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5화
삼천마.
판데모니움에서 가장 강력한 세 명의 대악마를 일컫는 말.
거대한 어둠의 대악마 바알.
무한한 공포의 대악마 디아블로.
그리고.
[더 이상 실패하는 꼴은, 두고 볼 수가 없다.]
-화아아!
칼날처럼 날카롭고 예리하게 느껴지는 어두운 잿빛의 마기를 내뿜는 존재.
끝없는 증오의 대악마, 메피스토가 이곳에 직접 나타났다.
메피스토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자.
[지금 당신이 개입하면, 기껏 준비 중인 일이 틀어지잖아.]
아스모데우스가 인상을 찌푸리고는 마르크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으엑…… 으어어……!”
마르크는 대량의 마기가 빠져나간 영향인지, 핼쑥해진 안색으로 주저앉아 있었다.
아스모데우스가 그런 마르크를 더러운 벌레를 바라보는 표정으로 노려보고는.
[이 녀석은 아직 이용 가치가 있다. 당신도 알고 있을 텐데?]
혀를 차며 메피스토를 향해 말했다.
[살려만 두면 네 계획은 실패하지 않는다. 내 말이 틀린가? 아스모데우스.]
메피스토는 불만을 토로하는 아스모데우스를 노려보며 낮게 말했다.
[몽환의 이름을 온전히 쥐고 싶다면, 더 실수는 없어야 할 것이다.]
[큭…….]
검은 화염이 이글거리는 메피스토의 눈빛에 아스모데우스가 침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메피스토……!”
처용 역시 메피스토를 보고는 긴장감 어린 침음을 흘렸다.
회귀 전, 유일하게 죽이는 데 성공했었던 삼천마 중 하나.
그러나 유일하게 사냥에 성공했다 하여, 그가 삼천마 중 가장 약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 당시 지녔던 모든 기술과 능력을 동원했고.
-죄송합니다. 수호신 님…….
곁에 있었던 모든 동료들이 희생되어서야 겨우 그를 처치했었으니까.
끝없는 증오의 대악마, 메피스토.
그는 디아블로, 바알 못지않게 극도로 위험한 존재였다.
불과 조금 전만 해도, 처용과 루나 측의 전력이 압도적으로 우세였다.
그러나 메피스토가 나타난 순간.
-쿠구구!
신력과 기백만으로 압도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팽팽하게 변했다.
[끝없는 증오의 대악마인가?]
여래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메피스토를 응시하며 말하자.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스승님.”
처용이 경각심 어린 목소리로 답하듯 말했다.
삼천마는 주신급 성좌조차도 1:1로 이길 수 없는 존재들이다.
루나를 도우러 나선 신격들의 실력은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 상대가 삼천마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처용이 긴장감을 드러낼 때.
[……저 변종 때문에 이대로 실패를 두고 볼 바엔 차라리-.]
아스모데우스를 노려보며 압박하던 메피스토가 눈을 돌려 정면을 바라봤다.
작금의 계획을 방해하는 이들.
특히,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존재.
-스스스.
블러드 쉬르의 밖에서 가부좌를 튼 채 신력을 내뿜고 있는 처용을 눈에 담았다.
예언자만큼이나 성가신 변수를 만들어 내는 인간.
[차라리, 내 손으로 변수라도 만들어 보겠다.]
그 변수를 막아내기 위해, 메피스토는 무리해서라도 직접 이 자리에 강림했다.
[샤네.]
-스스스! 스르릉!
메피스토가 어두운 잿빛의 마기를 손아귀에 끌어모아 자신의 검을 불러내었다.
판데모니움의 문자가 새겨진 두껍고 긴 검.
곡선으로 길게 뻗은 폼멜과 양손으로 넉넉하게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긴 손잡이.
싸늘한 빛을 빛내는 잿빛 칼날의 츠바이헨더.
증오의 대악마, 메피스토를 상징하는 무구,
[증오를 내뿜어라. 샤네.]
메피스토가 양손으로 샤네를 쥐어 들어 올리자.
-스스! 화아아!
샤네의 칼날을 타고 어두운 잿빛의 마기가 작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모두 물러나! 당장!]
그 모습을 본 아스모데우스가 경고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고.
[뒤로 물러난다!]
상황을 파악한 조제군이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스륵. 샥.
그 말에 앞으로 나섰던 악신들의 좌·우로 물러나듯 뒤로 빠졌다.
