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화
밤의 성채 본성으로 향하는 문이 크게 열리고.
-저벅.
초대를 받은 외부인들이 일제히 성채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앞장서는 루나를 따라 일행들이 쭉 앞으로 나아갔다.
가는 길에 몇몇 뱀파이어들을 마주쳤지만.
“…….”
“…….”
그들은 앞장서 나아가는 루나에게 다가오지 않고 자리를 피하는 등 경계 어린 모습을 보였다.
루나는 주변의 반응을 모두 무시한 채,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검은 벽돌로 이루어진, 유럽풍의 복도와 창문이 쭉 이어진 끝에.
-끼이이……!
복도의 끝을 알리는 듯, 거대한 문이 드러났고 저절로 그 문이 열렸다.
높은 천장 위를 빛내고 있는 샹들리에.
검고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외벽과 그 위로 장식된 목제 인테리어.
문이 열린 입구부터 앞으로 쭉 이어진, 붉은색의 길고 넓은 카펫.
웅장하기보다는, 세련된 느낌이 살아 있는 공동이 펼쳐졌다.
-저벅.
루나가 레드 카펫을 앞장서 밟으며 공동에 들어섰다.
그런 레드 카펫의 주변으로는.
“…….”
“…….”
고위 귀족 계급의 뱀파이어들이 루나와 함께 들어선 이들을 향해 경계 어린 눈빛을 띠고 있었다.
이윽고 루나의 발걸음이 멈추었고.
“다녀왔습니다. 군주님.”
고개를 살짝 들어 앞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동공의 끝, 루나의 시선이 닿은 방향.
그곳에는 다섯 계단 정도 높이 위에 단 하나뿐인 붉은 왕좌가 놓여 있었다.
그런 붉은 왕좌 위에서 루나의 시선과 마주친 존재.
붉은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연미복과 멋들어진 수염이 돋보이는 중년 남성.
“설마 했는데…….”
아니, 중년 남성이라기엔 젊은 인상이 더 강한 남자.
뱀파이어 군주인 체페슈가 입을 열었다.
루나처럼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무심한 듯한 모습이었지만.
“정말로 무사히 살아 돌아왔구나.”
그 목소리에는 옅은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군주님의 ‘블러드 라인’을 통해서 제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셨을 텐데요?”
루나가 태연한 목소리로 뱀파이어 군주의 권능을 언급하며 묻자.
“나는 네가 무사하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지…….”
뱀파이어 군주, 체페슈가 어두운 목소리로 자신의 주변을 조금 둘러보며 읊조리듯 말했다.
본래, 뱀파이어 군주의 곁에는 직계 왕족의 대표들이 서 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군주의 곁에 선 이는.
“…….”
곱슬기가 있는 금발 머리의 젊은 남자 하나만이 자리해 있었다.
그가 굳은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며 루나를 바라보자, 루나가 그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주변의 귀족들을 잠시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와 제2왕족 파벌을 제외한 다른 파벌들은 모두 죽었거나…… 배신했군요.”
침묵을 깬 루나가 작금의 상황을 파악하며 입을 열었다.
“살아남아서 다행이군요. 블라디미르 로 카이덴.”
루나가 아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배다른 제 가족.
카이덴 왕자를 응시하며 말했다.
“루나리스…….”
루나의 감정 없는 안부 인사에 카이덴이 인상을 살짝 일그러뜨리고는 복잡한 심정을 담아 읊조렸다.
그때.
“루나리스 왕녀.”
뱀파이어 군주, 체페슈의 오른쪽에 서 있는 카이덴 왕자.
그와 가까운 곳에 서 있던 귀족 뱀파이어가 앞으로 한 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외부에 있다 보니, 왕가의 예절을 잊어 버렸나 보군요?”
권위적인 느낌이 물씬 전해지는 낮고 중후한 목소리에.
“클레이먼 백작.”
루나가 차가운 눈빛으로 앞으로 나선 귀족을 노려보며 읊조렸다.
그 말에 앞으로 나선 귀족, 클레이먼 백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는.
“지금 감히 서서 군주님과 왕자님을 마주하는 겁니까?”
언성을 높이며 말을 이었다.
“네놈들은 당장 군주님 앞에 부복하지 않고 뭣 하는 것이냐!?”
클레이먼 백작이 루나의 뒤에 있는 이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며 소리쳤다.
그러자 근처에 있는 귀족들이 동조하는 듯한 분위기를 보였다.
그런 귀족들의 태도에 류마를 포함한 뱀파이어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루나를 깔보는 듯한 귀족들의 시선과 언성이 처용과 다른 이들에게도 향하자.
“좀, 시끄러운데.”
처용이 코웃음을 치고는 루나의 옆에 서며 입을 열었다.
귀를 후비며 앞으로 나선 처용의 태도에.
“어디서 인간 따위가!”
