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505화 (505/726)

#505화

자연스럽게 루나의 옆에 앉은 처용이 루나를 잠시 바라보자.

“그간 있었던 일, 그리고 서약자에 대해서 이야기했어.”

루나가 처용이 묻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고는 대답하듯 말했다.

루세핀이 그런 둘을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번갈아 바라보고는.

“……큰 도움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하다는 인사가 먼저겠군요.”

처용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전했다.

“밤의 일족을 도와주어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설마, 구해낸 왕족이 뱀파이어 여왕일 줄은 몰랐습니다.”

처용이 루세핀의 감사에 작은 미소를 보이며 답하듯 말했다.

그런 처용의 목소리에는 작은 의문이 일렁이고 있었다.

루세핀은 뱀파이어 왕족, 그것도 가장 높은 군주 바로 아래라는 여왕이었다.

처용은 뱀파이어 왕족이 어느 정도 전투력을 지녔는지 잘 몰랐다.

그나마 마주한 왕족이라고는 아직 다 성장하지 못한 루나.

그리고 회귀 전에 마주한 왕족, 아니 왕의 자리를 찬탈하고 군주가 된 마르크가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뱀파이어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이니만큼, 강한 무력이 뒷받침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존재가 후작도 아닌, 높아 봐야 백작급으로 구성된 추적대에 잡혔다?

그것이 조금 의문이었다.

의문이 일렁이는 처용의 말이 울리자.

“블라디미르 로 루세핀, 밤의 축복을 받아 일족의 여왕이 된 이입니다.”

루세핀이 스스로를 소개하며 입을 열고는.

“실망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저는 전투와는 거리가 멀답니다.”

처용의 말속에 일렁이는 의문을 파악하며 그에 대한 답을 이야기했다.

루세핀의 말에 처용의 눈이 가늘어지며 생각하듯 침묵하자.

“으음, 한국으로 치면 영부인이 대통령만큼 강한 건 아니잖아?”

루나가 곰곰이 생각하듯 침음을 흘리고는 그간 익숙해진 지구의 한 국가, 한국에 비교하며 말했다.

“……이해했다.”

그런 루나의 말에 처용이 대충 이해가 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밤의 일족은 뱀파이어들이 모여 구성한 ‘사회’이니만큼, 힘이 전부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군요.”

루세핀이 처용의 말에 환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처용은 그런 루세핀을 관찰하는 듯 마주 보고는.

“어째서 스스로를 봉인하신 겁니까?”

의문을 담아 물었다.

루세핀은 뱀파이어 여왕.

귀족보다도 위에 있는 왕족, 루나와 같은 직위와 격을 가진 존재였다.

처용은 뱀파이어 여왕이 너무나도 손쉽게 잡혔다는 것이 의문이었다.

그런 의문이 담긴 처용의 질문이 울리자.

“저는 온전한 밤의 왕족이 아니니까요.”

루세핀이 처용의 의문을 알아채고는 그 말에 답하듯 말을 이었다.

“블라디미르의 축복을 받아 왕족이 되기 전에는, ‘블라디카’ 가문의 여식이었습니다.”

“블라디카라면…… 세피아의?”

처용이 루세핀의 말을 듣고는, 세피아의 가문명을 떠올리며 읊조렸다.

“세피아 자작의 친인척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런 처용의 말에 루세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듯 말하고는.

“저는 그저 군주님께 사랑을 받아 여왕이 된 몸, 블라디미르의 축복을 받아 혈기를 다룰 순 있지만…….”

-슈르륵.

손을 들어 붉은 기운, 혈기를 끌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루세핀의 손가락을 타고 핏빛의 혈기가 휘몰아쳤지만.

‘처음 만났을 때의 루나보다도 약하군.’

처용은 루세핀이 불러낸 혈기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단번에 파악하며 속으로 읊조렸다.

루세핀은 직위만 뱀파이어 여왕일 뿐, 그녀의 힘은 처음 만났을 당시의 루나보다도 약했다.

