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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500화 (500/726)

#500화

아스터 제국의 서쪽, 거대한 항구도시이자 해상 무역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도시.

주변에 바다와 산맥을 끼고 있어, 적국의 침략이나 몬스터의 습격 방어에도 수월한 지역.

아스터 제국 역사상, 단 한 번도 큰 피해를 받은 적이 없던 도시였다.

그러나, 마신이 강림하여 약 한 시간 동안 날뛴 결과.

“……시시하군.”

마신, 처용이 반파된 영주성과 반으로 갈라진 아스터 동상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그런 그의 발밑에는.

[위대한 신에게 거스른 대가를…… 반드시 치를 것이다.]

-파아아……!

마지막까지 버티며 맞서 싸우던 대천사가 하얀 깃털을 흩날리며 사라지고 있었다.

“아스터는 감히 내게 맞선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이 비둘기 새끼야.”

처용은 분노를 읊조리는 대천사의 말을 조롱으로 받아치고는.

-사각. 파사사……!

치명상을 입고 사그라지려 하는 대천사의 머리를 날려 완전히 끝장내 버렸다.

앞길을 가로막던 모든 이들이 처리되자.

“영주 놈은 튀어 버린 건가…….”

처용이 끝내 잡지 못한 이 도시의 주인, 영주성의 영주를 떠올리며 읊조렸다.

천사들이 강림하여 처용을 가로막은 이유는 처용을 처치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천사들이 처용 앞에 굴욕을 당한바.

그들은 처용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지상에 소환되어 처용을 가로막은 이유는 다름 아닌.

“이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튀어 버릴 줄은 몰랐는데.”

도시 내에 거주하고 있던 고위 사제들과 영주의 대피를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본래, 앞을 가로막는 이들과 천사들을 처치하고 영주를 잡아 정보를 얻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천사들이 시간을 버는 동안, 중요한 정보를 알 법한 놈들이 순식간에 튀어 버렸다.

마치, 도망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영주와 사제들이 도시의 모든 것을 그냥 내다 버리고 휙 도망쳐 버린 상황이 조금 이상했다.

그리고 처용이 이상하게 느끼는 점, 의문이 드는 부분은 또 있었다.

바로 배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의 모습이었다.

이곳은 아스터 제국의 항구도시, 전투 선박들이 다수 배치되어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아스터 제국을 상징하는 전투 선박들은 단 한 척도 항구에 정박해 있지 않았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선박 대부분은 어선이거나 무역선들이었다.

천교의 깃발이 휘날리는 선박 역시 무역선.

게다가 그 무역선은 주인이 없는 듯,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더 의문인 것은.

“이 정도 난리를 피웠으면, 저 배들이 다 출항해야 정상인데 말이야.”

그나마 항구에 남아 있는 어선과 무역선들조차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선박은 어부와 무역 상인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자산이었다.

마신이 나타나 난동을 피우면, 당연히 제 재산을 지키기 위해 배를 이끌고 도망가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항구에 정착한 선박 중, 단 한 척도 출항하는 배는 없었다.

마신이 찾아올 것을 대비해 일부러 도시를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내가 나타날 것을 미리 대비한 것인가?’

처용이 찾아온다면, 즉시 도시를 버릴 수 있도록 미리 조치한 듯 보였다.

이토록 거대하고 중요한 도시를 포기한다는 건 엄청난 손해였지만.

“짜증 날 정도로 현명한 대처로군.”

처용은 인상을 찌푸리며, 아스터 교단의 선택을 현명하다 판단했다.

지금 도시를 습격한 처용을 막을 수단은 없었다.

지원군을 보낸다면, 그 지원군이 전부 전멸해 버리는 것은 당연지사.

대천사조차도 막지 못하는 처용을 고작 인간들의 군대가 막을 순 없으니까.

게다가 지금 아스터 제국의 수도는 군대를 모아 지원을 보낼 형편이 되지 못했다.

뉴 클리어에 맞은 여파도 아직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들이 다른 도시에 큰 지원을 보내기란 불가능했다.

때문에, 처용이 나타날 것을 대비해 도시를 버릴 준비를 한 듯 보였지만.

‘무슨 속셈이지?’

처용은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아스터 교단이 무언가 수작을 벌이는 듯한 느낌은 들어도 당장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네놈들이 무엇을 준비하든, 모조리 부숴 주마.’

아스터 교단과 에스라 성운이 무엇을 준비하든, 쳐부술 자신이 있었다.

의문을 접고 다짐을 이은 처용이 폐허가 되어 버린 영주성 내에서 그나마 멀쩡한 건물.

-저벅.

이단자들을 붙잡아 심문하는 이단 심문소 앞으로 향했다.

이단 심문소 앞에 처용이 멈춰서자.

-스르르.

루나가 바닥의 잔해 밑에 드리워진 그림자 속에서 나타났다.

“동족들은 전부 구했나?”

“덕분에. 붙잡힌 일족들을 무사히 구해 냈어.”

