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499화 (499/726)

#499화

-콰쾅! 쿠구구!

처용이 영주성 정문을 무너뜨리고 본격적으로 난동을 부리기 시작할 때.

-스르르.

무사히 영주성 지하로 잠입한 루나와 뱀파이어들이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류마는 오른쪽으로 나는 왼쪽으로 간다.”

루나가 눈앞에 보이는 두 개의 통로를 보며 입을 열었다.

“구금되어 있거나, 다친 일족들의 구출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

“그 외의 일족들을 마주하면 어찌할까요?”

류마가 루나를 향해 묻자.

“마르크 공작을 따르는 일족들을 마주하면…… 죽여라.”

루나가 단호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마르크 공작은 마인들의 지원을 받아 뱀파이어 군주에게 반기를 든 반란 세력의 수장이었다.

그런 그를 따르는 뱀파이어들은 같은 밤의 일족이라 해도 적이었다.

“알겠습니다. 루나 님.”

-스르륵.

루나의 명령에 류마와 여섯 명의 뱀파이어들이 그림자 속에 녹아들며 오른쪽으로 향했고.

-스르륵.

남은 네 명의 뱀파이어와 루나가 왼쪽 통로로 향했다.

카타콤처럼 벽돌로 이루어진 지하 통로가 쭉 이어졌고.

-으으……!

-크아아!

이내 고통 어린 비명이 루나의 귓가를 울렸다.

동시에.

“앞장설 테니, 은밀하게 내 뒤를 따라라.”

-스르륵.

동족의 피 냄새가 짙어진 것을 느끼고는 그림자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명령을 내렸다.

-저벅.

루나는 더 숨지 않고 통로 너머로 보이는 긴 공동을 향해 소리를 내어 걸어갔다.

통로 끝에 들어선 루나가 공동, 지하 감옥으로 보이는 장소에 들어서자.

“흠?”

“누구냐? 너는 처음 보는-.”

창백한 피부에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이들이 루나를 바라보며 의문을 표했다.

그리고.

“같은 밤의 일족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공동 내부를 쭉 둘러본 루나가 눈앞에서 의문을 표하는 이들.

같은 뱀파이어들을 향해 분노를 섞어 읊조리듯 물었다.

-스스스.

루나에게서 짙은 핏빛의 혈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오자.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

“루나리스 왕녀!? 분명, 죽었다고-!”

루나를 알아본 뱀파이어들의 하얀 안색이 더 창백하게 질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동시에.

“죽여라!”

“왕족의 능력도 각성하지 못한 반푼이다! 처리해!”

-스륵! 샤라락!

벽과 발밑 그림자에서 네 명의 뱀파이어들이 튀어나와 루나를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그 순간.

-스르륵.

루나를 기습하려던 뱀파이어들의 뒤로 루나를 따르는 뱀파이어들이 튀어나왔다.

먼저 루나를 습격하려던 뱀파이어들이 그들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촤아! 촤아악!

어둠 속성 마나로 만들어낸 날카로운 칼날들이 루나를 습격하려던 뱀파이어들을 가르고 찢어 버렸다.

-파사사……!

루나를 기습하려다가 역으로 기습당한 뱀파이어들이 피를 흩뿌리고는 검붉은 가루로 흩어지며 즉사했다.

“네놈들은?”

“젠장, 도망쳐야-!”

그 모습을 본 이들이 발걸음을 돌려 도망치려 할 때.

“혈옥.”

-콰아아!

루나가 핏빛의 혈기를 드넓게 내뿜으며 주변 일대를 휘감아 혈옥을 불러내었다.

공동 내부에 있던 모든 이들이 혈옥 속에 갇히자.

“네놈들이 아는 모든 걸 내뱉는 것이 좋을 거야.”

루나가 살기 어린 목소리로 배신한 뱀파이어들을 향해 읊조리듯 말했다.

“저, 저희는 그저 왕족 파벌의 탈주자들을 잡으라는 명령만 받았-!”

“며, 명령대로만 했을 뿐-!”

배신한 뱀파이어들이 목소리를 떨며 루나를 향해 말했다.