[감히 나한테 명령하지-!]
아레스는 경고를 무시하고 검과 방패를 치켜들며 앞에 섰다.
아테나를 눈앞에 두고 뒤로 물러나기 싫었으니까.
그러자.
-촤르륵. 촤라락!
아레스의 손목에 은빛의 밧줄이 휘감겼고.
[이 멍청한 새끼가.]
-후욱!
아르테미스가 아레스를 향해 욕을 내뱉으며 손에 쥔 밧줄을 뒤로 잡아당겼다.
은빛 밧줄에 묶인 아레스가 아르테미스가 있는 방향으로 끌려왔다.
[너-!]
강제로 물러난 아레스가 아르테미스를 향해 인상을 찌푸리자.
[상황 좀 봐 가면서 성질을 부려라. 이 돌대가리 새끼야!]
아르테미스가 아레스를 향해 질책하듯 소리쳤다.
그때.
-샥!
잿빛의 마기를 내뿜던 메피스토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닌.
-샥. 후욱!
검을 치켜들고 앞으로 돌진해 나갔다.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질 정도의 신속함이었다.
[어딜!]
-스릉. 쏴아아!
그런 메피스토의 움직임에 반응한 해전무신이 파도를 휘감은 환도를 치켜들며 앞으로 나섰다.
메피스토가 위에서 아래로 검을 내려 베며 거리를 좁혀오자.
-쏴아아!
해전무신은 환도를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 쳐내려 했다.
“정면으로 맞서면 안 됩니다!”
메피스토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던 처용이 해전무신을 향해 소리쳤다.
[흠!]
해전무신은 처용의 경고를 허투루 넘기지 않았고.
-스르릉. 쏴아아!
파도가 휘감긴 환도의 궤적을 비틀어 비스듬하게 세웠다.
이윽고 메피스토의 샤네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사선을 그으며 내려왔고.
-차캉! 쏴아아!
그 검날이 칼날을 비스듬하게 세운 해전무신의 환도를 타고 빗겨 내려갔다.
그러자.
-촤아! 콰콰콰-!
잿빛의 마기가 폭풍처럼 폭발하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크흠.]
-촤악!
폭발하는 마기를 피해 뒤로 물러난 해전무신이 침음을 흘렸다.
동시에 오른쪽 어깨를 응시했다.
몸을 보호하는 견고한 장군복의 어깨 견갑이 너덜너덜하게 잘려 나가 있었다.
게다가. 팔목과 팔을 보호해주던 완갑도 일부분 찢겨 나갔다.
메피스토의 검격을 온전히 흘려내지 못한 결과였다.
[……위험하군.]
-스릉.
해전무신이 환도를 두 손을 쥐며 자세를 고쳐 잡고는 진지한 눈빛으로 읊조렸다.
[호오? 샤네를 흘려 냈다고?]
메피스토가 의외라는 듯 한쪽 눈썹을 올리며 작은 놀라움을 드러냈다.
샤네에 날카로운 마기를 휘감아 내려 베는 일격.
대악마 중에서도 이 한 번의 일격을 막을 수 있는 이는 드물었다.
그런데, 대신급 성좌도 아닌 자가 본인의 기량과 검술로 그 일격을 흘려보냈다.
비록 온전히 흘려내지 못한 듯 보였지만, 무려 삼천마의 일격을 막아낸 상황.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로군.]
-스스. 화아아!
메피스토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읊조리고는 샤네에 마기를 더 휘감았다.
-스릉. 샤악!
동시에 아래로 내린 칼날을 위로 올려 베며 앞으로 나아갔다.
-콰아아!
샤네가 허공을 가르고 나아갈 때마다, 마기의 폭풍이 몰아쳤다.
마치, 샤네의 검날에 폭풍이 압축되어 거칠게 휘몰아치는 듯한 모습.
해전무신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대비를 할 때.
-샥! 키잉!
은빛을 빛내는 넓고 둥근 방패, 아테나의 신물인 아이기스가 앞을 가로막았다.
-카강! 콰콰콰!
샤네의 검날이 아이기스를 타격하자, 거친 폭음이 울리며 주변이 진동했다.
[올림포스의 주신인가?]
-스스. 콰아아!
메피스토가 자신을 가로막은 이가 누구인지 알아보고는 샤네의 검날에 어두운 잿빛 마기를 더했다.
