 내려다보며 오른손을 뻗고는.
“포확.”
-우웅. 푸화아아!
포확을 사용해, 무너져가는 아스모데우스의 잔재를 모조리 빨아들였다.
[대악마의 마기를 선인의 육체가 분해, 온전히 흡수합니다.]
[팔괘축기에 색욕마기(色慾魔氣)가 저장됩니다.]
[암(暗) 속성 마나의 힘이 크게 상승합니다.]
[암영부에 ‘저주(咀呪)’ 특성이 추가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
처용의 눈앞에 레벨이 올랐다는 시스템 알림이 떠올랐다.
아스모데우스를 완전히 소멸시켰다는 의미였다.
“상위 대악마의 완전한 처치, 엄청난 성과네.”
처용이 포확으로 흡수한 대악마의 기운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판데모니움 서열 32위, 색욕악신 아스모데우스는 완전히 소멸했다.
이곳에서 색욕악신을 완전히 처치한 것은 엄청난 성과라 볼 수 있었다.
지구에서 게이트 폭주와 동시에 퍼졌던 온갖 저주와 역병들.
그로 인한 수많은 헌터들과 사람들의 죽음.
에스라 대륙의 1/4를 파괴했었던 어둠과 저주의 침식.
무림 세계의 공적이었던 자, 죽은 독마를 부활시켜 무림인들을 강시로 만들었던 일까지.
이 모든 일이 색욕악신 아스모데우스가 주도하여 벌인 일들이었다.
회귀 전, 벌어졌었던 잔혹하고도 잔혹했었던 일들의 원흉.
그 원흉이, 회귀 전에 벌였던 일들을 미처 다 저지르지도 못한 채 완전히 소멸했다.
물론, 미래에 벌어질 일이 완전히 벌어지지 않는다 단언할 순 없었다.
역병과 저주에 특화된 대악마는 아스모데우스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아스모데우스의 자리를 노리던 다른 악마가 32위 대악마 자리를 차지하여 나타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것은 이후의 문제일 뿐.
가장 지독하고 잔혹했었던 대악마를 소멸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사실 자체가 처용에게 있어서 엄청난 성과였고 미래에 있어 긍정적인 변화였다.
“끝난 거야?”
상황이 완전히 마무리되자, 커맨더가 처용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처용이 고개를 끄적이며 커맨더의 말에 답하자.
“후, 마인 놈들은 아까 모조리 도망치더라고 망할 칙령 때문에 저지할 수가 없었는데…….”
커맨더가 서쪽 부근을 바라보며 말했다.
본래 마인들과 배신자들이 빼곡하던 서쪽은 지금 허허벌판이었다.
반역을 일으킨 뱀파이어들은 모조리 마르크에게 잡아먹혀 전멸했고.
그들을 돕던 마인들은 이미 마수들을 이끌고 일제히 밤의 성채를 탈출한 상태였다.
다만, 그들 역시 급하게 탈출하느라 모든 것을 다 챙기지는 못했다.
[놈들이 들고 도망가려 하기에, 우리가 어떻게든 붙잡았다.]
-슈우우- 쿵!
하늘 위에서 황금빛의 드래곤, 비크라가 처용 옆에 착지하며 말했다.
-쿵! 쿠궁!
다른 두 드래곤, 마티네아와 가네리아도 지상에 내려왔고.
-쿠구! 쿠콰쾅!
그런 그들의 뒤로 거대한 드래곤의 사체가 강철 형구에 묶인 채 떨어져 내렸다.
세 명의 어린 드래곤들과는 다르게, 반쯤 부패한 듯한 모습에 어두운 마기가 일렁이는 드래곤 사체.
“배신한 드래곤, 데이베른이라는 녀석이었지?”
처용이 데이베른을 알아보며 묻자, 비크라가 데이베른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로드를 배신한 자들은…… 모두 이런 꼴을 당한 것인가?]
데이베른을 노려본 비크라가 복잡한 심정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읊조리자.
“그럴 가능성이 크겠지, 드래곤은 놈들에게 있어 ‘강력한 마수’가 될 수 있는 재료나 다름없으니까.”
처용이 차가운 목소리로 냉혹한 현실을 이야기했다.
[이런 멍청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비크라가 처용의 말에 분노와 참담한 심정을 담아 말했다.
