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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522화 (522/726)

#522화

드높게 솟구쳐 오르던 검은 화염 기둥이 폭발하고 그 안에서 집행자와 처용이 막 나타났을 때.

“젠장!”

체페슈와 대치하고 있던 마르크가 폭발을 피해 뒤로 물러나며 인상을 거칠게 일그러뜨렸다.

안 그래도 전황이 좋지 않던 상황.

이런 와중에 처용이 다시 나타나 전장에 개입하면, 패배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이렇게 끝낼 수 없다. 절대로……!”

뒤로 물러난 마르크가 거칠게 이를 갈며 읊조리고는.

‘마, 마지막 기회를 주십시오! 거대한 어둠이시여!’

거대한 어둠의 대악마, 바알을 향해 경건한 목소리로 간절함을 담아 속으로 외쳤다.

그러자.

-스르륵.

마르크에게 부여된 대악마의 어둠, 짙은 마기가 꿈틀거리며 흘러나왔다.

[무능한 것.]

작금의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 있던 바알이 무감정한 목소리를 내었다.

냉정하게 판단한 결과, 이 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싸움은 패배였다.

또 계획에 ‘실패’해 버린 상황.

다시 반복된 계획의 실패로 인해, 바알의 심기는 굉장히 좋지 않은 상태였다.

[네놈을 처분한다.]

옅은 분노가 일렁이는 바알의 낮은 목소리가 울리자.

-슈르르륵!

마르크에게서 뿜어져 나온 짙은 마기가 날카로운 손톱을 치켜세운 수십 개의 손으로 변했다.

-콰드득! 콰득!

마기의 손들이 마르크를 움켜쥐어 터트릴 듯, 강하게 휘감기 시작했다.

자신의 힘을 내려받고도 이 일을 실패하게 만든 원흉.

무능한 책임자인 마르크를 처형시켜 버릴 생각이었다.

‘아, 아직 마지막 방법! 이 상황을 뒤집어 버릴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 있습니다! 거대한 어둠이시여!’

마르크는 비굴한 목소리로 바알을 향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체페슈에게 깃든 저주를 이용하면, 무조건 이깁니다!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기회를-!’

두려움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마르크게 계속 말을 이었다.

불리한 이 상황을 뒤집어버릴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드드득!

바알은 그런 마르크의 말에도 그를 죽일 생각인 듯, 어둠의 손아귀를 풀지 않고 악력을 가했다.

‘커, 커어…… 마, 마지막 기회를!’

마르크는 죽음이 문턱까지 차오르는 상황 속에서도 간절함을 담아 마지막 기회를 외쳤다.

그때.

[흐음?]

바알에게서 당황스러움이 섞인 짧은 침음이 흘러나왔고.

[……운이 좋구나.]

-파아아…….

마르크를 휘감던 어둠의 손들을 풀어 버리며 말을 이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거, 거대한 어둠이시여?”

죽음의 위기에서 겨우 벗어난 마르크가 의문과 안도를 내비친 순간.

-우웅! 쿠구구구!

마르크의 목숨을 위협하던 짙은 어둠이 거욱 거대해지며 거칠게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스스스!

거대하고 짙은 어둠 속, 그 안에서 더욱 불길한 기운이 뒤섞여 흘러나왔다.

판데모니움에서 가장 강력한 대악마의 어둠보다도 더욱 불길하고 어두운 기운.

‘드, 들은 적이 있다. 대악마들을 지배하는 가장 어두운 존재……!’

작금의 상황을 파악한 마르크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속으로 읊조렸다.

어째서 바알이 자신을 죽이려던 것을 그만두었는지.

왜 생각을 바꾸고 자신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었는지.

누가…… 바알의 생각을 바꾸도록 만들었는지.

아니, 누가 바알이 자신을 돕도록 ‘명령’했는지 알아챘다.

마르크는 그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자신에게 새로 부여된 힘을 자각했다.

그러고는.

“크, 크흐, 크흐흐! 크하하하!”

-우웅! 콰아아아!

광소를 내뿜으며 끓어 넘치는 어둠을 사방으로 내뿜었다.