“하등한 종족이 어딜 나서느냐!?”
클레이먼 백작을 포함한 귀족들이 언성을 높이며 소리쳤다.
처용은 그런 귀족들의 권위적인 태도에 짙은 미소를 짓고는.
“반만 죽여 버리면 좀 조용해지려나?”
-스스스…… 쿠구구!
강기와 신력을 위협적으로 내뿜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읊조렸다.
처용에게서 파동처럼 뿜어져 나온 기운이 주변을 무겁게 짓누르며 지나가자.
“으……!”
“도, 동쪽의 마신.”
그 기세에 짓눌린 이들이 처용의 이명을 읊조리며 주춤거렸다.
“나에 대해 알고 있는데도 적의를 드러낸다라…….”
처용은 그런 주변의 반응을 쓱 둘러보며 한숨 어린 비웃음을 흘리고는.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하지 그러냐?”
이내 웃음을 싹 지운 채, 차가운 목소리로 살기를 담아 읊조렸다.
그때.
“서약자가 나설 필요 없어.”
루나가 굳은 표정으로 주변의 귀족들을 쏘아보며 앞으로 한 발 나아갔다.
동시에.
“건방지게 구는 놈들은…… 내가 직접 조질 테니까.”
-우웅! 화아아!
혈기를 끌어 올리고는 조금 전 언성을 높였던 귀족, 클레이먼 백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슈화아아! 쾅! 우드드!
루나에게서 뿜어져 나온 혈기가 거대한 손으로 변하며 클레이먼 백작을 잡아채듯 움켜쥐었고.
“크어억!?”
순식간에 루나의 혈기에 붙잡힌 클레이먼 백작이 괴로움을 호소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 모습을 본 주변의 다른 귀족들이 어둠을 내뿜으며 적의를 드러내자.
“감히, 내 서약자에게 함부로 대하다니.”
-쿠구구!
루나가 혈기의 기운을 더 끌어 올리고는 주변 일대를 핏빛으로 휘감으며 말했다.
“왕가의 예의를 말아먹고 건방지게 구는 놈들은 네놈들이 아닌가?”
차가운 분노를 읊조리는 루나의 말이 밤의 성채를 울리며 크게 퍼져 나갔고.
-쿠구! 화아아!
핏빛의 세계, 루나의 혈옥이 주변 일대를 장악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핏빛의 폭포가 역으로 솟구쳐 오르는 넓고 광활한 피의 세계가 펼쳐지자.
“……이건.”
지금껏 표정 변화가 없던 뱀파이어 군주, 체페슈의 눈이 조금씩 커지며 놀라움이 드러났다.
루나는 경악과 경계심, 놀라움을 드러내는 주변의 반응을 무시하고는.
“이 자리에서 내가 네놈을 즉결 처분해도 할 말 없겠지?”
혈기로 붙잡은 클레이먼 백작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루나의 입에서 즉결 처분이라는 강경한 말이 흘러나오자.
“왕녀!”
“제정신이 아니구나!”
-스륵. 샥!
절반가량의 귀족들이 루나를 향해 적의를 들어내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스륵. 샥.
루나를 따르는 뱀파이어들이 루나의 옆에 서며 적의를 드러냈다.
동시에.
-샥! 피이이-!
앞으로 나선 귀족들의 주변으로 검은 철선이 솟구치더니.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네놈들을 모두 조각내 주겠다.”
-키잉.
검은 철선이 뭉쳐진 실타래를 쥔 류마가 살기 어린 목소리를 흘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을 본 귀족들이 경악을 보이며 인상을 일그러뜨렸고.
“류마……?”
뱀파이어 군주, 체페슈 또한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흘렸다.
“죄송합니다.”
류마는 자신이 모시던 주군을 향해 작게 고개를 숙이고는.
“저는, 아니 저희는 왕녀님과 ‘은인’을 따르기로 맹세했습니다.”
자신이 누구를 따르기로 맹세했는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말에 동의하듯, 세피아를 포함한 루나의 옆과 뒤에 선 뱀파이어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스스스……!
루나의 곁에 선 뱀파이어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기운이 귀족들의 기운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대들의 눈에는, 아직도 내가 나약하기만 했던 왕녀로 보이는가?”
주변을 장악한, 거대하고 웅장하게 느껴지는 혈기의 주인.
루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주변을 쓱 둘러보며 말했다.
“구, 군주님.”
위협을 느낀 귀족 중 일부가 뱀파이어 군주를 부르며 그의 눈치를 보았다.
“하, 도발은 자기들이 해놓고 감당이 안 될 것 같으니, 군주에게 떠넘기는 거냐?”
처용이 그런 귀족들의 태도를 비웃으며 짧고 굵은 비웃음을 내뱉었다.
“이딴 새끼들이 고귀한 밤의 일족이라고? 실망이 큰데…….”