드래곤 로드를 배신까지 해서 자신들의 욕망을 추구한 드래곤들.
그들은 악신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세상을 파괴하는 병기가 되어 버렸다.
세상의 균형과 평화를 추구하는 사명을 지닌 드래곤에게 있어 비참한 말로였다.
[이것은 내가 가져가겠다. 미륵님을 통해, 드래곤 로드에게 전달하는 것이 좋겠지.]
-우우웅.
여래가 손을 휘저어 게이트를 만들어 내고는 처용과 비크라를 향해 말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스승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처용과 비크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풍운부 – 바람의 인도.]
-휘이이!
여래가 데이베른의 사체에 풍운부 다섯 장을 붙여 공중에 띄우고는 게이트 안으로 집어넣었다.
동시에, 여래가 게이트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다른 신격들 역시 하나둘 돌아갔다.
그리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테나 님.”
처용이 돌아가려는 아테나에게 감사를 전했다.
아테나는 작금의 상황을 듣자마자 직접 이곳에 강림하여 도와줬으니까.
[오늘 일로, 나 역시 깨달은 바가 많았다.]
아테나가 돌아가려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처용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악마들이 어느 정도의 힘을 지녔는지.
그런 그들을 따르는 세력들이 얼마나 강세한지.
배신한 형제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등.
깨달은 바가 많았다는 아테나의 말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같은 일이 또 있다면, 나는 반드시 너를 도우러 나설 것이다.]
오늘 같은 일이 또 일어난다면, 기꺼이 도우러 나서겠다는 말을 이었다.
-스르륵.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말을 전한 아테나가 게이트 속으로 사라졌다.
신격들이 태룡전으로 돌아갔을 때.
“이제, 도망친 놈들 잡으러 가자.”
잠시 눈을 감으며 집중하고 있던 루나가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추적할 수 있겠어?”
처용이 루나에게 묻자.
“아직, 멀리 도망가지 못했어.”
-우우웅.
루나가 핏빛의 게이트를 만들어 내며 처용의 말에 답했다.
밤의 성채를 지배하는 마신이 된 그녀였기에, 밖으로 나가는 게이트를 제약 없이 만들 수 있었다.
“……그래, 기왕이면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지.”
처용이 루나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일은 마무리가 깔끔할수록 좋았으니까.
***
에스라 대륙의 서쪽 산맥 끝자락.
“제, 제길……! 제기랄!”
의회주, S급 마인인 릴이 그 산맥의 외곽을 도망치듯이 달리며 침음을 내뱉었다.
밤의 성채를 장악한다는 계획은 완전히 무너졌다.
‘역천군주가 나타났을 때, 모든 일을 내던지고 도망쳤어야 했어!’
릴이 인상을 거칠게 구기며 속으로 소리쳤다.
밤의 성채를 장악하기 위해 그곳에 둔 전력은 결코 적지 않았었다.
거대 성운의 비호를 받는 길드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그들을 쓸어 버릴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 막강한 전력이 단 한 명에 의해 처참하게 박살 났다.
역천군주 한처용.
또다시 처용으로 인해, 오랜 기간 세우던 큰 계획 하나가 통째로 무너졌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성좌가 소멸했습니다.]
[신관의 모든 자격을 박탈당합니다.]
[모든 스테이터스가 절반으로 하락합니다.]
[스킬이 소멸됩니다.]
[스킬이 소멸…….]
[…….]
.
릴의 성좌이자 판데모니움의 대악마 중 하나.
무려 서열 32위인 상위 대악마, 색욕악신 아스모데우스가 소멸했다.
그저 화신체를 처치당한 것이 아닌, 본신이 소멸한 상황.
그로 인해 릴은 신관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직 기회는 있다. 나는 재능이 있는 신관, 다른 대악마와 계약한다면……!’
그럼에도 릴은 희망을 잃지 않은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신은 재능이 있는 신관, 대악마들에게 있어서 탐나는 인재였다.
오히려 아스모데우스보다도 서열이 높은 강력한 대악마에게 선택을 받을 가능성도 있었다.
무려 삼천마에게 선택을 받아 가장 강력한 마인이 된 집행자처럼.
릴이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며 미소를 내지을 때.
“다시 보니 반갑네?”
릴의 뒤에서 차가운 여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말에 릴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자.
“마기가 확 줄어든 걸 보니…… 설마 아스모데우스가 소멸했나 봐?”