처용의 물음에 루나가 답했다.

적들의 시선을 처용이 한껏 사로잡아 날뛰는 동안, 루나는 이단 심문소에 잠입했었다.

그 덕에 이단 심문소 안에 구금되어 있던 모든 이들이 풀려났다.

“이단 심문소에 갇혀 있던 이들은 모두 이종족들이었어.”

루나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이단 심문소, 아니 아스터 교단의 실험장 안에 갇힌 이들은 모두 이종족들이었다.

게다가.

“이종족들을 사냥하고 잡아 온 이들은…… 배신한 일족들이었고.”

아스터 교단과 협력하여 이종족들을 잡는데 앞장선 이들은 다름 아닌, 배신한 뱀파이어들이었다.

루나의 말이 쭉 이어질 때.

-스르륵.

“용님, 이단 심문소 안에 아는 자가 있었습니다.”

류마가 루나의 옆에 나타나며 처용을 향해 말했다.

그런 그의 옆에는.

“감사합니다. 은인이시여. 이렇게 또 도움을 받는군요.”

푸른 빛이 감도는 녹색 머리의 엘프가 함께 있었다.

이단 심문소 안에 붙잡혀 있던 이종족 중 한 명으로 보였다.

다만, 그런 그녀가 처용을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는 것.

“……세계수 아래에 있던?”

잠시 생각한 처용이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말했다.

눈앞의 엘프는 처용에게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 적어도 태룡사에 거주하는 엘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처용을 은인이라 칭하고 그 외에 엘프들과의 접점을 생각할 때, 한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바로, 아스모데우스의 저주를 받아 세계수 아래에서 잠들어 있었던 이들 중 하나라는 것.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그런 처용의 짐작이 맞았다는 듯, 눈앞의 엘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붙잡혀 있었던 겁니까?”

처용이 엘프를 향해 궁금한 듯 묻자.

“은인께 구원받고 나서, 다른 붙잡힌 동족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었습니다.”

엘프가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엘프들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세계수의 육체를 중심으로 부족을 이루고 있는 종족.

눈앞의 엘프는 처용에게 구해지고 나서 자신의 부족으로 돌아간 이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같은 부족의 엘프들이 아스터 교단에게 납치당하는 경우가 발생했고.

“그 일을 조사하다가…… 밤의 일족들에게 기습을 당했습니다.”

엘프는 그 일을 조사하러 나섰다가 당한 것이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군.”

루나가 한숨을 쉬며 엘프를 향해 사과하듯 말하자.

“아닙니다. 밤의 일족들에게 내전이 일어났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엘프가 간수들의 대화를 엿들어 뱀파이어의 사정을 파악했다며 괜찮다고 답했다.

뱀파이어들의 내전이 일어난 것이 눈앞에 있는 루나의 잘못이 아니었으니까.

배신한 뱀파이어들이 다른 이종족을 공격한 것 또한 루나의 잘못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루나는 처용이 다른 이종족들을 구하는 데 힘을 보태주었던 이.

그런 그녀에게 작금의 상황에 대해 잘못을 따지는 건, 말도 안 되었다.

“이 근처에 여기와 같은 곳이 또 있나?”

처용이 엘프를 향해 묻자.

“제가 파악한 곳만 두 군데입니다. 그리고 도움이 될 만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엘프가 자신이 아는 모든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반란을 일으킨 뱀파이어들과 아스터 교단의 사제들이 밤의 왕족 중 하나를 추적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뱀파이어에 관한 정보가 흘러나오자.

“어디야.”

루나가 다급함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정확한 위치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엘프는 간수들을 통해 소식만 들었을 뿐, 더 정확한 정보는 알지 못했다.

루나가 고개를 숙이며 침음을 흘릴 때.

“네가 아는 장소부터 하나하나 부숴 버리도록 하지, 어쩌면 그곳에 잡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처용이 행동 방침을 정하듯 말했다.

그리고.

“도움이 될 만한 지원군을 좀 불러와야겠네.”

-우우웅.

루나와 류마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는 게이트를 열며 사라졌다.

약, 1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우우웅.

처용이 사라졌던 자리에 다시 게이트가 열리며 처용이 나타났고.

-저벅.

뒤이어 열 명이 넘는 인원이 함께 나타났다.

가장 앞장서 나타난 이는 백금발의 머리에 다른 엘프들보다 긴 귀가 특징인 하이 엘프.

“오랜만이군요. 밤의 왕녀.”

테시아가 루나를 향해 손을 들어 보이며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무사해서 다행이다.”

막 이단 심문소에서 구출된 엘프를 향해 다행이라는 듯 말을 이었다.

“푸른 나무 일족의 전사가 고귀한 하이 엘프를 뵙습니다.”

이단 심문소에서 구출된 엘프가 테시아를 알아보며 고개를 숙였다.

테시아는 세계수를 보필하는 하이 엘프 장로 중 하나.

그녀는 엘프들에게 있어 엘프 여왕만큼이나 잘 알려져 있었다.