비웃음 어린 처용의 말에 귀족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귀족들이 작금의 상황에 분개한다고 해도.
“큭……!”
“제길.”
그 분노를 참는 것 외에는 별수가 없었다.
답답하고도 위기일발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을 때.
“루나.”
-탁.
처용의 뒤에 있던 루세핀이 루나의 어깨를 잡으며 그녀를 불렀다.
동시에.
“군주님 아니, 체페슈.”
작금의 상황을 지켜보던 뱀파이어 군주, 체페슈를 올려다보며 그를 불렀다.
체페슈가 루세핀의 부름에 그녀를 응시하자.
“이번에도 그저 방관하기만 한다면, 정말로 루나와 함께 영원히 떠나 버릴 거랍니다?”
루세핀이 체페슈를 향해 웃는 얼굴로 웃지 못할 말을 담아 전했다.
그 말에 체페슈의 한쪽 눈썹이 조금 일그러졌고.
“모두 뒤로 물러나라.”
아주 짧은 시간 침묵하고 고민한 끝에 입을 열었다.
물러나라는 체페슈의 말에.
“군주!”
“왕녀의 행패를! 저들을 두고만 볼 생각입니까!?”
귀족들이 반발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적당히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체페슈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를 담아 말했다.
그 말에 귀족들이 인상을 일그러뜨리고는 뒤로 물러났다.
“여기까지 하지 않겠소? 동쪽의 마신이여.”
물러난 귀족들을 본 체페슈가 처용을 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모두 물러나.”
처용이 체페슈의 말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알겠습니다.”
-스르륵. 촤라락.
류마가 주변에 펼친 검은 선, 암철을 거두며 뒤로 물러났고.
“운 좋은 줄 알아.”
-슈화악. 파아……!
루나 역시 주변에 퍼트린 혈기를 끌어모으고는 혈옥을 해제하며 읊조렸다.
“성격이 많이 드세졌구나.”
체페슈가 차가운 표정으로 귀족들을 노려보는 루나를 바라보며 묻자.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해야 할까요.”
루나가 체페슈의 말에 능청스러운 분위기로 대답했다.
그 말에.
“그것이 전부만은 아닌 것 같다만…….”
체페슈가 루나에게서 처용으로 시선을 옮기며 읊조리듯 말했다.
루나는 왕족 중에서도 유독 매사에 흥미가 없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었다.
귀족들이 서로 알력 다툼을 벌이던, 자신에게 시비를 걸던 무시로 일관했었다.
그랬던 루나가 반란으로 인해 밤의 성채를 벗어났다 돌아오자.
-왕가의 예의를 말아먹고 건방지게 구는 놈들은 네놈들이 아닌가?
고위 귀족들의 태도를 거침없이 비난하고 지적하며 ‘분노’라는 감정을 드러냈다.
게다가 조금 전 보였던 강렬하고도 무겁게 느껴졌던 혈기까지.
루나는 이전과는 완전히 변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루나에게 그런 변화를 가져다준 이로 보이는 존재.
“설마, 루나의 서약자가 동쪽의 마신이었을 줄은 전혀 생각조차 못 했소.”
체페슈가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만?”
처용은 뱀파이어 군주가 자신에 대해 알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대가 이곳에 도달했을 때, 루세핀을 통해서 처음 들었소.”
체페슈는 루세핀이 처용에 대해 말해주기 전까지,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나갈 수 없고 저 반역자들과 숱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으니까.”
그는 밤의 성채에 반역이 일어났을 때부터, 이곳을 벗어나지 않고 전쟁을 이어왔다.
때문에,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대피하여 흩어진 왕족을 직접 찾아 나서고 싶었지만.
“이곳을 빼앗기면…… 밤의 일족은 대악마의 노예로 전락하오.”
밤의 성채를 반역자들에게 빼앗기면, 흩어진 이들이 돌아올 장소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결국, 체페슈는 이곳을 지키며 반역자들에게 대항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흐음…….”
작금의 사정을 설명하는 체페슈의 말에, 처용이 잠시 체페슈를 관찰하며 침음을 흘리고는.
“……그건 얼마나 된 겁니까?”
손을 들어 체페슈를 가리키며 물었다.
처용의 알 수 없는 행동과 질문에 루나와 루세핀 등 사람들이 의문을 표했지만.
“이런…….”
질문을 받은 당사자, 체페슈는 처용의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고는 침음을 흘렸다.
지금 체페슈를 가리키고 있는 처용의 손가락.
그 손가락은 정확히 체페슈의 왼쪽 가슴 부근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걸 단번에 알아볼 줄이야.”
바로, 반역자들과의 싸움에서 부상을 입은 자리였다.
“1년이…… 조금 넘었소.”
체페슈가 처용의 질문에 눈을 감으며 답하자.