“군주님, 이게 도대체 무슨?”

-스르륵.

류마와 싸우던 제나 후작이 그 모습을 보고는 마르크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제나 후작의 의문 어린 목소리가 울린 순간.

-후우욱!

마르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어둠이 날카로운 손톱을 치켜세운 손들로 변하더니.

-우드득!

제나 후작을 휘감아 강하게 쥐기 시작했다.

“구, 군주-!?”

의문과 경악을 내뱉는 제나 후작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어둠께서 허락하셨다. 나를 위해, 대의를 위해 제물이 되어라! 제나 후작.”

마르크가 광기 어린 웃음을 내뱉으며 말하고는 손아귀를 강하게 쥐었다.

-콰지직! 콰직!

어둠의 손들 사이사이로 날카로운 이빨들이 돋아나더니, 제나 후작을 갈기갈기 찢어 뜯어먹기 시작했다.

-우드득! 우득!

마르크가 제나 후작을 잡아먹자, 피부 위로 검은 갑각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으드득! 으득!

검은빛이 더 강해진, 칙칙한 빛의 혈기가 휘몰아치며, 몸이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더욱 강해지고 짙어진, 아니 더욱 사악해진 혈기가 마르크의 주변에 폭풍처럼 휘몰아치고는.

-콰아아!

하늘을 향해 휘몰아쳐 올라가며 혈기의 기둥을 만들어 내었다.

“마르크!”

-스르륵! 우우웅!

체페슈가 다급한 표정으로 마르크를 향해 다가오며 소리쳤다.

선홍빛 혈기가 체페슈에게서 뿜어져 나와 마르크의 혈기를 향해 솟구쳤다.

지금 마르크가 벌이려는 짓을 알아채고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스르륵. 스륵.

체페슈의 혈기가 마르크가 만들어 낸 혈기의 기둥에 닿아 스며들었다.

휘몰아치는 마르크의 어두운 혈기가 멈칫하며 저지되는 듯 보였으나.

“이미…… 늦었다!”

마르크가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하고는.

-파아아!

사방으로 사악한 혈기를 내뿜었다.

그 순간.

-어?

-이게 무슨?

처절하게 전투를 치르던 반역을 저지른 뱀파이어들에게서 어두운 마기가 흘러나오더니.

-뭐, 뭐냐!? 뭐에 끌려가는?

-저항할 수가 없-!

-치이이……!

마르크를 향해 강제로 이끌리듯, 끌려가기 시작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르크를 향해 끌려가는 모습.

그런 그들이 마르크의 지척에 다가온 순간.

-콰지직! 우득!

사악한 혈기에 휘감겨 온몸이 찢겨 나갔다.

믹서에 곱게 갈린 핏덩이가 되어 버린 뱀파이어들은 마르크의 혈기에 융합되듯 스며들었다.

-구, 군주!

-이게 도대체 무슨 짓!

마르크를 따르는 고위 귀족들이 경악을 내지르며 반항하듯 몸부림쳤지만.

“무능한 것들! 네놈들도 필요 없다! 전부 내 힘이 되어라!”

-푸화악! 우드드득!

마르크는 반항하는 이들을 향해 손을 뻗어 혈기로 잡아채고는 그들을 집어삼켰다.

자신을 따르는 동족들을 모두 잡아먹는 모습.

정확히 말하자면, 대악마들에게 ‘어둠의 세례’를 받고 반역에 가담한 뱀파이어들을 모두 잡아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콰아아아!

동족들을 잡아먹은 마르크의 혈기가 검은빛이 더 강해졌고 더욱 격렬하게 휘몰아쳤다.

그리고.

“칙령을 선포한다!”

마르크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뻗으며 칙령을 선포하자.

“허락할 수 없다!”

-화아아!

체페슈가 혈기를 더 강하게 내뿜으며 마르크의 칙령을 저지하려 했다.

그 순간.

“크허억!”

체페슈가 피를 토해내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 저주! 그렇군, 이것은 나에게만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상을 찌푸린 체페슈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읊조렸다.

반역이 일어나자마자 대악마들에게 걸렸던 저주.

