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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515화 (515/726)

#515화

-파사삭…….

아스모데우스의 화신체가 반으로 갈라지며 사그라지자.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사용하던 법칙의 힘과 비슷했어.”

“비슷한 게 아니라, 더 위 같은데? 우리 공격도 안 통했으니까.”

연화와 연아가 먼지처럼 흩날리는 아스모데우스의 화신체를 보며 말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대악마의 화신체에게는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뱀파이어 군주의 공격도, 신성력과 강기를 휘감은 공격 또한 통하지 않았다.

언뜻 봐서는, ‘법칙’이라는 괴상한 힘을 다루는 이들, 드래곤 슬레이어들의 힘과 비슷한 부류로 보였다.

아니, 그들은 의지가 담긴 마나, 강기로 벨 수 있었던 반면, 대악마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보다 상위의 능력, 아니 권능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때린 거야?”

처용의 공격은 통했다.

오만과 비웃음을 내던지는 대악마의 따귀를 때려 날려 버리고 짓밟기까지 했다.

연아가 의문을 담아 묻자.

“어떻게…… 칙령을 무시하고 그 간악한 대악마를 공격한 것이오?”

체페슈 역시 의문과 경악을 읊조리며 물었다.

처용은 그런 이들의 질문에.

“내 신명.”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권능을 파괴하는 권능…….”

연화가 처용의 대답에 ‘멸천’의 신명이 지닌 권능을 생각하며 읊조리고는.

“그 과정과 힘이 전부 이해되진 않지만, 대악마의 권능을 부쉈구나.”

나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세계 내에 적용된 ‘칙령’을 일부분만 부수었지.”

처용이 그런 연화의 대답에 정답이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누구도 서로를 공격할 수 없다. 이 칙령에서 ‘내 공격’만 벗어나도록 만들었어.”

이곳, 밤의 성채는 뱀파이어들이 살아가는 거대한 성지였다.

이 밤의 세계 내에서는 본래 주인인 밤의 군주, 체페슈와 반역자인 마르크가 전쟁 중이었다.

바로 성지쟁탈전에서 승리한 자가 성지의 주인이 되는 전쟁.

지금은 체페슈와 마르크가 이 성지의 권한을 절반씩 나눠 갖고 있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은 본래 주인인 체페슈가 우위에 있었다.

다만, 반역자인 마르크 측에는 그를 돕는 대악마들이 힘을 보태 주는 상황.

힘의 균형이 체페슈의 유리함에서 점점 팽팽한 분위기로 바뀌었고 점점 체페슈가 불리해지기 시작했다.

마르크를 돕는 대악마들이 그들의 영향력을 점점 넓힌 결과였다.

게다가 대악마를 섬기는 일족의 배신자들과 그런 대악마를 따르는 타락한 인간들까지.

내전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체페슈가 점점 불리해지고 있었다.

방금 선포된 칙령은 마르크와 대악마들이 힘을 합쳐 이 성지의 기능 중 하나를 발동한 것이었다.

한 번 칙령이 발동하면, 이 성지 안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이 그 칙령을 따라야 했다.

게다가 칙령에 적용되는 힘은 그저 단순한 힘이 아닌, 이 성지를 구축한 존재.

진정한 밤의 마신, ‘꿈의 종주’의 힘이었다.

군주라고 해도 함부로 거스를 수 없는 권능.

그런데.

“이해할 수가 없소.”

그런 드높은 존재의 권능을 처용이 파괴했다?

체페슈는 아무리 처용이 강하다 해도, 불가능하다 생각했다.

그런 체페슈의 의문에.

“제가 이 성지와 반쯤 친숙하다고 해야 할까요?”

-스스스.

처용이 작은 미소를 흘리며 어두운 기운을 흘렸다.

작은 별빛이 소수 빛나고 있는 칠흑 같은 어둠.

그 힘을 옅게 방출하자.

“이, 이 기운은!?”

체페슈가 두 눈을 크게 뜨며 경악을 드러냈다.

은은하게 빛나는 별빛들을 머금은 짙은 어둠.

마치, 고개를 들어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듯했다.

이런 아름다운 어둠을 지닌 존재는 이 우주에서 단 한 명뿐.

이곳, 밤의 성채라는 성지를 창조한 진짜 밤의 마신, 니알라 - 크타니드 뿐이었다.

그런 밤의 마신만이 지닌 기운을 처용이 내뿜었다?

“그대가…… 그대가 ‘꿈의 사도’였소?”

그렇다면, 밤의 마신 본인이거나, 그 존재가 선택한 단 하나뿐인 존재라는 의미였다.

“아, 그건 오해입니다.”

처용은 꿈의 사도가 니알라의 신관을 뜻하는 말임을 알아듣고는 오해라 정정했다.

“진짜 꿈의 사도…… 그러니까 니알라 님의 신관은 따로 있습니다.”

니알라의 신관은 ‘닥터’라 불렸던 전 S급 마인, 백병원.