“나와 같은 반신의 경지에 닿은 당신이 1년 동안 그 ‘저주’를 스스로 해주할 수 없다?”
처용이 눈을 가늘게 뜨며 다시 물었다.
지금 뱀파이어 군주의 왼쪽 가슴 부근, 심장과 가까운 곳에는.
-스스스……!
인상이 확 일그러질 정도로 저주와 불길함이 가득한 마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뱀파이어 군주가 다루는 어둠이 아닌, 외부에서 유입된 에너지.
“아스모데우스의 저주인가? 바알의 기운도 느껴지는데.”
대악마들이 만들어낸 저주의 기운이었다.
처용과 같은 반신의 경지에 도달한 뱀파이어 군주를 1년 동안 시달리게 만든 저주.
지금 통찰의 눈으로 뱀파이어 군주를 살펴보는 처용에게는 그 기운이 뚜렷하게 보였다.
“1년이 조금 넘었다라…… 내전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저주에 당했다?”
처용이 체페슈의 말을 곱씹으며 무언가를 생각하듯, 읊조리며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확인하죠.”
체페슈를 향해 한 가지 질문을 더했다.
“우리가 여왕님의 안내를 받고 여기에 도착하니까. 반역자들이 우릴 반겨주더군요?”
루세핀의 안내를 받고 밤의 성채에 도달한 처용과 일행들.
심지어 루세핀이 안내한 입구는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비밀 통로였다.
그러나 비밀 통로로 들어선 순간, 일행들은 반긴 것은 반역자들이었다.
미리 이곳에 오는 이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며 대비해둔 듯한 모습.
“비밀 통로의 입구를 알 만한 놈들이 이 중에 누가 있습니까?”
처용이 그 사실에 의문을 품으며 체페슈를 향해 묻자.
“……내 혹시 왕비가 무사히 도주해 돌아올 것을 대비해 알렸거늘.”
체페슈가 처용이 던진 질문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고는 작은 분노를 담아 읊조렸다.
“누구에게 알렸습니까?”
그런 체페슈의 반응을 본 처용이 다시 한번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체페슈가 처용의 물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쓱 둘러보자.
“지금, 외부인의 말을 듣고 저희를 의심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오랜 시간 군주님을 모셔왔습니다!”
주변의 귀족들이 항의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저 거짓된 마신의 농간에 놀아나시면 아니 되옵니다!”
그런 귀족들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려는 듯, 목소리를 높이는 귀족.
클레이먼 백작이 인상을 거칠게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크크크, 나를 가짜 마신이라고 부르는 부류는 딱 한 가지 경우밖에 없었는데 말이야?”
그 외침을 들은 처용이 낮은 목소리로 미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동시에.
“이놈에게 알려주었군요?”
클레이먼 백작을 가리키며, 뱀파이어 군주, 체페슈를 향해 물었다.
그 말에 체페슈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블러드 체인.”
-촤라라락!
루나가 혈기로 사슬을 만들어 내고는 클레이먼 백작을 향해 쏘아 보내며 그를 구속했다.
“평소에 나와 어머니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더니, 반역자들한테 감히 우리 정보를 팔아넘겨?”
분노가 일렁이는 목소리를 내뱉은 루나가 사슬에 묶인 클레이먼 백작을 향해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클레이먼 백작, 네놈이 배신자가 아니라면, 이 자리에서 피의 맹세를 해 보면 되겠군.”
-슈르륵.
클레이먼 백작에게 다가가던 루나가 지척에 서서 혈기가 뭉친 손을 들어 올릴 때.
“……진정한 마신을 위하여.”
루나를 향해 비웃음을 내지른 클레이먼 백작이 작게 읊조리고는.
-탁! 으득!
입속에 감춰 둔 검은 덩어리를 씹어 터트렸다.
-우우웅! 화아아!
강렬한 어둠이 순식간에 퍼지며 클레이먼 백작을 휘감음과 동시에 루나를 뒤덮었다.
“죽어라! 어리석은 왕녀여!”
클레이먼 백작이 환희를 내지르며 소리친 순간.
“강제 송환에, 죽음의 저주라…….”
-콰직! 우드득!
루나의 옆에 나타난 처용이 양손으로 주변에 퍼진 어둠을 움켜쥐며 읊조리고는.
“매번 같은 수법을 보니, 이젠 지겨울 정도다.”
-슈화아아악!
클레이먼 백작이 퍼트린 어둠을 포확으로 빨아들이며 미소를 지었다.
“재롱은 다 부렸나?”
포확으로 어둠을 순식간에 먹어치운 처용이 조롱하듯 말했고.
“클레이먼 백작, 네놈을 반역죄로 즉결 처형한다.”
-슈르륵! 촤아아!
루나가 손아귀에 끌어모으던 혈기로 두꺼운 칼날을 만들어 클레이먼 백작의 목을 베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