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화
“예언자에 대한 단서가 있다.”
로키의 말이 울리자, 시큰둥하던 순혈자들의 눈빛이 날카롭게 바뀌었고.
“사실인가?”
바알 역시 크나큰 관심을 드러내며 목소리를 내었다.
예언자, 태초의 그릇을 품은 인간.
순혈자들만이 아닌, 판데모니움의 대악마들까지 추적하고 있는 존재.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 반드시 붙잡아야 할 존재였다.
그러나 예언자는 말 그대로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을 깨우친 인간.
그 능력 때문인지, 존재하지 않는 유령을 추적하는 것처럼, 도저히 잡히질 않고 있었다.
가까스로 예언자의 소재를 파악해 붙잡으려 하면.
-두 명의 신관이 예언자에게 당했다.
오히려 엄청난 피해를 입고 물러나야 했다.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으로 대악마들의 추적을 피할 뿐만 아니라.
지상의 병사들만으로 붙잡을 수 없을 정도의 무력까지 가지고 있었다.
예언자를 잡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활용하고 있지만, 계속 실패하고 있는 상황.
이러한 상황이기에.
“중요한 정보인가?”
“예언자에 대한 정보라면, 작은 것이라도 파악해야 한다.”
순혈자들이 로키의 말에 크나큰 관심을 드러냈다.
“당장 고하라! Ⅵ!”
옥황상제가 흥분 어린 목소리로 로키를 향해 명령하듯 말했다.
아스터를 포함한 몇몇 순혈자들도 옥황상제처럼 로키에게 대답을 촉구하듯 노려봤다.
로키는 옥황상제와 아스터 등, 독촉과 압박을 해오는 순혈자들을 쓱 둘러보며 노려보고는.
“싫은데?”
입꼬리를 씨익 들어 올리며 짜증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옥황상제를 포함한 순혈자들의 인상이 확 일그러졌고.
“갑자기 말해주기 싫어졌어, 방금 일로 내 기분이 좀 상해서 말이야~.”
로키는 순혈자들의 흉흉한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팔짱을 끼며 여유롭게 말했다.
“이 시건방진 애새끼가, 신성한 순혈 의회에서 장난질을……!”
옥황상제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며 분노를 흘리자.
“신성한 순혈 의회? 크크크…….”
로키가 그 모습을 보며 도발하듯 조소를 흘렸다.
“네 이놈……! 지금 장난하는 게 아니라면, 당장 알아낸 정보를 고하라.”
옥황상제가 한 번 화를 참으며 들끓는 목소리로 로키를 향해 위협하듯 물었다.
-치치치……! 치직!
분노를 읊조리는 옥황상제 주변에 전류가 튀며 위협적인 신력이 흘러나오자.
“나한테 명령하지 마라, 늙다리.”
-스스스.
로키가 웃음기를 싹 지우고는 마주 신력을 내뿜으며 적대적인 목소리로 답하듯 말했다.
“그 냄새 나는 아가리에 박혀 딱딱거리는 낡은 이빨을 다 뽑아버리고 싶으니까.”
“이 시건방진 애새끼가!!”
-쿠구구!
옥황상제가 로키의 도발에 핏발 서린 눈빛을 치켜뜨며 신력을 강하게 터트렸다.
로키는 옥황상제의 신력과 위협에 전혀 물러서지 않고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며 맞섰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기 직전.
“그만!!”
-화르륵! 쿵!
로키와 옥황상제의 신력이 충돌하는 중앙에 화염이 터지며 두 신력을 밀어냈다.
“둘 다 그만.”
싸움을 중재하며 소리친 라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의장……! 이 시건방진 놈의 태도를 보고도 그냥 넘어갈 생각인가?”
옥황상제가 라를 향해 분노를 드러내며 말하자.
“……순혈 의회의 멤버는 모두가 동등한 자격을 갖는다.”
라가 옥황상제의 분노 서린 눈빛을 마주 보며 읊조리듯 입을 열었다.
순혈 의회에 소속된, 순혈자들 중에서도 선택을 받은 고귀한 자들.