“……아는 게 없다는 소리로군?”

루나는 배신자들을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보고는.

“블러드 비스트.”

-슈르륵! 크화아아!

혈기로 괴수의 형상을 만들어내어, 앞서 말한 두 명의 배신자를 향해 쏘아 보냈다.

-콰직! 콰드득!

배신한 뱀파이어 둘이 순식간에 핏빛 괴물에게 물어뜯겨 즉사했다.

“네놈들도 아는 게 없겠지.”

루나가 차가운 눈빛을 띠고 남은 배신자들을 노려보며 말한 순간.

“여, 영주성 바로 옆 이단 심문소 안에 와, 왕족 파벌들이 구금되어 있습니다!”

배신한 뱀파이어들 중, 왜소한 몸집의 뱀파이어 하나가 바닥에 엎드리며 말했다.

그러자.

-크와악! 콰직! 쿠드득!

혈기로 만들어진 괴수들이 바닥에 엎드린 뱀파이어를 제외하고 남은 이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물어뜯었다.

“도, 도망-!”

“결계를 풀어!”

그런 루나의 공격을 피해 배신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질 때.

-스르륵! 샤샥!

루나의 뒤에 있던 네 명의 뱀파이어들이 그들을 추적해 단번에 척살했다.

단 한 명을 제외한 모든 배신자들이 멸절하자.

-슈화아아!

루나가 주변에 퍼진 혈기를 빨아들여 혈옥을 해제했다.

상황이 마무리되자.

“상대가 안 되는군요.”

“심지어 저희보다 높은 계급인데도.”

루나를 따르는 뱀파이어들이 주변에 흩날리는 검붉은 가루와 핏덩이를 보며 읊조렸다.

지금 루나를 따르는 뱀파이어들은 전원 귀족 계급이 아닌, 일반 서민 계급의 뱀파이어들이었다.

방금 그들이 상대한 이들 중 여섯 명은 남작과 준남작 계급의 귀족 뱀파이어.

본래라면, 일반 서민 계급 뱀파이어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였지만.

“저희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는 게 체감이 됩니다.”

루나를 따르는 이들은 그런 귀족 계급의 뱀파이어를 힘으로 압도해 보였다.

“그건 나도 항상 느끼고 있어.”

자신을 따르는 일족들의 말에 루나가 공감한다는 듯,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밤의 성채에서 일하던 어린 시종이구나.”

-저벅.

배신한 뱀파이어들 중 유일한 생존자.

바닥에 엎드려 있던 뱀파이어 앞으로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루나는 밤의 성채 안에서만 지내던 왕녀이기에, 성채 안에서 잡다한 일을 하던 뱀파이어들의 안면이 익숙했다.

눈앞에 있는 어린 뱀파이어는 그 익숙한 이들 중 하나였다.

“왜 배신한 것이냐?”

루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묻자.

“보, 복종의 낙인이…… 사, 살려 주십시오.”

바닥에 엎드린 어린 뱀파이어가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동시에.

-치이이……!

어린 뱀파이어의 목 부근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며 검은 연기를 피워내기 시작했다.

마치, 불에 달군 족쇄를 차고 있는 듯한 모습.

루나가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나, 블라디미르 로 루나리스가 불공정한 피의 계약을 해제하노라.”

-슈르륵! 슈화악!

혈기의 칼날을 만들어 내어 바닥에 엎드린 어린 뱀파이어의 목을 내려쳤다.

-사가각!

날카로운 절삭음이 울렸고 어린 뱀파이어의 목에 핏빛의 선이 그어졌다.

이대로 어린 뱀파이어의 목이 잘려 나가나 싶었지만.

-샥! 차카캉!

어린 뱀파이어의 목은 멀쩡했고 그 목을 감싸고 있던 얇은 족쇄가 대신 잘려 나갔다.

“가, 감사합니다. 왕녀님.”

“누가 네게 불공정한 피의 서약을 명했느냐?”

어린 뱀파이어의 감사에 루나가 분노 서린 목소리로 물었다.