그 저주의 진짜 정체와 목적을 알아챈 듯 보였다.

“크하하하! 밤의 성채의 주인 자리를 걸고 ‘블러드 쉬르’를 열겠노라!”

마르크가 고통스러워하는 체페슈를 보며 광소를 내지르고는 칙령을 선포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쿠구구!

밤의 성채가 짧고 굵은 울림을 토해냈다.

“네놈은 신성한 피의 혈투를 거부할 수 없다!”

“그 더러운 입으로 신성함을 입에 담지 마라! 마르크!”

마르크가 무슨 칙령을 선포했는지 알아챈 체페슈가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하하하! 이 전쟁은 내가 이겼다! 체페슈!”

고통을 참는 듯한 체페슈의 모습을 본 마르크가 승리를 확신한 광소를 내뿜었고.

“……기어코! 그 사악한 존재에게 네 영혼과 긍지까지 팔아넘겼구나!”

체페슈가 표정을 굳히며 혈기를 끌어올렸다.

그때.

“할 말 다 했냐?”

-샥!

마르크의 바로 눈앞에 처용이 나타나며 싸늘한 목소리를 흘렸고.

“절권 – 붕권(崩拳).”

-우우웅! 쐐에엑!

오른손 주먹을 강하게 쥐어 마르크의 안면을 후려쳤다.

처용의 주먹에서 강렬하게 타오르는 강기가 마르크의 안면에 닿은 순간.

-파차창! 콰아아-!

마르크를 보호하듯, 주변에 휘몰아치는 사악한 혈기가 모조리 박살 나며 폭음이 울렸다.

-후욱! 콰콰쾅!

안면을 후려 맞은 마르크가 뒤로 날아가 땅을 헤치며 바닥에 처박혔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칙령을 뚫고 나를 때리다니…… 이 무슨-.”

마르크는 처용의 공격을 제대로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후두둑.

안면에 옅은 자국만 났을 뿐, 거의 멀쩡한 모습으로 일어났다.

‘공격했음에도, 때린 것 같지 않군.’

처용은 곧장 몸을 일으키는 마르크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 공격은 제대로 들어갔다.

하지만, 마르크를 가격했던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오묘했다.

누군가를 공격한 것이 아닌, 거대한 무언가를 공격한 느낌이었다.

“블러드 쉬르가 선포된 이상, 아무리 네놈이라도 나를 ‘직접’ 공격할 수 없다!”

마르크가 생각보다 적은 피해를 받은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그 말에 처용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고는.

“……가장 강력한 칙령이라.”

조금 전 마르크가 했었던 말을 되새기며 생각했다.

마르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바알의 마기.

그리고 바알의 마기 속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기운.

가장 강력한 대악마의 마기보다도 더욱 어둡고 사악한 기운이 느껴졌다.

처용에게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적의 기운이었다.

‘……바알을 통해 크타니드가 개입했군.’

차분하게 작금의 상황을 파악한 처용이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그때.

-뭐, 뭐야?

-갑자기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이변이 일어난 듯, 헌터들의 당황 서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뇌호의 격노!”

-파지지직! 콰쾅!

백호가 자신을 가로막던 상급 마인에게 강기를 모아 너클로 후려쳤다.

상급 마인은 이미 부상이 심각한 상황.

그런 와중에 가해져 오는 백호의 주먹은 마무리 일격이나 다름 없었다.

백호의 주먹이 상급 마인을 제대로 가격한 순간.

-콰쾅! 파지지직!

뇌전이 폭발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줄기줄기 뻗어 나갔다.

제 아무리 상급 마인이라 해도, 절대로 살아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으윽……!?”

폭발의 여파가 걷히자, 멀쩡한 모습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는 상급 마인의 모습이 보였다.

강력한 무언가가 상급 마인을 보호해주는 듯한 모습.

비단 백호 뿐 아니라.

“뭐야? 이거!”

-촤자작! 촤작!

진호의 쌍검에 무자비하게 베인 마인과 몬스터들이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았고.

“뭐지?”

“갑자기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헌터들 역시 의문을 드러내며 잠시 뒤로 물러났다.