그들이 한 성운의 주신이든, 대신급 신이든 관계없이 모두가 동등한 자격을 가진다.
즉, 순혈 의회 멤버는 자신의 직위와 권위를 이용해 같은 멤버에게 압박을 가하거나 명령할 수 없었다.
이것이 순혈 의회에 소속된 순혈자들만이 가진 자격이자 규칙이었다.
“이 규칙을 어기고 Ⅵ에게 명령하듯 독촉한 건 당신입니다. Ⅱ.”
옥황상제는 이 규칙을 어기고 로키를 향해 압박을 가하며 위협했다.
라가 그런 옥황상제의 태도를 지적하며 말하자.
“……!”
옥황상제가 이를 갈며 소리 없는 분노를 드러냈다.
라는 두 순혈 의회 멤버의 싸움을 중재하고는.
“아까부터 묻고 싶었습니다만, 오늘따라 그대의 기분이 저조해 보이는군요.”
의문 어린 목소리로 로키를 향해 물었다.
로키는 항상 장난 어린 태도를 보이며 같은 멤버들을 종종 도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말 그대로 ‘가벼운 장난’일 뿐, 진지한 주제와 회의에서는 나름 진중한 모습을 보인다.
공과 사는 나름 구분할 줄 아는, 선택받은 순혈 의회 멤버였다.
그러나 작금 보인 모습은 평소와는 조금 많이 달랐다.
방금 로키가 옥황상제에게 보인 태도는 ‘진심 어린 분노’였으니까.
라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아, 내가 오늘 좀 예민합니다. 그러니…… 이해 좀 해 주십시오.”
로키가 화를 잠시 가라앉힌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집에서 개 짖는 소리를 듣고 오다 보니, 내가 좀 짜증이 나서 말입니다.”
“……예언자에 대한 정보를 얻은 게 확실하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정보입니다. Ⅵ.”
조금 진정한 듯한 로키의 목소리에 라가 중요한 본론을 물었다.
“원하는 거라도 있습니까?”
라가 로키를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묻자.
“원하는 걸 말하기 전에, 가진 패부터 일부분 까는 게 예의겠지요.”
로키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입을 열고는.
“알아낸 정보는 총 두 가지입니다.”
손가락 두 개를 펴며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의 대략적인 내용을 이야기했다.
“하나는 예언자에 대한 정보와 그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
하나는 앞서 언급한 예언자에 대한 정보와 그 정보를 적극 활용할 방안.
“또 다른 하나는 예언자 못지않은 중요한 정보, 혈선의 신관에 대한 비밀입니다.”
다른 하나는 로키가 세계 헌터 회의에서 직접 들은 정보였다.
“세계 헌터 회의에서 언급된 내용을 말하는 것이로군요.”
라는 로키가 말하려는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그녀 역시 세계 헌터 회의에 참석했었으니까.
“네,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지만…….”
“그건 저 역시 같은 마음입니다.”
라의 말에 로키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자, 라가 그 말에 답하듯 말했다.
“지상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보군?”
검붉은 로브를 입은 순혈자, Ⅳ가 입을 열었고.
“세계 헌터 회의에서 무슨 내용이 오간 것인가?”
라와 로키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얼마 전, 예언자에 대한 정보를 신계에 퍼트렸었다.
예언자와 태초의 그릇의 행방을 퍼트려 신계의 혼란을 야기하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신계에서 예언자의 단서를 잡으면 그 단서를 가로챌 계획이었다.
하지만, 토르와 다른 성운의 신들을 너무 얕본 탓인지, 성운에 숨어 있던 순혈자들이 붙잡혔다.
그중에는 세계 헌터 회의를 염탐해야 할 이들도 있었던 상황.
내부 첩자들이 붙잡혀 정보를 얻는 데 제약이 발생했다.
그 탓에, 신들의 주요 회담을 염탐하는 것도 힘들어졌다.
지상, 그것도 혈선의 성지에서 열린 세계 헌터 회의의 내용도 염탐할 수 없었다.
게다가, 태룡사는 초대받은 주요 성좌들을 제외하고는 발을 들일 수 없는 장소.