“블라디미르의 진짜 혈통을 타고난 왕족과 피의 세례를 받아 왕족이 된 경우는 엄연히 다르지요.”

“……이해했습니다.”

처용이 루세핀의 말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뱀파이어들의 가계도는 중세 유렵의 귀족, 혹은 이곳, 에스라 대륙의 귀족 가계도와 비슷했다.

루세핀은 귀족 가문의 여식이 왕족과 혼인하여 그 왕가의 일원으로 소속된 경우와 같았다.

즉, 루세핀은 순수한 혈통을 타고난 진짜 왕족은 아니기에,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머니하고 회포를 푸는 데 자리가 좀 허전하네.”

루세핀의 말에 납득한 처용이 아무것도 없는 단상 위를 보며 읊조리고는.

-우우웅. 탁.

아공간에서 두 개의 치킨 박스를 꺼내 보였다.

포장된 치킨 박스가 열리자, 코를 감도는 튀김 냄새가 확 퍼졌다.

“……굉장히 맛있는 냄새가?”

루세핀이 냄새에 집중하듯, 잠시 눈을 감고 코로 숨을 들이쉬며 읊조렸다.

그리고 잠시 감았던 눈을 뜨고 단상 앞에 놓인 상자를 바라볼 때.

“……!”

상자 너머, 맞은편에 앉아 있는 루나의 얼굴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지금 루세핀이 바라보는 맞은편에는.

“헤헤.”

이가 드러날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루나가 보였다.

군주에게서 큰 선물을 받았을 때도.

밤의 성채에 일하는 조리장이 희대의 역작을 만들어 바쳤을 때도.

온갖 보석을 받아 손에 쥐었을 때도.

루나는 지금껏 환한 웃음을 보인 적이 없었다.

친모인 자신조차도 본 적 없는 루나의 환한 미소에.

“이럴…… 수가.”

루세핀이 경악과 충격이 담긴 목소리로 읊조렸다.

“……설마?”

처용이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루세핀을 향해 읊조리듯 물었다.

그 말에 루세핀이 짧은 헛기침을 내뱉고는.

“크흠, 제 딸이 환하게 웃는 걸 처음 본다면, 비웃으실 건가요?”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했다.

진심이 느껴지는 루세핀의 말에.

“어머니한테 웃는 모습 좀 보여 드리지 그랬냐?”

어이가 없는 목소리로 루나를 향해 말했다.

“어떻게 웃는지 몰랐어.”

루나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치킨 박스를 열고 접시에 치킨을 담으며 처용의 말에 답했다.

“……지금 웃는 건 뭔데?”

처용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묻자.

“여기 와서 배웠어. 아암~.”

루나가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답하고는 치킨 조각을 포크로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으음~!”

치킨을 맛본 루나가 만족스러운 듯, 환한 미소를 짓자.

“……어머니보다 치킨을 우선시하면 어떻게 하냐?”

-탁. 스륵.

처용이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고는 접시에 치킨을 덜어 루세핀을 향해 내밀었다.

루세핀은 처용이 내민 접시 위에 놓인 치킨을 뚫어질 듯 응시하고는.

-탁. 바삭.

포크로 뼈 없는 치킨 조각을 하나 찍어 입으로 가져가 베어 물었다.

처음 닿은 이빨로 느껴지는 바삭한 식감에 이어 그 사이로 파고드는 닭고기의 육즙.

이어서 터지는 짭짤하고 담백한 닭고기의 감칠맛이 입안에 감돌자.

“……진짜 맛있어!?”

루세핀의 눈이 크게 떠지며 경악 어린 놀라움을 담아 외쳤다.

처음 치킨을 맛볼 때의 루나와 같은 모습.

“다행히, 입맛에 맞나 보군요.”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이걸 맛이 없다고 할 리가 없잖아요!”