데미갓 프로젝트의 생존자 중 하나인 하워드 백 르블랑이었으니까.

“……그분의 신관이 따로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소.”

체페슈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되묻듯 말하자.

“제가 니알라 님의 신력을 받은 건, 나름대로 협력 관계라는 증거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

처용은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고, 니알라에게 협력을 받는 대가로 그녀의 힘을 받았다 설명했다.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는 생각만이 드는군.”

체페슈가 처용의 말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납득했다는 듯 말했다.

처용이 모든 사정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이 밤의 군주라 해도, 처용의 사정을 꼬치꼬치 캐물을 자격이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처용의 사정보다도 중요한 사실들은 따로 있었다.

처용이 진짜 밤의 마신에게 힘을 부여받은 존재라는 것.

그런 그가 이곳, 밤의 성채를 집어삼키려는 대악마와 적이라는 것.

이곳에서 분투하는 자신과 밤의 일족을 도와주기 위해 왔다는 것.

마지막으로…… 루나의 서약자라는 것.

처용은 믿을 수 있는 ‘아군’이라는 사실, 이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이 거지 같은 칙령인가 뭔가를 완전히 부술 순 없어?”

이야기를 듣던 연아가 하늘 위를 바라보고는 짜증이 서린 목소리로 처용에게 물었다.

“나도 그 거지 같은 대악마 뺨이나 후려치고 싶은데?”

연아가 방금 전, 처용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속이 시원했다는 말을 덧붙이며 말하자.

“흐음.”

처용이 하늘 위를 관찰하듯 바라보며 침음을 흘렸다.

지금 하늘 위에는.

-스르르…….

검보랏빛의 안개가 검은 밤하늘 사이사이에 옅게 일렁이고 있었다.

처음 밤의 성채에 방문했을 때는 없었던 현상.

하늘을 덮은 검보랏빛의 기운이 바로 밤의 성채에 새로이 추가된 ‘칙령’이었다.

“칙령의 주체를 파괴한다라…… 한번 해 볼까?”

처용이 연아의 말을 곱씹듯 읊조리고는 오른손을 하늘 위로 뻗었다.

-우웅. 우드드!

신력이 일렁이는 처용의 오른손이 하늘을 쥐어 잡듯, 악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신력이 둘러진 손아귀 감각에, 밤의 세계 하늘 전체가 잡힌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멸천의 신, 법칙을 파괴하는 자의 이름으로 명한다.”

-우드득! 우드!

처용이 손아귀의 악력을 더 높이며 말하자.

-……쩌적.

무언가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손아귀에 느껴지는 ‘하늘’에 미세한 금이 갔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쳐부숴라. 파천.”

-우우웅!

처용이 멸쳔의 권능 중 하나, 파천을 발동하며 신력을 강하게 끌어올리자.

-쩍. 쩌적! 쩍!

검보랏빛이 일렁이는 밤파늘에 미세하고 하얀 금이 새겨지더니, 점점 번져 나갔다.

“이대로 몇 번 반복하면, 정말로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은-.”

하늘의 상태를 확인한 처용이 손아귀의 힘을 유지하며 말했다.

밤의 성채에 퍼진 ‘칙령’을 단번에 부수기에는 불가능하다 판단했다.

그러나 꾸준히 파천의 권능을 사용한다면, 무너뜨릴 수 있다 판단했다.

이는 권능을 연습하기 위한 기회로도 나쁘지 않았다.

결심이 선 처용이 손아귀에 뭉친 신력을 더 끌어 올리며 말한 순간.

“크허……!”

체페슈가 고통 어린 신음을 내뱉고는 반쯤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갑작스러운 군주의 이변에.

“구, 군주님!?”

“무슨 일이십니까!”

스테판과 카이덴 등, 그의 측근들이 경악과 걱정을 드러냈고.

“이런…… 그런 것이었나?”

쓰러지는 군주의 모습을 본 처용이 인상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동시에.

-스르륵.

오른손의 악력을 풀며 신력을 거두었다.

“서약자.”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루나와 연아가 작금 일어난 일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처용에게 설명을 요구하듯 질문했다.

다른 이들 역시 처용의 대답을 기다리듯, 그를 바라봤다.

“……왜 저를 말리지 않았습니까?”

처용은 의문을 표하는 이들의 말과 시선에 답하지 않고 체페슈를 향해 물었다.

이 성지에 퍼진 칙령을 부수기 위해 처용이 파천을 사용한 순간.

뱀파이어 군주가 고통을 받으며 쓰러졌다.

그 이유는 군주인 체페슈가 이 성지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서로 생명력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었다.

뱀파이어 군주가 죽으면, 이 성지에 치명적인 타격이 전해진다.

마찬가지로, 이 성지가 파괴되면, 뱀파이어 군주 역시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다.

이 사실을 알아챈 처용이 뱀파이어 군주를 향해 물은 것이었다.