“마, 마르크 공작님이…… 자신을 따르지 않으면 모조리 몰살시킬 것이라고……!”

어린 뱀파이어의 입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부, 붙잡힌 시종들에게 복종의 낙인을 건 자는 ‘제나 후작’입니다.”

마르크 공작을 돕는 또 다른 배신자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서약자의 말이 사실일 줄이야.”

루나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분노를 읊조렸다.

어린 뱀파이어의 입에서 흘러나온 인물인 제나 후작.

그는 뱀파이어 군주를 따르는 최측근 고위 귀족 중 하나였다.

왕족인 루나 역시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마르크를 도와 반란을 일으킨 주범 중 하나로 확인되었다.

루나는 제나 후작이 반역을 일으킨 마르크 공작을 도왔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는 마인들과 배신자들의 테러에 밤의 성채를 탈출하는 이들을 도왔었으니까.

그러나, 제나 후작이 만들어 낸 포탈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탈출하던 모든 일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게다가 어떻게 알았는지, 추적자들의 추격까지 따라붙었다.

다행히 자신과 류마는 추적자들을 뿌리치고 처용을 만나 악신의 저주도 해제하여 무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 처용과 만나고 뱀파이어들의 사정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놈이 배신자일 확률이 높겠네.

-포탈을 열 정도의 실력자가 ‘실수로’ 대피하는 사람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다? 그럴 리가 없지.

처용은 제나 후작을 배신자로 확정 짓는 듯이 말했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처용의 말을 전부 믿지 않았었다.

하지만.

“사, 사실입니다. 왕녀님, 제나 후작은…… 밤의 마신에게 충성한다고 분명히 들었습니다.”

복종의 낙인이 풀린 어린 뱀파이어가 증언을 이었다.

그가 말하는 밤의 마신은 판데모니움 서열 32위, 색욕악신 아스모데우스.

제나 후작은 뱀파이어 군주에게 충성하는 이가 아니었다.

그는 밤의 마신 자리에 앉은 대악마.

아스모데우스에게 충성하는 그녀의 권속이었다.

-으드드!

사실을 확인한 루나가 주먹을 거세게 쥐며 짧은 분노를 표출하고는.

“갇혀 있는 이들을 모두 풀어주고 류마와 합류한다.”

뒤에 있는 휘하 뱀파이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서약자, 영주성 근처에 있는 이단 심문소에 일족들이 갇혀 있어.’

처용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어쩐지, 안에서 뱀파이어들이 튀어나온다 했다.

루나의 메시지에 처용의 즉답이 들려왔다.

-영주성 정리는 거의 끝났어, 이단 심문소 앞에서 보도록 하지.

‘알았어.’

이어지는 처용의 말에 루나가 답하고는.

“네가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내게 말해 줘야 할 것이다.”

-슈화아아!

아직도 바닥에 엎드려 있는 어린 뱀파이어와 자신을 혈기로 휘감으며 사라졌다.

***

2일 차 세계 헌터 회의가 끝났을 무렵.

“……불가능하다고?”

신계, 아스가르드 주신의 성역으로 돌아온 오딘이 불편한 심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해 보아라 헤임달, 내게 찾아낼 수 없다고 고한 것이냐?”

오딘이 눈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중년 남성을 향해 말을 잇자.

“제 권능으로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주신이시여…….”

고개를 숙인 희끗희끗한 수염의 중년 남성, 경계선의 신 헤임달이 착잡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말에 오딘의 인상이 일그러질 때.

“헤임달, 조건이 부족한 건가?”

토르가 헤임달을 향해 물었다.

헤임달은 감시와 경계선의 신.

그는 대상의 정보를 모아 확인하는 것으로 그 대상을 탐색하고 찾아낼 수 있는 권능이 있었다.

그런 그가 찾아내지 못했다 함은, 탐색 대상의 정보가 부족했다는 의미였다.

“정보도 부족하지만, 태초의 그릇을 대상으로 권능을 발현하면, 제 권능이 튕겨져 나옵니다.”

헤임달은 토르의 말에 어째서 자신의 권능이 실패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가 오딘에게서 받은 명령은.