루세핀이 아직 입안에 감도는 감칠맛의 충격이 사라지지 않은 듯, 놀라움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이건…… 루나가 미소를 지을 만했군요. 하하…….”

이내 납득이 되었다는 듯한 목소리로 루세핀이 말을 이을 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루세핀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희를 밤의 성채로 안내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루세핀에게 물은 말은 작금의 상황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본론이었다.

루나는 밤의 성채가 대략 서쪽에 있다 정도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한 위치는 몰랐다.

숨겨져 있는 밤의 성채로 찾아갈 방법 또한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밤의 성체에서 빠져나올 때는 제나 후작의 포탈을 통해서 밖으로 나왔었으니까.

물론, 루나가 모른다 하여 큰 문제는 없었다.

인간들의 도시로 자주 정찰을 나갔던 류마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 역시 문제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용님, 제가 알고 있던 입구가 사라졌습니다.

류마가 밤의 성채로 이어지는 게이트의 위치를 찾았을 때 했었던 말.

-아마…… 마르크 공작의 반란 때문에, 군주님께서 위치를 옮긴 것 같습니다.

밤의 성채와 이어지는 게이트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문제였다.

예상하기로는 뱀파이어 군주가 반역자들에게 합류하는 이들의 유입을 막기 위해, 입구를 닫은 것 같았다.

혹은…… 반역을 일으킨 마르크 공작이 수작을 부렸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중요한 건.

밤의 성채로 향할 방법이 없어졌다는 것, 이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군주의 바로 밑의 직위를 가진 뱀파이어들의 여왕이라면?

혹시 왕족들만이 알고 있는 또 다른 입구를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뱀파이어 군주가 쓰러지면, 마르크가 군주가 되겠죠. 그러면 뱀파이어들은 대악마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처용이 뱀파이어들의 상황과 최악의 경우를 언급하며 말을 이었다.

“전 뱀파이어들이 대악마의 노예로 전락해 그들의 병사가 되는 걸 원치 않습니다.”

마르크가 밤의 성채를 장악하고 군주가 된다면, 뱀파이어들 대부분이 적이 된다.

그나마 현 뱀파이어 군주가 직접 움직여 분투하며 버티고 있었지만, 군주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회귀 전엔 마르크가 뱀파이어 군주를 죽이고 군주가 되었었으니까.

그런 상황이 도래하기 전에, 아스모데우스의 꼭두각시인 마르크를 처치할 필요가 있었다.

종국에는 뱀파이어들을 다른 이종족들처럼 완전한 아군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밤의 성채로 향해야 했다.

만약, 루세핀이 밤의 성채로 갈 방법을 알고 있다면,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녀의 전투력이 약한 것은 문제가 없었다.

어차피 적들을 쓸어 버리는 것은 처용과 그의 가르침을 받고 성장한 전사들의 역할이었으니까.

처용의 말이 울리자.

“……오히려 제가 부탁하고 싶은 바에요.”

루세핀이 들고 있던 치킨 접시를 잠시 내려놓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밤의 성채로 향하는, 군주님과 저만이 알고 있는 비밀 입구가 있습니다. 그쪽으로 안내하지요.”

“좋습니다.”

밤의 성채로 갈 수 있다는 루세핀의 말에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내일 다른 이들이 준비를 마치는 대로 곧장 출발할 겁니다.”

-탓.

말을 마친 처용이 자리에서 일어서 밖으로 향했다.

루세핀은 처용이 나간 자리를 잠시 바라보고는.

“인간과 피의 서약을 한 것도 놀라운데, 그 인간이 만만치 않은 인간이구나.”

치킨에 집중하고 있는 루나를 향해 물었다.

“어머니도 아시겠지만, 제 서약자는 절대로 평범한 인간이 아닙니다.”

루나가 접시를 잠시 내려놓고는 루세핀의 말에 답하자.

“군주님처럼 ‘신’에 가까운 존재라 했으니까.”