공격이 통하지 않는 이들은 마인들만이 아니었다.

-쾅! 쿠궁!

마기의 폭발에 얻어맞은 커맨더의 안드로이드들 역시 멀쩡했고.

-콰직! 으득!

기회를 틈타 헌터들을 향해 이빨과 발톱을 휘두른 마수들과 몬스터들의 공격 역시 무효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런 피해를 가할 수 없는 상황.

“망할 휴전인가 뭔가 하는 그걸 또 쓴 거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연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읊조리는 말에 연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피의 혈투를 치를 자 외에는 아무도 서로를 공격할 수 없-!”

마르크의 입에서 환희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

“지랄.”

-샥!

처용이 마르크의 말을 끊으며 돌진해 나감과 동시에.

-스르릉!

아공간에서 차륜 도끼를 꺼내 두 손으로 쥐었다.

“차륜격. 만근격.”

-화륵! 콰아아!

도끼날에 새하얀 화염이 타올라 휘몰아쳤고 거기에 강기까지 더해졌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쳐부숴라. 파천!”

-스르륵.

신력을 부여해 멸천의 권능 중 하나.

법칙을 쳐부수는 파천의 힘까지 더했다.

-후우욱! 콰쾅!

강렬한 기운들이 뒤섞여 일렁이는 차륜 도끼가 마르크의 가슴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크하아아악!?”

-콰콰콰! 쿠궁!

백염과 강기가 폭발하고 마르크가 괴성을 내지르며 땅에 처박혔다.

악신의 화신체라 해도 직격당하면 소멸을 면치 못하는 공격.

그러나.

“커윽! 크허억!?”

가슴에 도끼날 자국이 새겨진 마르크가 고통을 지르며 다시 일어섰다.

“네놈이라 해도…… 이 절대적인 칙령을 완전히 뚫지는 못하는구나.”

다시 일어선 마르크가 옅은 미소를 흘리며 읊조리자.

-츠즈즈.

마르크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네 녀석이 아무리 밤의 칙령을 일부 파괴할 수 있다고 해도, 가장 강력한 칙령만큼은-!”

“그래? 그럼 버텨 보든가.”

-스릉. 콰아아아!

이어지는 마르크의 말을 자른 처용이 다시 도끼를 치켜들고는 강렬한 강기와 신력을 휘감았다.

동시에.

-콰쾅!

마르크의 머리를 쪼개버릴 기새로 도끼를 내려쳤다.

그럼에도.

“크헉? 소용없…….”

머리에 도끼날이 박힌 체 바닥에 처박힌 마르크가 옅은 미소를 흘리며 읊조렸다.

처용은 그런 마르크를 향해 씨익 미소를 보이고는.

“방금 공격을 한 ‘천 번’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스릉.

다시 도끼를 치켜들며 말을 이었다.

“……!”

그런 처용의 말에 마르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999번 남았다. 이 개새끼야.”

도끼를 치켜든 처용의 말이 끝난 순간.

-콰콰콰! 콰콰!

처용이 파천의 힘을 응축시켜 다시금 마르크를 향해 도끼질을 시작했다.

-쾅!

차륜 도끼가 마르크를 열 번 정도 내려친 순간.

-쩌저저저저적!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고 밤하늘에 새하얀 균열이 번져나갔다.

-콰쾅!

그 모습을 본 처용이 미소를 짓고는 다시 마르크를 향해 도끼를 내려친 순간.

“크허억! 크헉!”

체페슈가 피를 크게 게워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갑작스럽게 체페슈가 이변을 보이자 처용이 잠시 공격을 멈추었다.

“머, 멈추지 마시오!”

고개를 든 체페슈가 처용을 향해 소리쳤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 사악한 놈을 없애야 하오!”

“…….”

이어지는 체페슈의 말에 처용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는.

-콰쾅!

다시 마르크를 향해 도끼를 내려쳤다.

그러자.

“큭……!”

체페슈의 몸이 공격이라도 받은 듯 움찔거렸다.

처용은 그 모습을 자세히 확인하고는.

-콰쾅!