왼쪽 눈 아래에 푸른 별 문양이 새겨진 하얀 가면.
그 가면 뒤로 흩날리는 검푸른 긴 머리의 여성.
섀도우 헌터, 스텔라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섀도우 헌터!”
-우우웅.
릴이 경악을 내지르고는 남은 마기를 끌어 올리며 전투를 준비했다.
아니, 싸우는 척하며 도망칠 준비를 했다.
성좌인 아스모데우스의 소멸로 인해 자신은 지금 힘이 절반 이상 깎여나갔으니까.
주특기였던 ‘색욕의 형상’조차도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도망치려고?”
스텔라가 스킬조차 사용하지 않는 릴을 보며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동시에.
“갤럭시 스타폴.”
-위잉! 위이이잉!
빛나는 마나의 탄환들이 스텔라의 주변에 무수히 생성되었다.
“이-!”
릴이 주변을 빼곡하게 포위한 마나의 탄환을 보며 사색을 내비쳤다.
“지옥에 처박힐 시간이다. 이 개 같은 새끼야!”
스텔라가 마치 손으로 총을 쏘듯, 오른손 검지를 들어 릴을 향해 튕기자.
-피이! 피이이이-!
마나의 탄환들이 일제히 릴을 향해 쇄도했다.
릴이 급하게 마기를 내뿜어 보호막을 만들어 냈지만.
-파창! 창!
마기의 보호막은 일제히 쇄도해 오는 마나의 탄환을 막아내지 못해 깨져 나갔고.
-푸부북! 푸북!
“커-!”
릴이 마나의 탄환에 꿰뚫리고 육체가 찢겨 나가며 단말마를 내뱉었다.
이윽고.
-툭.
반쯤 찢겨 나가 너덜너덜해진 릴의 시체가 바닥에 고꾸라졌다.
아스모데우스에 이어 그 신관까지 최후를 맞이했다.
“후…….”
스텔라가 릴의 사체를 내려다보고는 길고 얉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대신 처리해 줄 줄은 몰랐는데?”
스텔라의 뒤로 낮은 목소리가 울리자.
-휙! 우우웅!
화들짝 놀란 스텔라가 뒤를 돌아보고는 마나의 탄환을 주변으로 불러모았다.
그리고는.
“……역천군주.”
-스스스.
처용의 얼굴을 확인하고 기세를 가라앉히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섀도우 헌터들이 에스라 대륙에 있는 건가?”
그런 스텔라의 모습에 개의치 않은 듯, 처용의 질문이 이어졌다.
“지금은 나만 있죠.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스텔라가 처용의 말에 릴의 시체를 노려보며 답했다.
처용이 그 말에 잠시 생각하며 침묵했고.
“……아스모데우스의 신관이 아르노 가를 배신이라도 한 것인가?”
로스차일드 가주가 보여주었던 세계 가문 정보를 떠올리며 물었다.
그 말에 스텔라가 눈을 조금 크게 뜨고는.
“라이 아르노. 우리 가문의 모든 식솔들을…… 대악마의 제물로 바친 놈입니다.”
이내 침착한 목소리로 자신과 릴의 원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의회주 릴의 본명은 라이 아르노.
본래 아르노 가의 차기 가주가 될 예정이었던 장자였다.
하지만, 그는 가문의 가주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데미갓 프로젝트를 통해 접촉한 대악마와 거래를 했다.
그 거래의 대가는 다름 아닌 아르노 가의 모든 인원을 대악마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
“그 대가로 얻은 것이 대악마의 신관 자리였고요.”
그 대가로 얻은 것은 바로 그가 거래한 대악마, 아스모데우스의 신관 자리였다.
스텔라는 그런 릴의 잔혹한 계획 속에서 살아남은 자.
아르노 가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자신과 릴의 악연을 짧게 이야기한 스텔라가 한숨을 내쉬고는.
“예언자가 당신에게 전해달라 한 말이 있습니다.”
처용을 향해 말을 이었다.
스텔라의 입에서 ‘예언자’, 엘리스가 언급되자, 처용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곧 무림(武林)이 열린다. 준비해라.”
이어지는 스텔라의 말, 엘리스의 메시지에 처용이 눈을 크게 뜨고는.
“잘 알아들었다고 ‘예언자’에게 전해 줘.”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