“도움을 주어서 감사합니다. 테시아 님.”

“감사는 제가 해야죠. 이번에도 저희 엘프들을 도와주셨으니까요.”

고맙다는 처용의 말에 테시아가 오히려 자신이 감사하다는 말로 답했다.

테시아가 이곳에 온 이유는 조금 전, 세계수를 통해 처용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이야기를 듣고는 본인이 직접 자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스피릿 팀 소속 ‘전사’ 계급의 엘프 전원, 준비를 마쳤습니다.”

테시아의 뒤에 있던, 그녀보다 키가 작고 어려 보이는 또 다른 하이 엘프.

커맨더의 파티원으로 합류한 리카가 처용을 향해 말했다.

태룡사에 거주하는 엘프들 중, 헌터들의 업무를 돕는 ‘전사’ 계급의 엘프들도 이번 일에 자원했다.

그 열 명의 엘프들은 상급 정령까지 다룰 수 있는 최상위 전사들이자 스피릿 팀의 일원들.

수는 적어도 모두 일당백의 전력을 자랑하는 전사들이었다.

“덕분에 자잘한 마찰 없이, 일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용이 테시아와 기꺼이 이 일에 자원하러 나선 엘프들을 향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배신한 뱀파이어들이 아스터 교단을 뒤에서 돕는 탓에, 다른 이종족들이 피를 보는 상황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기껏 잘 다져 놓은 이종족들 간의 평화와 동맹에 금이 갈 가능성도 있었다.

처용은 작금의 상황을 역으로 이용하여 이종족들 간의 동맹을 확고히 만들 생각이었다.

루나를 따르는 뱀파이어들이 왕족 파벌의 뱀파이어들을 구출하고 규합시킨다.

이들을 중심으로 스피릿 팀의 이종족들이 구출조가 되어 붙잡힌 이종족들을 구출한다.

동시에, 뱀파이어의 내전을 해결하고 아스터 교단의 계획을 망친다.

이것이 전체적인 계획이었다.

“내가 책임지고 그대들을 위해 하늘 위의 ‘눈’이 되어주겠소.”

테시아와 마찬가지로 이번 일에 자원한 스피릿 팀 소속의 이종족.

새와 사람의 형태가 합쳐진 듯한 모습인 조인족.

그런 조인족들의 대장, 독수리의 특징이 돋보이는 차루스 호크가 자신감을 드러내며 말했다.

차루스의 옆에는 같은 스피릿 팀이자 그의 파트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처용 헌터.”

창을 쥐고 경량 슈트를 입은, 무장을 단단히 갖춘 정훈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

“바다 인근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산호와 같은 뿔과 푸른 깃털의 날개가 돋보이는 여인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태룡사에서 인어들을 대표하는 이종족이자, 인어의 상위 종족.

“구출된 인어들은 제가 맡아 데리고 있겠습니다.”

프시케라는 이름의 세이렌이 처용을 향해 말했다.

본래 인어는 하반신이 물고기와 같기에 물 밖, 지상에서는 움직임이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하이 엘프와 같은, 인어의 상위종인 세이렌은 조금 달랐다.

-탁.

세이렌은 물고기의 몸체를 비늘이 달린 인간의 다리로 변화시켜 지상을 활보할 수 있었고 하늘도 날 수 있었다.

하이 엘프 테시아를 포함한 정예 엘프 전사 열두 명.

차루스와 각각 맹금류의 특징을 지닌 조인족 전사 셋.

세이렌인 프시케와 헌터 김정훈.

이번 일의 주축인 루나와 십여 명의 뱀파이어들.

마지막으로.

“세계 헌터 회의는 지루했는데, 잘됐네.”

처용의 지원 요청에 기꺼이 따라나선 연아가 몸을 풀며 말했다.

“놀러 가는 거 아니다.”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자.

“나도 알아.”

연아 역시 장난으로 놀러 나온 것이 아니라는 듯,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루나 일인데, 당연히 도와줘야지.”

그녀가 이번 일에 자원한 이유는 다름 아닌 루나 때문이었다.

비슷한 나이 때로 보이는 루나는 친구인 윤아와 함께 유독 살갑게 지냈었으니까.

연아 역시 루나가 가진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이번 일에 자원한 것이었다.

“그래, 이번에도 네 활약을 기대하마.”

처용이 연아의 말에 기특하다는 듯 말했다.

기대감이 일렁이는 처용의 말은 나름 진심이었다.

처음 에스라 대륙에 연아를 데려왔을 때는 작은 우려를 품었었다.

하지만, 그 우려가 기우였다는 듯, 연아는 크나큰 활약들을 선보였다.

이제 연아는 보호 대상이 아닌, 한 명의 훌륭한 헌터였다.

“이 인근을 한 번 더 조사하고 다음 이단 심문소로 향한다. 그곳의 상황을 보고 이후 행동 방침을 새로 정하지.”

처용이 행동 방침을 정하듯 말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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