재차 마르크를 향해 파천의 힘을 담아 도끼를 내리쳤다.

동시에.

-스르륵.

두 눈에 신력을 담아 통찰의 눈을 사용했다.

마르크를 공격함과 동시에, 주변을 면밀히 살피듯 관찰하는 모습.

그런 처용의 두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르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오염된 혈기와 그 혈기가 닿은 하늘.

하늘 위에서 밤의 성채 전체로 뻗어 나가는 오염된 혈기의 줄기들이 보였다.

시선을 조금 더 돌리자.

-스르륵. 스륵.

체페슈에게서 뿜어져 나온 혈기의 줄기가 밤의 성채 전체에 뻗어 나간 것도 보였다.

아마도, 군주인 체페슈가 밤의 성채에 가하는 ‘영향력’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군주의 영향력을 없애는 게 아니라, 동화시키고 있다?’

마르크의 혈기가 체페슈의 혈기를 없애는 것이 아닌, 휘감으며 오염시키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군주인 체페슈가 밤의 성채에 가하는 영향력을 강탈하는 것 같았다.

그나마.

-스스스.

체페슈에게서 새로 뻗어 나오는 혈기의 줄기가 오염된 혈기의 줄기를 밀어내는 것도 보였다.

마르크가 밤의 성채를 장악하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려는 듯한 모습.

그리고 파천의 힘이 담긴 처용의 도끼가 마르크를 가격한 순간.

-쿠구! 쩌저적!

밤의 성채를 감싼 마르크의 혈기가 영향을 받은 듯, 갈라지며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고.

-쩌저적!

마찬가지로, 체페슈의 혈기 역시 영향을 받은 모습을 보였다.

양측 다 타격을 받은 듯 보였지만.

-스르르륵.

마르크의 오염된 혈기가, 더 빠르게 재생하며 채패슈의 혈기가 있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보였다.

‘……마르크의 혈기가 성채를 완전히 감싸거나, 혹은 ‘군주’가 죽게 된다면?’

작금의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한 처용이 속으로 생각하며 읊조렸다.

동시에.

“크흐흐…….”

희미하게 미소를 흘리는 마르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처용이 그 모습을 보고는.

“……이 씨발 새끼,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

-쾅!

마르크의 가슴을 거칠게 발로 차 밀어내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크흐흐, 알아챘다고 하여, 네놈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뒤로 밀려난 마르크가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지금의 넌 나를 이길 수 없다. 체페슈!”

마르크가 노려보며 소리치는 대상은 자신을 공격한 처용이 아니었다.

바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뱀파이어 군주, 체페슈였다.

마치, 처음부터 그를 노렸다는 듯한 모습.

마르크의 말이 끝난 순간.

-콰아아아!

완전히 시커멓게 오염된 혈기가 뻗어 나가 밤의 성채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젠…… 장.”

체페슈가 몸을 일으키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침음을 흘렸다.

마치 앞으로 벌어질 일을 눈치채고 대비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화아아!

밤의 성채 전체로 퍼져 나간 혈기가 나선으로 휘몰아치며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혈기의 폭풍이 향하는 방향은 바로 마크르와 체페슈가 있는 방향.

“블러드 쉬르에서 네놈을 찢어발기고 이 세계의 신이 될 것이다!”

-콰아아!

혈기의 폭풍에 휘감긴 마르크가 체페슈를 향해 환희를 내지르며 소리쳤다.

-화아아!

체페슈에게도 혈기의 폭풍이 다가오며 그를 휘감으려 했다.

그때.

-우웅! 콱!

루나가 혈기를 내뿜으며 체페슈의 옆에 나타나 그의 팔을 잡아챘다.

“루나리스?”

체페슈가 의문을 내뱉었고.

“블러드 쉬르의 자격을 양도받겠습니다.”

-우웅! 콰아아!

루나가 체페슈를 향해 작은 미소를 보이며 읊조리고는 손아귀에 혈기를 모아 체페슈를 밀어내었다.

체페슈가 루나에게 밀려나 그 자리를 벗어난 순간.

-화아아!

혈기의 폭풍이 체페슈 대신 루나를 휘감았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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