체페슈는 처용의 권능으로 자신이 다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체페슈는 처용을 말리지 않은 상황.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소.”

반쯤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던 군주가 처용의 질문에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군주이자 밤의 성채의 관리자요. 난 이곳 성지와 영혼이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소.”

체페슈는 어째서 자신이 처용의 권능에 의해 피해를 받았는지 이야기하고는.

“그리고…… 나와 이 성지를 놓고 전쟁 중인 마크르 역시 마찬가지요.”

피해를 받은 이는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이 칙령을 만든 주체가 마르크이니만큼, 그가 나보다 더 큰 피해를 받았을 것이오.”

체페슈가 말한 좋은 소식은 바로 자신보다도 마르크가 더 큰 피해를 받았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녀석이 피해를 받고 쓰러졌을 때를 노려야겠군요.”

처용은 체페슈의 말을 듣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했다.

체페슈는 나름 기회를 만든 것이었다.

조금 전 분위기를 봐서, 처용은 곧 적들의 진영에 직접적으로 쳐들어갈 생각인 듯 보였다.

그런 와중에 적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인물, 마르크 공작이 큰 피해를 받고 쓰러졌다?

이는 공격을 하는 처용의 입장에서 나름대로 기회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만, 처용은 이 기회를 노리고 공격을 하러 가기 전.

“그 전에, 군주께서 허가를 해 줘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웅.

태룡전의 열쇠를 꺼내 보이고는 체페슈를 향해 말했다.

[태룡전의 열쇠에 성역, 밤의 성채를 등록합니다.]

[성지의 관리자, 밤의 군주에게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처용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밤의 성채는 군주인 체페슈가 다스리는 어둠의 성지.

태룡전의 열쇠에 이 성지의 좌표를 등록하기 위해선, 군주의 그의 허락이 필요했다.

처용의 질문에, 체페슈가 그의 손에 들인 태룡전의 열쇠와 하늘 위를 번갈아 바라보고는.

“흐음.”

이내, 잠시 눈을 감으며 집중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외부의 힘이 성지로 진입하려 하는 느낌이 전해졌다.

처용의 말은, 그 외부의 힘이 이 성지에 정착하는 것을 뜻했다.

“허가한다.”

뱀파이어 군주, 체페슈가 눈을 뜨고는 처용의 말에 답하듯, 허가한다고 말하자.

[태룡전의 열쇠가 밤의 성채를 등록합니다.]

[제약되어 있던 열쇠의 기능들 대부분이 해제됩니다.]

태룡전의 열쇠의 제약이 풀렸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처용은 이곳, 밤의 성채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태룡전의 열쇠가 가진 기능 중 일부가 제약됩니다.]

태룡전의 열쇠가 지닌 능력 중 일부에 제약이 걸렸다.

대표적으로는 게이트를 만들어 내는 능력에 제약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 성지의 주인에게 열쇠의 사용을 허락받자, 제약이 풀렸다.

“위험에 대한 대비는 철저하면 철저할수록, 좋으니까요.”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장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이 발생할지는 모르는 법.

처용은 마르크를 죽이러 이동하기 전에, 나름 보험을 준비해 놓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

동쪽에 자리한 밤의 성채와는 다른, 서쪽에 자리한 밤의 성채.

마르크의 거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또 다른 밤의 성채.

-……피이이!

그런 성채를 향해 샛노랗게 타오르는 유성 하나가 동쪽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이윽고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유성.

“천마신공-.”

전신에 강기를 휘감은 처용이 손에 쥔 거대 해머를 움켜쥐었다.

이내,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처용이 서쪽의 성채, 지상의 땅을 향해 가까워졌고.

“유성대진타(流星大震打)!”

-후우우욱!

날아오는 속도의 힘을 그대로 실어, 해머를 내질렀다.

강렬한 중력의 힘과 강기가 서린 해머의 머리가 땅에 닿은 순간.

-쿵! 쿠콰콰콰콰!!

서쪽에 자리한 밤의 성채 전 지역이 지진을 맞은 듯, 맹렬한 기세로 흔들렸다.

-쿠구구! 쿠구!

성채를 구성하는 건축물들, 망루, 성벽 등이 처참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 무슨 일이야!? 어떻게 된 거야!

-역천군주다! 놈이 쳐들어왔다!

서쪽의 성채에 있는 모든 이들이, 갑작스러운 처용의 공격의 혼란을 드러낼 때.

“……예상대로군.”

그런 이들과는 다른, 마치 작금의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이.

-스릉.

집행자가 자신의 도끼를 움켜쥐며 앉아 있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준비되었습니다. 무한한 공포의 대악마시여.”

-우우웅.

검게 타오르는 마기를 스멀스멀 내뿜은 집행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그의 말에, 집행자의 위로 검을 화염처럼 타오르는 마기가 크게 솟구치더니.

-드디어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되었구나!

디아블로의 형상을 그려내며, 기대감 가득한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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