루세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미 처용이 어떤 존재이고 그 뒤에 어떤 세력이 있는지까지도 루나에게 전해 들었었다.

그랬기에.

“밤의 왕족이 맺는 계약은 특별하단다. 네 서약자는 그걸 모르는 것 같다만…….”

그런 특별한 인간과 피의 서약을 맺은 루나가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루세핀의 걱정 어린 말에.

“제가 말한 적은 없죠. 하지만 문제는 없을 거예요.”

루나는 문제가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마, 대충은 눈치채고 있을 수도 있어요.”

“……그가 우리에 대한 편견 없이 호의적이라는 게 다행이구나.”

루세핀이 루나의 대답에 안도감 어린 목소리로 답하듯 말했다.

그리고.

“그나저나 이거 정말 맛있구나, 군주님도 이걸 드시면 환하게 웃으시려나?”

빈 접시 위에 다시 치킨 조각을 담으며 기대감 어린 미소를 지었다.

***

칠흑처럼 어둠만이 자리한 공간.

-화르륵.

그 안에서 검붉은 불꽃이 타오르며 주변을 밝히자.

-스르륵. 스륵.

얼굴을 가린 로브를 입은 이들이 앉은, 숫자가 적힌 좌석들이 드러났다.

“순혈 의회가 참 자주도 열리는군.”

검붉은 로브를 입은 순혈자, Ⅳ가 불편한 심기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엔 또 뭔가? 무슨 도움이 필요한 건가?”

Ⅳ가 주변에 있는 순혈자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검붉은 눈동자가 가리키는 시선 속에는 Ⅱ와 Ⅲ.

옥황상제와 아스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아니다.”

“나 또한 초대를 받고 왔다.”

Ⅳ의 말과 시선을 받은 옥황상제와 아스터가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그때.

“이번 의회를 모집한 이는…… Ⅵ입니다.”

순혈 의장인 Ⅰ, 태양신 라가 다른 이들을 향해 말했다.

그녀의 입에서 이번 순혈 의회의 개최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자.

“뭐?”

“Ⅵ? 이 녀석이?”

“순혈 의회 역사상 처음 아닌가?”

다른 순혈자들이 의문을 드러내며 순혈 의회 개최를 요청한 자를 바라봤다.

다른 순혈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순혈자 Ⅵ.

“이야, 그렇게 신기한가? 이렇게 많은 관심을 주다니…….”

로키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읊조리듯 말했다.

“순혈 의회가 장난인 줄 아느냐?”

옥황상제가 로키를 향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불편한 심기를 담아 말했다.

로키는 매사에 장난을 섞는 인물.

그런 그가 이 중요한 순혈 의회를 모집한 건, 그리 중요한 이유가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옥황상제의 말에 아스터를 포함한 몇몇 순혈자들이 동조하는 듯한 시선과 분위기를 보였다.

그러자.

“장난? 나를 당신들이 어찌 생각하는지는 관심 없지만, 나도 엄연히 순혈 의회 인원이다.”

로키가 웃는 표정을 싹 지우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다른 순혈자들을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반드시 알려야 할 중요한 정보를 얻었는데, 괜히 의회 소집을 요청한 건가?”

“허, 네가 얻어 봐야 얼마나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고.”

이어지는 로키의 말에 옥황상제가 코웃음을 치며 비웃듯 말했다.

로키는 한 성운의 주신도 아니고 주신에게 신임받는 최측근도 아니었으니까.

그런 로키가 정보를 얻어 봐야, 그리 중요하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몇몇 순혈자들 역시 그러했고.

“…….”

이 자리에 초대받은 바알 역시 옥황상제와 같은 생각을 하며 침묵했다.

그러나.

“예언자의 행방에 대한 단서.”

로키의 입에서 중요한 정보의 일부분이 흘러나오자.

“……!”

“……!”

옥황상제와 아스터를 포함한 몇몇 순혈자들이 벌떡 일어나며 경악을 드러냈다.

나 홀로 계승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