때문에, 이번 세계 헌터 회의는 실시간으로 그 회의 내용을 엿들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순혈 의회 멤버 둘이 세계 헌터 회의에 초대를 받았다.
바로 헬리오폴리스 성운의 주신이자 순혈 의장인 라.
아스가라르드 성운의 성좌이자 순혈 의회 멤버 Ⅵ, 로키였다.
아직 세계 헌터 회의가 완전히 끝나기까지 사흘 정도가 남은 상황.
모든 회의가 끝나고 라와 로키가 그 회의 내용을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세계 헌터 회의가 다 끝나기도 전에 라와 로키가 그 내용을 언급하려 한다?
그렇다면,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 자상에서 오갔다는 뜻이었다.
“지상의 회담이 끝날 때까지, 여유롭게 기다렸다간, 대처가 늦을 것 같더군요.”
“그건 나 역시 동의합니다. Ⅵ, 그대가 순혈 의회 소집을 요청한 건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로키의 말에 라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세계 헌터 회의에 참석한 신계의 신들이 무거운 분위기를 보였던 이유가 있었군요.”
옅은 노랑색의 로브를 쓴 순혈자 Ⅷ가 입을 열자.
“너라면 혈선의 성지에 충분히 갈 수 있었을 텐데?”
은색의 로브를 쓴 순혈자 Ⅶ, 아르테미스가 Ⅷ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한테 위험을 강요하지 마라, Ⅶ.”
Ⅷ가 아르테미스를 노려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 말에 아르테미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자.
“무모한 짓을 하지 않는 건 현명한 판단이라 생각합니다. Ⅷ.”
하늘색 로브를 입은 순혈자, Ⅴ가 아르테미스와 Ⅷ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순혈 의회 멤버가 적들에게 발각되는 일만큼은 일어나서는 아니 되니까요.”
“그 말에 동의합니다. Ⅴ.”
Ⅴ의 말에 황록색 로브를 입은 순혈자 Ⅹ, 오시리스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선, 지상의 회담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부터 말해 주겠습니다.”
순혈 의회 내의 분위기를 살피던 라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세계 헌터 회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대표적으로.
“혈선의 성지, 그리고 그 신관의 진짜 정체…….”
태룡사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성지인지, 처용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라의 말이 끝나자.
“그 하계종이 태초신의 임명권을? 그 말을 믿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옥황상제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부정을 담아 소리쳤고.
“의장이 거짓을 말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하나하나가 믿기 힘든 내용이다.”
검붉은 로브를 입은 순혈자, Ⅳ가 눈을 감으며 읊조렸다.
세계 헌터 회의에 있었던 둘, 라와 로키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혼란을 보였다.
“놈이…… 태초의 조각을 파괴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연갈색 로브의 순혈자 Ⅲ, 아스터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이를 갈며 읊조렸다.
처용이 태초의 조각을 제압하고 부숴 버릴 수 있었던 이유.
절대로 불가능했던 일을 해낸 이유.
그 이유가.
“도저히 믿기 힘들지만, 그 하계종이 태초신 후보라면 납득은 된다.”
처용이 야훼와 관철의 대신, 태초신의 대리자, 관리자와 같은 자격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 되었다.
모두가 혼란을 보일 때.
“예언자에 대한 정보를 더 얻을 수 있는 그대만의 방법, 이것이 중요하겠군요.”
의장인 라가 로키를 바라보며 물었다.
“비단 예언자뿐만 아니라, 그 하계종, ‘계승자’를 노릴 방법도 있습니다. 협력이 필요하지만…….”
로키가 라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듯, 눈을 감으며 말하자.
“뭐냐, 그 방법이.”
옥황상제가 로키를 향해 독촉하듯 물었다.
그 말에 로키가 작게 인상을 찌푸리고는.
“나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만큼, 내가 요구하는 걸 도와준다면, 협력하지.”
이 자리에 있는 순혈자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자.
“네 이놈!”
옥황상제가 다시금 분노를 드러냈고.
“이 중요한 일을 네 욕망에 이용하겠다는 것인가? Ⅵ.”