-태초의 그릇이 인간에게 깃들었다. 당장 찾아내라!

약 8년 전에 사라진 태초의 그릇을 찾아내라는 것.

헤임달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주신의 명령이기에 일단은 시도해 보았다.

예상대로 그 결과는 실패로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관리자와 빛의 신이 태초의 그릇을 품은 숙주에게 조치를 취한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세계 헌터 회의에서 야훼와 미륵은 태초의 그릇을 품은 숙주를 아무도 찾아낼 수 없도록 조치했다고 했었다.

헤임달은 ‘탐색’만큼은 올림포스의 헤르메스보다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이.

그런 그의 권능이 통하지 않았다면, 다른 누구도 찾아낼 수 없다는 말은 사실인 듯 보였다.

하지만.

“찾아야 하느니라! 다른 놈들 손아귀에 넘어가기 전에 우리가 먼저 차지해야 한다!”

오딘은 반드시 태초의 그릇을 손에 넣어야 한다며 강하게 말했다.

“아버지, 태초의 그릇을 수색하는 모습을 드러내기엔, 시기가 좋지 않습니다.”

그 모습을 본 토르가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침착하게 말했다.

“우선, 에스라 대륙의 일에 전념하며 다른 성운의 분위기부터 살피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 태초의 그릇을 찾는 일을 미뤄두고 그 하계종의 계획에 따르겠다는 것이냐?”

이어지는 토르의 말에 오딘이 불편한 심기를 한껏 드러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에스라 대륙이라는 곳에 예언자가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협력과 동시에 수색도 진행하면…….”

토르가 오딘의 고집에 타협점을 찾듯,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 태초의 그릇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에스라 대륙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옳았다.

그 세계가 악신들에게 넘어가면 지구가 위험해지니까.

게다가 에스라 대륙에 길드를 진출시키면, 성운으로서도 이득인 부분이 많았다.

토르가 현실적인 부분을 짚으며 오딘을 설득하자.

“크음……!”

오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길고 깊은 침음을 흘렸다.

“……에스라 대륙에서의 일은 네게 일임하도록 하겠다. 토르.”

오딘이 토르에게 에스라 대륙의 일을 맡을 책임자로 임명하자.

“악신 놈들에게 아스가르드의 위엄을 보여주겠습니다. 주신이시여.”

토르가 오딘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루이스가 내게 좋은 맥주를 선물해 주었다네, 같이 한잔하면서 이번 일을 이야기하지.”

전권을 일임받은 토르가 헤임달을 이끌고 주신의 성역에서 나가자.

“……로키.”

오딘이 낮은 목소리로 로키의 이름을 불렀다.

“네, 아버지.”

-스르륵.

오딘의 앞에 검녹색의 어둠이 모여들더니, 로키가 부복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순혈 의회에 그 변종, 계승자에 대한 정보를 알려라.”

오딘이 로키를 향해 명령하듯 말하자.

“…….”

로키가 소리 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오딘은 순혈 의회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게다가 로키의 정체, 그가 순혈 의회 멤버라는 사실까지도 알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계승자와 태초의 그릇을 확보할 방법을 찾아라.”

오딘은 로키를 이중 스파이로 활용하고 있었다.

토르조차도 모르고 순혈 의회의 멤버들도 모르는, 오딘과 로키만의 비밀이었다.

순혈 의회의 규칙상, 내부 정보를 함부로 언급하거나, 말한 순 없다.

순혈 의회의 맴버들이 각각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일절 언급할 수 없었다.

하지만.

“순혈자들이 계승자를 노리도록 유도하고 그들을 통해 예언자의 정체를 파악해라.”

오딘은 로키가 말하지도 못하는 정보에는 관심이 없었다.

순혈 의회의 멤버가 각각 누구인지도 관심이 없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로키를 통해 순혈 의회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모든 건…… 아스가르드를 위하여.”

오딘의 명령을 받은 로키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고개를 숙인 탓에, 보이지 않는 로키의 얼굴에는.

“…….”

일그러진 표정으로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는, 기괴하고도 복잡한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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