샤네에 휘감긴 어두운 폭풍이 더 거세게 휘몰아쳤고.
-까가각! 까각!
아이기스를 거칠게 밀어내기 시작했다.
아이기스와 아테나에게 둘러진 연녹색의 신력이 거칠게 깎여나가며 아테나가 뒤로 조금씩 밀려났다.
그때.
[지금이다!]
[올림포스의 주신부터 처리한다!]
다른 악신들이 메피스토가 내뿜는 마기의 폭풍을 피해 측면으로 돌진해 나갔다.
아테나가 메피스토를 정면으로 막아내는 틈을 타 좌·우로 습격할 생각이었다.
[토류부, 화염부, 낙뢰부.]
-스르륵. 훅!
그 모습을 본 여래가 세 종류의 자연부를 각각 열 장씩 지면에 흩뿌렸다.
악신들이 아테나의 지척에 다가와 그녀를 습격하기 직전.
[지폭염뢰(地爆炎雷).]
-탁! 화아!
여래가 두 손을 합장하며 옅게 신력을 흩뿌렸다.
그 순간.
-치직! 화륵!
아테나의 주변 땅 아래에 화염과 전류가 일렁이더니.
-콰콰! 화르륵! 쿠릉!
화염과 뇌전이 강렬하게 폭발하며 하늘 높게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의 중심에 있던 아테나와 그 뒤에 있던 해전무신이 있을 곳을 제외하고는.
-콰콰! 콰콰콰-!
그 외의 전방에는 땅거죽이 크게 뒤집히며 연쇄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뇌전과 화마의 폭발이 주변 전방 일대를 휘감으며 악신들을 모조리 휩쓸어 버렸다.
그때.
-샤악!
폭발 속에서 어두운 잿빛의 섬광 한 줄기가 하늘로 솟구쳤고.
-파아아! 파스스-!
뇌전과 화염의 폭발이 좌·우로 갈라지며 사그라졌다.
어두운 잿빛의 폭풍이 뇌전과 화염을 갉아내고 밀어내는 듯한 모습.
메피스토가 여래의 선술을 파훼한 순간.
-피이잉! 피이-!
두 발의 화실이 아테나를 목표로 쇄도하며 날아들었다.
각각 태양 빛과 달빛이 일렁이는 화살촉들.
기회를 노리고 있던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아테나를 노리고 한 저격이었다.
[화살이 녹슬고 역풍을 맞으며 스러지리라.]
언문이 책을 펼치며 급하게 문자의 언령을 외자.
-스스스.
아테나를 노린 두 발의 화살이 확 느려졌다.
[솟구치는 파도.]
-쏴아아! 콰아!
해전무신이 아테나의 앞에 서며 환도를 휘두르자, 파도의 벽이 솟구쳤다.
-파아! 피시시……!
태양 빛이 응축된 아폴론의 화살이 파도에 휘감겨 사그라졌고.
-콰아아! 파사사……!
뒤이어 청룡이 쏘아낸 브레스에 의해 아르테미스의 화살 역시 가루가 되며 부수어졌다.
[집요하게도 제 형제를 죽이려 드는구나, 애송이 태양신.]
해전무신이 아테나를 노린 아폴론을 향해 질책하듯 말하자.
[이 하계종이 감히-!]
한 번 해전무신에게 당한 전적이 있던 아폴론이 인상을 거칠게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시간 낭비다.]
-콰아아!
여래의 선술을 파훼한 메피스토가 마기를 끌어 올리며 읊조렸다.
-콰콰-!
주변 일대가 메피스토의 어두운 잿빛 마기에 거칠게 쓸려 나갔다.
-스릉.
다시 한번 샤네의 검날에 어두운 잿빛의 폭풍이 휘감겼다.
메피스토가 재차 검을 앞으로 내지르며 샤네를 휘둘렀고 그것을 본 이들이 긴장하며 대비할 때.
“……연결되었어, 서약자.”
루나가 미소를 지으며 읊조렸고.
-쏴아아!
그녀의 옆에 핏빛의 혈기가 모이며 붉은 게이트가 만들어졌다.
동시에.
“풍류태극검.”
-샥! 스릉.
게이트 속에서 역천의 절을 쥔 처용이 칼날을 앞으로 겨눈 채, 앞으로 돌진해 나가며 쇄도했다.
-휘이이!
역천의 절에 바람 속성이 응축된 강기가 거칠게 휘몰아쳤고.