아스터 역시 인상을 찌푸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옥황상제와 아스터는 처용에게 당한 바가 많았다.
때문에, 예언자의 추적보다 처용을 처치할 수 있다는 로키의 말에 더 큰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하!”
로키는 그런 둘의 반응에 비웃음 서린 코웃음을 내뱉고는.
“저 늙다리도 제 욕심 때문에 자비의 대신을 노리는 건데, 나는 원하는 걸 말하면 안 되나?”
장난기가 확 사라진 진지한 목소리로 옥황상제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로키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아스터가 소리 없는 분노를 드러내듯, 신력을 스멀스멀 내뿜었고.
“공과 사는 구분해라, Ⅵ. 우리는 그분을 위해서 행동한다.”
검붉은 로브를 입은 순혈자, Ⅳ 역시 낮은 목소리로 로키를 향해 경고하듯 말했다.
그러자.
“지랄한다.”
로키가 Ⅳ를 노려보며 비웃음을 끌어올렸다.
“저승을 혼자 독식하려는 놈이 공과 사? 입에 침이나 바르고 개소리를 지껄여라!”
“……네놈.”
이어지는 로키의 말에 Ⅳ가 낮은 분노를 읊조리며 신력을 흘렸다.
동시에.
“이 건방진 것, 네 버릇을 고쳐주마!”
옥황상제 역시 자리를 박차 일어나며 분노 서린 신력을 흘렸다.
세 명의 순혈자가 로키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자.
“……크크크, 안 그래도 망할 영감탱이 때문에 기분이 거지 같은데…….”
로키는 그 위협을 정면으로 받아치며 조소를 흘리고는.
“네놈들 다 요툰헤임 입구로 따라와라, 그 잘난 이빨들을 싹 다 털어줄 테니까!”
세 명의 순혈자를 향해 적대감 가득한 목소리로 선전포고하듯 소리쳤다.
“하아……!”
다시금 험악해진 순혈 의회의 분위기 속에서 라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때.
-……원하는 것이 있느냐? Ⅵ.
순혈 의회 내부를 울리는 낮고 강한 목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화르륵.
중앙의 화로가 점점 크게 타오르며 길게 찢어진 입과 눈이 나타났다.
“위대한 존재이시여!”
“위대한 존재이시여!”
순혈 의회에 자리한 모두가 악의 종주, 크타니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있습니다. 위대한 존재이시여.”
크타니드의 시선을 받은 로키가 입을 열어 대답했다.
그 말에 옥황상제와 아스터 등 몇몇 순혈자들이 눈가를 꿈틀거렸지만.
-무어냐.
크타니드는 아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로키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로키가 침을 한 번 삼키고는 고개를 살짝 들어 크타니드의 타오르는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했다.
동시에.
“…….”
입만을 움직여 조용히 속삭이듯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로키의 굳은 눈빛을 마주한 크타니드의 타오르는 눈동자가 가늘어졌고.
“……위대한 존재께서도 필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요구를 이야기한 로키가 고개를 숙이며 말을 마쳤다.
로키의 말이 끝나자 순혈 의회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고.
-좋다.
크타니드가 결정을 내린 듯, 목소리를 내었다.
-Ⅵ을 도와라.
“알겠습니다. 위대한 존재이시여.”
의장인 라가 대표로 크타니드의 명령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지상의 회담이 끝나면, 제가 다시 순혈 의회를 소집하지요.”
-화아아.
라가 다른 순혈자들을 향해 말하고는 빛과 함께 사라졌다.
-화아.
-화아아.
다른 이들 역시 빛과 함께 사라지며 자리를 비웠다.
모두가 사라졌을 때.
“위대한 존재이시여.”
아직 돌아가지 않은 옥황상제가 크타니드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신은 Ⅵ의 계획만으로는 부족하다 판단되옵니다.”
크타니드가 옥황상제의 말에 그를 내려다보며 침묵했다.
“보현이 예언자에 대해 알고 있다는 의장의 말에 떠올린 묘책이 있습니다. 그리고…….”
말을 계속해도 좋다고 허락받았다 판단한 옥황상제가 말을 이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