“나선 환류!”
-스르릉!
아테나를 지나쳐 돌진해 나간 처용이 칼날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그에 맞서 메피스토의 샤네 역시 사선으로 칼날을 내리쳤다.
거친 폭풍이 휘감긴 두 칼날이 맞부딪쳤고 칼끝이 땅으로 향한 순간.
-콰아아아아-!
지면이 거칠게 파이며 사방으로 마기와 강기의 파편들이 튀어 나갔다.
나선 환류는 상대의 속성 공격을 같은 속성 공격으로 맞받아쳐 무효화시키는 기술.
처용이 메피스토의 공격을 잘 받아쳐 흘린 듯 보였지만.
“큭!”
-치이이-!
처용의 강기가 메피스토의 마기를 다 상쇄시키지 못하고 점점 밀려나고 있었다.
[이대로 짓눌러 주마.]
-쿠구구!
메피스토가 갑작스럽게 난입한 처용을 보고는 마기를 더 끌어 올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힘 싸움에서 우위를 점했으니, 이대로 밀고 나갈 생각이었다.
그때.
[선법 – 풍류태극장(風流太極掌).]
-휘이이!
여래가 두 손에 바람을 휘감으며 손바닥으로 작게 태극을 그리고는.
[반탄신장 - 풍월류(風月流).]
자리를 박차 앞으로 돌진해 나가며 오른손바닥을 앞으로 뻗었다.
은은한 바람이 휘감긴 여래의 손바닥이 메피스토의 지척에 닿은 순간.
-휘이! 파아아아!
압축된 공기가 퍼지듯, 거친 바람이 휘몰아치며 퍼져 나갔다.
그 바람이 휘몰아치는 처용의 강기에 더해져 힘을 증가시켜주는 반면에.
-까가가각!
메피스토가 일으키는 어두운 잿빛의 폭풍과는 반대 방향으로 몰아치며 그 힘을 감소시켰다.
이윽고.
-파아아……!
처용과 여래, 메피스토가 일으킨 폭풍이 한순간에 퍼지듯 사라지며 동시에 물러났다.
-촥. 스릉!
메피스토는 발을 강하게 밟아 밀려나는 몸을 고정시키고 두 손으로 쥔 샤네를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탁. 휘이이!
그에 맞서, 여래 역시 다리와 손에 바람을 휘감으며 자세를 바로잡고는 오른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어두운 잿빛의 마기가 휘감긴 샤네와 푸른 빛의 신력이 휘감긴 여래의 손이 충돌했고.
-파아아! 콰아-!
다시금 압축된 바람이 터지듯, 허공이 울리며 둘이 동시에 물러났다.
[그저 원소를 다루는 단순한 권능이 아니군.]
-스릉.
뒤로 물러난 메피스토가 샤네를 고쳐 쥐고는 진지한 눈빛을 띠며 말했다.
조금 전 여래와 처음 마주했을 때는 그를 원소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마법사로 생각했었다.
바알, 혹은 아스모데우스처럼, 태생부터 타고난 강력한 속성의 힘으로 원거리에서 전투하는 타입.
그랬기에, 힘으로 정면을 돌파하여 여래를 처치하고 다른 이들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방금 여래가 짧게 보여준 움직임은, 절대로 아스모데우스 같은 마법사라 볼 수 없었다.
자연의 원소를 활용한 근, 중, 원거리 전투 방식.
상황과 환경에 따라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이는 기술.
[과연, 저 변종의 스승인가? 까다로운 권능이군.]
메피스토가 순혈자들이 전해 준 정보 중 하나를 떠올리며 말을 잇자.
[선술은 권능이 아니다. 삼천마.]
-촤악.
여래가 찢어져 너덜거리는 오른손 옷소매 끝을 털어내며 답했다.
옷소매가 찢어지긴 했지만, 칼날과 직접 맞부딪친 손바닥은 작은 스크래치만 있을 뿐 멀쩡해 보였다.
무려 검과 맨손이 충돌했음에도 서로 대등한 힘 싸움을 보인 것.
[……그렇군, 대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
-쿠구구!
메피스토가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차갑게 빛내고는 짙은 마기를 내뿜으며 읊조렸다.
동시에.
-스륵. 스스스.
어두운 잿빛의 마기들이 메피스토 주변에 모여들며 검과 같은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런……!”
그 모습을 본 처용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며 소리 없는 긴장감을 보였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